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Mus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71
71 진짜
* * *
설화 예중 대강당.
성적 우수자 상장이 모두 수여되고 난 뒤.
무대 위에 있는 한 학생이 음악과를 대표해서 선서문을 읽고 있었다.
과마다 선서문 내용이 조금씩 달랐기에, 각 과의 수석들이 순서대로 선서문을 낭독하고 있던 것이다.
어찌 보면 지루한 시간.
그 사이에 음악과 학생들은 자기들끼리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음악과 전체 수석? 쟤 누구야?”
“처음 보는 앤데.”
“영재원 출신은 아닌 것 같은데··· 얼굴을 본 기억은 없거든.”
“너는 우리나라에 있는 영재원을 다 다녀 본 것처럼 말한다?”
“서울에 있는 세 곳은 다녀봤어. 다 메이저한 곳이었고. 거기에다가 한번 본 얼굴은 나 다 기억하는 편이거든.”
“잘났네요.”
“그러면 쟤 실기를 진짜 잘 본 건가?”
“글쎄. 나는 바이올린 과에서 수석 나올 줄 알았는데.”
한편, 음악과 수석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잘 알고 있는 피아노과 학생들은 각양각색의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와. 쟤가 진짜 수석이야? 콩쿠르에서 잘하는 건 본 적이 없는데.”
“그러니까. 갑자기 실력이 늘었나?”
“비행기 사고 때문이라는 소문이 있던데? 실기 시험 때, 쟤 연주 들어본 애들이 그러더라고. 실력이 늘긴 늘었다고.”
“비행기 사고?”
“완전 특이한 애였구나.”
“그런데 시험 때 연주는 어땠다는데?”
“장난 아니었다고 하더라고. 무슨 선생님이 시범 연주한 줄 알았데.”
“와. 그게 진짜면 대박이네.”
“그리고 쟤 때문에 뒷번호들 시험 다 망쳤다잖아.”
“저런.”
“콩쿠르에서는 별 볼 일 없는 애였다며? 그러면 실기 성적으로만 수석이 된 거야?”
“미쳤네.”
그중에서도 한 사람.
실기 시험 당시 5번이었던, 오범준은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좀 안 믿기네. 콩쿠르 하위권 입상 성적으로 음악과 전체 수석을 했다고? 실기가 만점이었나 보지? 자기가 무슨 프로 연주자야?”
“하긴. 진짜 잘나가는 애였으면 한국에 왜 있겠어? 벌써 외국에 나갔지.”
“아니면 뭔가 있나? 빽이라든가? 학교에 라인?”
“그럴지도. 국회의원 아들인가 보다.”
“그러면 조심해야겠네.”
“큭큭. 그러게.”
오범준 근처에서 키득거리는 아이들.
그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던 이하은은 참다가 참다가 쓴소리를 내뱉었다.
“지금 너희들··· 우리 학교가 그 정도밖에 안 된다고 보는 거야?”
“뭐?”
“여기가 ‘라인’ 같은 게 통하는 학교 같냐고. 그러면 우리 선배님들 중에서 유명 콩쿠르에서 우승하신 분들은? 그분들도 다 라인이 있었다고 보는 거야?”
“야. 그거랑 이거랑 같냐.”
“그럼? 지금 너희들, 너희 입으로 너희가 다니는 학교 스스로 내리깎고 있는 건 알아? 정말 한심하다.”
“아니··· 그런 게 아니라.”
“그리고 너희들은 저 애 연주 들어나 봤어? 괜한 추측으로 억지 부리지 마. 아직도 초등학생인 것처럼 굴지 말라고.”
“어이구 무서워라. 그런데 넌 쟤 연주 좀 들어 본 것처럼 말한다?”
오범준의 물음에 이하은은 고개를 획 돌려 그를 쳐다봤다.
“같은 학원 다니니까. 그리고 어차피 너도 나중에 저 애 연주 듣게 될 텐데 뭐가 그렇게 조급해? 혹시, 저번에 서진이가 말한 것처럼 자존감 부족······”
“야!”
“오호호. 다들 왜 이러실까? 뭔가 해서 와봤더니 벌써부터 이렇게 우정을 쌓고 있나 보네요. 그것도 수석이랑 차석끼리요.”
“······.”
“······!”
오범준과 이하은 사이에 끼어든 남자.
