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296
296. 내부 시사회 >
태주는 그를 민망하게 만드는 두 명의 감독이 지켜보는 와중에도 완벽하게 집중하고 있었다. 괜히 긴장을 풀고 촬영하다 두 사람이 부족하다고 느껴서, 여러 시도를 할까 두려웠다. 그래서 평소보다 더 기합을 넣고 집중하는 중이었다.
처형장에 난입해 처형을 집행하려던 집행자와 그 대상들까지 모두 자신의 휘하로 들이는 장면, 다시 그 일행을 이끌고 처형장을 벗어나는 장면을 모두 깔끔하게 끝냈다. 다른 각도에서 촬영하는 같은 장면 역시 철저하게 감정을 유지하며 빠르게 마쳤다.
“수고했어요, 태주 씨. 모니터할 거면 이리 오세요.”
“…네.”
모니터 쪽으로 가는 걸음에 내키지 않는 마음이 드러나지 않도록 몸에서 힘을 풀었다. 이 두 감독이 재촬영을 요구하지 않고 곁으로 부를 때마다 민망해서 얼굴을 들 수 없는 말을 들었었다. 그는 두 사람이 오늘은 제발 그러지 않길 속으로 바랐다.
“확실히 프로포션이 좋아. 찍는 맛이 있다니까.”
“그렇죠? 덕분에 의상이랑 검 같은 소품을 전부 새로 맞춰야 했지만, 고생한 보람이 있다니까요.”
“신체 조건이 좋은 것도 좋은 건데, 참 영리해. 보면 자기가 가진 걸 제대로 활용하는 게 눈에 보여. 목소리도 외모도 제대로 파악하고있고 완급 조절도 잘한단 말이지.”
“맞아요. 저야 연기는 잘 모르지만 제가 만든 의상이나 소품이 태주 씨한테 가면 제 역할을 하는 게 진짜 뿌듯해요.”
“그건 우리 태주 씨가 연습량이 많아서 그래요. 바탕이 좋은 건 운이지만, 저렇게 큰 동작을 하거나 빠르게 움직이면서도 발음이 또렷하게, 또 듣는 사람이 부담되지 않게 편하게 들리는 건 그만큼 기초가 탄탄해서 가능한 일이거든요. 호흡이나 텐션 유지하는 것만 봐도 연습량이 어떤지 알 수 있어요.”
“맞아요, 맞아. 내 말이 그 말이에요.”
물론 상황은 그의 뜻과는 전혀 다르게 진행되었다. 그가 외투를 받아 걸치고 다가가는 사이 촬영 감독과 미술 감독이 칭찬 대열에 합류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태주는 자신이 언제 김정훈 감독의 태주 씨가 되었는지는 의문이었지만, 그냥 두었다간 부끄러운 말들이 더 나올 것 같아서 재빨리 그들에게 다가갔다.
“….”
“어때요? 이대로 가도 될 것 같아요?”
그는 모니터 내내 사방에서 쏟아지는 뜨거운 시선을 느껴야 했다. 총괄 감독 두 명으로 부족해서 추가된 두 명의 감독이 옆에서 똑같은 눈으로 보고 있어서였다. 촬영 전 이남진이 농담으로 건넸던 말처럼 정말 화상이라도 입을 것 같았다.
“네, 좋아요.”
“오케이. 이대로 갑시다. 그럼 태주 씨는 잠시 기다리시고, 다음 순서 갑시다. 잘했어요. 쉬고 있어요.”
“네, 그럼.”
한창석 감독은 다른 배우나 스태프를 대할 때와 태주를 대할 때 확연하게 온도 차가 났다. 처음 리딩장에서 만났던 때와도 아주 달랐다. 덕분에 회귀 전을 기억하는 태주의 혼란은 더해 갔지만, 한창석 감독은 매우 만족스러운 상태였다.
과거 에 박재우를 대신 섭외한 일만 떠올리지 않으면, 그의 영감을 자극하는 피사체를 마음껏 뜯어볼 수 있었다. 한창석 감독은 타인에게 자신이 어떻게 보이는지 잘 알았지만, 칭찬을 줄이거나 호감을 감출 생각이 전혀 없었다.
‘차기작이 아직이었지!’
