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idden second life of the soldier RAW novel - Chapter (142)
142화
뿌우우우─!
“놈들을 쓸어버려라!”
“우리의 친구! 제이드를 위하여!”
뿔나팔을 불며 달려오는 녹빛의 전사들이 함성을 지르며 달려오고 있었다.
오크 약탈자 따위와는 수준부터가 다른, 정예 전사들이었다.
‘내가 긴밀히 준비했던 원군들이 말이지.’
칼테르 요새로 도착했을 때, 나는 아케르 요새의 그란디스 백작에게 원군을 요청했다.
내가 아는 이들 중 가장 큰 힘을 보태줄 수 있는 세력이었으니까.
하지만 우려되는 부분이 있었다.
나와 그란디스 백작, 그리고 미하일의 관계는 유명할 대로 유명하다는 점.
애초에 나를 처음으로 기용한 것도 그란디스 가문이니까.
글레바, 그 여우 같은 여인도 그걸 모르지 않을 터.
즉, 가장 도움이 되지만 가장 견제받을 세력이 바로 그란디스 백작이란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솔튼을 통해 왈투스 사막의 제인 쪽으로 연락을 보냈다.
‘아직 왈투스 사막에서 일어났던 구체적인 사건을, 마누스 왕국은 모른다.’
내가 그곳에서 어떻게 재앙을 막았는지를.
사막의 중심축을 세우고 흩어져 있던 세력들을 규합했다는 사실을.
저들은 모른다.
그렇기에 내 요청에 그들이 세력을 이끌고 달려오리라는 생각은 아무도 하지 못했다.
가장 완벽한 히든카드, 숨겨진 패로서 방심한 놈들을 찌를 수 있는 비수가 된 것이다.
와아아아─!
아군 진영을 기준으로, 우측 언덕 위에서 기습적으로 나타난 사막의 전사들이 글레바 후작의 군대를 향해 달려들었다.
대검과 망치, 도끼를 든 오크 전사들이 낙타에서 뛰어내리며 적 용병들과 격돌했다.
“오크들이 어째서!?”
“당장 왼쪽에 방패벽 세워!”
적진이 출렁거렸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적 병력 중 다수는 전장에서 오래 굴렀던 용병인데다가, 마누스 왕국 자체가 얼마 전까지 전쟁에 시달렸기에 적들의 대응은 기민하고 노련했다.
“아직 불리하지 않다!”
“여전히 우리가 더 많아!”
그들은 곧장 대형을 정비했다. 포위당할 각을 내주지 않으려는 것이었다.
급습이었으나, 병력 숫자는 비슷했다. 아니, 오히려 여전히 적들이 많았다.
“대형을 짜서 우측을 방비하라!”
하지만.
“대지여, 저들을 집어삼켜라!”
“사막의 모래여, 이 자리에 현현하라!”
주술사들이 나서자 판은 다시 기울기 시작했다.
낙타들이 끌고 온 거대한 수레의 가죽 덮개가 열렸다.
그 안에 가득 실려 있는 건, 사막의 모래들.
그것들이 주술사들의 손짓에 따라서 물처럼 흐르고 뱀처럼 움직여서 적들을 향해서 쏘아졌다.
모래들은 적들의 다리를 휘감아서 넘어뜨리고, 안면에 휘몰아쳐서 각막을 긁어댔다.
“크아아아!”
“이건 대체 뭐야!”
생전 경험해본 적 없는, 마법과는 묘하게 결이 다른 주술에 적들은 대응법을 찾아내지 못했다.
심지어 용병들이 서 있던 땅덩이가 갈라지고 솟아오르며 진형을 무너트렸다.
그 모습을 지켜본 루퍼스와 아론이 얼떨떨한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저들은 대체······?”
“동부 너머, 왈투스 사막에서 살아가는 전사들이죠.”
“오래전 멸망한 데서툼 왕국 이후, 전부 뿔뿔이 흩어졌을 텐데······.”
내 설명과 동시에 저 멀리서 낙타를 탄 라니스와 헥토르가 달려오는 게 보였다.
다른 오크 전사들이 그 뒤를 따르고 있었다.
나는 라니스를 가리키며 설명했다.
“이번에 재앙을 막으면서 단합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이끄는 게 데서툼 왕가의 후손입니다.”
“제이드 씨! 연락을 받고 바로 왔습니다.”
“오랜만이군, 제이드. 음, 이자가 바로 그······?”
그동안 어떤 훈련을 받아온 건지, 더욱 건장한 몸이 된 라니스와 그의 옆에서 보좌관 노릇을 하는 오크, 헥토르였다.
“반갑소. 헥토르요. 이쪽은 라니스. 데서툼 왕가의 후예이자, 샌드윈드스의 수장이오.”
헥토르는 크게 반가워하며 루퍼스와 악수했다.
