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27
26. 이태주?
버스킹 촬영은 시내 곳곳에서 이뤄졌다. 길게 이어진 것은 아니고, 부산으로 출발할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이곳저곳에서 버스킹을 하는 모습을 찍는 중이었다.
실제로 버스킹을 하는 모습을 찍고 있었다. 버스킹 횟수가 쌓이자 알아보는 사람들도 생겼다. ‘힐링 인터뷰’니 ‘네온 프로듀서’니 하는 얘기가 나오는 것을 보니 착실하게 인지도가 쌓이는 중인 것 같았다.
버스킹 장면에 이어 준희와 티격태격하는 장면까지 모두 찍었다. 오늘 촬영은 관객들의 협조가 있어서 수월하게 마칠 수 있었다. 태주가 촬영 스태프에게 인사를 하고 돌아가려 할 때였다.
“저, 저기요.”
“네?”
“힐링 인터뷰 나오시는 분 맞죠? 사인 부탁드려도 될까요?”
아까 버스킹 중에도 태주의 이름이 들리더니, 이제 태주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제법 생겼다. 일주일에 한 번 5분 남짓 출연하는 방송이지만, 고정이라 그런지 회차가 쌓이자 그 영향을 받는 것 같았다.
“네, 어디에 해드릴까요?”
“여기요, 여기에 해주세요.”
용기를 내어 태주에게 말을 걸었던 아가씨는 붉은 가죽 다이어리를 펼쳐서 사인을 받았다. 태주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사인을 했다. 회귀 전부터 써오던 사인이라 거침없었다. 사인을 받은 아가씨가 작게 환호를 하더니 인사를 하고 돌아갔다.
태주의 일행은 태주의 첫 사인 장면을 흐뭇하게 보고 있었다. 태주도 오랜만에 하는 사인에 새삼 가슴이 두근대는 것을 느꼈다. 태주의 뺨이 살짝 상기되었다.
“흠흠. 우리 태산이 기다리겠네요. 얼른 가요.”
“큭. 쑥스러워하긴.”
미나가 놀리기 시작할 것 같아서 태주는 빠르게 차를 세워둔 쪽으로 다가갔다. 촬영 중간에 잠든 태산이를 밴에 두었는데 슬슬 깰 때가 되어서 불안했다.
“누나 진짜 빨리 가야 해요. 태산이가 우리 밴 의자 다 물어뜯을지 몰라요.”
“정말?”
“네, 요새 이갈이 하나 봐요. 오늘 아침에도 가죽 벨트 하나 버렸어요.”
“헉. 의상 실린 건 안 건드렸겠지?”
미나가 급하게 밴으로 뛰었다. 태주는 그 모습을 킥킥거리면서 보고 있었다. 태산이가 이갈이하느라 여러 가지를 물어뜯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래서 좀 전에 잠이 들었을 때, 케이지에 넣고 입구를 잠가두었었다. 깨었어도 얌전히 케이지 안에 있을 터였다.
“악! 밴 잠겨있잖아.”
미나가 먼저 달려갔지만, 밴의 키는 견우가 가지고 있었다. 태주는 앞쪽에서 들리는 미나의 외침에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옆에서 기타와 가방을 들고 있던 견우도 웃고 있었다.
*
태주가 이미나에게 분장을 받는 사이 견우는 매니저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 들어섰다. 촬영 시간까지 시간이 좀 남아 최근 매니저들 사이에서 무슨 얘기가 도는지 알아보러 들렀다.
견우가 음료수를 뽑아 삼삼오오 모여있는 매니저들 틈에 섞여들었다.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금연 껌을 보여주며 흡연을 거절하고 있을 때였다.
“아까 걔 봤지?”
“누구 말씀이세요?”
“왜 좀 전에 고양이 안고 가던 애.”
“네? 고양이요?”
“그래, 아까 지하로 내려가던데. 지금 거기서 촬영하는 게 힐링 인터뷰뿐이지? 긴가민가했는데 그 x끼 맞더라.”
견우의 귀에 태주에 관한 얘기가 들려왔다. 견우는 누가 무슨 말을 하는지 확인할 겸 뒤를 돌아봤다. 반대쪽 재떨이 주위에 안면이 있는 배우 소속사 매니저와 낯선 중년 매니저 일행이 있었다. 좀 전에 말을 꺼낸 사람은 중년 매니저인 것 같았다.