피아노과 마루호 선생님은 두 학생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참고로 이번 실기 심사는 쟁쟁한 외부 인사분들이 도와주셨어요. 학생분들의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는 거죠. 점수는 실력대로 나온 것뿐이거든요.”
“······.”
“······ 저도 잘 알고 있어요.”
“ 그러면 앞으로 강당에 모일 때는 떠들지 말고 집중을 해보도록 해요. 알겠죠?”
“······.”
“네. 죄송합니다.”
“오범준 학생은 대답 안 해요?”
“··· 알겠습니다.”
“보통 때라면 벌점을 줬을 텐데, 오늘은 입학식이니 특별히 봐줄게요. 다음엔 어림도 없어요. 아시겠어요?”
“네.”
“··· 네.”
“좋아요.”
설화 예중은 상벌점제를 운용하고 있었다.
내신에 반영되는 방식은 아니고, 학생들의 활발한 학교생활 참여를 위해 약간의 당근과 채찍 역할을 하는 셈이었다.
예를 들어.
상점이 3점이면 ‘연습실 우선 예약’ 혜택이 주어지고,
벌점이 3점이면 ‘연습실 청소’ 벌이 주어진다.
점수에 따라 내용이 확연히 달라졌기에, 학생들에게 동기부여를 하는 데는 그만인 시스템이었다.
그에 대한 방증으로 마루호 선생님이 지나간 뒤, 학생들은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잠시 후.
각 과 전체 수석들의 선서가 끝났다.
하나둘 원래 자리로 돌아오는 학생들.
그중에서도 음악과 수석인 한서진은 자신에게 한껏 몰려 있는 시선들을 바라보다가 한 가지 생각을 떠올렸다.
‘세상에···’
아무리 생각해도 흐뭇한 일이었다.
‘전체 수석한테는··· 3학기 동안 장학금이 주어진다고? 아··· 좋네. 좋아.’
조금 전 이사장님께서 직접 해주셨던 말.
괜히 입꼬리가 올라가려는 걸 간신히 참은 한서진은 이내 자리에 앉았다.
주변 시선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당당한 한서진의 모습을 본 학생들은 대부분 비슷한 생각을 떠올렸다.
‘실력에 자신이 있나 보네. 멘탈도 세고.’
물론, 그들의 생각이 영 틀린 것은 아니었다.
* * *
입학식 다음 날.
설화 예중 운동장.
“아···. 시험 잘 봐야 하는데. 그래야 같은 반이 되지.”
“그런데 꼭 그런 건 아니라고 하지 않았어? 성적순은 아니라며.”
“우등반, 열등반으로 나뉘는 건 아니지만, 어느 정도 반영은 된다고 하더라고.”
“그래?”
“응. 우리 열심히 해보자!”
내게 하이파이브를 요청하는 이하은.
나는 그 손을 가볍게 쳐줬다.
교실로 올라가는 길에 나는 이하은과 다른 방향으로 갔다.
나는 임시 1반, 이하은은 임시 3반이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서 설화 예중은 ‘반’이라는 개념이 별로 상관없는 것 같았다.
대학교 시스템과 비슷한 ‘교과교실제’를 채택하고 있는 학교.
수업 종류에 따라 학생들이 선생님이 계신 곳으로 이동하는 방식이었다.
덕분에 음악 수업을 듣게 되면, 피아노과끼리는 다 만나게 돼 있었다.
기본 교과 과목인 국·영·수 정도만 자기 반에서 수업을 듣는 듯했다.
임시 1반에 들어서자 반에 미리 와있던 아이들이 순간 나를 쳐다봤다.
‘좀··· 어색한가?’
나는 나름대로 “안녕?”이라고 인사를 건네봤고, 반에 있는 아이들은···.
“와! 우리 반에 수석이 왔다!”
“대박! 네가 걔지? 근성 콩쿠르 가이! 결국 수석까지 했네!”
“한번 보고 싶었는데! 반갑다!”
“실기 시험 땐 무슨 곡 쳤어? 혹시 다음에 들려 줄 수 있어?”
“하루에 피아노는 몇 시간 연습해? 루틴 같은 게 있을까?”
생각보다 유쾌한 애들이었다.
전에 봤었던 음침한 애들이 아닌, 눈을 반짝거리는 아이들.
