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222
221. 정령사 >
태산이는 전속력으로 달렸다. ‘태산아?’ 하고 해나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하고 모린의 기척이 느껴지는 오두막을 향해서 내달렸다.
오두막 안에는 태산이 예상대로 얄미운 모린이 태주의 옆에 찰싹 붙어 있었다. 태산인 오두막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숨 고를 틈도 없이 소파로 뛰어들었다.
“냥!”
“이익!”
한달음에 태주와 모린의 사이로 파고든 태산이는 등을 태주에게 대고 네발로 모린을 밀어냈다. 모린의 옷에 흙 발자국이 새겨지고 있었지만, 그런 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모린을 태주에게서 떨어뜨리고 싶었다.
“쉬이. 진정해 태산아. 그렇게 밀면 모린이 아프잖아. 그러면 안 돼.”
“냥!”
“태주우.”
“모린아 이쪽으로 앉자. 태산이 너는 어서 소파에서 내려가.”
“냥!”
“뭐가 싫어야? 어서 내려가.”
태주와 모린의 다정한 시간은 어김없이 나타난 방해꾼 때문에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태산이와 모린이 둘이 대충 무슨 이유에서 티격 태격하는지 알고 있었지만, 냉정하게 두 녀석의 사이를 벌려 놓는 태주였다. 그는 전처럼 두 녀석의 신경전이 육체전으로 번질까, 걱정하고 있었다.
“태산아 형이 발 닦아 줄게, 내려오자. 모린이는 옷 갈아입을래? 아니면 세탁 주문서 쓸래?”
“으응. 옷 갈아입을래.”
“그래. 태산아 잠깐만 기다려. 모린이 옷 좀 꺼내 주고, 발 닦아 줄게.”
“냥!”
태주는 자신을 먼저 챙겨 준다는 얘기에 허리에 손을 얹고 턱을 치켜든 모린이 귀여웠다. 그리고 소파를 박박 긁으며 화풀이하는 태산이 녀석도 귀여웠다. 그는 두 아이를 다시 한 번 돌아보고 2층 계단을 올랐다. 손님 방에 둔 모린의 옷을 가지러 가는 것이었다.
“냐앙!”
“히히. 봤지? 태주가 내 옷 먼저 챙겨 준대.”
“냐앙. 냐냐냥냐앙.”
“훗. 쪼오끄만한 게.”
“냥!”
태주는 2층 계단을 급하게 뛰어 내려왔다.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이 그 잠깐 사이에 또 신경전을 벌인 것 같았다.
“아래층에서 누가 싸우고 있을까?”
“….”
“….”
“친구랑 싸우면 어떻게 된다고 했더라?”
“…못난이 된다고 했어.”
“잘 기억하고 있네. 보자.”
태주는 둘 사이에 서서 둘의 얼굴을 요리조리 뜯어봤다. 진지한 얼굴로 잠시 모린의 얼굴을 들여다보던 태주가 갑자기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바로 몸을 돌려 태산이 얼굴도 자세히 살펴보았다.
“너희 둘 조금 못난이가 된 거 같아.”
“아니야. 조금밖에 안 싸웠어. 금방 멈췄단 말이야.”
“아니야. 봐 봐. 여기 이마에 줄 생긴 것 같지 않아?”
“어디?”
“모린이 인상 찌푸려서 못난이가 됐나 보다. 태산이도 마찬가지야. 못난이야.”
“냐아. 냐냐냥.”
전혀 모난 곳 없이 솜털 뽀송뽀송한 귀여운 얼굴이었지만, 태주는 한껏 걱정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못나졌다는 말을 꺼냈다.
두 아이의 눈동자가 요란스럽게 떨렸다. 거짓말처럼 들리는 말인데, 그 말을 꺼낸 상대가 좋아하는 태주라서 혼란스러운 것 같았다.
“어머나! 이 못난이들은 누구야?”
“헉!”
“냥!”
“우리 모린이랑 태산이 같은데…. 왜 이렇게 못나졌지? 혹시 싸웠나?”
“잠깐 싸웠나 봐요.”
“그래? 그럼 난 다시 예뻐질 때까지 안 봐야겠다.”
해나는 오두막으로 오는 도중 태주가 아이들에게 하는 말을 들었다. 그녀의 청력으로, 그 거리에서 태주의 말을 듣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해나는 사이가 좋았던 아이들이 갑자기 티격태격하는 이유는 몰랐지만, 우선 태주의 행동에 동조했다.
