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Mus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144
144 이러한 상황 속에서
* * *
인천공항.
기자들이 잔뜩 모여있는 곳을 보며 사람들이 하나둘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오늘 무슨 연예인이라도 오나?”
“그러게. 카메라도 많고. 장난이 아니네.”
“유명한 아티스트가 내한이라도 했나?”
“인터넷에서 한번 찾아볼까?”
“그러자.”
가던 길을 멈추고 열심히 스마트폰을 찾아보기 시작한 이들.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던 한 기자가 선배에게 질문을 한다.
“아직 대중적인 인기는 없나 보네요. 그 아이 일정을 아는 사람들이 하나도 없는 걸 보면요.”
그의 말은 ‘한서진 피아니스트 팬’이 아직 없는 것 같다는 소리였다.
“이제 막 활동을 시작한 아이니까 어쩔 수 없지. 지금까지는 독일이랑 미국에서 한 번씩 공연한 게 전부잖냐. 한국에서는 공연한 적도 없고.”
“또 그런 것 치고는 거의 모든 방송국에서 그 아이를 찍기 위해 나왔네요. 카네기홀 파워가 대단하긴 한가 봐요.”
후배 기자의 말에 선배 기자가 설명을 덧붙여준다.
보통 대한민국에서 ‘카네기홀 공연’을 했다는 보도가 나갈 때.
그 공연은 소규모 공연장인 ‘와일 리사이틀 홀’이나 ‘잰켈 홀’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고, 하물며 아티스트가 직접 대관해서 공연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이러한 공연의 경우, ‘카네기홀에서 공연했다’는 걸 훗날 마케팅에 활용하기 위한 일종의 포석 같은 거였다.
반대로 이 아이는 카네기홀에서 가장 큰 ‘아이작 스턴 오디토리엄’에서 만석으로 공연을 마무리했다.
거기에다가 대관을 한 것이 아니라 카네기홀과 ⌜Schmid⌟의 수익 배분 방식의 계약으로 진행이 된, 업계 사람들이 말하는 ‘진짜 카네기홀 공연’을 성공시킨 것이다.
“그것도 14살이라는 나이에 말이야. 뉴욕 현지에서 평론가들 반응도 심상치가 않고. 지금 상황에서 저 아이 촬영을 놓친다? 그건 말이 안 되지.”
“그러면······. 대한민국에서 진짜로 천재가 나왔다고 보면 될까요?”
“그래. 특파 나간 황 선배 말만 들어도 그런 것 같더라고. 대한민국을 떠나서 세계적으로 인정 받을 만한 천재가 나왔다더라. 지금이라서 이 정도 촬영 기회를 얻을 수 있었던 거지,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도 몰라.”
“이야. 그 정도였습니까?”
“우리나라에서 클래식 인기가 시들해서 그렇지. 아니었으면 진짜로 난리가 났을 거다. 또 모르지. 그 아이 덕분에 클래식 붐이 새롭게 불지도.”
“······ 엄청난 애였네요.”
“그러니까 똑바로 찍어야 한다. 정신 잘 차려.”
“아, 알겠습니다.”
두 사람의 대화가 끝나고 얼마간 시간이 흘렀을 때.
인천공항 입국장이 시끌시끌해지기 시작했다.
트렌치 코트 차림에 선글라스를 낀 남자아이.
그리고 그 남자아이 바로 옆에 있는, 작은 여자아이 역시 똑같은 트렌치 코트를 입은 채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다.
쪼끄마한 여자아이의 당당한 걸음걸이가 사람들의 시선을 먼저 사로잡는다.
“쟤들 뭐야? 아역 배우들?”
“큭큭. 둘이 깔 맞춤까지 했나 봐. 남매인가?”
“진짜 귀엽다!”
남자아이의 걸음에 맞춰 도도도 걸음을 옮기는 여자아이.
기자들 앞에 남자아이가 섰을 때, 부모님으로 추정되는 두 사람이 여자아이를 혹 낚아채 갔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행동에 사람들은 얼굴에 미소를 띠었고, 기자들은 곧바로 질문을 이어 나갔다.
남자아이는 이런 상황이 이젠 익숙해졌다는 듯, 기자들의 질문에 능숙하게 대답했고, 금방 인천공항을 빠져나갔다.
