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Mus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70
70 다양한 시선
* * *
2월과 3월 사이.
많은 이들이 새로운 시작을 하는 시기.
학생들은 새 학년이 되거나 새로운 학교로 가게 되고,
취업준비생들은 상반기 취업 시장에 뛰어들게 되며,
고양이들은 이 시기에도 사람들 앞에서 배를 보여준다.
야옹!-
“착하다. 착하다.”
이하은이 배를 긁어주자 곧바로 갸르릉거리는 소리를 낸다. 조금 못생긴 고양이. 괜히 웃음이 나왔다.
고양이를 보다 보니 문득 어제가 떠올랐다. 서진이에게 이야기해줬던 고양이가 바로 이 고양이었기 때문이다.
‘서진이를 따라 영화관에 가서는··· 그리고 영화가 끝난 뒤에는···’
이하은은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민망했던 순간이 떠오른 탓이었다.
“나 너무 울었다니까. 정말로 부끄러운 순간이었어. 걔가 날 보고 당황하는 것도 민망했고···. 마지막 장면이 너무 감동스러워서 그랬던 거야! 갑자기 그런 음악이 나오니까······.”
야옹? –
고양이는 이하은을 보며 소리를 냈다. 다만, 고양이가 말을 알아들은 것은 아니었다. 이하은이 배를 긁는 행동을 멈췄기에 불만을 표시한 것뿐이었다.
“알았어. 알았어. 대신 내 말 좀 들어줄래?”
··· ?-
“세상은 기브엔 테이크로 돌아가는 거야. 너만 좋을 수는 없어.”
고양이는 결국 대답했다.
야옹 –
이하은은 길거리에 쪼그려 앉아 고양이 배를 긁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자신이 피아노를 제대로 못 치게 됐을 당시의 이야기.
어린 시절, 종종 피아노를 쳐주셨던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의 이야기였다.
“연세가 조금 있으셨거든. 나는 잘 몰랐지만, 병도 앓으셨던 것 같아. 그런데 부모님은 내가 어리다고 설명을 제대로 안 해주셨어.”
야옹? –
“할머니 장례를 치르고, 다음 주부터인가 다시 피아노를 치게 됐지. 콩쿠르에 나가야 했거든. 그런데 무슨 곡을 쳐야 했는 줄 알아? 모차르트의 미뉴에트······”
··· –
“에효. 됐다. 너한테 뭐 그런 것까지 알려주겠니. 하여튼 무척 밝은 곡이었어. 그런데 손이 안 움직이더라고. 정확히 말하면 기계적으로만 연주하게 됐어. 실수도 많아졌지.”
··· –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피아니스트가 연주를 못 하게 되는 건 말이 안 되거든. 만약 그해에 공연 일정이 잡혀 있으면? 그걸 모두 펑크를 낼 거야? 그럴 수는 없잖아.”
··· –
“그래서 나는 그게 핑계라고 생각했어. 핑계 맞지. 피아니스트는 감정을 조절할 줄 알아야 하고, 무슨 일이 있어도 연주를 할 줄 알아야 해.”
··· –
“그래서 그냥 연주했어. 그런데 그때부터 손이 내 마음대로 안 움직이더라. 멈칫거리게 됐지. 이 표현 맞는지 모르겠는데, 마음에 구멍이 하나 생긴 것 같았거든.”
야옹 –
“그리고 슬퍼할 자격이 있는 사람은 나보다 아빠여야 하잖아. 내가 더 슬퍼할 수는 없으니까. 그렇게 입을 닫고 있다 보니까 갑갑해지더라고.”
··· –
“물론 이것도 핑계야. 사실 그 이후에도 많은 일들이 있었어. 그것까진··· 지금 말해주긴 어려워. 너랑 나 그렇게 친한 사이는 아니잖아? 너 참 뻔뻔하구나?”
야옹? –
“그 이후부터 내 실력이 돌아오지 않았어. 뒤처지기만 했지. 속상했어. 음악이 뭔지도 잘 모르게 됐고. 그런데 알아? 내가 언제부터 다시 감을 잡게 됐는지?”
··· –
“여름 방학이 끝나갈 무렵. 걔랑 이야기를 나누고 난 뒤부터야. 계속 도움만 받았어. 입시 준비도, 실기 시험 날도, 영어 학원 숙제도, 그리고······.”
이하은은 어제를 다시 떠올렸다.
⌜13월의 이야기⌟ 마지막 장면에서 나왔던 음악.
⌜닿지 않은 편지⌟를 듣고는 정말로 펑펑 울었다.
마치 할머니에게 편지가 보내진 것 같아서.
