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idden second life of the soldier RAW novel - Chapter (148)
148화
다음 날.
햇빛이 푸른 마탑의 동쪽 면을 비추었다. 아침이었다.
무거운 아침잠을 떨쳐내지 못한 학생들이 흐느적거리며 사감을 따라 식당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 행렬에서 한 소녀가 슬그머니 빠져나왔다.
도로시였다.
그녀의 친구들과 묘한 시선을 주고받는 도로시.
직후 그녀는 슬쩍 마탑을 내려갔다.
서쪽 계단을 타고 내려가자, 마탑의 지상부가 보였다.
거대한 타워를 중심으로 하여, 주변에 크고 작은 건물들이 늘어서 있었으며, 벽과 펜스가 그 건물들을 이어서 원형을 성벽을 이루고 있었다.
그렇게, 탑뿐만이 아니라 이 거대한 원형 구역 전체가 푸른 마탑이었다.
‘후문으로 가자.’
정문과 달리 후문은 마법사들이나 학생들이 다니지 않는다.
주로 이용하는 이들은 짐마차를 이끄는 마부와 상인들 정도.
이곳은 마탑의 하역장이었다.
기숙사 생활에 필요한 물자부터, 마법의 연구를 위한 희귀 재료와 마석 등 많은 물건이 들어오는 곳으로, 어찌 보면 마탑에서 가장 소란스러운 곳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들어오는 물건에 비해 사람들의 수는 꽤 적었다.
일전에는 더 많은 이들이 오고 갔지만, 현재는 코하르펜과 루퍼스 간의 내전이 이어지자, 마탑의 보안 역시 강화되었고, 신분이 확실하고 문제가 없는 이들만 출입증을 발급해 들여보내는 중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한텐 바깥과의 소통이 가능한 유일한 곳이니까.’
외부인도 들어오기 힘든 이 시기에, 학생들 역시 바깥으로의 외출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슬그머니 인파 사이를 지난 도로시가 헛기침하며 한 마부의 앞에 섰다.
“흠흠! 드리 아저씨! 잘 지내셨어요?”
도로시의 말에 빗자루 같은 수염을 가진 마부가 뒤를 돌아보고는 환히 웃었다.
“마법사님! 아침 일찍 어쩐 일입니까?”
“여기 지난번에 말했던 감기약이에요. 말린 치아 씨앗으로 만들어서 효과가 좋을 거예요. 아이가 감기에 고생이라면서요?”
“아이구. 마법사님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잊지 않을 겁니다.”
“같은 마탑 식구끼리 돕고 살아야죠.”
배시시 웃는 도로시의 말에 마부, 드리가 눈시울을 붉혔다.
“제가 이곳을 십오 년간 다니며 일했지만, 그간 저희를 챙겨주시는 건 마법사님밖에 없었습니다.”
“아뇨, 제가 한 게 뭐가 있다고요. 고향 사람들 생각나서 그럴 뿐인걸요.”
“그렇게 말하는 분들조차 없는 게 대다수인걸요.”
드리의 말은 사실이었다.
마법사의 위상이 높은 만큼 대개 마법사의 콧대는 높은 편이었다.
중등부의 학생이라 하여도, 대부분 귀족이나 마법사의 자제 또는 재능이 출중한 이들이 모인 만큼, 드리 같은 평범한 영지민들로써는 좁힐 수 없는 벽이 존재하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도로시는 달랐다.
상대가 마부든 상인이든 평등하게, 아니 더욱 친절하게 대했다.
그 점이 드리는 너무나 고마웠다.
드리는 이 작은 마법사를 위해 무언가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때 드리의 눈에 들어온 건 도로시가 들고 있는 꼬깃꼬깃한 쪽지였다.
“음? 아무래도 제가 뭔가 부탁할 게 있으셨군요?”
“아하하, 들켰나요?”
“하하. 마법사님께서는 속마음을 숨기는 게 힘드신가 봅니다. 제 아들이 아플 때도 크게 걱정하시는 게 다 느껴졌었죠.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아니, 은혜를 갚는 거죠.”
그 모습에 도로시가 활짝 웃었다.
‘좋아, 성공이야.’