짧고 명료했던 아이의 대답.
15분 정도밖에 이어지지 않았던 인터뷰.
아쉬움이 남은 쪽은 오히려 기자들이었다.
“어떻게 방송이라도 하나 기획해봐야 하는 거 아냐?”
“그런데 ⌜Schmid⌟에서 진작에 다 거절했다고 하더라고.”
“출연료로 얼마나 주겠다고 했는데?”
“A급 배우 대우를 해준다고 해도 눈 하나 꿈쩍 안 하는 것 같더라.”
“그렇다면······. 음악만 신경 쓰는 연주자이려나?”
“그럴지도 모르지.”
“우리 입장에선 곤란하네.”
“그러게 말이다.”
기자들은 한서진이 나간 출구를 한동안 바라봤다.
.
.
.
인천공항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자동차 안.
수연이는 내게 하이파이브를 해줬다.
“오빠, 오늘도 수고했어!”
“별말씀을. 그런데 수연이도 비행기 타고 오느라 고생했잖아. 피곤하겠다.”
“아냐. 아냐. 오빠 옆자리에 앉을 수 있어서 엄청 재미있었어! 오빠랑 같이 비행기를 탄다면 100번도 더 탈 수 있어.”
“말이라도 고맙네.”
“진짜라니까? 여차하면······.”
나랑 같이 비행기를 탈 수만 있다면, 자기를 캐리어에 넣고 타도 좋단다.
지금은 충분히 들어갈 수 있을 거라고.
집에 가서 한번 테스트를 해보자고 하신다.
나는 수연이 볼을 살짝 꼬집어줬다.
“아얏!”
“엄살은. 수연이가 그렇게까지 안 해도 되니까 앞으로도 같이 자주 다니자.”
“크흠. 오빠가 그렇다면 뭐~”
내 한 마디에 한껏 들뜨신 우리 동생님이었다.
수연이는 내가 뉴욕에서 사준 트렌치코트가 무척 마음에 든다면서, 고맙다는 말을 반복했다.
뉴욕에서 공항에 가기 전에 잠깐 시간이 남아 로드샵에 들어갔었는데, 수연이와 내가 입을만한 트렌치코트가 있어 각각 구매했었다.
수연이는 코트 주머니에 손을 푹 찔러넣으면서 나를 슬쩍 바라봤다.
내가 똑같은 코트를 입고 있는 걸 보고 배시시 웃는다.
“히히. 뭔가 같은 한씨 가문이라는 느낌이 들어서 좋아. 고마워 오빠.”
“대단한 것도 아닌데 뭘.”
“아냐. 나도 나중에 오빠 옷 많이 사줄게. 그러니까 잊지 말고 다 기록 해둬. 알았지?”
내 자동차부터 시작해서 별걸 다 사주겠다는 수연이.
우리 남매의 대화를 듣고 있던 부모님께서는 웃음을 터트리셨다.
“그러면 수연이는 나중에 돈 많이 필요하겠네? 오빠한테 사주고 싶은 게 많아서 말이야.”
“그래서 오빠처럼 공부 열심히 하려고요. 그리고 엄마 아빠도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알아서 다 챙겨드릴게요.”
“큭큭. 그래.”
“수연이 클 때까지 아빠도 까먹으면 안 되겠다.”
금방 왁자지껄해진 자동차 안.
수연이는 부모님 눈치를 살피다가 내게 조그맣게 속삭였다.
“그런데 오빠.”
“응?”
“그래도 나한텐 오빠가 1번이니까 너무 걱정하지는 마. 내가 오빠를 제일 많이 챙겨줄 테니까. 대신 엄마 아빠한테는 비밀로 하자. 알았지?”
“······.”
결국엔 나도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조금 전 대화는 비밀로 하겠다고 수연이하고 새끼손가락까지 걸게 됐다.
앞으로 수연이가 정산(?)을 해줄 날이 내심 기다려질 것만 같았다.
“크흠! 내가 이래 봬도 장녀잖아. 한번 두고 보라니까?”
이건 진심이었다.
* * *
다음날.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소동이 일어났다.
제일 먼저, 내게 카네기홀 공연에 관련된 수많은 질문이 쏟아졌다.
반복해서 대답해야 하는 질문들.
