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idden second life of the soldier RAW novel - Chapter (104)
104화
때는 내가 이 게임에 빙의한 지 7년이 되었을 무렵이다.
대륙의 지도에는 마누스라는 왕국의 이름이 지워졌고, 나는 소속 없이 떠도는 기사가 되었다.
물론 기사라 하기에는 오러를 갓 다루기 시작한 무렵이라서 실상 용병이나 다를 바가 없었지만.
그래도 뒤늦게나마 다시 용병왕을 위해, 내게 주어진 그 퀘스트란 것을 클리어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돌아다니고 있을 때였다.
헐떡이는 숨마저 새하얀 서리로 얼어붙는 추위.
구 마누스 왕국령, 북부의 마굴 근처의 협곡.
하루의 절반 내내 격한 서리 폭풍이 흩날릴 정도의 극한 기후.
그곳에서 나는 마수들을 퇴치하는 의뢰를 맡았었다.
퀘스트였다.
또한 그곳에 용사가 온다는 소문을 듣고, 과감한 결단을 내린 것이었다.
‘과연 나는 그들을 얼마나 따라잡았을지 알아보고 싶어서.’
적어도 용사에게 약간의 도움이라도 된다면, ‘용사의 동료가 될 수 있을까?’ 하고 말이다.
오러를 각성하여 10초는 뽑아낼 수 있게 된 당시의 나는 어느 정도 강해졌다고 믿었었다.
함께 의뢰를 수행하던 용병들은 내가 오러를 뽑아내는 것을 보며 설설 기었으니까.
크르르르르.
하지만 나는 내 눈앞의 새하얀 털복숭이 괴물을 올려다보며, 내 자존심과도 같았던, 이 지옥에서 피워낸 한 줌의 횃불처럼 여기던 오러가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인지를 깨달았다.
웬디고.
이 얼어붙은 협곡의 주민이었고, 동시에 내가 상대할 수 없는 강대한 괴물이었다.
모든 걸 얼어붙게 만드는 냉기의 숨결.
종국에는 나를 제외한 주변의 용병들을 얼어붙게 만드는 괴물 앞에서 타오르던 내 용기와 자신감마저 얼어붙었으니까.
추위였을까 아니면 그보다 더 뼈에 사무치는 두려움이었을까.
나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검을 쥐었다.
마력마저 얼어붙은 듯 오러 역시 나오지 않았다.
녀석이 손을 세워 채찍처럼 휘둘렀다.
쨍그랑!
동시에 내 검이 산산조각이 되어 날아갔다.
그때 녀석의 눈은 호선으로 그려져 있었다.
날 갖고 놀 요량이었다.
이대로 죽는구나.
다가오는 괴물의 손에 눈을 질끈 감는 그 순간이었다.
“불의 장벽이여 저 악마를 가두어라!”
퍼엉!
커다란 불꽃의 벽이 괴물을 가두며 막아선 것은.
안경을 쓴 양 갈래머리의 소녀.
나도 익히 아는, 용사의 동료라 알려진 대마법사 도로시였다.
“잘했어, 도로시!”
뒤이어 달려온 새하얀 갑주를 입은 아름다운 여인이 나를 잡아 뒤로 당겼다.
“운이 좋으시네.”
성녀라 불리던 주황색 머리의 여인, 이네스였다.
───!
그때 불의 벽을 부수고 나온 웬디고가 크게 울부짖었다.
동시에 크게 들이마시는 숨.
저것이 숨을 내뱉는 순간 일대의 모든 것이 얼어붙어 죽고 말 것이다.
“······아, 안─”
안된다고.
저것이 숨을 내뱉게 두어서는 안 된다고.
소리치려는 그 순간.
“붉은 폭풍.”
내 뒤에서 섬전처럼 쏘아진 붉은색의 오러가 놈을 자르고 갈랐다.
푸르게 얼어붙은 이 추위를 가른 붉은색의 폭풍이 사그라들자 온몸이 베여 목숨이 끊어진 웬디고가 보였다.