드리는 그녀가 도움을 받기 위해 일부러 쪽지를 들고 있었으리라고는 상상치 못했다.
물론 어차피 알았더라도 그 모습이 귀여워서라도 도와줬을 테지만 말이다.
“아, 그래서 필요한 게 뭡니까?”
“으음······ 그게 내일 마차를 한 대 들여와야 해요.”
“예에? 작은 물건도 아니고 마차 한 대를 말입니까? 무엇이 들었길래 말입니까?”
“어, 음 그게······.”
도로시가 말을 흐리며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이걸 뭐라고 말해야 하지?!’
잠시 도로시를 바라본 드리가 손을 저으며 웃었다.
“정 말씀하시기 어려우시면 묻지 않겠습니다. 마법사님께서 마탑에 문제를 일으키실 리는 없을 테니까요.”
드리가 요청을 수락하자, 도로시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고마워요, 드리 아저씨.”
“다 해결된 건 아닙니다. 끙, 요즘 마탑은 그······ 잘 아시지 않습니까?”
잠시 슬쩍 주위를 두리번거린 드리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점차 검문이 강해져서, 한 번씩은 물건을 확인합니다. 제가 마차를 들여온다 해도 검사는 빡빡하게 할 겁니다. 그래서 마차 한 대를 숨겨서 들여올 수는······.”
“아,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도와줄 사람이 있거든요.”
도로시는 드리의 말에 괜찮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후문 앞을 지키고 있는 한 검문관을 가리켰다.
“키아르 씨? 엄청 깐깐한 사람 아닙니까?”
한 톨의 머리카락도 빠져나오지 않는 올백 머리의 검문관, 키아르.
항상 미간을 구긴 채, 모든 물건을 세세하게 확인하는 그는 드리도 잘 알고 있을 정도로 꼼꼼함을 넘어서 깐깐한 정도의 검문관이었다.
그렇기에 내심 드리도 조심스럽게 대하는 인물이었고 말이다.
오히려 깐깐하게 막아설 것 같은데?
“키아르 씨가요? 에이, 그냥 직업정신이 투철한 사람이죠.”
그런데 웬걸 도로시는 무슨 소리냐는 듯 웃어 보이며 말했다.
“키아르 씨가 요즘 배탈이 심해져서 제가 약을 좀 가져다주기로 했거든요.”
“배탈······ 말입니까? 키아르 씨가요?”
“네, 지난번에는 두통이라던데. 검문관 일이 많이 힘든가 봐요.”
슬쩍 키아르를 보니 문득 깐깐해 보이던 표정은 그녀의 말대로 어딘가 아픈 걸 참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러다 얼떨결에 눈이 마주친 키아르와 눈인사했다.
‘생각보다 무서운 사람이 아닌가?’
드리는 의외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말도 제대로 섞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새삼 지레짐작하며 겁먹었던 스스로가 부끄러워질 정도.
그런 생각이 들면서도 드리는 도로시의 친화력에 감탄했다.
그때 키아르가 다가와 드리에게 손을 내밀었다.
“반갑소. 내일 아침 10시까지 온다면 내가 통과시켜주겠소.”
“아, 크험험. 알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두 분, 그러면 내일 부탁드릴게요! 저는 아침 먹으러 가야 해서 그럼 이만!”
엉겁결에 악수한 드리와 키아르를 붙여놓은 도로시가 마탑 본관을 향해 뛰어갔다.
총총걸음으로 돌아가는 도로시를 바라본 드리가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며 서먹한 분위기도 풀 겸 키아르를 향해 농담했다.
“허허, 이거 저희가 위험한 일에 휘말린 거 아닙니까?”
“음, 글쎄······ 도로시 마법사님이라면 적어도 나쁜 짓을 저지를 사람은 아니지 않소?”
드리의 말에 피식 웃으며 말하는 키아르.
이 남자가 이런 표정도 지을 수 있었나 생각하던 드리가 물었다.
“내일 일 끝나고 술 한잔 어떻습니까? 속에 좋은 스튜를 잘하는 집을 아는데 말입니다.”
* * *
늦은 아침 식사를 마친 도로시는 교과서를 들고 본관으로 향했다.
다만 수업이 예정된 강의실이 아닌 텅 빈 옆 강의실이었다.