“제 친구들입니다. 그리고 저하의 새 친구가 되어줄 겁니다.”
나는 떨떠름해 하는 루퍼스를 보며 능청스레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샌드윈드스(SandWinds).
라니스와 헥토르를 중심으로 새롭게 급부상하는 사막의 세력이었다.
재앙, 허기의 악마 포르미나가 잠들어있던 유적지의 주변은, 놈이 사라지자 활기를 되찾았다.
사막이 아닌, 생명의 흙이 존재하는 땅으로서 말이다.
그곳을 기점으로 라니스는 바티스타의 헥토르, 셰리오 시의 후세인, 신기루 연구회 등 적잖은 세력의 지지를 받으며 세력을 키워나갔다.
그리고 나는 그런 그들에게 협력을 요청했다.
정확히는 ‘마누스 왕국에 대한 사막의 독점 무역권’이란 매력적인 제안을 말이다.
‘예전에 바티스타 의회에서 투자 유치를 했을 때처럼 말이지.’
공포와 재앙을 돈을 벌 기회로 포장했고, 막대한 투자를 받았다.
그 덕에 나는 바티스타 은행에 엄청난 금화를 예금해두었다.
그리고 투자자들은 실제로 엄청난 혜택을 보는 중이었다.
그런 내가 새로운 상품을 제시했다.
샌드윈드스가 빠르게 성장할 방법이자 데서툼이라는 이름을 키울 방법.
마누스 왕국이 정상화되었을 때, 무역로 독점권.
1차로 무역을 독점한다면 그 뒤의 상단들에게서 이윤을 뜯어낼 방법은 무수하다.
‘이런 대박 상품을 외면할 사람은 없지.’
물론 지금의 나에게는 그런 걸 내어줄 권한이 없다.
사실상 공수표다.
‘하지만 이 전쟁만 이긴다면 공수표가 백지수표가 되는 셈이지.’
합세한 오크 전사들의 맹공이 시작되자, 우리 측 기사들과 병사들 역시 움츠렸던 기세를 키웠다.
“지원군이 왔다! 놈들을 쓸어버려라!”
“기병대 모여! 돌격이다!”
“사막의 전사를 막을 자는 누구냐! 이리 나와라!”
천 명의 지원군이 합세하자, 수적 열세라는 페널티가 사라졌다.
[아군의 사기가 증가합니다.] [아군의 사기가 증가합니다.]아니, 오히려 들불처럼 퍼져나간 기세를 앞세워 적들을 쓰러트리기 시작했다.
지원군의 등장이 그들에게 새로운 희망이 되어, 열의를 불태우는 것이다.
[돌격대장 ‘데릭’이 용력(LV. 1)을 발동합니다.] [돌격대원 ‘브룩’이 투창(LV. 6)를 발동합니다.] [수색대원 ‘그룬’이 도발(LV. 11)을 발동합니다.]커다란 철방패를 들어 아군을 보호하던 데릭이 방패를 휘두르는 것이 보였다.
붉은 기운에 휩싸인 채 달리며 다가오는 기사와 용병들을 닥치는 대로 날리고 있었다.
브룩과 그룬을 비롯한 대원들이 뒤따르며 적들을 휩쓸었다.
삐이이익!
그리핀 라이더들은 그리핀의 위에서 바위를 떨어트리고, 그리핀의 발톱이 적들을 낚아채 공중에서 떨구었다.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한 적들이 마치 도미노처럼, 점차 와르르 무너지기 시작했다.
* * *
제이드가 다시금 전장으로 뛰어들었고, 루퍼스 역시 따라붙으며 전장을 휩쓸었다.
점차 글레바 백작의 푸른 장미가 그려진 깃발이 꺾여갔고, 루퍼스의 마누스 깃발이 높이 세워졌다.
이천오백이라는 적들의 숫자는 점점 줄어들었다.
졸지에 무기를 버리고 제 갑옷을 백기처럼 흔들며 항복하는 용병 무리마저 생겨났다.
전투 개시 이전만 하여도 진한 긴장감에 절여 있던 병사들의 얼굴엔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점차 퍼져나갔다.
대역전승이다.
“제이드! 저길 봐라!”
제이드가 달려들던 기사 한 명을 쓰러트린 그때, 루퍼스의 다급한 외침이 들렸다.
저 멀리서, 한 무리의 기사단이 뒤로 후퇴하는 게 아닌가?
마력으로 시력을 강화한 제이드는 그사이에 섞여 있는 푸른 머리의 여인을 볼 수 있었다.
“글레바 백작! 그년이 도망간다!”
“저하! 저자를 잡아야 합니다!”
글레바 백작은 코하르펜의 측근이다. 여기서 잡거나 죽여야만 코하르펜의 힘을 깎을 수 있었다.
“제가 쫓겠습니다! 맡겨주십시오! 칼라마르!”