그래서 나는 피아노과 A반 친구들과 나의 안녕을 위해, 모두를 모아놓고 한 번에 설명을 해줬다.
“객석은 진짜로 2,804석이었어.”
“““오오오오!!!”””
“거장 피아니스트님들과 만난 것도 사실이야. 같이 식사도 했었지.”
““““대박!!!””””
마치, 어린 새에게 먹이를 주는 어미 새의 심정으로, 나는 썰을 하나하나 풀어갔다.
우리 순진한 A반 친구들은 눈을 반짝이며 내 말을 경청해줬다.
다행히 설명이 끝난 이후에는 친구들이 잠잠해지긴 했다.
하지만 거의 곧바로 두 번째 소동이 일어나게 됐다.
“너! 수연이랑 옷 똑같은 거 입고 인천공항 들어왔지?”
“······ 그게 인터넷에 떴어?”
“지금 완전 난리 났어! 남매 끝판왕 패션으로! 수연이는 또 왜 이렇게 귀여운 건데?”
평소에도 수연이를 무척 좋아해 주는 백소연은, 다음에 수연이에게 코트를 입힌 채 학교로 데리고 와달라는 부탁까지 해왔다.
기자님들이 멋지게 찍어주신 우리 남매 사진 덕분에 교실은 한동안 더 시끌벅적해졌다.
이외에도 몇몇 다른 과 애들이 A반으로 놀러 오는 바람에 정신없는 하루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결국, 방과 후가 되어서야 나는 평온을 찾게 됐다.
“서진이 너 완전 이슈 메이커구나. 물론 좋은 쪽으로 말이야.”
“오늘 정신이 없긴 없었네. 선생님들도 나한테 질문을 엄청 하셨었잖아.”
내 말을 듣고 이하은이 피식 웃는다.
“사실, 선생님들 중에서도 카네기홀 무대에 서 본 분들은 몇 분 안 계시잖아. 거기에 ‘아이작 스턴 오디토리엄’ 무대에 서 본 분들은 아예 없으시고. 네가 신기하셨던 거지. 자랑스럽기도 하고. 참고로 나도 그랬고.”
“말은.”
“진짜거든?”
우리는 평소와 다름없이 함께 하교를 했다.
이하은은 지난 일주일 동안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내게 알려줬다.
그리고 내가 봐야 할 프린터와 해야 할 숙제를 전부 정리해서 파일로 건네줬다.
거기에 필기한 공책까지 빌려준다.
반장인 이하은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했지만, 고마운 건 고마운 거였다.
그래서 저녁은 내가 사기로 했다.
“친구 사이엔 안 그래도 되거든? 그리고 원래 내가 해야 할 일이기도 하고.”
“아냐. 그래야 내가 마음이 편해서 그래. 겸사겸사 먹고 싶던 것도 먹고.”
“먹고 싶던 거?”
“응.”
새봄 분식은 언제나 진리였다.
외국에 나갔다 오면 항상 당기는 떡볶이.
자작한 떡볶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어묵 국물.
거기에 바삭한 김말이와 야채 튀김까지.
왜 항상 이 맛이 그리운지 모르겠다.
“진짜 최고의 맛이야.”
“뉴욕에 있는 레스토랑 음식보다 더?”
“무조건. 이건 세계로 나아가야 할 음식이거든.”
“큭큭. 서진이 너답네.”
한창 떡볶이 국물에 김말이를 담그고 있을 그때.
새봄 분식 이모님께서는 서비스로 핫도그를 하나 주시며 내게 질문을 해오셨다.
“그런데 서진이 너 이번에 카네기홀 갔다 오지 않았니?”
“엇. 어떻게 아셨어요?”
“어제 뉴스에서 봤지. 세상에! 진짜로 맞나보네! 너희 엄마가 엄청 좋아하시겠다!”
새봄동에서 장사를 하시다 보니, 서로서로 알음알음 알고 지내시는 분들.
나는, 나를 알아봐 주셔서 감사하다고 이모님께 인사를 드렸고, 이모님은 내게 갑자기 A4용지를 슬쩍 건네주셨다.
“유명인한테 사인은 하나 받아둬야 할 것 같아서 그래. 혹시 괜찮을까? 가게에 걸어둘까 하는데. 요즘 많이들 그렇게 하더라고.”