그곳을 들어가자 동급생들이 도로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직 안 늦었지?”
그리고 그 가운데에는 아티팩트 전공 학생들이 앉아 있었다.
“도로시? 이거 빌려 달라고 한 게 너였어?”
“정말로 가져와 줬구나!”
“뭐, 네 부탁이니까. 그런데 이런 걸 왜?”
그들은 열몇 개의 아티팩트를 가져왔는데, 하나같이 환영 마법이 걸려 있는 도구들이었다.
“자, 친구들? 이건 내가 잠시 빌려 갈게?”
“이거 뭐에 쓰려는 건데? 몰래 꺼낸 걸 알면 벌점 20점은 받을 거라고.”
“정말 이번 주까지 반납 가능한 거지? 조만간 교수님이 아티팩트 점검한다고 했단 말이야.”
도로시의 부탁으로 가져오긴 했으나, 자칫 다가올 후폭풍을 생각하면 이들로서도 큰 모험을 하는 셈이었다.
“지온. 너 내가 과제 대신해줘서 재수강 면했었지? 알트, 너도 마법진 틀린 거 내가 고쳐줬었고.”
“윽, 그건······.”
“그렇긴 한데······.”
한두 개씩 도로시에게 빚이 있던 아이들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도로시, 아무리 너라도 이런 짓을 하고 안 혼날 것 같아?”
그때 같은 아티팩트 전공 학생 로지가 퉁명스럽게 물었다.
도로시가 들어오기 전 수석을 차지하던 학생으로 현재는 만년 2등에 그치는 아이였다.
“문제가 생기면 다 내가 책임질게. 여차하면 퇴학당하면 되지 뭐. 물론 너희 잘못은 없게 만들 거야.”
“뭐, 뭐어? 퇴학?”
퇴학이라는 말에 로지가 주춤거리며 눈을 크게 떴다.
그 반응에 피식 웃은 도로시가 아티팩트가 든 상자를 챙기며 말했다.
“후후, 너무 걱정하지 마. 다 좋은데 쓸 거니까.”
한편, 도로시가 물건을 챙기는 동안.
교내 곳곳에서는 도로시의 친구들이 작업에 들어가기 시작했으니······.
“자, 너희들은 이제 소란조야.”
도로시의 룸메이트인 애니가 믿을 수 있는 동급생들을 모아놓고는 설명했다.
“소란조? 그건 또 무슨 말이야? 도로시를 돕는 일이라며?”
갸웃거리는 학생들을 향해 애니가 말했다.
“내일 밤, 복도에 웨어울프들이 나타날 거거든. 그때 너희가 소리를 지르고 마법을 써서 모두를 깨어나게 해야 해.”
“웨, 웨어울프!?”
“쉿! 진짜는 아니야. 환영 마법을 쓸 거야. 세 명이 모이면 드래곤도 만들 수 있다잖아?”
“가짜를 풀어서 모두를 속이겠다는 거야? 무슨 장난이 그래?”
학생들은 다들 뚱한 표정이었다.
도로시가 대체 무슨 생각인 건지 이해가 안 되는 것뿐만 아니라, 애초에 성공할 수 없는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환영 마법에도 단계가 있다. 그리고 학생들이 쓸 수 있는 환영 마법이나 아티팩트로 발현되는 환영 마법은, 마탑의 고학년쯤 되면 쉽게 간파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쉽게 들킬 텐데······?”
한 학생의 물음에 애니가 웃으며 검지를 흔들었다.
“맞아. 그러니까 너희가 그때 맞춰서 소란을 일으켜 줘. 자다 깼는데, 비명이 들리고 마법이 날아다니면······ 웨어울프가 가짜라고 의심하고 간파하려고 하는 애들이 몇 명이나 될까?”
애니의 설명을 듣던 학생들은 침을 꿀꺽 삼키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렇긴 할 텐데······ 이거 괜찮은 거야? 난 안 그래도 벌점이 잔뜩인데, 만약 들키기라도 하면 유급이란 말이야.”
마탑의 규칙은 엄격하면 엄격했지, 느슨하지 않았다.
학생들이 겁을 먹는 것도 당연했다.