내가 단 한 번도 공격할 수 없던 괴물이.
단 한 번의 검술로 목숨이 끊어진 것이다.
덜덜 떨리는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았을 땐, 매우 잘생긴 사내가 검을 털고 있었다.
······카일.
내가 목표로 해야 하는 남자였고, 용사였다.
지금껏 멀리서 지켜보기만 했던 용사.
나는 긴장이 풀리며 눈밭에 주저앉았다.
카일이 내게 다가와, 나를 일으켜주었다.
그리고 내 어깨를 붙잡고 말했다.
“여기는 당신 같은 사람이 함부로 있을 곳이 아닌데.”
“아······ 나는······.”
“친구, 당신은 당신이 필요한 곳에 있으면 돼. 적어도 여기는 아니야.”
위로였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원래 당신들 옆이라고.’
나는 그때 벽을 느꼈었다.
나의 성장은 용사를 전혀 따라잡지 못한다는 좌절의 벽을 말이다.
지금의 나는 그에게 조금의 도움도 될 수 없다는 사실.
그러나 2회차.
바로 이 순간, 나는 전혀 다른 생각에 휩싸여 있었다.
내가 과연 카일의 경지를 따라잡을 수 있는지······.
* * *
한순간 떠오른 회상을 뒤로하고 나는 마차에서 내린 소년을 바라보았다.
‘정말 카일이네.’
기억보다는 더 어려, 어딘가 앳된 소년의 모습이었지만 확실한 카일이었다.
허리춤에 찬 네 개의 검이 그를 증명했다.
‘그렇다면 저 사내는······.’
나는 고개를 돌려 옆에 선 커다란 덩치의 남자를 바라보았다.
헐벗은 상반신은 근육질로 되어 있었고, 하반신은 늑대의 것으로 보이는 회색 털가죽으로 만든 바지를 입었다.
등 뒤에 맨 대검은 커다랗다 못해 한 손으로 휘두르기 벅차 보이기까지.
야만전사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사내.
‘투왕 바바크.’
카일의 동료 중 한 명이자 파티의 선봉에 선 남자였다.
‘먼 훗날 시대의 주역이 되는 두 인물이 있다면······ 이 전투, 승산이 있다.’
나는 카일과 바바크를 바라보았다.
“재미난 녀석들이 많군. 붙어봄 직하다.”
바바크가 두 입꼬리를 크게 올렸다.
호승심에 가득 찬 미소였다.
그러자 주변의 오크 전사들이 하나둘 도끼를 들고 경계의 자세를 취했다.
팽팽히 당겨진 활시위처럼 긴장된 상황 속에서 검은 로브의 사내가 경계의 눈빛을 띠었다.
“당신들은 누구죠?”
“길잃은 여행자인데, 옹기종기 모여있으시길래. 도움 좀 청하러 왔지.”
검은 로브의 말에 대답한 건 카일이었다.
“적어도 이 길은 당신이 찾는 곳이 아니니까, 돌아가시지.”
“아아. 그런데 이 유적이 워낙 눈에 띄어서. 예상치 못한 여행 코스가 됐달까? 여행이란 원래 그런 법 아니겠어?”
그렇게 태연히 말하는 카일의 눈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다가 나와 눈을 마주쳤다.
“······.”
“······.”
그런 카일의 고개가 미세하게 끄덕여졌다.
마치 신호를 보내는 것처럼.
너무나도 미세하기에 착각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하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저것이 카일이 보내는 메시지라는 걸.
묘한 확신이 든다.
“인간 놈들은 눈치란 게 없는 거냐?”
팽팽히 당겨진 활시위처럼 적막한 긴장 속에서 오크 전사 한 명이 두 도끼를 손에서 빙빙 돌리며 다가갔다.
“좋게 좋게 말해주니 붉은도끼부족이──”
스촤앙!
한순간 날카로운 금속음이 강하게 울렸다.