위로를 받은 것 같아서.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음악이 주는 힘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게 됐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음악.
그게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게 됐다.
“그런데 놀라운 건 뭔 줄 알아? 그 ⌜닿지 않은 편지⌟를 쓴 작곡가가 나랑 동갑이라는 거야. 나랑은 친구인데··· 걔는 이미 저 멀리 가고 있어.”
··· –
“나도 도움을 주고 싶은데. 나도 내가 받은 만큼 해주고 싶은데. 그게 안 돼서 속상해.”
야옹 –
“알아. 내가 더 노력해야지. 그래서 나중엔 진짜로 도움이 되고 싶어. 뭐가 됐든지. 피아노도 내가 더 많이 알려주고 싶고, 영어··· 도 그랬다고 생각했어. 걔가 학원 다니는 걸 따라간 것도 그 때문이었거든. 그런데 걔는 뭐 다 잘하더라. 치사해.”
햐아아앜!!!-
고양이의 사나운 눈빛에 이하은은 당황했다.
“무, 물론 걔 옆에 있으면 나도 재미있으니까··· 그런 것도 있는데! 꼭 그렇게 말을 해야겠니?”
“그러니까. 꼭 그렇게 고양이랑 말을 해야겠어? 쟤가 사람 말을 얼마나 알아듣는다고.”
“와앜!!!”
쭈그려 앉아 있던 이하은이 바닥에 콩. 엉덩방아를 찧었다.
고양이가 사나운 눈빛을 낸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이하은 뒤에서 무심히 말을 걸어온 사람···.
그는 이 사건의 당사자였다!
“너, 너, 너······ 언제부터······”
“언제부터냐면. ‘걔 옆에 있으면 나도 재미있으니까’라고 말할 때부터 있었지?”
이하은은 속으로 ‘으아앙!!!’이라는 괴상한 외침을 질렀지만, 겉으로는 뻔뻔하게 대답했다.
“그, 그러면 얼마 안 된 거네?”
“그렇긴 해. 그런데 이게 얼마 안 된 거면, 너는 쟤랑 얼마나 이야기를 한 거야?”
“어··· 조금은 됐어.”
“그래?”
“응···.”
이하은에게 손을 내미는 한서진. 이하은은 잠시 멈칫거리다가 그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서진은 고양이를 보며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쟤가 어제 말했던 그 고양이야?”
“맞아. 인사해. 가필드라고 해.”
“이름이 있는 고양이었구나.”
“그래야 덜 불쌍한 것 같았거든. 나름 여기 골목대장이야.”
“음.”
한서진은 가필드를 빤히 바라봤다. 그러다가 머리를 툭툭하고 긁어준다. 가필드는 한동안 사납게 한서진을 쳐다보다가 이내 갸르릉거리는 소리를 냈다. 슬쩍 배까지 보여준다.
“순하네?”
“어? 얘 원래는 누가 만지면 도망갔었는데. 나 말고는 못 만지는 애였거든.”
“그래?”
“신기하네. 너 원래 동물 좋아해?”
“싫어하지는 않아. 그렇다고 키울 정도로 좋아하지는 않고.”
“······ 그렇구나.”
이하은은 어제와 오늘, 한서진 앞에서 한 행동이 순간적으로 떠올라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런데 한서진은 그런 건 개의치 않아 했다.
“어제가 개봉 첫날이라서 ⌜13월의 이야기⌟ 평론이 많이 올라왔는데, 반응이 꽤 좋아. 극찬 받은 것도 있었고. 일단 작품성은 인정받은 것 같아.”
“······ 다행이네. 그, 그러면 음악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어?”
“그것도 있었어. 유명한 영화 평론가가 글을 써주셨더라고. 내 음악을 알아봐 주신 것 같아서 괜히 고맙더라.”
“······ 나도 그랬었어.”
“응?”
“나도 네 음악 좋았다고.”
한서진이 피식 웃는다.
“그래. 너 어제도 말해줬었잖아.”
“그래도 제대로 말해주고 싶었어. 그런 음악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나 그 음악 듣고 뭔가 힘이 났거든.”
“그랬다면 다행이네.”
“응. 진짜로 그랬어. 고마워.”
이하은은 그 말을 끝으로 서둘러 앞으로 걸어 나갔다.
한서진은 그런 이하은을 바라보다가 금방 따라 걷기 시작했다. 오늘은 아침부터 같이 피아노 학원에 가는 날이었으니까. 그래서 가는 길이 마침 겹친 거였다.
길을 따라 걸으면서도 한서진은 생각에 잠겼다.
