The Healing Life of a Mus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133
133 이어져가는
* * *
“집이요?”
“그래. 엄마가 예전부터 말했었잖니. 서진이 네가 연습하기 편할 만한 집을 알아보겠다고. 마침 괜찮은 집이 나온 것 같아서.”
어머니는 슬쩍 미소를 지으셨다.
사실 이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건 꽤 오래전부터였다.
내가 피아노를 시작한 지 1년 정도가 지났을 무렵부터, 가족회의 때마다 한 번씩은 언급이 됐었다.
다만, 그동안은 집안 여건이 좋지 않다 보니 흐지부지하게 결론이 지어지고 말았었는데, 이제는 상황이 확실히 좋아진 것 같았다.
“이번에 네 아빠가 여름에 낸 소설이 꽤 흥행을 했거든. 거기에 엄마가 새로 낸 시집도 반응이 괜찮고. 이때다 싶더라고. 어때. 혹시 내일 시간 괜찮으면 엄마랑 같이 집 구경하러 가지 않을래?”
“저는 좋아요. 요즘 그렇게 바쁘지는 않아서요.”
⌜Long day⌟는 발표 일주일 만에 음원 차트 1위를 찍었다.
이미 작곡가의 손을 떠나간 노래.
팬들은 노래에 공감해줬고, 응원을 보내줬다.
지금 시점에 작곡가가 할 일은 딱히 없었다.
예중생으로서.
그저 학교에 열심히 다니며, 피아노 연습에 매진하고 있는 정도가 내 스케줄의 전부였다.
“그러면 내일 학교 마칠 때 엄마가 데리러 갈게. 부동산도 그때 같이 가는 걸로 하자. 알았지?”
“넵. 알겠습니다.”
나와 어머니의 대화를 가만히 지켜보던 수연이가 점점 눈을 크게 뜬다.
왜 그런가 했더니, 얘 나름대로 충격이었나 보다.
“그, 그럼 우리 가족은 이제 새봄 아파트에서 더 이상 안 사는 거야?”
“잘하면 그렇게 될 수도 있겠네?”
“나는 여기가 정말 좋았는데······. 내 방도 좋았고, 거실도 좋았고, 애착도 가고, 또······.”
“또?”
“살면서 정도 들었단 말이야. 섭섭해. 나 저기에서 매년 키도 쟀었잖아.”
방문에 붙어있는 키 스티커를 보며 아쉬워하는 수연이.
어머니는 수연이 옆으로 가서 머리를 쓰다듬어주셨다.
“그래도 오빠가 편하게 연습할 수 있는 집이 더 좋지 않을까? 오빠는 지금까지 집이 아닌 장소에서만 피아노 연습을 제대로 할 수 있었다는 거, 수연이도 잘 알잖아.”
수연이가 고개를 살짝 끄덕인다.
“그러면 오빠를 위해서 우리 같이 새집 구경 가는 거 괜찮지?”
수연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에휴. 저도 잘 알아요. 그냥··· 여기서 오빠랑 함께 만든 추억이 많아서 그래요. 그게 아쉬웠어요. 사실 정이 들었거든요.”
“큭큭. 그랬니? 그런데 말이야. 앞으로 수연이는 지금보다 더 자라게 될 거잖아? 지금 수연이 방은 너무 작을 것 같아서 그래. 엄마는 수연이한테 더 큰 방을 주고 싶거든.”
“그러면······.”
우리 착한 수연이는 금방 수긍을 해줬다.
한평생을 이곳에 지내면서 얘가 얼마나 새봄 아파트에 애착이 갔는지 잘 알 수 있었······.
* * *
다음 날.
“우와! 오빠! 집에 마당이 있어! 그네가 있어! 나무도 있어! 나 여기서 뛰어놀아도 되겠어! 대박이야!”
“······.”
그······ 새봄 아파트에 애착이 남아있긴 했지만, 새집을 보자마자 너무나 신나 하시는 우리 동생님이었다.
어머니께서 알아본 집은 단독 주택이었다.
새봄 아파트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
살짝 언덕진 곳에 지어진 이 집은 다른 주택과 거리가 조금 떨어져 있었다.
부동산 아주머니의 말로는, 걸어서 7분 정도 거리까지 다른 집이 없다고 하셨다.
실제로 내가 마음껏 연습하기에 딱인 집이었다.
“어떠세요? 연식이 조금 있는 집이긴 한데, 당시에 자재도 다 좋은 걸 써서 지었거든요. 그리고 무엇보다 넓잖아요. 주차도 4대까지는 충분하세요.”
“너무 좋은데요? 지금 집 안도 볼 수 있는 거죠?”
“물론이죠. 원래 계시던 분이 외국으로 이민을 가셔서 짐도 다 빠진 상태예요.”
삑삑삑삑삑-
일정한 박자로 울려 퍼지는 도어락 소리.