“냐아아!”
“이모, 모린이 못난이야?”
“흐음. 괜찮아, 모린아. 이모는 못난이라도 알아볼 수 있어.”
“앞으로 안 싸울 거라고 약속하면 금방 예뻐질 텐데….”
안타까워하는 표정을 확연하게 드러내는 태주에게 해나가 얘네는 금방 다시 싸울 거라, 소용없을 거라는 말을 꺼냈다. 태주는 강도가 세지는 해나의 발언에 등에 조금씩 땀이 날 것 같았다. 그래도 아이들 훈육을 멈추지는 않았다.
“모린이가 잘못했어. 조그맣다고 했어.”
“냥!”
“태산이도 잘못했지. 모린이를 발로 밀었잖아. 이제 서로 미안하다고 하자.”
“…미안.”
“냐아아아.”
꼬맹이 둘이 마지못해 사과하자, 그제야 해나의 얼굴에 미소가 걸렸다. 태주는 우선 일단락 난 상황에 만족하기로 했다. 문제의 근본은 해결이 힘든 상황이었다. 언제든 같은 상황이 다시 벌어지겠지만, 더 중요한 일이 있으니 오늘은 이 정도로 마무리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단단. 해나한테 설명 들었어?”
“단단.”
“괜찮아. 아칸서스는 마법 실력이 좋아서, 부작용 같은 건 없을 거야.”
‘해나가 무서워서라도 허투루 못 하지. 만약 부작용이 나오면, 예전처럼 멱살을 붙들려서 끌려올지도….’
큰 덩치에 검은색 털이 어떻게 보면 무서워 보이는 단단이었지만, 이곳에 있는 사람 누구도 단단을 그렇게 보지 않았다. 다들 단단을 순둥이로 보고 있었다. 단단은 순하고 착해서 제 덩치의 반도 안 되던 그렘린에게도 져 주곤 했었다.
“그럼 시작할까?”
“단단.”
태주가 뚜껑을 연 진화액 병을 단단의 앞발에 쥐여 주었다. 단단은 물갈퀴가 있는 앞발로 그 병을 꽉 쥐었다. 태주와 해나 그리고 진지한 분위기에 덩달아 얌전해진 태산이와 모린까지 모두 단단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단단이 조금 긴장한 모습으로 진화액을 들이켜려고 할 때였다.
“잠깐!”
“히이이잉!”
창으로 희와 제피르가 빠른 속도로 날아왔다. 둘은 무시무시한 속도로 날아오더니 단단의 얼굴 앞, 정확하게는 입 앞을 가로막았다.
“히이잉.”
“단단. 잠깐 기다려. 희가 좋은 거 가져왔어.”
좋은 거? 희와 제피르는 점심을 후다닥 먹어 치우고 놀러 나갔었다. 한참 전부터 둘이 보이지 않아서, 또 관망대에서 놀고 있는 줄 알았는데, 어딘가에 다녀온 모양이었다.
“이거야. 단단 예쁘지?”
“희 그게 뭐야?”
“여왕님 날개 가루야. 희가 가져 왔어.”
“가져와?”
“응. 희랑 제피르가 힘냈어.”
“그, 그래?”
아무리 봐도 평범하게 구해 온 건 아닌 것 같았다. 태주는 예전에 미식 던전에 희가 빠졌을 때를 떠올려 봤다. 그때도 제피르가 꽤 무례하게 굴었었다. 그 일 후로 희랑 제피르는 요정 숲에 한동안 가지 않았었다. 요정 여왕님이 잊을 때 즈음해서 다시 숲으로 놀러 다녔었다.
“희, 혹시 이번에도 요정 숲에 한동안 가면 안 돼?”
“응. 이번엔 오랫동안 가면 안 돼. 히히히.”
“히이이힝.”
“호호호. 괜찮아, 정원사 씨. 한동안 요정 숲에 못 가는 정도로 요정 여왕의 날개 가루를 얻을 수 있다면, 남는 장사를 한 셈이야.”
“그, 그래요?”
“응. 요정 여왕의 날개 가루는 살아 있는 모든 것에게 축복을 내릴 수 있는 물건이야. 지금 단단에게 아주 필요한 물건이지.”