제이드의 명령에 칼라마르가 곧장 땅을 박찼다.
“글레바 백작을 추적한다! 놓치지 마라!”
달려 나가는 제이드의 뒤로 루퍼스와 기사 아론, 로이암, 휴고, 등 열 명의 기사가 말을 타고 제이드의 뒤를 따랐다.
“바람이여! 저 나그네들의 등을 밀어주소서!”
그때 오크 주술사들 우리를 향해 주술을 걸어주었다.
바람이 주위를 감싸며 칼라마르의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후우우웅!
땅 한번을 박찼을 뿐인데 삼 미터는 넘게 뛰기 시작했다.
“칼라마르. 절대 놓치지 마라!”
크릉!
제이드의 말에 칼라마르가 크게 대답했다.
[칼라마르가 스킬 – 마기 추적(LV. 2)를 사용 중입니다.]‘놓칠 수가 없지.’
글레바 백작의 옆에 붙어 있던 흑마법사.
놈의 마기를 감지한 칼라마르가, 평소보다 더욱 빠르게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한편, 삼십의 기사들을 이끌고 도주한 글레바 후작의 얼굴은 완전히 구겨져 있었다.
그들은 절망적인 생각을 되뇌고 있었다.
대체 어째서인가.
이건 말도 안 되지 않는가?
녹색의 파도처럼 갑자기 나타난 오크 전사들. 그들이 제이드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달려들 때 글레바의 평온하던 표정은 완전히 부서졌다.
그란디스 백작만 지원군을 보낸 게 아니었단 말인가?
그래, 제이드가 사막의 재앙을 해결했다고는 들었다.
하지만 그게 천 명의 오크 군대를 불러올 정도라고?
글레바 후작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앞으로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후작님. 놈들이 추격해오는군요. 어쩌시렵니까?”
흑마법사 하리크는 뒤로 눈을 굴리며 글레바 후작에게 물었다.
공성 마법을 막기 위해서 자신의 기사들을 제물로 바쳤건만, 제대로 힘도 쓰지 못했다.
그렇다고 하리크의 힘을 온전하게 드러낸다면 코하르펜과 그녀가 흑마법사들과 결탁했다는 걸 공표하는 셈이다.
이 나라를 악마와 흑마법사들에 가져다 바쳤다는 소문, 그 소문은 지금도 퍼지고 있었다. 제이드가 기이하게 변한 고른의 시체 조각을 여기저기로 흩뿌림으로써.
그런 소문이 진실로 입증될 것이었다.
“추격을 잘라내라. 단 들키지 마라.”
“하하, 노력해보죠.”
이를 악문 글레바 후작의 말에 하리크가 방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물은 충분하니 말입니다.”
그의 시선이 주위를 둘러싼 기사들로 향했다.
* * *
쿵! 쿵! 쿵!
칼라마르가 커다란 제 다리로 땅을 박찰 때마다 주변의 풍경이 바뀌었다.
드넓은 평야의 길은 점차 좁아졌다.
수풀 사이로 나무가 들어차기 시작했다.
어느새 좁은 숲길을 따라 굽이진 언덕으로 오르고 있었다.
그 사이로 칼라마르가 쏜살같이 달려 나갔다.
오크 주술사의 주술 덕분에 칼라마르의 속도는 가히 압도적인 수준이었다
섬찟.
그런데 그때 소름이 오소소 돋으며 음울한 기운이 저 멀리서 박동하듯 퍼져 나왔다.
‘마기다.’
그와 동시에 땅 한 곳이 쩍하고 갈라지더니 시커먼 결정들이 솟아올랐다.
콰앙!
콰가각!
칼라마르는 요령 좋게 그것을 밟고 부수며 넘어갔다.
하지만 내 뒤를 따라오던 몇몇 기사의 말들이 그 결정에 찔려 죽으며 낙오했다.
몇 번의 마기가 더 감지될수록 땅은 진흙처럼 질척해지거나, 푸른 유황불처럼 타오르며 우리의 추격을 막으려 들었다.
말과는 태생부터 다른 칼라마르는 함정들을 능숙하게 돌파했다.
군데군데 길바닥에 널브러진 적 기사들의 시체가 보였다.
미라처럼 근육까지 삐쩍 마른 시체들. 생기가 흡수당한 듯한 시체들이었다.
‘아군까지 제물로 바쳐서 가는 건가?’
지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새 거리가 벌어진 글레바 백작의 무리가 언덕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제이드! 같이 가게!”
“혼자서는 위험합니다!”
반면 뒤에서 점차 멀어지는 루퍼스와 기사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칼라마르의 고삐를 잡으며 잠시 고민했다.
루퍼스와 합류한다면 저들을 놓칠 것이다.
‘그렇다고 혼자 쫓아가는 건 확실히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데······.’
그런데.