수연이는 내게 속삭이기 바빴다.
“오빠, 우리 이제 열쇠 안 가지고 다녀도 되는 거야? 그런 거야?”
“만약 여기 살게 되면 그렇겠지. 하지만 일단은 집부터 봐야 하지 않을까? 다음에 결정을 하게 되는 거니까.”
“아, 맞다! 오늘은 구경만 온 거였지. 깜박했어. 내 정신 좀 봐.”
그러면서도 눈을 반짝거린다.
집은 생각보다 넓었다.
2층 구조의 단독주택이었는데, 인테리어가 나무로 되어있어서 꽤 고급스러운 느낌을 줬다.
수연이는 집을 두리번거리다가 나를 끌고 2층으로 올라갔다.
1층이 훤히 보이는 2층 난간에서 수연이는 어머니께 손을 흔들어줬다.
행동만 봐도 얘가 많이 신났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와! 이 방은 엄청 넓다! 창문도 커!”
2층에서 가장 큰 방에 들어서자 수연이가 감탄을 내뱉는다.
우리를 뒤따라온 어머니께서 내게 말을 걸어오셨다.
“네 방으로 쓰면 될 것 같더라고. 부동산에서 사진으로만 봤을 땐 잘 몰랐는데, 실제로 보니까 더 넓네.”
“여기가 이 집에서 제일 큰 방 아니에요? 그러면 어머니랑 아버지가 쓰셔야죠.”
“네 방에 피아노를 놔야 하는데 그럴 수가 있나. 마침 옆방은 수연이가 쓰면 될 것 같고. 딱이지?”
“와! 오빠 방 옆 방이 제방이에요? 오빠랑 맨날 놀 수 있겠다!”
두다닥 자기 방으로 달려가는 수연이.
이럴 때 보면 영락없는 어린아이였다.
우리는 천천히 집을 구경했다.
원래 살던 주인이 짐을 이미 빼 둔 상태라 편하게 구경을 할 수 있었다.
단독주택이라 옥상도 마음대로 올라갈 수 있었는데, 이 집 옥상에서는 새봄동이 한눈에 들어왔다.
어머니께서 나지막이 질문을 해오신다.
“어때? 마음에 들어?”
“무척요. 새봄동에 이런 데가 있었네요.”
“그러게. 엄마도 여기 꽤 오래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집이 있는 건 또 처음 알았네.”
내가 지금의 수연이보다 어렸을 때.
어머니와 아버지와 내가 단칸방에서 지냈을 때.
그곳보다 훨씬 널찍한 새봄 아파트로 이사 왔을 때가 문득 떠올랐다.
분명 나 혼자였었는데, 어느 날 꼬물거리는 쪼꼬만한 애와 함께 살게 됐다.
어머니 배 안에 있었을 땐 그렇게 조용했으면서, 세상에 나오고 나서는 울고불고 난리도 아니었다.
‘잠을 못 잘 정도였었지.’
그런 애가 어느새 저렇게 도도도 뛰어다닌다.
내게 다가와서는 “오빠, 나 사실 이런 집에서 살아보는 게 꿈이었는지도 모르겠어.”라며 배시시 웃는다.
‘좋아하기는.’
나는 수연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우리는 이 집이 마음에 들었다.
어머니께서는 부동산 아주머니께 내일 바로 계약을 하겠다고 말씀하셨다.
부모님은 이번에 내가 벌게 된 돈을 받아주지 않으셨다.
저번에, 남아있던 전세 대출을 갚아준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며 손사래를 치셨다.
오히려 그동안 내게 더 잘해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씀만 반복하셨다.
‘안 그러셔도 되는데······.’
내가 모은 돈으로는 그랜드 피아노를 사기로 했다.
그동안은 집에서 연습할 때 디지털 피아노로 연습을 해야 했기에, 그랜드 피아노가 있는 연습실을 다니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내 집에서도 연습을 할 수 있게 됐다.
디지털도 아니고, 빌려 쓰는 것도 아닌.
내 피아노로.
나 혼자 쓸 수 있는 피아노로 말이다.
그런 생각이 들어 조금은 설레는 느낌이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 집이 될, 아직은 익숙지 않은 이 옥상에서.
나는 우리 동네를 바라봤다.
* * *
“지금까지 네가 쓴 모든 곡 중에서도 제일 히트 중이야. ⌜Long day⌟ 반응이 심상치가 않네. 축하한다.”
미국에서 돌아온 박훈 과장님은 나를 보자마자 축하 인사부터 건네주셨다.
“과장님 덕분이죠. 미국에서 고생 많으셨다면서요?”
“고생은. 일정이 빡빡하다 보니까 정신이 없었던 것뿐이야. 다 잘 처리됐어.”
박훈 과장님은 미국에서 있었던 일을 내게 알려주셨다.
