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idden second life of the soldier RAW novel - Chapter (156)
156화
루퍼스는 고개를 들어 익숙한 전경을 바라보았다.
전방에는 강물을 끌어와 만든 넓고 깊은 해자가 있었고, 해자를 넘어갈 방법은 해자에 놓인 다리뿐이었다.
그 너머로 커다란 벽돌들이 층층이 쌓여 만들어진 드높은 성벽이 보였다.
수백 년이 넘는 세월에 성벽을 이루는 벽돌들은 닳고 변색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낡았다는 감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찬란한 역사가 느껴지는 웅장함이었다.
동시에 넘을 수 없는 산처럼 느껴졌다.
“포이닉스······.”
수도 포이닉스.
자신이 태어나고 자랐던, 왕성이 자리한 수도.
그런 성벽이 루퍼스는 너무나 익숙했고, 그렇기에 낯설었다.
“드디어 여기까지 왔군······.”
루퍼스는 어느 순간에 도달했음을 느꼈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한 달의 시간.
코하르펜의 반란이 시작되었고, 국왕 루브릭이 죽었다.
운이 좋게도 살아남은 그는, 병력을 모으고 귀족들의 지지를 끌어내어 끝내 수도에 당도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에 루퍼스는 묘한 감정을 느꼈다.
기쁨도, 슬픔도, 불안도 아니었다.
안도.
꺾이지 않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는 안도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렇기에 루퍼스는 주먹을 쥐며 다짐했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수도로 넘어가 역적들에게 단죄를 내릴 것을.
때마침 전투 준비를 마친 기사들과 귀족들이 다가와 보고했다.
“저하, 투석기와 발리스타 등 공성 병기의 설치가 전부 끝났습니다.”
“마법사 부대 역시 공성 마법의 준비가 거의 끝났습니다.”
“3천의 보병대와 1천의 궁수대 역시 전투 준비를 끝냈습니다.”
보고하는 이들의 뒤로 열 대가 넘는 투석기와 스무 대의 대형 발리스타가 설치되어 있었다.
그들의 기세는 명령만 내린다면 곧장 성벽으로 돌격할 것만 같았다.
“전원 명령을 대기하며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하지만 루퍼스는 기다렸다.
성벽과 해자 사이에서 얼핏 보이는 반투명한 푸른 기운.
수도를 지키는 결계.
‘결계를 뚫기에는 힘이 부족하다.’
열 대가 넘는 투석기로도 결계를 뚫기는 힘들다는 걸 루퍼스는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그때였다.
쿠우우우웅!
수도 안쪽에서 커다란 격음이 울린 것은.
“저건······?”
성벽의 결계를 바라보던 루퍼스의 시야에 이상 현상이 들어왔다.
“무슨······.”
성벽 너머에서 검은 연기가 치솟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어스름한 새벽의 하늘에서도 보일 정도로 아주 진한 검은 연기가 말이다.
“저건 대체······. 설마 화재인가?”
루퍼스의 말에 호위 기사 아론이 고개를 내저었다.
“그렇기엔 이상합니다. 저리 시커먼 연기가 솟는데 타는 냄새는 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연기의 색깔 역시 화재와 다릅니다. 한없이 검은색입니다.”
그래, 확실히 무언가 다르다.
그런 느낌을 받고 있을 그때.
“저건······ 화재 따위가 아닙니다.”
“로이암 경?”
루퍼스에게 다가온 로이암이 중얼거렸다.
그것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한 얼굴을 한 채로.
“그대는 저게 뭔지 알고 있나?”
“예, 저하. 저건 마기입니다.”
“······마기라고?”
“저 기운에 지배당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느껴지는군요.”
루퍼스가 되묻자 로이암은 기억하기도 싫다는 듯 얼굴을 찡그렸다.
루퍼스는 과거, 제이드에게 칼테르 요새의 임무를 맡겼던 것이 떠올랐다.
분명 로이암 경은 마기에 지배당했다고 하였었지.
······그런데.
“포이닉스 한가운데서?”