동시에 카일의 앞이 반짝이며 은색의 궤적이 펼쳐지기 시작했고.
오크 전사의 오른팔이,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하늘 위로 쏘아졌다.
──!
자신만만하던 오크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져가는 가운데.
다시금 카일과 눈이 마주쳤다.
눈이 마주치지 않았어도 알 수 있었다.
바로 지금이 신호인 것을.
“칼라마르!”
내 외침과 동시에 멈췄던 전투가 다시금 시작되었다.
크라라락!
칼라마르가 앞발을 휘둘러 주변의 오크들을 쳐냈다.
“그 말만 기다렸다고!”
“그룬! 대가리 전부 날려버려!”
“안 그래도 할 거다, 드렌트!”
데릭과 드렌트가 포위한 오크들을 향해 무기를 휘둘렀다.
오크에게서 빼앗은 도끼가 놈들의 골통을 쪼갰고, 뇌전을 머금은 창이 가슴을 꿰뚫었다.
콰직! 콰득!
파지지직!
그룬의 화살이 달려드는 오크의 목울대를 꿰뚫었다.
“젠장, 좋습니다. 전부 죽여버리세요!”
“놈들의 머리를 잘라버려라!”
검은 로브가 몸을 뒤로 숨기며 소리쳤고, 족장이 크게 외쳤다.
그러자 오크들이 달려들었다.
“죽어라!”
내 앞을 막아선 한 오크 전사가 내 어깨를 향해 도끼를 내려찍었다.
최대한 놈의 앞으로 달라붙었다.
어깨에서 통증이 일었지만, 도끼날이 아닌 자루에 맞은 것일 뿐이었다.
“큭!”
오크 전사의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가까워진 틈.
그 사이로 나는 마기 포식자를 올려 찌르고 크게 휘둘렀다.
콰직!
그러자 당황한 오크 전사의 머리가 핑그르르 날아올랐다.
허공을 데구르르 구른 머리를 따라 내 시선도 돌아갔다.
그 뒤로 저 멀리 흰색의 돌기둥이 휘둘러지는 게 보였다.
‘돌기둥······?’
투왕 바바크.
그가 신전의 기둥을 집어 휘두르고 있었다.
신전의 기둥이라 하지만 내 눈에는 사람이 전봇대를 휘두르는 모습에 가까웠다.
“흐압!!”
콰앙!
휘둘러진 기둥에 오크 전사들이 튕겨 나가고 있었다.
“크하하하! 제법이구나! 덤벼봐라, 난쟁이 오크들!”
휘두르던 기둥을 집어던지고, 대검을 꺼내 휘두르는 그의 모습은 가히 패도적이라 할 수 있었다.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
‘가장 오래된 동료라더니······.’
왜 그가 카일의 첫 동료인지 알 것 같았다.
이 무렵부터 벌써 저 정도의 용력이라니.
이내 내 시야는 카일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다섯 번째 족장의 이름으로 네놈의 목을 베어내겠다!”
“그렇게 느린데?”
얼굴을 일그러트린 채 도끼를 휘두르는 붉은도끼부족의 족장.
그리고 족장의 공격을 어렵지 않게 받아치는 카일이 보였다.
새파란 장검이 족장의 도끼를 받아칠 때마다 푸른 궤적이 생겨났다.
쩌저적!
비유가 아닌 얼음으로 만들어진 궤적이었다.
카일과 공격을 맞부딪칠수록 족장의 도끼에는 시퍼런 얼음결정이 맺히며 둔해지고 있었다.
“얕은수를 쓰는구나!”
“얕고 깊은 건 찔러봐야 알겠지?”
카일은 곧장 두 번째 검을 뽑았다.
진홍빛의 레이피어.
치이익!
족장을 향해 레이피어를 찌르자 갑옷의 일부가 벌겋게 달아오르며 족장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족장은 카일의 공격을 쳐내고 빗겨내려 했지만······.
‘헛수고지.’