대부분 전화로 들었던 내용.
하지만 그중엔 조금 독특한 일도 있었다.
“⌜DreamSounds⌟요?”
“미국에서는 꽤 유명한 레이블인데 들어 본 적 있어?”
말을 하면서 내게 명함을 한 장 건네주신다.
MJ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그레이슨 그랜트.
이분이 누구인지는 몰라도 ⌜DreamSounds⌟는 들어 본 적이 있는 회사였다.
“요즘엔 노래 들을 때 상세정보도 확인을 하는 편이거든요. 거기에서 ⌜DreamSounds⌟라는 이름을 봤었죠. 그런데 이분이 왜 저를 찾으시는 거예요?”
“글쎄다. 너랑 인연을 만들려고 하는 걸 수도 있고, 그저 호기심 때문일지도 모르겠네. 부담되면 연락을 안 해도 되긴 하는데······.”
박훈 과장님께서 조금 천천히 말을 이어가셨다.
“네가 누구에게 음악을 배웠는지 궁금하다는 말을 하시더라고. 치유의 음악을 만들 수 있는 작곡가가 흔치 않다는 이야기도 하셨고.”
“······ 네?”
“그런데 막상 너는 독학으로 작곡을 배웠다고 했잖냐. 이 사실을 그쪽에서 알게 되면 아마 깜짝 놀랄 거야. 일단 명함은 가지고 있어. 네게 도움이 될만한 분이거든. 내가 들은 건 이게 전부야.”
“······.”
갑작스럽게 듣게 된 이야기.
머릿속에 많은 생각이 교차하는 가운데, 과장님께서는 나를 보며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런데 놀라긴 아직 일러.”
“뭐가··· 또 있나요?”
“그래. 장현필 가수님께서 이걸 너한테 전해줬으면 했거든. 한 번 열어 봐봐.”
“······.”
평범한 편지 봉투 하나를 내게 건네주신다.
‘방금 이야기보다······ 더 놀랄만한 게 있다고?’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봉투를 열어봤다.
그 안엔 몇 장의 손 편지와 수표가 한 장 들어있었다.
박훈 과장님께서 바로 설명을 해주신다.
“장현필 가수님. 오래된 분이잖아. 조금 클래식하시더라고.”
“이게 뭐예요?”
“네 인센티브. 현물이 가는 게 기분이 더 좋을 거라고 하시더라고. 내가 ⌜JHP⌟에 가서 직접 받아온 거야.”
한 장짜리 수표엔 7,000만원이라는 금액이 적혀 있었다.
작곡비로 받았던 금액과 같은 액수.
그리고 편지엔 장현필 가수님의 사연이 세세하게 쓰여있었다.
장현필 가수님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야기.
어머니의 임종에 관련된 이야기.
마지막으로 ⌜Long day⌟를 부르며 위로를 받았다는 이야기까지.
이 ‘인센티브’는 노래의 흥행 때문에 준다기보다는, 개인적으로 보답하고 싶어 주는 돈이라는 내용도 적혀 있었다.
“장현필 가수님께 이런 사연이 있는 줄은 몰랐네요······.”
“신기하지?”
“그런데··· 이 돈을 제가 받아도 되는 거예요?”
“그럼? 고집이 꽤 센 분이라 안 받으면 오히려 화를 내실 수도 있어. 그리고 들어온 돈은 일단 받고 보는 거야. 알겠냐.”
“······.”
“어쨌든 ‘직접’ 전달은 했으니, 수표는 내가 나중에 은행에 가서 네 통장에 넣어줄게. 법인 간 거래라 처리해야 할 게 조금 남았거든.”
나는 앉은 자리에서 장현필 가수님께서 쓴 손 편지를 반복해서 읽어봤다.
내가 쓴 ⌜Long day⌟의 가사를 살짝 바꾼, 장현필 가수님의 가사를 몇 번인가 읽어 내려갔다.
박훈 과장님은 나를 집까지 데려다주셨다.
그러면서 “치유의 음악. 네 음악을 관통하는 단어인 것 같더라. 멋진 노래 만들어줘서 고맙다. 서진아.”라는 말을 끝으로, 다음에 보자며 아파트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그날 밤.
나는 고민 끝에 ⌜DreamSounds⌟ 명함에 적혀있는 이메일에 메일을 보내봤다.
뉴튜브 공식계정에 연결된 MJ 대표 이메일을 사용했는데,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답장이 왔다.
그렇게 몇 번인가 그레이슨 그랜트와 이메일을 주고받았다.
대단한 내용이 오가지는 않았다.
⌜Long day⌟를 포함한 내가 작곡했던 노래가 좋았다는 칭찬.
기회가 된다면 함께 작업을 하고 싶으니, 그때는 ⌜월광⌟에게 이야기를 전달해보겠다는 일종의 제안.