애니는 그런 학생들을 달래며 단단히 붙들어 매었다.
“모두 잘 생각해. 도로시가 마탑에 들어온 지 얼마나 되었지?”
“어······ 반년도 안됐지?”
“그러면 지금 중등부 수석은?”
“······도로시?”
“그래. 반년도 안되어서 교수님들의 총애를 받는 게 도로시잖아?”
“그건······ 그렇지.”
애니의 말에 학생들이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애니는 씩 미소를 머금고는 학생들에게 고개를 디밀었다.
“걔는, 우리랑은 재능부터가 완전히 다른 애야. 그런 천재를 마탑에서 내친다고? 바보 천치도 그런 짓은 안 해! 그런데 왕국 최고의 지성인들이 고오작 규칙 때문에 그런다고?”
“아······.”
“도로시 걔는 언젠가 마탑의 장로가 될 거야. 아니, 마탑주가 되겠지. 자~ 친구들? 여기서 문제. 도로시 성격상 은혜를 갚을까요? 안 갚을까요?”
그쯤 말하자 학생들의 눈이 번들거리기 시작했다.
애니의 말은 하나부터 열까지 옳았다.
도로시는 반드시 마탑의 중추가 될 것이었다.
모두가 그걸 알기에, 도로시를 선망하는 것이었다.
“자! 모두 이해했으면 해산! 그리고 이 말은 절대 비밀인 거 알지?”
애니는 왕국의 정세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코하르펜이니, 루퍼스니 누가 옳은지 그른지는 확신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도로시가 내린 판단이라면, 틀리지 않을 것이라고.
애니는 확신할 수 있었다.
* * *
다음 날 아침.
마부 드리가 바깥에서 마차를 가지고 들어왔다.
평소에 드리가 몰던 마차와 달리, 사람 십수 명은 들어갈 만한 커다란 마차였다.
마차가 검문소에 멈췄다.
검문관들이 다가왔다.
그들 중에서는 키에르 역시 섞여 있었다.
드리에게 다가간 키에르는 무언가를 확인하는 듯하더니, 슬쩍 길을 비켜주었다.
“음, 문제없군. 통과. 들어가시오.”
그렇게 손쉽게 마탑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성공이다!’
그를 남몰래 지켜보던 도로시가 양손을 꽉 쥐었다.
어느 창고로 들어가는지 지켜본 도로시가 듀크마 교수의 전언을 떠올렸다.
– 그 마차가 지하 창고로 들어갈 수 있게 해주겠니?
‘그런데 지하 창고에 마차는 왜 보내는 거지? 마차에 뭐가 있길래.’
궁금했지만 도로시는 참기로 했다.
오늘 밤이 된다면 알 수 있을 테니까.
도로시는 수업을 들으며 밤이 되기를 기다렸다.
어쩐지, 오늘따라 수업에 집중이 되지 않았다.
깃펜을 빙그르르 돌리다가도, 슬쩍 눈을 마주치는 학생들 몇몇이 엄숙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도로시도 마찬가지로 고개를 끄덕이며 아이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러고는 도로시가 실실 웃었다.
마치 비밀 결사가 된 것만 같은 기분에 뿌듯함마저 들지 않는가?
‘나 약간······ 영웅 같을지도?’
그리고 제이드가 떠올랐다.
옳은 일을 위해서 싸우고, 사람들을 규합하는 모습.
‘제이드 아저씨.’
그 아저씨처럼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도 몽글몽글 솟아올랐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다시 밤이 되었다.
– 전 학생들에게 전달합니다. 밤 10시 이후로 복도 통행을 금지합니다. 필요한 요청이 있을 경우, 기숙사 사감에게 요청하시길 바랍니다.
복도에 설치된 음성 마법이 학생들에게 통금을 알렸고, 마석 램프가 꺼졌다.
어두컴컴해진 복도를 기숙사 사감인 닐라 교수만이 거닐었다.
평소라면 학생들은 잠에 빠지거나, 사감 몰래 밀린 과제를 해야 할 시간.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방문이 닫히고 복도의 불이 꺼지자, 움직이는 그림자들.
그 누구도 목적을 모르는 작전이.
오로지 신뢰와 믿음으로 뭉친 작전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