“왜, 내가 몇 년 전에 온더탑 애들이랑 같이 데뷔시키려고 쫓아다닌 놈 있잖아.”
“아아. 그 엄청 잘 생겼다던 애요?”
“그래, 걔. 어디 소속인지 촬영하러 왔던데. 그 싸가지 없는 놈.”
중년 남자의 말에 맞장구를 치는 사람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이곳은 매니저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었다. 남의 험담을 하기에는 좋지 않았다. 지금도 건너편의 거무스름한 피부의 남자가 험악하게 노려보고 있었다.
“내가 그때 그 x끼 꼭 우리 회사 데려와서 아주 혼쭐을 낼 생각이었는데.”
저 남자가 왜 태주를 욕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대로 떠들게 둘 수는 없었다. 이곳에 모인 연예인 매니저만 해도 벌써 일곱이었다. 사람들 입을 모두 막을 수는 없을 테니 우선 이상한 소문이 퍼지지 않도록 주의 주고, 태주에게 이유를 물어볼 생각이었다.
“지금 하는 얘기 자세하게 들을 수 있습니까? 만약 이유 없이 험담하는 거라면 각오하셔야 할 겁니다.”
“하, 댁이 뭔데 각오해라 마라야?”
“이태주 배우님 매니접니다. 지금까지 당신들이 욕하던.”
험악한 분위기였지만, 모여있는 매니저 중 자리를 뜨는 사람은 없었다. 견우가 굳은 표정으로 노려보며 대답하자 중년 남자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싸가지 없는 걸 없다 하는데 뭐 어때. 나이도 어린 새끼가 또박또박 말대꾸하면서 고소하네, 마네 이 지랄을 하더만.”
“나이 어린 학생이 고소 얘기를 꺼낼 정도로 무슨 짓을 했습니까?”
“하, 이보쇼. 내가 하기는 무슨 짓을 해. 애새끼가 원래부터 싸가지가 없는 거지.”
이유를 말하지 않고 그저 태주의 욕만 하는 남자에 주변 사람들의 표정이 변했다. 개중에는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을 짓는 이들도 있었다. 평소 남자에 대한 평가가 어땠는지 알 수 있는 모습이었다.
“이유도 댈 수 없다면, 우리 배우 험담도 하지 마십시오. 온더탑이 소속된 회사라고 했습니까? 오늘 이후 우리 배우님 관해서 이상한 소리가 나오면 그쪽 소행이라고 생각하겠습니다.”
견우가 중년 남자에게 주의를 준 후, 주변을 돌아보면서 모여있는 매니저 한 사람 한 사람과 모두 눈을 맞췄다. 뜬 소문이 나면 각오하라는 눈빛을 한 채였다. 불편한 표정이 된 사람도 있었지만, 괜히 쓸데없는 분란을 만들 사람은 없었다. 견우와 안면이 있던 매니저가 사람들에게 견우의 회사가 트리즈라는 것을 넌지시 알렸기 때문이다.
견우는 다시 한 번 중년 남자를 노려보고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갔다. 계단을 내려가면서 얼굴을 쓸어 표정을 푼 그는 조용히 이미나의 옆에 가서 섰다.
*
태주는 웃으면서 인터뷰 상대를 도와주고 있었다. 동물들의 장난에 뒤로 넘어갈 뻔한 상대의 몸을 다정하게 받쳐주고 있었다. 장난기 많은 동물을 달래면서 차분하게 진행을 이어갔다.
인터뷰가 끝나고 견우가 태주에게 가려 할 때였다. 피디가 견우를 불러서 계약 연장 얘기를 꺼냈다. 기존의 계약은 3개월 단기 계약이었는데, 기간 연장을 하자는 얘기였다. 두 달이 넘어가는 시기였으니 연장을 하긴 해야 했다.
힐링 인터뷰의 계약 연장 건은 사전에 태주와 합의한 사항이었다. 힐링 인터뷰는 태산이가 무척 좋아하는 일이라 가능하면 꾸준히 하기로 했다.