‘그래도 위로가 됐다니 다행이네. 네 할머니에게도 그 편지가 전해졌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다른 누구보다도 친구에게 힘이 됐다는 말에, 한서진은 이번 영화 음악을 맡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한서진은 이하은의 이야기를 얼추 다 들었었다.
하지만 이 일을 하은이에게 말해주진 않을 생각이었다.
왜냐하면.
그랬다가는 하은이의 라# 딸꾹질 소리를 다시 듣게 될 테니까.
“야! 한서진! 빨리 와! 늦겠다.”
“알았어.”
한서진은 미소를 지으며 조금 더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 * *
영화 ⌜13월의 이야기⌟는 금방 입소문을 탔다.
천희태 감독과 정현우 배우.
흥행 보증 수표라고 할 수 있는 조합.
저예산으로 제작된 영화이긴 했지만, 그 둘의 시너지에 기대 걸고 있는 사람들은 꽤 많았다.
거기에 호재가 하나 더 있었다.
이번에 OST가 기가 막히게 나왔다는 소문.
영화가 끝났을 때,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할 정도로 음악이 감동적이라는 이야기는 영화 팬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ㄴ 와··· 방금 ⌜13월의 이야기⌟보고 왔는데 눈물샘 폭발함. ㅠㅠ
ㄴ 돌아가신 삼촌 생각이 많이 나더라. 나도 영화 끝나고 한동안 못 일어났어.
ㄴ ㅠㅅㅠ 지금도 그냥 눈물이 나네. 연출이 끝내줬어.
ㄴ 음악이 확실히 한몫한 것 같더라. 여운이 장난 아냐.
ㄴ 지금 뉴튜브에서 음악 다시 듣고 있는데. 어후. 뭉클하다.
ㄴ 피아노 진짜 끝내 주는데? 입이 안 다물어지네.
ㄴ 그런데 이거 MJ가 작곡에 연주까지 했다는데, 이거 실화임?
ㄴ MJ??? 그 권설하 노래 만든 작곡가?
ㄴ ㅇㅇ 맞는 거 같더라.
ㄴ MJ 그동안 뭐 하나 했더니 영화작업 하고 있었구나.
ㄴ 대박···. 이제 영화 음악까지 하는 거야?
ㄴ 와. 나 작곡 전공잔데, 듣기만 해도 레벨이 다른 거 알 수 있었음. MJ, 화성학에 대한 이해도가 상당한 것 같아.
ㄴ ㅇㅇ 8분 정도 되는 곡을 이렇게까지 짜임새 있게 쓸 수 있나 싶더라.
ㄴ 연주는 또 어떻고? 무슨 영화에 맞춰서 연주한 것 같던데?
ㄴ 아마 그럴걸? 아니면 이렇게 프레임 단위로 음악이랑 연기가 맞을 수가 없지.
ㄴ 미쳤네···.
이어지는 좋은 반응들.
그에 맞춰 천희태 감독과 정현우 배우는 유명 라이브 토크쇼에 출연해 그 흐름을 이어가고 있었다.
MC가 정현우 배우를 보며 말을 이어간다.
“······ 확실히 음악이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는데요. 관객분들이 궁금해하시는 게 있더라고요. 음악에 연기를 맞춘 건지, 연기에 음악을 맞춘 건지요. 사실 마지막 장면 싱크로율이 완벽했잖습니까? 혹시 어떤 식으로 촬영했었나요?”
“당연히 MJ 작곡가님께서 제 연기에 음악을 맞춰주신 겁니다. 물론, 그전에 가녹음 본을 받아 둔 게 있어서 그걸 염두에 두고 연기를 하긴 했지만, 디테일을 살린 건 100% MJ 작곡가님이었죠.”
“이야. 그렇다면 MJ의 역할이 정말 컸던 것 같네요. 지금은 베일에 싸여 있는 분이죠?”
“네. 딱히 얼굴을 드러내는 건 좋아하시지 않는 것 같더라고요.”
천희태 감독도 한마디를 거든다.
“곡 의뢰를 할 당시에 비밀 유지 사항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함부로 말씀드리기가 좀 그렇습니다.”
“철두철미하신 분인가 보네요.”
“하하하. 그렇다면 그렇다고 할 수 있겠네요. 하지만 하나 정도 말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 그게 뭔가요?”
천희태는 살짝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나중에 MJ의 정체가 알려지면 정말 깜짝 놀라실 겁니다. 이건 제가 장담하죠.”
“하하. 그거 무척 기대되네요.”
이어지는 정현우 배우의 토크.
그는 MJ와 편지로 이야기를 주고받은 이야기를 해줬다.
“이 시대에 편지요?”