카일은 집요하게 붙어 붉은 검 끝으로 찌르고 벨 때마다 그 궤적이 시커면 연기와 함께 타올랐다.
치이익!
“크아아악!”
그럴수록 족장의 얼굴은 고통에 일그러져갔다.
점차 빠르게 오크 전사들이 쓰러져갔고, 족장은 이를 좌시하지 못했는지 소리쳤다.
“마법사! 우리를 도와라! 우리가 쓰러지면 네놈도 무사하지 못할 텐데!”
그러자 허공에서 모습을 드러낸 검은 로브가 입을 구겼다.
“큭, 한낱 나부랭이들인 줄 알았건만······ 차오르는 분노! 끓어오르는 혈류!”
검은 로브가 손을 휘두르자 시커먼 기운이 뿜어져 나오며 오크 전사들에게 쏘아졌다.
그러자 오크 전사들의 덩치가 커지며 힘줄이 돋았다.
“크으으으!”
차오르는 힘에 두 눈이 붉게 물들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크아아아! 힘이 끓어오른다!”
“이거라면······! 네놈을 쓰러트린다!”
포효하듯 소리친 오크 전사가 바바크를 향해 달려가며 도끼를 휘둘렀다.
“어리석구나! ······음?!”
그에 비웃듯 바바크가 대검을 휘둘러 맞부딪치는 순간.
카앙!
“어떻게!”
바바크의 눈이 휘둥그레지며 얼굴이 굳었다.
그가 일순간 힘에서 밀린 것이다.
마기가 그들의 신체를 강화한 것이다.
“하하! 저의 힘이 있다면 저 야만인도 능히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
검은 로브가 크게 웃으며 소리쳤다.
동시에 검은 로브가 손짓하자 죽었던 오크 전사들이 비척거리며 다시 일어서기 시작했다.
“일어나세요, 나의 전사들이여! 죽음은 가장 큰 용기!”
어느새 유리해졌던 전황이 다시금 불리해지기 시작한다.
“마법사! 이게 지금 뭐 하는 거지!? 내 전사들을 모욕하는 건가!”
“닥치세요. 더욱 영광스럽게 만들어 준 것 아닙니까? 그리고 도움을 달라할 때는 언제인데······.”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마기를 머금고 다시 태어난 언데드 오크들, 마기에 강화되어 충혈된 족장.
그리고 마기를 다루는 흑마법사까지.
카일과 바바크는 예상외의 난관에 표정이 굳었다.
하지만 나는 다르다.
오히려 이 순간을 기다렸다고 할 수 있다.
“마기 냄새가 진동하는군.”
마기를 가진 놈들을 상대하는 건 내 전문이었으니.
“칼라마르.”
크르르.
트루디아와 라니스를 지키고 있던 녀석이 몸을 기울였다.
나는 얼굴이 굳은 카일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그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녀석의 목에 손을 얹으며 명령했다.
“울부짖어라.”
칼라마르의 몸에서 부풀어 오른 마력이 터져 나온다.
흑암성의 기운을 담은 포효가.
바로 피어가 말이다.
크롸라라락─!
일순간 터져 나온 아룡종의 울음소리가 사막을 가득 채웠고.
“크학! 시, 심장이······!”
“뭐, 뭐냐! 방금의 그건!”
마기를 보유한 놈들이 전부 주저앉았다.
언데드들은 실 끊긴 인형처럼 쓰러졌다.
마기를 받아들인 오크들은 전신이 뻣뻣이 굳어 있었다.
그와 동시에 카일이 뛰쳐나가며 놈들의 목을 베었다.
스촤앙!
그리고 나 역시 모래를 박차고 놈을 향해, 심장에 마기 포식자를 박아넣었다.
검은 로브.
피어에 온몸이 마비된 녀석은 검이 제 몸을 관통하자 그대로 뒤로 쓰러졌다.
그러면서도 놈은 내게 묻고 있었다.
“대체······ 어떻······.”