역시, 대부분은 이 나이 또래에 맞게 순진한 아이들이었다.
나는 내 자리를 찾아가며 아이들과 한 명씩 인사를 나눴다.
대부분 내게 음악에 대한 걸 물어봤는데, 확실히 새봄 초등학교하고는 느낌이 달랐다.
그중에서도 유난히 나를 빤히 쳐다보는 애가 있었다.
내 바로 옆자리에 앉아 있는 남자아이.
조금은 부담스러울 정도로 쳐다보길래 말을 걸어봤다.
“반갑다. 한서진이라고해.”
“난 신주원이야. 네가··· 걔였구나. 실기 시험 폭파범.”
“······ 응?”
“그때 내가 14번이었거든. 네 연주 듣고, 우리 11~15번 동기들은 다 죽었어. 흑. 가여운 인간들.”
“······.”
“혹시 나 기억 안 나? 나는 너 바로 알아보겠던데. 우리 잠깐 스쳐 지나갔었잖아.”
신주원은 이마를 까며 자기를 어필했고, 나는 고개를 저었다.
“전혀. 기억이 안 나네.”
“그렇구만. 하여간 반갑다. 그때 베토벤이랑 쇼팽 쳤었지? 너 엄청 잘하더라.”
“고마워. 너는 뭐 쳤었어?”
“멘델스존이랑 모차르트. 그런데 엄청 고생했었어. 사실, 어려운 곡보다 쉬운 곡 골라서 요령껏 붙은 거거든. 피아노 시작한 지 아직 2년밖에 안 돼서 말이야.”
“뭐?”
나는 곧바로 되물어 볼 수밖에 없었다.
“2년? 2년 만에 설화를 붙었다고?”
“응. 원래는 바이올린을 했었는데. 서서 연주하는 게 힘들어서 바꿨지. 피아노는 세상 편하더라. 역시 앉는 게 최고야. 누울 수 있다면 더 좋을 텐데. 그런 악기는 없을까?”
“······.”
지금 내가 무슨 소리를 들은 거지?
피아노를 2년 연습하고 설화에 붙었다?
하물며 피아노로 전공을 바꾼 이유가 앉을 수 있어서다?
음악 하는 사람들이 평균적으로 평범하지 않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얘만 한 애는 또 없을 것 같았다.
‘이 말이 진짜라면 완전 천재라는 건데···.’
설화 예중은··· 확실히 무서운 곳이었나 보다.
조금 괴짜 같은 신주원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한 선생님께서 반으로 들어오셨다.
3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여자 선생님.
이번 주 동안 임시 1반을 담당하실 양우주 선생님이었다.
“반가워, 애들아. 설화 들어온다고 고생했어. 앞으로 잘 지내보자. 아참 그리고······”
양우주 선생님은 나를 콕 지목하셨다.
“이번 주 임시 반장은 서진이야. 반장은 2교시가 끝나면 교무실로 오도록. 자~ 일단 박수!”
곧바로 이어지는 아이들의 박수.
“어······ 감사··· 합니다?”
나는 뜬금없이 감투를 쓰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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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교시가 끝난 뒤.
교무실에 들어가자 양우주 선생님께서 종이 뭉치를 반으로 나눠 내게 건네주셨다.
“미안해. 나 혼자 들 수가 없어서. 괜찮지?”
나는 “네.”라고 대답하면서도 고개를 살짝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종이 뭉치가 그렇게까지 무거워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선생님을 따라 ‘피아노 연구 1’ 소강당으로 가는 길.
나는 양우주 선생님이 왜 나를 부르셨는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사실, 네 실기 시험 때 연주 듣고 깜짝 놀랐었거든. 감정을 엄청 세밀하게 잡더라. 다른 심사위원분들도 진짜로 놀라셨어. 너 잘한다고.”
“······ 감사합니다.”
“그래서 내 입으로 직접 잘했다고 칭찬해주고 싶었어. 잘하면 잘했다고, 못하면 못 했다고 이야기를 해줘야 내 직성이 풀리거든. 다만, 다른 애들 앞에서 이렇게까지 말해 줄 수는 없잖아? 그래서 일부러 부른 거야.”
나는 고개를 가만히 끄덕였고, 양우주 선생님은 나를 보며 미소를 지으셨다.