“어휴. 당연히 해드려야죠. 제가 여길 몇 년을 다녔는데요.”
“그래? 그러면 기다려봐. 아줌마가 서비스 조금만 더 가지고 올게.”
“네? 저희는 이미 배가 부른······.”
“있어 봐~ 금방 올 테니까~”
“······.”
이 상황을 보고서 이하은은 다시금 큭큭 웃기 시작했다.
“이제는 서진이 너, 진짜로 연예인이 다 됬네.”
“내가 새봄 분식에 사인을 하는 첫 번째 사람이 될 줄은 몰랐어.”
“새봄동 최고의 스타! 앞으로 이런 일 많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조금 어색한 듯 사인을 하고 나서 얼마간 기다렸을 때.
우리가 처음 먹었던 양 그대로 떡튀순탕(떡볶이, 튀김, 순대, 어묵)이 리필됐다.
“서진아, 많이 먹어. 모자라면 언제든지 말하고.”
“저······.”
“응? 핫도그도 하나 더해줄까?”
“······ 아뇨. 잘 먹겠습니다.”
“그래. 그래. 그리고 사인 고맙다! 새봄동에서 뉴스에 나오는 사람이 나올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아줌마가 다 뿌듯해! 아주 이뻐 죽겠어!”
“그······. 감사합니다.”
나와 이하은은 먹을 수 있는 만큼은 먹어보려고 했지만, 아무리 봐도 무리였기에 결국 포장을 할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다가 이모님께서 추가로 만들어주신 떡볶이 세트를 들고 나서야 우리는 새봄 분식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서진아.”
“응.”
“연예인이라는 거······. 굉장한 거구나······.”
“내가 연예인은 아니지만, 굉장한 건 맞는 것 같아.”
우리는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하은과 갈림길에서 헤어진 나는 떡볶이 세트를 한가득 손에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오빠 이게 다 뭐야?”
“떡볶이. 조금 싸 왔어.”
“······ 조금?”
고개를 갸웃거리는 수연이.
덕분에 우리 가족은 저녁에 떡볶이 파티를 할 수 있었다.
* * *
일주일 뒤.
이메일을 확인하던 ⌜Schmid⌟의 로저스 디렉터는 슬쩍 미소를 띠었다.
참고, 참고, 기다려왔던 연락.
드디어 그곳에서 연락이 왔기 때문이다.
‘먼저 연락할 수는 없었지. 이런 사소한 부분에서 주도권이 넘어가는 거니까.’
로저스는 싱가포르 ‘에스플러네이드’ 공연장 측의 이메일에 답장을 하고 나서 하루를 더 기다렸다.
다음날, ⌜Schmid⌟가 원하는 시간에 맞춰 온 연락.
로저스 디렉터는 최대한 가벼운 톤으로 전화를 받았다.
“네. ⌜Schmid⌟의 로저스 디렉터입니다.”
“하아······. 최근에 일정이 빠듯해서 말입니다. 준비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많이 있거든요.”
“거기에다가 한서진 피아니스트는 학생이잖습니까. 심지어 실기 시험 일정도 있어서요.”
“카네기홀에서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쳤다고 해도 학생의 본분을 잊지 않는 훌륭한 아티스트죠. 하하하. 맞습니다. 엄청나게 성실한 학생입니다. ‘돈’과 ‘무대’에 흔들리는 아티스트는 아니죠.”
“‘에스플러네이드’의 일정을 일방적으로 따르기는 조금 어려움이······.”
“네. 그러면 일단 자세한 내용은 메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최소한의 조건은 알아서 맞춰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희가 일일이 확인하고 비교할 수는 없어서 말입니다.”
“그러면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앞으로 저희 아티스트의 일정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요.”
⌜Schmid⌟는 아시아에서 손꼽히는 공연장인 ‘에스플러네이드’와 여유 있게 협의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카네기홀 무대를 성공적으로 마친 만 13세의 피아니스트.
세계의 공연장이 해당 피아니스트를 원하고 있었다.
거장들과 평론가의 극찬을 받은 연주자가 오랜만에 나왔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는 언제나 피아니스트가 갑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Schmid⌟는 그걸 완벽히 이해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