루퍼스가 점차 치솟는 검은 연기를 바라보았다.
거대한 화재가 일어난 것처럼 점차 그 양이 늘어나고 있다.
“코하르펜, 놈이······!”
정말로 악마들과 결탁했단 말인가!
그렇지 않고서는, 수도의 한복판에서 저런 거대한 마기가 치솟는다는 게 말이 안 됐다.
얼굴을 구긴 루퍼스가 자신의 호위 기사를 불렀다.
“아론!”
“예, 저하!”
루퍼스의 옆에 서 있던 호위 기사 아론.
그가 곧장 하나 남은 오른팔로 가슴을 두드리며 복창했다.
“그리핀을 데려와라! 포이닉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확인해봐야겠다!”
루퍼스의 명령에 아론이 그리핀 한 마리와 그리핀 라이더 쥬리핀을 데리고 왔다.
쥬리핀은 능숙히 루퍼스를 태우고 그리핀을 몰아 성벽 상공 위로 날아올랐다.
저 마기와 성벽의 결계 때문에 다가갈 수는 없었지만, 루퍼스는 똑똑히 볼 수 있었다.
포이닉스의 광장에서 시작된 마기가 점차 주변을 잠식해나가는 것을.
그를 피해 도망가는 사람들을.
그들을 집어삼키는 검은 기운을.
“대체 무슨 꿍꿍이냐, 코하르펜······!”
이를 악문 루퍼스의 시선이 저 멀리 왕성으로 향했다.
* * *
“저게 무슨 일이지?”
왕성, 국왕의 집무실.
그곳의 창밖으로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를 본 코하르펜이 입술을 짓이겼다.
코하르펜은 집무실 밖에 있던 근위대장을 불러 확인했다.
“세페르 근위대장. 어떻게 된 거지?”
“전하. 현재 상황을 파악하고 있습니다!”
“루퍼스의 군대가 성벽을 포위한 상태다. 놈들의 짓인가?”
“성벽을 넘어오는 자는 목격된 바 없습니다! 내부의 조력자인지 확인하도록 하겠습니다!”
“어서 움직이도록!”
코하르펜의 질책에 근위대장이 다급히 문밖을 나갔다.
코하르펜은 눈썹을 구기며 다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저 멀리 성벽에 루퍼스의 군대가 있을 것이다.
죽이려 했던 루퍼스가 군대를 이끌고 이곳에 당도한 것만 해도 불쾌한 상황이었다.
성벽의 결계가 있기에 놈이 뚫지는 못할 것임을 안다.
그리고 많은 병력이 북부에서 모이고 있었다. 루퍼스를 깨부술만한 병력이.
시간은 코하르펜의 편이었다. 버티기만 하면 승리한다. 반드시.
하지만.
‘만의 하나라는 게 있다.’
방심에 취해있는 순간, 사각에서 비수가 솟아오를 수 있음을.
코하르펜은 잘 알고 있었다.
그 역시 선대 국왕이자 자신의 형을, 그렇게 죽였기에······.
······저 연기가 더욱이 신경 쓰였다.
당혹스럽고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설마······ 놈이 결계를 뚫었다면?’
루퍼스, 놈이 수도로 침투해 게릴라라도 벌이고 있는 것인가?
그럴수록 창밖의 풍경에서는 검은 연기가 점차 늘어날수록, 코하르펜의 불안감도 조금씩 늘어나고 있었다.
‘가만히 좌시할 수는 없다.’
코하르펜은 집무실을 나와 참모 회의실로 향했다.
그곳이라면 이 문제를, 적어도 이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참모 회의실에는 방금의 사태로 급히 모인 관료들이 앉아 대책 회의를 하고 있었다.
그 사이에서, 글레바 후작과 흑기사 이센디오가 가까이 붙어 있었다.
둘은 남들이 듣지 못하게 속삭이고 있었다.
그 장면이 코하르펜의 눈에 들어왔다.
두 사람은 코하르펜이 들어온 것을 확인하자마자 입을 다물었다.