연예 세상이라는 프로그램의 한 코너지만 요새는 본 프로그램보다도 더 인기가 있었다. 따로 힐링 인터뷰만 편집된 동영상 클립의 조회 수가 본 프로그램 동영상의 조회 수를 훨씬 상회 할 정도였다. 인터뷰를 희망하는 게스트도 아주 많았다. 큰 문제가 없다면 코너는 계속 유지될 것 같았다.
견우가 피디에게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며 얘기를 전하는 사이 모든 준비를 마친 태주가 다가왔다.
“태주 씨, 오늘도 수고하셨어요.”
“피디님도요. 수고하셨습니다.”
“지금 매니저님이랑 계약 연장 얘기하고 있었거든요, 태주 씨 생각은 어때요?”
“제가 무슨 힘이 있나요. 여기, 요 녀석이 주인공인데요. 태산이가 너무 좋아하는 일이라, 저야 시켜만 주시면 감사하죠.”
“그래요, 그럼. 앞으로도 잘 부탁해요.”
견우는 제작진과 대화를 하는 태주의 모습을 보면서 좀 전에 만났던 중년 남자의 말은 헛소리가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견우는 자신이 들은 것을 태주에게 물었다. 태주는 누구를 말하는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몇 년 전이라고 말하지만, 20년을 돌아온 태주에겐 까마득한 예전의 일이었다.
“누구를 말하는 건지 전혀 모르겠어요.”
“온더탑 이라는 아이돌이 소속된 회사라고 합니다. 오렌지 엔터요.”
“아! 오렌지 엔터. 기억났어요.”
이름을 듣자 기억났다. 태주의 집 주소를 어떻게 알았는지 밤에도 집 앞에서 사람이 기다렸었다. 자신이 계속 거절하고 연락을 피하자, 한 번은 태우를 저녁을 사준다는 핑계로 밤늦게까지 데리고 있었다. 덕분에 머리끝까지 화가 나서 스토커로 신고하고, 고소하겠다고 성질을 냈었다.
태주의 설명을 들은 견우는 역시나 그쪽의 잘못이 크다고 생각했다. 중학생인 태주를 무리하게 스카웃 하려다 문제가 생긴 것이었다. 평소 태우를 아끼는 태주를 보면 스토커로 신고하는 정도로 끝낸 게 다행이었다.
“그렇군요. 이 일은 제가 회사에 말해 두겠습니다.”
“혹시 그 사람이 뭐라고 제 얘기를 하고 다니던가요?”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뒷말이 나올 일은 없을 겁니다.”
이제 서서히 인지도를 끌어올리는 중인 태주의 앞길을 막을 만한 것은 미리 치워둘 생각이었다. 우 팀장님에게 말해 두고 오렌지 엔터에 경고를 보내는 정도면 충분할 것이었다.
*
희는 오늘도 날아다니며 정원을 확인하고 있었다. 관리자인 희는 책 조각상을 이용해 정원의 현황을 알 수 있었지만, 하늘을 날아서 확인하는 것을 더 좋아했다. 하늘을 날다 솜사탕 무지개를 한 입 베어먹는 것은 희가 가장 좋아하는 일 중 하나였다.
태산이와 단단이 트리하우스에서 하얀 깃털을 두 번이나 발견했다. 도대체 어떻게 관리자인 자신의 눈을 피할 수 있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희가 트리하우스 안을 꼼꼼히 살펴봤지만, 평소와 다른 점을 찾을 수 없었다.
“이상해, 이상해.”
희는 태주가 돌아올 때까지 열심히 정원을 날아다녔지만, 특별히 이상한 점을 찾지 못했다.
“희, 왜 이렇게 지쳤어? 응?”
태주는 힘없이 자신의 손 위에 내려앉은 희 때문에 놀랐다. 혹시 아픈 게 아닐까 걱정했지만, 그건 아니라고 했다. 그저 정원을 너무 많이 빙빙 돌아서 지친 것뿐이라고.
“희, 무리하면 안 돼.”
“태주, 하얀 깃털은 모르겠어.”
“큭. 괜찮아. 아마 눈에 보이지 않는 천사 같은 방문자가 왔다 간 것일 수도 있어.”
“천사?”