“조금 올드한 분이시긴 하죠. 그래도 답장을 받을 수 있어서 뿌듯했습니다. 이 내용은 방송에서 말해도 된다고 허락도 받았고요.”
정현우는 MJ 작곡가가 어떤 느낌으로 이 곡을 만들었는지에 대해 간략히 설명했다. 영화 촬영 당시의 이야기를 섞어가면서. MJ의 확고한 신념에 대한 이야기도.
그가 최소 30살이 넘지 않을까 하는 추측도 나왔다.
그런데 무엇이 웃겼는지, 천희태 감독은 중간중간 웃음을 터트리기도 했다.
MC는 시간을 확인하더니 슬슬 마무리 멘트에 들어갔다.
“그러면··· ⌜13월의 이야기⌟. 이번 주 성적만으로 손익분기점의 80%를 채웠다는 게 사실인가요?”
“네. 다음 주가 되면 가뿐히 손익분기점을 넘길 것 같습니다. 모두 영화 팬분들의 사랑 덕분입니다.”
“하하. 그렇군요. 그렇다면 제가 궁금한 걸 물어보는 ‘The Last Question’ 시간인데요. 혹시 지금 MJ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대답이 어려우시면 다른 질문으로 바꾸겠습니다.”
천희태 감독은 정확하게 말해주지는 않았지만, 솔직하게는 이야기를 해줬다.
“아마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있을 겁니다. 무척 즐거운 시기겠죠. MJ가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 * *
– 그래서 괜찮다는 거지?
“네. 그런데······ 제 악보가 팔리긴 하겠어요?”
출판사를 통해 ⌜닿지 않는 편지⌟의 악보를 출판하시겠다는 박훈 과장님.
그는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 무조건 팔려. 이미 음원차트에서 ⌜닿지 않는 편지⌟가 10위까지 올라갔잖아. 이거 분명 관객 수에 따라서 순위 등반을 같이하게 될 거야. 피아노곡이라서 수요도 분명 꽤 있을 거고. 그러면 미리미리 만들어놔야지.
“그런가요.”
– 당연하지. 그리고 만약 예상치를 밑돌아도 손해 볼 것도 없거든. 이것도 일종의 곡 홍보라고 볼 수 있는 거라서.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박훈 과장님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 영화 OST가 10위 권 안에 들어간 건 꽤 오랜만이라 정신이 없긴 없네. 하여간 다른 일 있으면 또 전화하마. 아! 그리고 내일이었지?
“벌써 그렇게 됐죠.”
– 짜식. 친구들 많이 사귀고. 새로운 곡 나오면 나한테 전화하고. 지금 네 곡 받고 싶어 하는 대기자들 많은 거 알지?
“저번처럼요?”
– 아니. 저번보다 더. 다들 난리야. 어쨌든 당장은 학교생활 열심히 해. 재미있을 때잖냐.
“알겠어요. 그럼 다음에 연락드릴게요.”
– 그래. 입학 축하한다!
전화를 끊고 나서 옷장 앞에 걸려있는 옷을 바라봤다.
남색 톤, 테두리에 흰색 라인이 그려져 있는 옷.
설화 예술중학교 교복이었다.
나는 기지개를 한번 켜고 책상에 앉아 다시 공책을 넘겼다.
* * *
다음 날 아침.
“짠! 어때? 잘했지?”
“괜찮아?”
“응! 오빠, 잘 어울려!”
수연이는 나를 보며 으스댔고, 나는 곧바로 거울을 바라봤다.
간편하게 조이는 형식으로 된 넥타이를 나 대신 수연이가 매줬다. 꼭 자기가 해주고 싶다고 전부터 이야기를 했었다.
“잘됐네. 고마워. 수연아.”
“히히. 어렵지도 않은 건데! 다음에도 나한테 부탁해! 알았지?”
“당연하지.”
수연이가 조로로 내 방에서 나간 뒤, 나는 수첩과 가방을 챙겼다.
아버지 차를 타고 우리 가족은 설화 예중으로 향했다.
저번에 실기 시험을 볼 때와 느낌은 비슷했다.
하은이는 내게 톡을 연신 보내고 있었고, 이곳 골목은 여전히 막혔다.
설화 예중도 여전히 거대했다.
음악과.
연예과.
미술과.
무용과.
문예창작과.
이 모든 학과 학생들이 다니는 학교다.
1, 2, 3학년을 전부 따지면 학생 수가 상당했다.
과마다 전부 세부 전공도 있었다.
그중에서 나는, 음악과 안에 있는 클래식 기악 전공의 피아노과였다.
피아노과는 총 세 반이 있다고 들었다.
A반, B반, C반.