그런 날개 가루를 대체 어떻게 구해 온 것인지 알고 싶지 않았다. 알고 싶지 않은데도 어쩐지 방법이 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 이 말썽쟁이 콤비와 벌써 정원 시간으로 15년째였다. 둘이 무슨 방법을 사용했을지 보진 않았지만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희와 제피르 콤비는 모린이 진화액을 가져온 걸 보자마자, 요정 여왕님의 궁전에 침입했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제피르가 요정 여왕님의 뒷덜미를 물고 마구 흔들었을 것이다. 물론 그 밑에는 희가 지금 당당하게 내미는 저 손수건을 펼치고 있었을 게 분명했다.
“…너희 정말 한동안 요정 숲에 가면 안 되겠다.”
“이히히.”
“히이이잉.”
“정원사 씨, 그래서 이 날개 가루를 쓰지 않을 생각이야?”
“아니요. 단단에게 도움이 되는 물건인데요. 당연히 써야죠.”
“호호호. 요정 여왕님한테 사과는 나중에 정원사 씨가 알아서 하라고.”
당연히 그럴 생각이었다. 요즘엔 방문이 뜸했지만, 희랑 제피르는 요정 숲 방문을 아주 좋아했다. 게다가 요정 여왕님은 희를 귀여워 해서 자주 간식도 챙겨 주는 분이었다. 단단의 진화가 좋은 방향으로 진행되면, 자발적이었든 어쨌든 요정 여왕님의 협조 덕분이기도 했다.
사과의 선물이 될지, 감사의 선물이 될지 모르겠지만, 아주 좋은 것으로 준비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요정 여왕님의 날개 가루를 단단의 머리 위에 뿌리자, 만화에서나 볼법한 샤랄라 효과가 나타났다. 여러 가지 색의 따뜻하고 몽글몽글한 빛이 몽환적으로 섞이더니, 한순간 환한 빛을 내고 단단의 몸에 흡수되었다.
“단단 이제 마셔도 될 것 같아.”
“단단.”
유리병 안에서 찰랑거리는 진화액은 양이 많지 않았다. 단단이 아니더라도 한입에 털어 넣을 수 있는 양이었다. 단단은 태주의 말이 끝나자마자 그 액체를 전부 마셔 버렸다. 태주를 의심하는 기색도 망설이는 기색도 전혀 없었다.
-화아아악!
“읏! 눈부셔라.”
“이힝, 태주. 희 눈부셔.”
“희 내가 손 받쳤어. 내려와도 괜찮아.”
“히이이잉.”
단단이 진화액을 마시자마자, 언젠가 봤던 밝은 빛이 방 안에 가득 퍼졌다. 태산이가 1차 성장을 할 때 온실에서 나왔던 빛처럼 밝아서 눈이 부셨다.
단단 가까이에 있던 희는 빛 때문에 순간적으로 시야를 잃고 휘청거리면서 날고 있었다. 태주는 그런 희에게 손을 펼쳐서 디딜 곳을 만들어 줬다.
잠시 후 태주는 손 위에 희를 앉히고 머리에 제피르를 얹은, 조금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단단의 진화가 끝나길 기다렸다. 빛에 시야를 잃은 것은 제피르도 마찬가지였다. 제피르는 희와 태주가 대화하는 방향을 감지하고 그대로 태주의 머리 위에 자리 잡았다.
“호호호. 정원사 씨, 보기 좋은걸.”
“하하하.”
“어떤 모습이 될지, 기대되네.”
“네. 정말 기대되네요. 단단이 어떻게 바뀔지.”
방 안을 가득 채웠던 빛이 큰 공 모양으로 수그러들었다. 그 빛의 공 안에서는 여전히 단단의 진화 과정이 이어지고 있었다. 정원 식구 모두 빛의 공 안의 단단이 무사히 진화할 거라고 믿고 있었다. 진화 실패는 누구도 상상하지 않고 있었다.
태주는 단단의 진화를 시작하고 나서 조용해진 두 아이를 돌아봤다. 둘은 신경전을 벌였던 것은 그새 잊었는지,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그는 귀여운 그 모습에 해나에게 부탁해서 맛있는 간식을 먹여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단단의 진화가 끝나길 기다리길 한참, 빛의 공의 농도가 점점 옅어지기 시작하더니 곧 모두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그 자리에 모두가 기다리던 단단의 모습이 나타났다.
“단단. 네 털 색이….”
“어머! 밝은 갈색으로 바뀌어서 더 귀여워졌는걸.”
“단단.”