방금의 일이 뭔지.
어떻게 한 것인지.
흔들리는 녀석의 눈 사이로 그 감정이 느껴졌다.
나는 대답 대신 검을 더욱 깊게 찔러넣었다.
우드드득!
생기가 사라진 녀석의 눈동자를 마주하고 나서야, 나는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그 반대편에는 족장의 목을 벤 카일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카일.
그와는 해야 할 이야기가 많은 듯했다.
* * *
“예사 솜씨가 아니던데. 혹시 이름이?”
갈색의 머리에 맺힌 땀을 닦으며 다가오는 잘생긴 사내.
카일.
나는 그를 바라보았다.
그가 왜 여기 있는가.
내가 빤히 쳐다본 것을 경계의 뜻으로 오해했는지 카일은 다가오다가 멈췄다.
그리고 검을 집어 넣고는, 자신의 이름부터 밝혔다.
“아, 내 소개가 먼저지. 내 이름은 카일이야. 이쪽은 바바크. 대륙 북부 출신의 전사지. 저기 앉아있는 드워프는······ 아는 분이라고만 해둘게.”
아마 내가 모르는 카일의 조력자 중 한 명이지 않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화답했다.
“내 이름은······ 드이제. 저 뒤의 애들은 내 부하들과 의뢰인.”
나는 뒤에 있는 트루디아를 슬쩍 바라보고는 가명으로 이름을 썼다.
“의뢰라면······ 사막을 건너는 중이었나?”
“아니, 아마 당신과 목적은 같을 거야.”
용사의 운명을 가진 그가 이곳에 왔다는 건······.
‘아마도 1회차 때, 미하일 혼자서 재앙을 막은 건 아닌가 보군.’
미하일은 이곳에서 카일과 만나서 사막의 재앙을 막았던 모양이다.
‘미하일과 카일의 인연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나 했더니, 이곳에서부터였던가.’
미하일이 가지고 있던 마기 포식자가 어떻게 카일에게 넘어갔는지 이해가 되었다.
“······너희도 저 안쪽에 볼일이 있는 거야?”
역시.
내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네.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다들 예사 솜씨가 아니더라고. 게다가 저 친구는 바바크랑 힘이 맞먹는 것 같던데?”
카일은 웃으며 데릭을 가리켰다.
‘뭐야, 쟨 또 왜 저래?’
데릭은 바바크와 서로 마주 선 채 알 수 없는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다.
서로 팔다리에 힘을 주며 근육을 과시하고 있었다.
두 근육 돼지에게서 시선을 뗀 나와 카일은 다시 마저 대화했다.
“그래서 말인데. 방금은 어떻게 한 거지? 흑마법사가 쓰러진 거 말이야.”
카일이 크게 흥미를 보인 건 나와 칼라마르였다.
“저 록 드레이크가 울음을 외치자마자 쓰러졌지. 흠······ 영물의 피어인가? 저런 색의 록 드레이크는 아예 처음 보는데.”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영업 비밀이라서.”
“아.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카일은 진심으로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의 배경을 생각해본다면 당연하리라.
그가 가장 증오하는 것은 제국, 그다음이 바로 흑마법사들이니.
흑암성의 오러에 대한 정보를 알려준다면 그는 어떻게 해서든 그 힘을 얻고 싶어 할 것이다.
그리고 그건······.
“이런 곳에서 당신 같은 사람을 만나다니, 행운이네.”
– 여기는 당신 같은 사람이 함부로 있을 곳이 아닌데.
1회차 기억 속, 카일의 목소리가 현재와 오버랩되었다.
‘됐다.’
내가, 카일과 나란히 섰다.
카일이 내게 손을 내밀었다.
“드이제.”
대화하는 내내 미소를 띠던 표정과 달리 그 눈은 한없이 진지했다.
그가 사원 유적 쪽을 고갯짓으로 가리키고 입을 열었다.
“이것도 인연인데, 함께 가면 어떨까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