일단 입학을 하고 나서, 시험을 보고 반을 배정받는다고 들었는데 뭐가 좋은 반인지 지금은 잘 모르겠다.
아버지께서 주차를 하신 뒤, 우리 가족은 대강당이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지난번처럼 나를 보고 떠드는 학생들의 수는 현저히 줄어있었다.
확률로 봤을 때 대부분 시험에서 떨어졌을 것이고, 지금 이곳엔 피아노과 말고도 수많은 과 학생들이 뒤섞여 있을 테니 그런 것 같았다.
대강당 입구에서 가족들과는 인사를 나눴다.
학생은 1층으로, 가족들은 강당 2층 관객석으로 가야 했다.
“오빠! 잘하고 와! 화이팅!”
“우리 아들 교복 잘 어울린다.”
“여기 들어 온다고 고생했다.”
강당 1층엔 이미 수많은 학생이 의자에 앉아 저들끼리 수다를 떨고 있었다.
피아노과라고 적혀 있는 팻말 끝에 도착하자.
“여기야!”
쪼끄마한 애가 내게 손을 흔들었다.
“일찍 왔네?”
“아냐. 나도 방금 왔어. 참고로 네 자리는 저기 앞이야.”
“너는?”
“크흠. 운 좋게 네 옆의 옆 자리지.”
“잘됐네.”
“그렇지?”
입학식이 시작되기 전 나는 하은이와 잠깐 수다를 떨었다.
피아노과 학생 중 몇몇은 우리를 힐끔 쳐다보기도 했는데, 별로 신경 쓰이지는 않았다.
“쳇.”
실기 시험 때, 나한테 시비를 걸었던 5번도 나를 힐끔 쳐다본다. 오범준. 명찰을 보고 나서야 드디어 이름을 알 수 있었다. 그는 내 옆자리에 슬쩍 앉았다.
곧이어 입학식이 시작됐다.
학교 이사장님과 교장 선생님의 훈화 말씀이 이어졌다.
그리고.
“다음은 입학 성적 우수자들의 상장 수여식이 있겠습니다. 호명된 학생들은······”
설화는 음악과가 메인이었다.
음악과 안에 속해 있는 클래식 기악 전공과 성악 전공.
연예과도 사실상 실용음악과에 가까웠으니···.
이 두 과를 합치면 학생 수의 절반 정도가 됐다.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호명이 된 것은 피아노과였다.
“피아노과 1학년 차석 이하은 학생.”
강당에서 곧바로 박수가 터져 나왔다.
하은이는 무대 위로 올라가기 전에 내게 살짝 손을 흔들었다. 그러곤 아무렇지도 않게 가서 상장을 받는다.
이하은에게 무어라 속삭이는 교장 선생님.
그다음도 역시 피아노과였다.
“피아노과 1학년 수석 오범준 학생.”
오범준은 나를 슬쩍 째려보고 나갔다. 쟤는 아직도 꽁하고 있나 보다. 나는 이젠 그날 일은 생각도 안 하고 있는데. 요즘 애들이 무섭긴 무섭다.
피아노과 선생님으로 추정되는 분들이 명찰을 달고 저 앞에 서 계신다. 그분들 역시 나를 보며 무어라 속삭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다음은 바이올린과 1학년······”
순서는 금방금방 넘어갔다.
세부 과가 많다 보니 오랜 시간을 할애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문예창작과까지 호명하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릴 테니까.
무대 위에 오르는 학생들의 얼굴은 무척 밝았다.
수석을 하면 아마··· 1년 장학금이 나온다고 했던가? 차석은 반년. 그렇게 들었다.
다들 열심히 한 아이들.
나는 박수를 치면서도, ‘참 대단하구나.’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초등학교에 다니면서, 그 어린 나이부터 연습과 콩쿠르에 매달린 아이들.
정말로 박수를 받아 마땅했다.
“성악과 1학년 차석······”
이제야 음악과 차례가 끝나갔다.
나머지 과를 다 하려면 한참 걸리겠지.
그런 생각을 하다가 강당 2층을 바라봤는데 하필이면 수연이와 눈이 마주쳤다.
나를 보며 열심히 손을 흔들어 준다.
입 모양을 봐서는 ‘오빠’를 외치고 있는 듯했다.
괜히 웃음이 나왔다.
그때, 교장 선생님과 이사장님께서 자리를 바꾸신다.
서로 인사를 나누신 뒤에 이사장님께서 담담하게 말씀을 이어가셨다.
“다음은······ 음악과 1학년 전체 수석······”
이사장님은 분명 나를 바라보셨고,
“한서진 학생. 앞으로 나와주세요.”
나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