‘뭔가 있군.’
신호를 주고받는 듯한 시선, 이전과는 다른 태도.
코하르펜은 저 둘 사이에 미묘한 흐름을 느꼈다.
‘분명 이센디오. 그자를 포섭해온 것이 글레바 후작이었지. 그리고 이센디오의 부하······ 놈이 죽은 뒤로 악마와 관련된 소문이 퍼졌고.’
무언가 있다.
노련한 정치인의 눈치였고, 감이었다.
그렇기에 물었다.
“······글레바 후작. 이센디오 경. 그대들은 저기서 일어나는 일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듯하군.”
노골적이고 직설적인 물음.
그에 글레바 후작은 묘한 웃음을 내비치며 고개를 저었다.
“전하. 아무 일도 아닙니다. 걱정은 접어두시고 들어가서 쉬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앞으로 수성전을 지휘하셔야 할 테니, 기력을 아끼셔야 합니다.”
“아무 일도 아니라고······?”
그녀의 말에 코하르펜의 눈이 꿈틀거렸다.
“내 도시 안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는데, 어찌 아니라는 거지? 그게 마누스 총사령관으로 할 말인가?”
코하르펜이 실망의 눈빛을 드러냈다.
글레바에게는 후작의 작위를, 그리고 총사령관의 직위를 주었다.
하지만 그녀는 루퍼스를 막는 데 실패했다. 아니, 되려 실패했다.
“그대는 마누스 총사령관으로서 현 상황에 관한 모든 것을 통제해야 하며 국왕인 내게 보고할 의무가 있다!”
코하르펜은 그답지 않게 목소리를 높였다.
근래 확실히 예민해진 상태였다.
하지만 왕의 예민함은 때로는 신하들의 기강을 붙드는데, 도움이 되는 감정이었다.
왕실의 핏줄을 타고난 코하르펜은 그것을 잘 알았고, 종종 이용할 생각이었다.
물론 자주 꺼내면 안 된다. 무기는 자주 쓸수록 예기를 잃는 법이니까.
지금이 적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예, 정말 아무것도 아닙니다. 전하. 저 일은 저희가 처리할 터이니 걱정하지 마시지요.”
글레바 후작은 입술의 끝을 묘하게 올리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게 아닌가.
마치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 말이다.
서늘하게 가라앉은 코하르펜의 눈매가 그녀를 노려보았다.
“글레바 후작. 그대가 지금 나를 무시하는 것 같은데, 단순한 착각인가?”
“······그럴 리가요. 이만 물러 가보겠습니다.”
글레바 후작은 대답하지 않고, 회의실을 나가려 들었다.
“총사령관! 나는 그대에게 내 앞을 떠나라고 명한 적이 없다!”
노기 서린 코하르펜의 목소리에 대기하던 근위병들이 빠르게 글레바 후작의 주위를 포위했다.
그때.
“허튼짓하지 마라.”
서늘한, 아니 섬뜩하기까지 한 기사의 목소리가 회의장에 울렸다.
검은 갑주의 기사. 이센디오였다.
이전보다 더욱 사나워진 기운을 풍기는 그의 모습에 주춤한 근위병들의 검이 떨렸고, 내려갔다.
이내, 이센디오는 잠시 이쪽을 바라보고는 글레바 후작과 함께 회의실을 나갔다.
그 광경을 모두가, 그리고 코하르펜마저도 말없이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아니었단 말인가.’
이센디오, 제국의 검 중 하나인 그가 온 이유.
코하르펜의 뜻을 따라서, 코하르펜을 지지하여 온 것이 아니었다.
‘글레바······ 그녀였단 말인가.’
오래전부터, 글레바는 제국의 누군가와 친분이 있었다는 게 떠올랐다.
“저 영악한 뱀 같은 여인이······.”
쿵!
닫힌 회의실을 향해 코하르펜은 황망한 시선을 보냈다.
한편, 참모 회의실을 빠져나온 글레바 후작과 이센디오는 왕성의 입구에 다다랐다.