“우리 잘 해보자. 서진이 너라면 진짜로 멋진 연주자가 될 수 있을 것 같거든. 욕심을 가져도 될 것 같아. 알았지? 목표는 항상 높게 잡아야 한다?”
“네··· 알겠습니다.”
살짝 부담스러운 칭찬. 그런데도 양우주 선생님은 싱글벙글하셨다. 하시는 이야기를 들어봤더니 오랜만에 좋은 학생들이 많이 들어와서 신이 난다고 하셨다.
“특히 범준이도 그렇고, 하은이도 그렇고. 다들 개성이 있거든. 걔들이랑도 친하게 지내봐. 도움이 될 거야.”
“어······ 알겠습니다.”
전자는 모르겠고, 후자하고는 이미 친하게 지내고 있었으니···.
내 대답이 완전히 틀린 건 아니었다.
우리는 금방 소강당에 도착했다. 말이 소강당이지 리사이틀 공연장 정도의 규모였다.
이미 피아노과 학생들 전부가 이곳에 모여있었다. 먼저 오선지 종이를 학생들에게 나눠줬다. 그리고 비어있는 임시 1반 자리에 가서 앉았다.
내 옆자리엔 교실에서 한참 이야기를 나눴던 신주원이 있었다.
“후우. 괜히 긴장되네.”
“뭐가 긴장된다고 그러는 거야? 너 천재잖아.”
“응? 내가 언제 천재라고 했냐.”
“피아노 연습 2년하고 여기 붙은 거라며. 그 실력이면 이번 수업도 솔직히 잘할 수밖에 없잖아. 괜히 엄살피우고 있는 거 아냐?”
“야. 넌 음악과 수석이면서 그러냐? 내가 천재면 넌 천재 할아버지겠다.”
“참고로 천재 할아버지는 천재가 아닐 수 있지.”
“··· 됐다. 하여간 수석이면 수석답게 친구를 좀 위로하라는 말이야. 어구구. 긴장하셨어요? 이렇게.”
“··· 됐다.”
“쳇.”
아침부터 틈틈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조금 친해졌다.
신주원. 기본적으로 나무늘보과에 가까운 느낌이 나는 애긴 했지만, 심성은 착해 보였다.
그럼 됐지.
잠시 후, 소강당으로 나머지 피아노과 선생님들이 들어오셨다.
손태혁 선생님.
마루호 선생님.
그중에서 손태혁 선생님은 말도 없이 피아노 앞에 자리를 잡으셨고, 마루호 선생님은 간단히 수업을 설명을 해주셨다.
“시간표를 보셨다면 다 알고 있겠죠. 청음 수업 시간이에요. 단, 오늘은 여러분들이 테스트를 보게 될 거예요. 성적에 반영은 되지 않으니 안심하셔도 되지만, 이 결과를 바탕으로 반을 나눌 거랍니다. 참고는 해주세요.”
청음(聽音).
음정을 듣고, 악보에 적는 수업.
음악을 하는 사람이라면, 정확한 음감을 익히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수행되어야 하는 수업이었다.
나 같은 경우에는 밀러 아저씨와 하루도 빠짐없이 했던 공부다.
처음에는 꽤 어려웠지만, 하면 할수록 쉬워지긴 했다.
‘밀러 아저씨도 신나 하셨고.’
갑자기 떠오른 옛 생각에 살짝 미소가 지어졌다.
마루호 선생님의 설명이 끝난 뒤, 손태혁 선생님이 간단히 시범을 보여주셨다.
일정한 간격으로 무작위 음을 피아노로 치고, 잠깐 쉰다.
그다음 또 다른 음을 몇 개 치고, 쉰다.
그 쉬는 사이에 방금 쳤던 음을 따로 적어 놓으신다.
이걸 반복하는 아주 단순한 과정.
대신 뒤로 갈수록 난이도가 더 어려워질 예정이었고, 학생들은 할 수 있는 데까지만 답을 적으면 된다고 하셨다.
“자, 그럼 1분 뒤에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강당 의자 옆에 있는 책상을 꺼내 주세요.”
학생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볼펜 하나와 오선지 한 장을 제외하고는, 책상 위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때, 손태혁 선생님의 청음 테스트가 시작됐다.
처음 나온 음들은···.
‘미, 도, 레, 시, 솔, 도······’
한 음씩 받아적으면 되는 단성 청음.
이건 정말 너무나 쉬웠다.