태주는 희를 달래며 정원을 손봤다. 이전과 같은 모습이 되지 않도록 연습을 시작하기 전에 정원을 가꾸고 있었다. 정원은 조금만 신경을 쓰지 않으면 잡초가 수북하게 자라곤 했다. 잡초가 높이 자라면 걷기도 불편하고, 보기에도 좋지 않았다. 태산이와 단단은 수풀 속을 헤집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았지만 말이다.
“태주, 태산이 하고 싶은 말이 있대.”
“응?”
“태산이는 음, 굴? 큰 상자? 그런 게 갖고 싶대.”
“응? 상자? 호랑이도 고양이과긴 한가 보구나. 좋아. 오늘은 태산이 굴을 만들자. 바위로 만들까?”
“희는 딸기 상자가 좋은데.”
태산이가 정말 많이 컸다는 게 느껴졌다. 처음 한 뼘 크기였을 때는 안아 올리는 것도 겁날 정도로 작고 약했는데. 이제는 자기 굴을 가지고 싶다고 말할 정도가 되었다.
‘언제까지 아기가 아니구나.’
태주는 상점에서 꽃이 심긴 바위 화분과 커다란 정원용 바위를 구매했다. 구멍이 뚫린 바위도 사고 지붕으로 얹을 널따란 바위도 샀다.
오두막 옆 공터에 땅을 파서 바위 굴을 쌓았다. 난쟁이 도릴처럼 땅의 정령을 다룰 수 있었다면 쉽게 할 수 있었겠지만, 정령을 다루지 못하는 태주는 하나하나 직접 해야 했다.
우선 기둥이 될 바위를 둥글게 둘러 쌓고 지붕을 올렸다. 그 후에 구멍이 있는 바위로 입구를 막았다. 틈새의 곳곳은 흙을 가져와 메우고 꽃과 작은 나무를 심었다.
한나절을 이은 공사를 마치자, 그럴듯한 호랑이 굴이 생겼다. 다만 굴 주변이 아무것도 없는 공터라 좀 아쉬웠다.
“희, 태산이한테 이 주변을 대나무로 감싸주냐고 물어봐 줄래?”
“대나무?”
“응, 호랑이라고 하면 다들 대나무를 떠올리니까.”
“태주, 왜 대나무야?”
“그러게 왤까?”
호랑이 주 서식처가 대나무 숲인가? 태주도 알 수 없었다. 나중에 동물 백과사전을 찾아봐야 할 것 같았다.
“태주. 태산이는 대나무가 뭔지 모르겠대.”
“아. 한 번도 본 적이 없겠구나. 이런 도시 호랑이 같으니.”
태산은 완성된 호랑이 굴 안에 들어섰다. 안쪽은 텅 비어있었다. 태산이 스스로 꾸밀 수 있게 일부러 아무것도 넣어주지 않았다.
“아우우웅.”
태산이 만족스러운 울음을 길게 냈다. 태산이의 울음소리를 들은 희와 태주도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태산(백호)이 1차 성장 조건을 만족합니다. (2/3)호랑이 굴 발견: 몸을 숨길 굴을 발견했습니다. 굴에서 충분한 휴식을 취하면 더욱 활기차게 움직일 수 있습니다.
1차 성장 조건 달성: 1. 사냥 본능/ 2. 호랑이 굴 발견 / 3. ???]
“와아! 태주 봤어?”
“어? 와! 응, 봤어.”
호랑이 굴을 가지는 것이 성장 조건 중 한 가지인 것 같았다. 사냥 본능에 이어서 두 번째 조건을 충족했다. 이제 한 가지만 더 찾으면 태산이는 1차 성장을 할 수 있게 된다.
태주는 태산이가 무사히 자라는 것이 기쁘면서도, 그냥 아기 모습으로 함께 했으면 하는 상반되는 감정을 느꼈다.
‘아아. 복잡하다. 성장하면 좋긴 한데, 이대로 안 크고 아기인 채로 쭉 같이 살았으면 싶기도 하고.’
태산이는 굴이 마음에 든 것 같았다. 지붕 위에 심어둔 풀 냄새를 맡기도 하고, 바위 틈새를 막아둔 흙을 파헤치기도 하면서 신나게 탐색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