국왕인 코하르펜을 짓누르고 나온 글레바 후작이지만, 시원한 감정은 없었다.
오히려 굴욕감을 느끼고 있었다.
곧 수도에서 일어날 일이 무엇인지 알고 있기에.
‘포이닉스를 포기할 수밖에 없나?’
글레바 후작이 그간 쌓아온 계획은 이 순간과는 거리가 멀었다.
제국의 이인자라 불리는 공작 마이어스.
그의 힘을 빌려 더 높은 권력을 쥐는 것이었을 뿐.
흑마법사들에게 마누스 왕국을 바치거나 이처럼 휘둘릴 생각은 없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의 그녀는 수세에 몰려있었다.
마이어스의 계책이 탐탁지 않아도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그녀가 만들어낸 왕, 코하르펜 마저 내버린 것이었다.
“······이센디오 경. 내 영지, 제르멜 만은 남겨주시지요. 다른 곳들은 그대들이 무엇을 해도 상관없으니.”
“큭. 걱정하지 마시오. 나의 주인께서는 그대를 충실한 종복으로 여기고 있으니까.”
으득.
이센디오의 웃음 섞인 말에 글레바 후작은 내색하지 않으면서도 불쾌감을 느꼈다.
‘······종복?’
그 표현이 심히 거슬렸다. 하지만 반문할 수 없는 처지였다.
글레바 후작은 대답하지 않고 앞으로 걸어 나갔다.
이센디오는 내성의 문을 나가는 그녀를 뒤따라 나왔다.
끄아아악!
살려줘!
도망쳐!
악마의 힘을 받고 예민해진 그의 기감은 온갖 비명들을 잡아냈다.
그의 시야에는 수라장이 된 왕성의 중심 구역이 보였다.
뱀처럼 달려들어서 사람의 생기를 흡수하는 검은 연기.
그것이 시작된 중심 구역의 광장.
사람들은 그 연기에 닿지 않기 위해 앞다퉈 발버둥 치지만, 구역을 빠져나갈 곳은 이미 다 막혀있었다. 이센디오의 명령으로 밤사이 폐쇄된 것이었다.
벽에 막힌 인파들이 이리저리 뒤엉키며 지옥도를 연상케 했다.
연기에 생기를 빨린 이들이 미라처럼 변한 채 쓰러져갔다.
그럴수록 광장에 우뚝 선 두 개의 동상이 조금씩 꿈틀거리는 게 보였다.
“곧 시작이군.”
이제 이 도시는 아주 멋진 요람이 되리라.
저 강력한 존재들을 현세에 현현하게 할, 요람.
이센디오는 자신의 주인을 떠올렸다.
그 현명하고도 강인한, 인간 같지 않은 존재를.
* * *
“전원! 공격을 준비해라!”
루퍼스는 전 병력에게 공격 명령을 내렸다.
성벽 너머, 수도에서 검은 연기의 마기가 수도를 조금씩 집어삼키고 있었다.
수도의 주민들과 함께.
수도, 포이닉스가 몰락한다.
‘아니, 완전히 사라진다!’
본래, 공성전을 철저하게 준비하며 제이드의 도착을 기다리겠다는 계획은 접을 수밖에 없었다.
제이드가 결계의 열쇠를 가져올 것을 기다렸다간 수도는 죽음으로 덮일 것이다.
“수도가 공격받고 있다! 당장 결계를 뚫어라!”
이에 각 부대의 지휘관들이 일제히 소리쳤다.
“발사!”
“쏘아라!”
“공격!”
10대의 투석기가 일제히 퉁기며 커다란 바위들을 쏘아 보냈다.
동시에 스무 대의 발리스타가 대형 화살을 토해내었다.
스물의 마법사들이 모여 만든 공성 마법이 번개가 되어 쏘아졌다.
마누스의 웬만한 성벽은 함락시켜버릴 공격들이 일제히 수도의 성벽으로 쏘아진 것이다.
콰과과과과광──!