* * *
청음 수업에는 격언이 하나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음을 다 적으려고 욕심을 내지 마라.
왜냐면 아무리 절대음감을 가지고 있다고 한들, 여러 음을 받아적다 보면 실수가 나오곤 하니까.
그래서 마디를 나눠서, 일단 첫 음을 정확하게 적는 게 중요하다.
그렇게 한다면 상대음감을 가진 아이들도 쉽게 다음 음을 유추해서 적을 수 있다.
만약 제대로 못 들었다면?
하나의 마디를 과감하게 포기하는 것이다.
다음 마디에서 음을 제대로 듣기 위해서.
하지만 예상대로 1학년 피아노과 학생 중 몇몇은 무척 당황하고 있었다.
저 학생들은 이런 노하우조차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이 아이들 중에서는 ‘실기 곡’ 연습에 매달리느라 ‘기본기’를 제대로 다지지 못한 아이들이 있다.
입시 형태가 그렇게 짜여져 있으니, 아이들에게 전부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그렇다면?
이곳이 예술 중학교인 만큼, 그런 아이들은 앞으로 가르치면 된다.
그걸 위해서 오늘 테스트를 치르고 반을 나누는 것이다.
단성 청음에서 시작한 테스트는 어느새 난이도가 꽤 올라가 있었다.
4성.
손태혁 선생님이 한 번에 네 개의 음을 동시에 피아노로 친다.
여기에서 대부분의 아이들이 손을 놓았다.
이건 예고 레벨에서도 쉽지 않다.
청음 연습을 충분히 해둔 상태에서, 화성학까지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어야 실수하지 않는다.
설화 예중 1학년 학생들에게는 분명 조금은 버거울 것이다.
소강당을 돌아다니며 아이들의 책상을 훔쳐보던 양우주 선생님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
아직까지 열심히 청음을 적고 있는 아이들.
그 수가 제법 있었다.
4성에 급격하게 전조가 일어난다.
보통 이때쯤이 되면, 더 이상 시험지를 작성하는 아이가 없어지곤 한다.
작년에도 그랬고, 재작년에도 그랬다.
그런데···.
‘지금 몇 명이지?’
양우주 선생님은 펜을 들고 있는 학생들을 눈대중으로 세봤다.
대략 5명 정도.
그중에는 반가운 얼굴들도 있었다.
‘한서진. 이하은. 오범준. 그리고··· 신주원.’
임시 1반 학생 중에서 2명이나 포기를 하지 않고 있었다.
양우주 선생님이 손태혁 선생님에게 신호를 주자.
이번에는 화성에 반하는 무작위 음이 섞이기 시작했다.
멜로디에 당김음과 붙임줄이 섞여, 정신이 없어졌다.
음의 개수가 6개까지 늘어났다.
오늘 테스트에서는 학생들의 실력을 확실히 확인해야 한다. 그래야 수업 계획을 제대로 짤 수 있다.
두마디 정도가 더 진행되자 드디어 신주원이 목뒤로 깍지를 끼었다.
곧이어 이하은도 펜을 얌전히 내려놨다.
이제 남은 건 두 사람.
음악과 전체 수석과 피아노과 수석.
악보를 적는 게 꼬였는지 오범준이 책상을 살짝 내리친다.
이후 강당은 조용해졌다.
피아노는 잠깐 기다려줬고, 한 학생만이 오선지에 음표를 그려 나갔다.
손태혁은 그 학생을 힐끗 보다가 열 손가락을 전부 눌러버렸다.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의 도입부처럼, 그가 치는 음은 강렬하게 소강당에 울려 퍼졌다.
이제는 마루호 선생님까지 그 학생 옆으로 가서 악보를 훔쳐봤다.
‘이야. 잘 받아쓰네. 거의··· 아니, 다 맞는 것 같은데?’
옆에 앉아 있던 학생들까지도 슬쩍 곁눈질한다.
고요 속에서 들려오는 사각사각 거리는 볼펜 소리.
그 소리는 도저히 끝날 것 같지 않았다.
양우주 선생님은 순간적으로 입에 손을 가져다 댔다.
‘진짜··· 천재가 들어왔네. 그것도 우리 학교에 말이야.’
음악과 1학년 전체 수석.
한서진은 청음 테스트 한 번에, 이상한 소문들을 싹 잠재워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