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94
93. 마법 콩 나무 >
태주는 요정 여왕님이 선물해준 콩을 심은 화분을 볼 때마다 속이 쓰렸다. 해나의 도움도 받고, 따로 호박까지 키워가면서 노력을 했건만 결과는 참가상이었다.
참가상으로 화분을 받은 날 그는 제피르와 홍차 와인을 마셨다. 그날 태주는 자신이 속물이라는 생각을 다시 했다. 과정이고 뭐고 상을 받지 못한 게 너무 아쉬웠다. 상심한 그를 제피르가 곁에서 위로해주었다.
“화분이라도 예쁜 게 어디야.”
“히히힝.”
여왕님의 콩은 화분에 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싹이 났다. 자라는 속도는 보통의 콩과 같았는데, 맺힌 콩깍지의 색이 각양각색이었다. 무지개의 일곱 가지 색은 물론 연분홍색, 연하늘색 등 보통 나무 열매에서 보기 힘든 콩깍지도 자랐다.
콩깍지 하나엔 3개의 콩이 맺혔는데, 이 콩을 먹으면 여러 가지 마법 효과를 볼 수 있었다. 몸이 커지거나 작아지는 것은 물론, 하늘을 날거나 물속에서 숨을 쉴 수도 있었다.
“제피르 이 콩 중엔 몸이 커지는 콩도 있대.”
“히힝.”
“랜덤이라서 어떤 색이 무슨 효과인지는 알 수 없는 게 좀 걸린다.”
“태주, 먹어보자.”
“하하하.”
용감한 먹보 희가 콩을 먹어보자고 나섰다. 그도 그럴 생각을 했지만, 선뜻 손이 가진 않았다. 어쩐지 무시무시한 효과가 있는 게 걸릴 것 같았다.
그가 주저하는 걸 알았는지 희가 용감하게 나섰다. 희는 좋아하는 색인 흰색의 콩깍지에 매달려 힘차게 날개를 펄럭였다. 하지만 콩깍지를 따기에는 힘이 모자랐다.
“하하하. 희, 내가 따 줄게.”
“우웅. 콩이 너무 센걸.”
“킥. 응, 콩이 너무 세다. 그래도 내가 더 세니까, 내가 따 줄게.”
“히히. 응.”
흰색 콩깍지를 따서 열자, 흰색의 손가락 한 마디 만한 콩이 세 개 나왔다. 그는 그중 하나를 희에게 건넸다. 그리고 다시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도 콩을 먹어 볼 생각이었다.
“태주, 기다려. 희가 먹어볼게.”
“응? 어, 알았어.”
아직 콩을 먹기도 전인데 희의 날개에서 반짝이는 가루가 퍼지고 있었다. 볼도 분홍색으로 물들어 있는 걸 보니 재밌는 것 같았다.
“이히. 두근두근해.”
“하하하.”
하얀 콩을 베어 물은 희가 ‘호아!’하는 감탄사를 뱉었다. 그리더니 빠른 속도로 나머지를 먹어치웠다. 날개가 반짝반짝 빛나는 게, 콩이 아주 맛있는 것 같았다.
“이히히. 맛있어.”
“우와! 희! 빛나잖아.”
“응?”
흰색 콩을 먹은 희의 온몸이 환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태주는 빛 때문에 희를 자세히 보기 힘들었다. 하지만 희는 빛이 불편하지 않은 것 같았다.
“어두운 동굴 같은 곳을 탐험할 때 먹으면 좋겠다.”
“탐험.”
“킥킥. 지금은 말고, 나중에 같이 동굴 탐험을 해보자. 상점에 미로 동굴이랑 쿠키 하우스 레시피가 있었어.”
“쿠키 좋아.”
희가 다른 색의 콩을 고르는 사이 태주는 상점에서 유리병을 여러 개 사 왔다. 같은 효과가 있는 콩들을 모을 생각이었다. 그는 유리병에 흰색 콩들을 담고 빛나는 콩이라고 썼다.
“태주, 이거 태주가 좋아하는 색이야.”
“내가 좋아하는 색?”
“응, 이거 홍차색이야.”
“아하하. 그래 이제부터 내가 좋아하는 색은 홍차색이야.”
그는 색에 대한 호불호가 없었다. 하지만 오늘부터 홍차색을 좋아해야 할 것 같았다. 그가 홍차를 좋아하니 홍차색을 좋아한다는 희의 말을 따를 생각이었다.