당장은 시즌 2에 묶여 있지만, 몇 달만 지나면 이태주는 프리가 된다. 후보군에 둔 차기작이 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계약서에 도장을 찍어도 촬영 들어가기 전까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게 이 바닥이었다. 그러니 미리미리 침을 발라 둬야 했다.
사실 본인의 차기작에 출연시키기 위한 게 아니더라도 그는 이번 촬영이 즐거웠다. 그의 눈앞의 배우는 그가 상상만 하던 것들을 전부 표현해 낼 수 있는 배우였다. 그런 배우를 찍는 작업 자체가 즐거웠다.
‘역시 최고야. 정말 기대 이상이야.’
편집실로 좀 전에 촬영한 분량을 전송하는 조연출의 뒤에서 확인하던 한창석 감독은 다시 이태주를 찍고 싶은 욕심에 입이 타는 것을 느꼈다.
이태주는 단순히 그가 바라던 이미지에 걸맞은 그런 배우가 아니었다. 영리하고 계산적이면서도 충분히 감각적이었다. 실제로 실행할 생각은 없지만 그런 이태주에게 여러 요구를 해 보고 싶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잘 짜인 연기를 하면서도 그 안에 개성을 담아내고 있네요.”
“똑똑한 친굽니다. 본인이 가진 것들을 연기에 잘 녹여내면서도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죠. 더 많은 걸 보여 주겠다는 욕심에 피로감을 주는 일이 없어요. 노련하고 여유 있죠. 사실 이십 대 배우에게서 볼 만한 점들은 아니죠.”
“덕분에 골칩니다. 이걸 우리만 알아차릴 리 없으니 말이죠.”
“하하하. 힘내십시오.”
“김 감독님은요? 복귀는 생각 없으십니까?”
한창석 감독의 물음에 김정훈 감독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의 상태가 많이 좋아졌지만, 아직 복귀하기엔 일렀다. 그는 복귀보단 아버지와 시간을 보내거나 오랫동안 자신을 도왔던 조연출의 입봉을 도울 생각이었다.
최상의 피사체를 앞에 두고도 보기만 해야 하는 상황이 아까웠지만, 아버지와 함께할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하기로 했다.
*
“이디 오노라!”
“하하하.”
태주는 자신을 향해 달려오면서 외치는 아이의 인사에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는 웃는 얼굴로 한쪽 무릎을 땅에 대고 팔을 크게 벌렸다. 품 안으로 뛰어드는 아이를 안은 그의 입에서 연신 즐거운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입으로는 오라고 외치면서 행동은 반대인 아이가 사랑스러워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산이 잘 놀았어?”
“앙.”
“볼이 다 얼었네. 많이 돌아다녔어?”
“앙. 공언 가따와떠.”
쪽, 쪽. 품속 꼬맹이의 발갛게 언 볼에 입을 맞춘 태주가 그대로 안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입술에 닿은 아이 볼이 차가웠다. 체온 유지 기능이 있는 아이템을 착용하고도 볼이 얼 정도로 밖에서 놀았다는 소리에 아이를 안은 걸음이 빨라졌다.
“뜨거우니까, 천천히 마셔.”
“앙, 아라떠.”
“산아, 후후해서 마셔야 해, 알았지?”
“….”
코코아 위에 동동 뜬 마시멜로를 보느라 자신의 주의를 한 귀로 듣고 흘리는 모습에 태주가 손을 뻗었다. 아이 손에 쥐여 주었던 코코아 컵을 뺏어 테이블에 올리고 아이를 품 안으로 당겨 안았다. 급하게 먹다 데일 것 같아서 직접 먹일 요량이었다.
컵을 뺏겨 톡 튀어나왔던 아이 입술이 태주의 품에 안기자 쏙 들어갔다. 그리고 언제 말을 안 들었냐는 듯이 편하게 등을 기대었다.
“후우. 아직 뜨거워. 조금 더 식힌 뒤에 마시자.”
“앙. 아라떠.”
품속엔 사랑스러운 아이, 따뜻한 벽난로, 푹신한 소파 마지막으로 향긋한 차까지. 여러 요소가 합해지자, 하루 동안 촬영장에서 쌓인 피로가 스르르 풀리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느낀 것은 그 혼자만은 아닌지, 아이의 몸도 녹아내린 것처럼 그에게 붙어 있었다.