커다란 바위들이 한 방향을 일제히 타격했다.
그러나 허공에 막힌 돌덩이들이 해자에 떨어지며 물이 높게 튀었다.
바위의 충돌에 결계의 푸른 기운에 파문이 일며 그 모습을 드러냈다.
콰직! 콰직! 콰직!
모습을 드러낸 결계를 향해 스무 발의 대형 화살이 한곳으로 쏘아졌다.
꿰뚫을 듯 날아가던 화살들이 결계에 막혀 튕겨 나가고 부러졌다.
하지만 그 누적된 충격은 결계에 금이 가도록 만들었다.
콰르르르릉!
이내 무엇이든 태워버릴 듯한 뇌전이 결계를 두들겼다.
금이 갔던 결계가 깨져나가며 틈을 만들어냈다.
“됐다!”
“결계를 부쉈─ 어?”
그 광경에 기뻐하는 것도 잠시뿐.
부서진 결계의 틈은 두 사람이 겨우 들어갈 정도로 비좁았고, 그마저 다시금 수복되기 시작했다.
“무슨······!”
“말도 안 돼!”
방금의 공격은 루퍼스 부대가 낼 수 있는 최고의 화력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결계는 벌써 원상복구 되었다.
“전부를 다해도, 결계조차 뚫지 못한단 말인가?”
“대체······ 선조들은 결계를 어떻게 만들었단 말인가······.”
기사들은 좌절했고, 마법사들은 이 결계의 심오함에 감탄하고 한탄했다.
루퍼스가 이를 악물었다.
“이대로······ 이대로 포이닉스는, 마누스는 끝이라 말인가?”
모든 역경을 이겨내고 여기까지 왔건만.
마누스가 악마의 먹잇감으로 전락하는 걸 볼 수밖에 없단 말인가.
“제길!”
욕지거리를 내뱉은 루퍼스가 오러의 검기를 뽑아 날렸다.
콰앙!
날카롭게 쏘아진 검기임에도 결계는 멀쩡했다.
대체. 무엇을 더 해야 한단 말인가.
루퍼스가 비탄을 울부짖으려던 그때.
“······저하!”
아론이 루퍼스에게 다급히 소리쳤다.
아론의 부름에 루퍼스가 고개를 돌렸다.
자신을 따라서 성벽으로 진격한 병력이 모였다.
그 병력이 좌우로 갈라졌다. 마치 누군가에게 길을 내주듯이.
그 길을 끝에, 저 멀리 어떤 형체가 다가오고 있었다.
어스름한 새벽길이기에 저게 무엇인지 파악하기는 어려웠다.
크르륵!
그때, 병력의 후방에서 앉아 있던 칼라마르가 벌떡 일어났다.
제 주인이 마탑 침투 임무 때문에 자리를 비운 탓에, 근래 아무것도 하지 않던 녀석이었다.
그 녀석이 몸을 일으키더니 저 멀리 달려갔다.
그간 이곳의 병력, 그 누구도 저 드레이크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당연하다. 드레이크는 한 주인에게만 충성을 바쳤으니.
그런 드레이크가 저토록 급히 달려 나가는 거라면?
“······설마.”
저 멀리 달려 나갔던 칼라마르는 제 등에 누군가를 태운 채 달려오고 있었다.
누구인지 고민할 여지가 없다.
그다.
칼라마르가 다가올 때마다 루퍼스가 기다리던, 익숙한 얼굴의 용병이 보였다.
“제이드!”
“제이드다!”
“그가 왔어!”
맨 뒤의 병력들 사이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고, 이내 루퍼스의 앞에 당도했다.
“저하!”
“제이드. 때맞춰 왔구나.”
“이런 상황에서 제가 드릴 말씀은 하나겠죠.”
씨익 웃은 제이드가 품속에서 한 수정구를 꺼내 들었다.
노을을 닮아 붉고도 노란 수정구.
결계를 뚫어낼 세 번째 열쇠였다.
“제가 길을 열겠습니다. 왕좌로 가는 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