그리고.
이러한 음악을 누구에게 배웠는지에 대한 질문.
나는 마지막 질문엔 제대로 대답하지 않았다.
명함을 전해줘서 고맙다는 답장을 끝으로 그랜트와 이메일을 주고받는 것을 마무리했다.
시간은 금방 흘러갔다.
학교에서 내주는 과제에 집중하느라, 방과 후에는 피아노 연습과 독일어 고급반 수업을 듣느라.
2주일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이사 날 아침이 밝아왔다.
다행히 우리가 살던 새봄 아파트에 들어오려는 분을 빨리 구하게 돼서 일이 잘 진행됐다.
내가 어렸을 땐 아버지와 어머니를 도와 직접 트럭에 짐을 실었었는데 이번엔 포장이사를 하기로 했다.
비닐 안에서 압축되어 가는 곰돌이 인형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수연이의 눈을 가려주면서.
우리 가족은 새로운 집으로 장소를 옮겼다.
이사는 생각보다 빨리 끝났다.
가구 배치와 짐 정리까지 완벽하게 해주신 덕분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없었다.
우리는 점심에는 짜장면을 시켜 먹었고, 저녁을 먹을 시간이 되었을 땐 옥상으로 올라갔다.
이 집 옥상에는 나무로 된 평상이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분주하게 평상 위를 세팅하기 시작했다.
가스버너, 수저, 물, 컵, 접시부터.
오늘의 메인인 삼겹살까지.
우리 가족은 평상에 둘러앉아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집 뒤편에 있는 산에서 풀벌레 소리가 들려온다.
저 멀리 우리 가족이 살았던 새봄 아파트의 불빛이 보인다.
치이이익 거리는 소리와 함께 고기가 익어간다.
아버지께서는 극도로 집중하며 삼겹살을 뒤집었다.
어머니는 쌈을 싸서 아버지께 먼저 드렸고, 나와 수연이에게도 하나씩 주셨다.
슬쩍 맥주 한잔을 곁들이시는 아버지와 어머니.
수연이는 그 모습을 보다가 내 옆구리를 콕 찔렀다.
“오빠. 우리도 빠질 수 없잖아.”
“그럴까?”
우리 남매는 서로의 컵에 사이다를 따라줬다.
그리고 건배했다.
기분이 좋으셨는지 시인인 어머니께서 건배사까지 해주셨다.
해가 저물어가기 시작한다.
수연이는 볼록 튀어나온 배를 두드리며 평상에 드러누웠다.
“오빠···. 나 더 이상 못 움직여···.”
우리는 그 모습을 보고 웃음을 터트렸다.
부모님께서는 평상을 치우셨다.
내가 도우려고 하자, 어머니께서는 수연이나 잘 봐달라는 부탁을 해오셨다.
덕분에 나도 동생 옆에 눕게 됐다.
하늘엔 달이 떠오르려 하고 있었다.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들어 2층 내 방에 있던 기타를 가져왔다.
여기서는 이 시간에 연주를 해도 아무 상관이 없었다.
옥상 평상에 드러누워 기타를 끌어안았다.
수연이는 옆으로 돌아누우며 나를 쳐다봤다.
활짝 웃어주는 우리 동생님.
나는 ⌜Long day⌟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 다음엔 ⌜Live Forever⌟를.
그 다음엔 ⌜신기루처럼⌟을.
끝없이.
끝없이.
연주를 이어갔다.
어느새 아버지와 어머니도 옥상에 올라오셨다.
평상 끄트머리에 앉아 아무 말 없이 달을 쳐다보신다.
어머니는 아버지 어깨에 머리를 살포시 기대셨다.
작은 나무배에서 연주를 하던 내가······.
지금 이곳에 오게 됐다.
지금 이곳에서······.
치유의 음악을 만들게 됐다.
내가 한 말이 아니었다.
어느 누군가가.
나를 모르는 누군가가 내 음악만을 듣고 그런 말을 해줬다.
나는······.
그거면 충분했다.
부드러우면서도 따뜻한 바람이 이곳 옥상까지 불어온다.
바람은 내게 포근한 이불이 되어줬다.
나는 음악을 연주했다.
저 높이 떠 있는 달을 바라보며.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 * *
노년의 신사가 인천공항에 발을 내딛는다.
몇 걸음을 옮기기도 전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그는 곧바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그래···. 그동안 잘 있었니.”
독일의 한 대학에서 마스터클래스 요청이 들어오는 바람에 조금 늦게 귀국하게 된 노년의 신사.
그는 인자한 미소를 띠며, 제자와 대화를 이어 나갔다.
“그거 좋구나. 그래. 조만간 얼굴이나 보자꾸나.”
카네기홀 공연에 대한 ⌜Schmid⌟의 엠바고가 슬슬 풀리려는 지금.
강유한 교수가 한국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