잠시 후, 2호의 손이 조심스럽게 태주에게로 향했다. 2호는 태주의 손에서 반 정도 남은 코코아 잔을 빼내 탁자 위에 올린 뒤, 곁에 있던 노란 담요를 덮어 주었다. 2호는 담요 속 두 사람이 다정하게 붙어 있어서 추울 것 같진 않았지만, 벽난로 온도를 높여 두었다.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촬영장에서의 하루가 저물었다.
시즌 2의 촬영이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부터 태주는 2시간 거리의 집에서 촬영장을 왕복할까 심각하게 고민했다. 쿠첼루스가 준비해 준 모터홈은 마법적인 무슨 장치가 되어 있는지 과거 여름에 촬영할 때 썼던 모터홈보다 훨씬 편하고 넓었는데도 그랬다.
‘여길 봐도 좀비, 저길 봐도 좀비. 어휴, 진짜.’
시즌 2는 출연하는 좀비가 훨씬 많았다. 태주와 제작진이 사용하는 주차장과 보조 출연자들이 사용하는 주차장이 분리되어 있긴 했지만, 새벽부터 좀비 분장을 하고 다니는 사람들을 모두 막을 수는 없었다. 덕분에 그는 아이와 아침 산책을 할 때마다 좀비를 한 무리씩 보곤 했다.
“산아, 차까지 달려갈까?”
“앙.”
“셋, 둘, 하나. 출발.”
“튤바! 꺄하하.”
그나마 그의 최근 촬영은 좀비들과 하는 게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곧 질릴 정도로 좀비 무리와 싸우는 장면을 찍어야 했지만, 당장은 찍지 않아도 되는 게 마음에 들었다.
언제나처럼 두 감독의 노골적인 시선을 받으면서 오전 촬영을 마친 태주는 일행과 함께 밴에 올랐다. 촬영이 한창 진행 중인 시기에 혼자 서울로 돌아가는 게 미안했지만, 오후 일정은 꼭 참석해야 했다.
물론 미안하긴 했지만, 사실 두 감독과 두 감독한테 물든 듯한 촬영 감독과 미술 감독의 시선을 벗어나는 일은 제법 홀가분했다.
“사람들 옷이 얇아졌네요.”
“촬영장이 추운 지역이라 그렇지, 이미 봄입니다.”
“그러게요. 촬영장에선 다들 롱 패딩을 입고 다니니 봄인 줄 모르겠어요.”
“촬영장에서라면 그럴 수밖에 없지요. 거긴 여름 빼고 일 년 내내 롱 패딩을 입고 다니니까요.”
지방, 특히 산속에서 촬영할 때는 계절 감각을 잊게 된다. 견우의 말대로 촬영장에서 일하는 스태프들 모두 한여름을 빼고 항상 겨울 패딩을 입고 다녀서였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일반인들의 밝은색 옷차림과는 확연하게 다른 모습이었다.
태주는 사람들의 바뀐 옷차림에서 시간의 흐름을 느꼈다. 그가 지방의 괴물이 가득한 촬영장에 박혀 있는 사이, 시간이 흘러 봄꽃이 조금씩 올라오는 계절이 되어 있었다. 나아가 그의 다른 작품, 이제영 감독의 영하 도 개봉을 위한 절차를 밟고 있었다.
“촬영 시작하고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시사회를 할 때가 되었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이렇게 빨리 내부 시사회를 한다니…. 이제영 감독님이 편집실에서 안 나오셨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몸도 좋지 않은 분이신데, 걱정입니다.”
“아!”
“태주 씨?”
“아니, 아무것도 아니에요.”
견우가 의문스러운 눈길을 보냈지만, 태주는 대답할 말이 없었다. 기쁜 소식이라 알려 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그 소식이 가져올 파장을 생각하면 지금처럼 비밀로 하는 게 최선이었다.
이제영 감독님에게 치료제를 건네고, 몸이 좋아졌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비밀이었다. 이제영 감독님이 비밀스레 건강 상태를 확인하고 놀라서 연락한 일 역시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이제영 감독 역시 마찬가지였다. 친우인 이성군한테도 차도가 있다고만 얘기했을 뿐 완치 소식은 알리지 않았다.