“단단. 몸은 괜찮아? 아픈 데 없어?”
“단단. 단단.”
“태주, 괜찮대. 그런데 이상한 게 보인대.”
“뭐?”
진화 과정을 거쳤지만, 단단의 덩치는 변하지 않았다. 그저 검은색에 가까웠던 털 색이 밝은 갈색으로 바뀐 게 변화의 전부였다. 겉보기에 그다지 변하지 않아서 안심하고 있었는데, 이상한 게 보인다니…. 바라지 않던 청천벽력같은 소식이었다.
“이상한 거 어떤 거? 혹시 눈에 이상이 생긴 거 아니야? 펫 질병 진단 키트를 써 볼까?”
“진정하라고, 정원사 씨. 다들 놀라잖아. 그리고 희 아가씨, 단단한테 정확하게 어떤 게 보이는지 물어봐 줄래?”
“응. 해나.”
태주는 해나의 말에 크게 숨을 들이쉬며 진정하려고 애썼다. 이상한 게 보인다는 말에, 순간 괜히 자신이 고집을 부려서 단단을 해친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그의 마음을 뒤덮었다.
그의 걱정과 다르게 희와 말하면서 몸을 움직여 보는 단단은 전혀 불편해 보이지 않았다. 단단은 희의 질문에 답하는 한편, 바뀐 자신의 털 색이 신기한지 앞발을 핥아 보고 꼬리를 돌아보느라 바빴다. 가끔 허공 중에 시선을 주기도 했지만, 그냥 봐도 아픈 것 같진 않았다.
“푸른색 작은 인간이 보인대.”
“푸른색 작은 인간? 그거 혹시 정령 아니야?”
“호호호. 요정 여왕님의 날개 가루가 잘 든 것 같은데.”
“네? 해나 무슨 얘기예요?”
“아무래도 단단이 진화하면서 정령 친화력을 가지게 된 것 같아. 우린 보지 못하는 물의 정령을 보는 것 같아.”
“아! 세상에.”
단단은 진화 과정을 거치면서 정령사가 될 자질을 가지게 되었다. 항상 물과 가까이 생활하더니, 그 영향인지 정원의 누구도 보지 못 하는 물의 정령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잘됐다. 정말 다행이야.”
“호호호. 정령과 계약하는 방법만 익히게 하면 되겠어. 정말 잘됐어. 더 귀여워진 데다가 능력도 좋아졌잖아. 이건 축하해야겠는걸.”
“하하하. 해나 말이 맞아요. 오늘은 축하 파티를 빼놓을 수 없겠어요.”
“파티! 태주, 희는 불꽃놀이 할래.”
“응. 불꽃놀이도 하고, 환상 마법 주문서도 여러 개 써서 정원 분위기도 바꾸자.”
“와! 파티다! 이히히.”
태주는 그때까지 자기 몸을 살펴보고 있던 단단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이마에 손을 가져가 쓱쓱 쓰다듬어 주었다. 아칸서스의 실력을 믿는 만큼 안전할 거로 생각하고 있긴 했지만, 그래도 무사히 진화를 이뤄 낸 단단이 대견했다. 그는 그런 마음을 가득 담아 한 번 더 머리를 쓰다듬고 자리를 정돈했다.
“희, 파티 전에 협회에 주민 등록 신청서를 보내자.”
“응. 희가 보낼게.”
“좋아. 해나 파티 음식을 부탁해도 될까요?”
“호호호. 부탁하지 않아도 당연히 준비할 생각이었어, 정원사 씨.”
“고마워요. 모린, 나랑 같이 정령 계약에 관한 책을 찾아보자.”
“응, 태주.”
태주는 마지막으로 태산이와 제피르에게 단단과 함께 정원에서 몸 상태를 점검해 달라고 부탁했다. 겉보기엔 문제가 없어 보였지만, 정확하게 몸 상태를 점검할 필요가 있었다.
부탁을 받은 정원 식구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태주도 모린의 손을 잡고 상점 쪽으로 향했다. 상태 점검을 할 수 있는 마법 주문서도 사고, 정령에 관한 책도 사야 했다. 물론 희가 바라는 불꽃놀이 주문서와 환상 마법 주문서도 살 생각이었다.
정원 식구들이 각자 맡은 일을 모두 끝내면, 태주는 기억에 남을 만한 성대한 파티를 열 생각이었다. 오늘은 그렇게 축하해도 부족하지 않은 좋은 날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