‘귀여워라. 역시 희가 제일 귀엽네.’
“이건 내가 먹어볼게.”
“응.”
“와아! 엄청 고소해. 맛있다. 어?”
– 퐁. 퐁퐁. 퐁. 퐁.
태주는 눈앞에 생긴 공기 방울을 손으로 건드려봤다. 팍! 하고 터지는 게 진짜 공기 방울이었다.
“우와!”
– 퐁!
“아하하하! 희, 보여? 내가 말할 때마다 공기 방울이 생겨.”
-퐁. 퐁퐁! 퐁퐁. 퐁! 퐁.
“희도, 희도 먹을래.”
홍차색의 콩은 말하는 만큼 공기 방울이 생겼다. 입에서 공기 방울이 쏟아지는 것이라면 보기 흉했을 텐데, 이건 효과가 귀여웠다.
“희가 홍차색을 골라준 덕분이야. 하하하. 이거 진짜 마음에 든다.”
“이히히. 희도.”
희와 태주는 공기 방울을 만들기 위해서 노래를 불렀다. 홍차색 콩의 지속시간은 짧았다. 노래 한 곡을 같이 부르자 공기 방울이 생기지 않았다.
“아쉽다. 이건 희 줄까?”
“응.”
희가 마지막 홍차색 콩을 주머니에 넣었다. 아마 요정 숲에 가져가서 다른 요정하고 놀 때 쓸 생각인 것 같았다. 그는 희가 콩을 주머니에 넣는 장면을 보자, 주머니 속이 궁금해졌다.
‘저 요술 주머니, 언제 한 번 구경시켜 달라 해야겠다.’
희는 지금도 처음 정원에서 태어날 때 입고 있던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태주가 몇 번 옷을 사줄까 하고 물어봤었지만, 필요 없다는 대답만 들었다. 마법이 걸려있는 옷도 그렇고, 언제부터 가지고 다니기 시작한 주머니도 그렇고, 희는 비밀이 많은 요정 아가씨였다.
그가 희에 관해 생각하는 중에 희는 다음에 먹어 볼 콩을 고른 것 같았다. 분홍색 콩깍지 앞이었다. 희가 좋아하는 분홍색이었지만, 태주는 모른 척 다른 색에 손을 뻗었다.
“이번엔 파란색을 먹어볼까?”
“어, 어어. 태주.”
“큭. 자아. 이거 먹자.”
“와와. 좋아, 태주. 히히.”
태주는 손을 옆으로 움직여 분홍색 콩깍지를 땄다. 그가 분홍색을 따자 희의 날개에서 가루가 확 퍼졌다. 만약 희가 아니라 태산이 녀석이라면 성질을 내기 전까지 놀렸을 테지만, 그는 이 작고 사랑스러운 아가씨를 놀릴 생각이 애초부터 없었다.
“응?”
“응?”
분홍색 콩을 먹었지만, 희에게 아무런 변화가 생기지 않았다. 희의 주변에도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태주도 희도 머리에 물음표를 띄운 채 고개만 갸웃댔다.
“꽝인가 보다.”
아무 효과 없는 콩인 것 같았다. 태주는 별생각 없이 분홍색 콩을 입에 털어 넣었다. 그는 분홍색 콩도 흰색 콩처럼 고소할 거란 생각에 가볍게 입에 넣었다.
하지만 그가 콩을 먹자 콩의 효과가 발휘되었다.
– 화악!
“우와! 태주 예뻐!”
“응? 우왓! 이게 뭐야? 요정 날개?”
태주의 등에는 희의 날개처럼 반짝이는 가루가 떨어지는 날개가 생겨있었다. 그가 자신의 등 뒤에 생긴 날개에 놀라는 사이 희와 제피르는 눈을 마주쳤다.
“태주, 태주. 팔랑팔랑해야 해.”
“응? 아아! 날아보라는 거지?”
“응. 팔랑팔랑.”
“하하하. 좋아, 해볼게.”
희는 태주의 얼굴 높이로 날면서 날개를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에게 보고 따라 하라는 것 같았다. 태주는 작은 선생님의 시범을 따라서 날개를 움직여 보았다.
– 팔랑!
“오! 움직였다.”
– 파라라라랑!
“와하하. 희 보여? 공중에 떴어.”