당장 언덕을 넘어가려던 글레바 백작의 일행이, 멈추는 게 아닌가?
그 이유는.
두두두두!
저 멀리, 먼지가 일면서 다가오는 한 군세.
한 무리의 기병대가 달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선두에 선 것은······.
“그란디스 백작! 미하일! 네놈들이 어떻게······!”
그란디스 백작의 기병대였다.
기병대는 글레바 백작과 그녀의 무리를 포위했고, 맨 앞에 서서 무장한 그란디스 백작이 말 위에서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글레바 백작. 당신이 준 선물은 잘 받았다. 고약한 취미더군.”
“······오랜만이군. 그란디스 백작.”
그렇게 말한 글레바 백작은 뒤로 힐끔 돌아보며 뒤쪽을 포위한 우리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빠져나갈 활로는 없었다.
전투의 시작 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전황이었다.
“아줌마는 우리처럼 부를 친구가 없나 봐?”
나는 글레바를 향해 조롱하듯 말했다.
그러자 얼굴을 구긴 그녀가 주먹을 쥐는 게 보였다.
“후. 이래서는 살아나갈 방법이 없겠군요.”
그녀의 옆에 서 있던 흑마법사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시지요. 주인님께서는 당신을 반드시 살리라고 했거든요.”
그러더니 글레바 백작을 보며 방긋 웃는 게 아닌가.
‘주인? 저게 무슨 소리지?’
나는 머리를 굴리며 흑마법사를 경계하면서도, 칼라마르와 마력을 교류했다.
무슨 일이 생길 때를 대비해서 말이다.
그런데 그때.
흑마법사가 지팡이를 내려치자 솟구친 검은 기운, 마기가 그녀의 기사들을 잡아먹었다.
퍼억!
터져나간 살점과 피가 주변에 터져 나왔다.
대응할 순간도 없을 정도로 순식간이었다.
뒤이어 흑마법사는 지팡이 끝으로 제 심장을 겨누더니.
푸욱!
제 심장을 직접 찔렀다.
그러자 주위를 적신 피가 들끓기 시작했다.
피안개처럼 붉은 연무가 솟아오르더니 한 대 웅집했다.
그것은 붉은 포탈이었다.
나는 흑마법사가 뭘 하려 한 건지 깨닫고 당황했다.
‘포탈마법!’
흑마법사들이 자신을 제물로 바쳐 먼 거리의 존재를 데려오는 흑마법이었다.
저런 게 열리면 꼭 성가신 놈이 소환되곤 했다.
생긴 것만 보아도 불길하다고 느껴지는 포탈에 모두가 뒤로 주춤했다.
나는 곧장 칼라마르를 향해 소리쳤다.
“칼라마르! 브레스!”
막아야 한다.
무엇이 나올지는 모르지만, 저것이 어느 존재를 꺼내는 순간. 위기에 처할 것이 자명했다.
이내 칼라마르의 심장부에서 응축된 마력이 칼라마르의 입을 통해 터져 나왔다.
[‘칼라마르’가 스킬 – 브레스(LV. 1)을 사용합니다.]검보라빛 마력의 숨결이 글레바 백작과 붉은 포탈을 향해 쇄도했다.
스릉!
그때 브레스의 중심부에 수평의 균열이 생겼다.
말 그대로 반으로 갈린 것이다.
──!
브레스는 위아래로 흩어지면서 소멸해버렸다.
“무슨······.”
당혹스럽다.
대체 뭐가 칼라마르의 브레스를 양단할 수 있단 말인가?
터벅. 터벅.
동시에 붉은 포탈에서 한 명의 인형이 검을 늘어트리며 걸어 나왔다.
그건 검은 갑주로 무장한 키 큰 흑기사였다.
동시에 주위의 모든 이들의 표정이 굳었다.
본능적으로 모두가 느낀 것이다.
저 흑기사가 ‘강자’라는 걸. 포식자라는 걸.
모두의 얼굴에 긴장이, 두려움이 떠올랐다.
반면 글레바 백작의 얼굴이 밝아졌다.
“이센디오 경······!”
“······.”
글레바 백작의 말에도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수세에 몰렸음에도 여유로운 태도.
전신을 가린 흑색의 갑주가, 칼라마르의 브레스에 타오르는 불꽃을 반사하며 기이한 색감으로 빛났다.
‘설마······ 루퍼스를 죽이려던 그 흑기사들의 우두머리인가.’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가운데, 흑기사의 시선이 한 곳에 멈춰 섰다.
내가 있는 곳이었다.
“검보라빛 드레이크······. 네놈이로군. 고른을 죽인 것이.”
동시에 투구 속, 놈의 시선이 나와 교차했다.
그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수세에 몰린 글레바 백작에게 했던, 그 빈정거리는 말······.
‘시발, 내가 플래그를 눌렀구나.’
예상외의 강자가 전장에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