근질근질한 입을 열심히 단속하는 태주의 조금 힘겨운 이동 시간이 지나 일행은 시사회가 열리는 건물에 도착했다. 이번 시사회는 내부 시사회라 따로 상영관을 빌리진 않았다. 외부인은 전혀 초대하지 않은 채로 대형 스크린이 설치된 커다란 회의실에서 제작사, 연출자, 출연자 등의 관계자만으로 진행했다.
“태주 씨….”
“감독님.”
“태주 씨, 내가, 정말, 내가 얼마나….”
“괜찮아요. 진정하세요, 감독님.”
“너무, 너무 고마워요. 태주 씨.”
시사회가 진행되는 대회의실에 들어서자마자 태주는 이제영 감독의 품에 붙잡히고 말았다. 이제영 감독은 북받치는 감정을 자제하기 힘든 듯 그를 안고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다가 끊임없이 고맙다는 말을 늘어놓았다.
잠시 얌전히 이제영 감독의 감사 인사를 받던 그는 그가 낼 수 있는 한 가장 다정한 목소리로 이제영 감독을 달래서 품에서 벗어나려 했다. 수십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놀란 눈으로 두 사람을 보기도 했지만, 잠시라도 더 안겨 있다가는 조그만 질투쟁이가 사이로 파고들 것 같아서였다.
“앙. 사니 꺼야.”
“킥. 그래, 산이 거야.”
태산이는 이제영 감독이 떨어지자마자 태주의 몸을 끌어안고 주변을 경계했다. 태산이는 또 고양이처럼 그의 몸을 타고 올라 목을 끌어안았다.
태주가 귀여운 욕심쟁이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편을 들어 주었지만, 아이의 성에 차지 않은 모양이었다. 절대 놓지 않겠다는 듯 팔을 감고 매달린 모습에 태주는 떼어 내길 포기하고 그대로 견우의 뒤를 따라갔다.
‘킥킥.’
‘하하하.’
태주는 코알라같이 매달린 아이를 보고 웃는 사람들 사이를 담담한 표정으로 가르고 지나가 견우가 안내한 자리에 앉았다. 메모지와 펜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던 그는 스태프가 준비한 물건에 잠깐 의아한 눈빛을 했다. 캔 음료수와 생수 옆에 티슈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러 사람이 같이 쓸 수 있게 테이블 위에 하나 정도 놓은 것도 아니고, 자리마다 두툼한 여행용 티슈를 준비해 둔 모습이 이상해 보였다. 시사회에 여러 번 참석했지만, 처음 보는 모습에 태주는 준비성이 좋은 직원이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쿨쩍.
-패애앵!
“흐읍.”
“어유. 저걸 어째.”
그러나 티슈에 대한 태주의 생각은 영화가 시작하고 곧 바뀌었다. 두 형제가 엇갈리는 장면, 서로를 그리워하는 장면, 영화 속 장면이 지나갈수록 사방에서 휴지를 뽑는 소리가 나서였다.
영화는 감상적인 연출이 특기인 이제영 감독의 영화답게 노골적인 대사나 장면 연출이 없었는데도, 장면 장면이 사람의 감정을 자극했다.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방황하는 모습, 푸르스름한 바닷속에서 달빛을 쥐려는 듯 손을 뻗는 모습 등. 가슴 시리고 아련한 장면이 밀물처럼 밀려들었다.
“태쭈, 우더?”
“으응.”
“왜 우더? 아파?”
“아니, 안 아파. 영화가 슬퍼서 울었어.”
생수를 한 모금 마셔서 목소리를 가다듬은 태주가 영화 내용 때문에 울었다는 설명을 했지만, 태산이는 이해하지 못했다. 영화가 상영되는 내내 태주의 손을 가지고 놀고 간식을 먹으면서 시간을 보낸 터라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제대로 봤어도 아직 어린 태산이가 이해하기엔 힘들었을 것이다.
태주가 자신을 걱정스레 보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고 이마에 꾸욱 입술을 찍는 사이 감정을 가라앉힌 사람들이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짝짝짝짝!
영화를 본 사람들의 감동만큼 시사회가 열린 대회의실 안에 박수 소리가 오랫동안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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