날개를 빠르게 움직인다는 생각을 하자, 자연스럽게 속도가 빨라졌다. 그리고 그에 맞춰 그의 몸이 점점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런 그의 곁으로 희와 제피르가 날아왔다. 둘은 태주 주변을 이리저리 날면서 그를 응원했다. 그 덕분일까 태주는 어렵지 않게 날개의 움직임에 적응할 수 있었다.
“세상에! 너희는 항상 이런 기분이구나.”
“히히히. 태주 좋아.”
“히히힝.”
열기구를 타고 하늘을 나는 것과는 달랐다. 하얀가지 나무 열매를 먹고 비행하는 것과도 달랐다. 날개로 하늘을 나는 것은 훨씬 더 자유로웠고, 훨씬 더 즐거웠다. 둥둥 떠다니는 느낌이었던 열매의 효과보다 편했다. 방향 전환도 속도 변환도 자유로웠다.
태주는 희와 제피르가 안내하는 대로 정원의 나무 위를 날았다. 희와 제피르는 그를 정원 중앙의 큰 나무로 데려갔다. 셋은 제피르가 자주 올라가서 쉬는 큰 나무의 높은 가지까지 같이 날았다.
“매일 여기서 정원을 보고 있었구나.”
“히히힝.”
– 팟!
마법 콩의 효과는 역시 아주 잠깐이었다. 태주는 자신의 등에서 날개가 사라진 것을 바로 알아챘다. 반짝이는 날개가 보이지 않자, 적잖은 상실감이 들었다.
잠시 날개를 가졌던 것이었지만, 희와 제피르가 하늘을 나는 기분을 느낄 수 있어서 만족스러웠다. 그는 주머니에 넣어 둔 마지막 분홍색 콩을 먹는 게 아쉬웠다. 하지만 큰 나무에서 내려가려면 먹어야 했다.
“다른 마법 콩은 나중에 다시 먹어보자.”
“히히힝.”
“오늘은 여기서 같이 정원을 구경할까?”
“좋아, 태주. 제피르도 좋아해.”
“하하하.”
희의 날개 가루가 퍼지고, 제피르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리고 태주의 웃음소리가 퍼졌다. 셋은 제피르가 자주 쉬는 나뭇가지 위에서 한가롭게 시간을 보냈다.
여왕님의 마법 콩 나무는 셋이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해주었다. 아직 콩을 먹어보지 못한 것 중에 분명 신기하고 재밌는 콩이 더 있을 것이다. 태주, 희, 제피르는 다음에도 셋이 같이 있을 때 마법 콩을 먹어보자고 약속했다.
*
정원에서 즐겁게 시간을 보낸 태주는 아침부터 웃고 다녔다. 더위에 지친 다른 사람하고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본 우 팀장은 속으로 빌어먹을 제작사라고 욕을 했다. 그녀가 어제저녁에 들은 소식이 태주의 미소를 앗아갈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이 배우님 앉으세요. 여기 차가운 음료수도 드시고요.”
“잘 마실게요. 마침 우 팀장님한테 물어볼 게 있었는데, 운이 좋네요.”
“하, 하하하. 그러신가요? 이 배우님이 뭐가 궁금하셨을까. 하하.”
태주의 해맑은 얼굴이 일그러질 만한 소식을 들고 있는 우 팀장은 속으로 한 번 더 제작사를 욕했다. 자신의 배우가 아니었으면 편성도 받지 못하고 제작은 꿈도 못 꿨을 텐데. 아주 괘씸했다.
“이 배우님. 신조선 사또 전 출연진 중 일부가 바뀌었어요.”
“아! 집사 역할 배우가 그만둔 것은 알아요. 단역 한 명을 집사 역할로 쓸 생각이라고 들었었어요.”
“그, 그렇죠. 그 역할도 있었죠.”
“네? 그 역할도라니요? 혹시 다른 배역도 바뀌었나요?”
그는 내심 이지명이 방자역을 맡는 것만 아니라면 누가 와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방자역은 자신과 드라마 내내 붙어 다녀야 했다.
대사도 많았고, 표현도 과장된 부분이 많았다. 밋밋하고 뻣뻣한 이지명이 소화할 수 있는 역할은 아니었다.
“후우. 제작비가 꽤 부족한가 보더라고요.”
“사극이 그렇죠. 그건 염두에 두고 제작을 들어갔을 텐데요.”
“그거야 그렇죠. 그래도 투자받을 곳이 있으면 받는 게 좋지 않겠어요?”
“흠. 어딘데요?”
“드림쉽이요. 신조선 사또 전 제작사에서 드림쉽의 투자를 받기로 했어요.”
투자사의 이름을 듣자 태주의 얼굴이 구겨졌다.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던 우 팀장은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그녀가 지금까지 본 태주는 기분이 상하면 표정이 굳었었다. 이렇게 확 드러날 정도로 인상을 쓴 것은 처음이었다.
“이 배우님?”
“드림쉽이면 이지명 배운가요?”
“네. 네? 어떻게 아셨어요?”
“후우. 잠시만요.”
이지명은 매번 최저 시청률을 기록하면서도 계속 드라마의 주연을 맡았다. 그가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작품에 항상 투자하는 투자사가 있기 때문이었다. 드림쉽, 수익을 생각하지 않고 언제나 이지명의 작품에 투자하는 투자사였다.
‘짜증나는 아들 사랑이지.’
회귀 전, 이지명은 드라마를 여러 작품 말아먹고 영화로 눈을 돌렸다. 하지만 단 하나의 작품에도 들어가지 못했다. 그때 나선 게 드림쉽이었다. 그곳에서 제작사를 차려 이지명을 주연으로 영화를 찍었다. 물론 끔찍할 정도로 적은 관객 수를 기록하고 스크린에서 내려왔다.
그때 드림쉽의 대표가 이지명의 어머니라는 게 밝혀졌다. 그는 재벌 3세 어머니와 대기업 후계자 아버지를 둔 도련님이었다. 전부 취미로 배우를 하는 아들을 위한 어머니의 투자였다.
“방자역인가요?”
“네, 그렇다고 하더군요.”
“출연 계약서 좀 보여 주세요.”
“네?”
태주는 자신의 커리어에 최저 시청률 기록 보유 드라마가 생기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차피 출연료도 많지 않았다. 촬영도 하지 않은 상태이니 계약을 파기한다고 해도 손해는 없을 것이다.
“출연은 고민해봐야 할 것 같아요. 이제 2년 차인데. 벌써 은퇴라니.”
“으, 은, 은퇴요?”
“최저 시청률을 보장하는 배우랑 같이 작품을 하는 거잖아요.”
“최저 시청률. 윽.”
우 팀장은 태주가 이 정도로 거부 반응을 보일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앞으로 힘들겠어요, 정도의 반응을 보일 거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녀 앞에 앉은 태주는 여전히 인상을 쓴 채였다.
“태주 씨. 진정하세요.”
“후우. 어쩌면 이 드라마 이후로 작품 안 들어올지도 몰라요.”
“그게 무슨….”
자신이 아무리 노력해도 이지명이 방자인 이상 드라마가 잘 나올 리가 없었다. 아니 이 작품을 무사히 찍을 수나 있을지 걱정됐다.
이지명은 자신이 투자자를 물고 온 만큼 현장에서 대접을 받으려 했다. 게다가 주연을 맡은 경험을 들먹이며 항상 다른 배우의 연기를 지적했다. 그가 있는 촬영장은 그만두는 사람이 항상 생겼다.
‘따지고 보면 2.0%라도 나온 게 대단한 건가? 아니, 케이블이라면 모를까, 공중파에선 아니지.’
태주가 우 팀장에게 드라마에서 하차하고 싶다고 말하려는 때였다. 신조선 사또 전의 작가와 감독, 두 사람이 사람들의 제지를 뚫고 사무실로 난입했다.
두 사람은 태주 일행이 있는 곳을 발견하자마자, 성난 멧돼지처럼 달려들었다. 그들은 태주가 이지명 출연 얘기에 농담처럼 하차를 말했던 것이 마음에 걸려서 한걸음에 달려온 것이었다.
“억! 출연 계약서를 왜?”
“허억. 이걸 왜?”
우 팀장의 책상 위에 올라와 있는 태주의 출연 계약서를 발견한 두 사람의 눈이 찢어질 것처럼 커졌다. 두 사람은 자신들이 우려했던 일이 현실이 됐다는 것을 바로 깨달았다.
“태주 씨! 안 돼요. 버리지 마세요.”
“태주 씨. 으허엉! 가시면 안 돼요.”
“아니, 이것 좀 놓으시고.”
“으허허형. 안 돼요.”
“우리 버리지 마세요.”
언젠가 그랬듯, 두 사람은 양쪽에서 태주의 팔을 잡고 매달렸다. 난처해진 태주가 팔을 풀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두 사람은 태주가 구명줄이라도 된 것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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