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idden second life of the soldier RAW novel - Chapter (155)
155화
마탑에서 해야 할 일도 끝냈고, 우리는 곧장 마탑을 떠날 준비를 마쳤다.
“와, 무슨 이런 마차가 다 있지?”
데릭이 순진무구한 아이처럼 마차의 이곳저곳을 두드렸다.
“데릭, 그러다가 마차 고장 내지 말고 가만히 앉아 있어.”
마탑에서 내어준 최고급 마차에는 다른 마차에서 볼 수 없는 온갖 장치가 되어 있었다.
마법 보호막이나 온도 조절 장치까지.
“아니, 내가 괴물도 아니고, 좀 두드린다고 고장이 나?”
“데릭. 이 마차 값만 100골드가 넘을걸?”
이 정도면 공작 이상은 되어야 타고 다닐법한 대단한 물건이다.
나 역시 실제로 타보는 건 물론이거니와 보는 것도 처음이었다.
“······내가 마차를 업고 가면 된다는 거지?”
“괜한 짓 하지 말고 가만히 쉬면서 가자.”
나는 포션 한 병 마시며 말했다.
전날의 전투로 몸이 성한 곳이 없었다.
이럴 때라도 휴식을 취해야 하지 않겠는가.
곧 공성전을 치러야 하는데.
“흐흐. 말없이 굴러가는 건 신기하네.”
데릭이 마차의 앞을 가리키며 실실 웃었다.
정말로 말은 한 마리도 없었다.
대신, 마차의 앞에는 마석이 박힌 원형의 구조물이 달려 있었다.
‘마차(馬車)가 아니라 마차(魔車)라니.’
말 대신 마석과 마법을 이용해 움직이는 자동 마차.
아니, 툭 까놓고 말해 자동차나 다름없다.
당연히 마탑에서도 귀한 물건이었는데, 우리가 마탑을 떠난다고 알리니 마탑 장로들이 선뜻 내어준 물건이었다.
들어갈 때는 마차에 몰래 타고 들어왔거늘, 나갈 때는 귀빈 대접을 받으며 떠나고 있다니.
완전히 달라진 상황에 피식 웃으며 마탑 입구를 바라보았다.
듀크마가 임시 마탑주를 맡게 되면서 함께 할 수 없게 되자, 새로 모집해준 마법사들이었다.
바로 최정예 전투 마법사.
3서클에서 4서클 수준으로 이루어진 전투 마법사들은 오로지 전쟁과 마수들을 상대하기 위해 육성된 마법사들이었다.
저들이 합심하고 공성 마법을 펼친다면 불리하던 전장은 단숨에 뒤집힐 것이다.
‘생각해보면 글레바 백작과의 전투에서도 전투 마법사들을 징용했었지.’
그때 복병을 이용하지 않았다면 아군은 초토화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 마법사들의 수가 서른이다.
그때 대표로 보이는 전투 마법사가 알리나를 향해 조심스럽게 고개를 숙였다.
“알리나 선배님. 선배님과 함께 할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다른 이들의 발목을 잡지 않게 조심하도록.”
“예, 회로 하나를 그리는데도 일말의 오차도 없게 하겠습니다.”
알리나는 그런 마법사들을 자연스레 하대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왕실 마법사, 그것도 그리핀 부대 부지휘관의 자리에 오르려면 단순히 ‘최정예’가 아닌 ‘최고’의 전투 마법사에 올라야 할 정도이니.
저들에게는 알리나는 우수한 성적을 내고 졸업한 대선배님이나 다름없는 셈.
‘새삼스럽지만, 알리나가 우리한테 붙은 게 다행이네.’
때마침 눈을 마주친 알리나가 마법사들을 향해 말했다.
“아, 그리고 저분께도 최대한의 예우를 갖춰라. 루퍼스 군의 중추이시다.”
“함께 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제이드 님. 필요한 것이 있다면 얼마든지 말씀해주십시오.”
알리나의 말에 곧장 마법사는 제이드를 향해 정수리가 바닥에 닿을 정도로 고개를 숙였다.
전장을 지배하던 전투 마법사들이 자신을 향해 고개를 숙이니 그 기분이 묘했다.
동시에 알리나가 가진 영향력을 체감할 수 있었다.
“슬슬 출발하죠. 루퍼스 저하의 군대가 이미 포이닉스를 포위했을 겁니다.”
나는 헛기침하고는 마차에 올라탔다.
그 뒤를 따라 알리나와 전투 마법사 몇이 따라 탔고, 마법사 한 명이 능숙하게 마차를 조종하기 시작했다.
점차 창밖의 풍경이 변하는 것을 바라보며 제이드는 품속에서 수정구를 꺼내 들었다.
노을빛이 담긴 것 같은 주황빛 기운의 수정구.
‘왕궁의 세 번째 심장’이라는 이름의 열쇠.
이것이 있다면 수도의 결계를 열고 진입할 수 있으리라.
“속도를 높이죠. 최대한 빠르게 합류합시다.”
“예. 속도를 높여라.”
내 말에 알리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마법사에게 명령했다.
곧이어 마차는 루퍼스 군을 향해, 수도로 빠르게 나아가기 시작했다.
* * *
제이드가 푸른 마탑에서 출발한 그날 밤.
수도 포이닉스의 성벽은 그 어느 때보다 소란스러웠다.
1왕자 루퍼스.
마누스 동부에서 시작된 그의 군대가 어느새 수도 포이닉스에 당도한 것이다.
그것도 6천은 되어 봄 직한 대군을 이끌고, 말이다.
“역적, 코하르펜은 어디 있는가!”
“여기, 진정한 왕이 도착했다! 문을 열어라!”
성벽 주위의 해자를 빙 두른 채 루퍼스의 군대가 수도를 포위해 나갔다.
그럴수록 성벽의 수비대는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결국 수도에 도달했나.’
포이닉스 성의 한 종탑.
아무도 없는 그곳에서 망토와 상자를 뒤집어쓴 사내 한 명이 고개를 내밀었다.
사내는 품속을 뒤적거리더니 망원경을 꺼내 성벽과 대치 중인 루퍼스의 군대를 바라보았다.
그의 이름은 가가사르.
그랑힐 시의 주인, 솔튼의 부하이자 정보책 중 한 명인 붉은 까마귀였다.
6천 명의 대군을 모아온 루퍼스의 행보는 놀라울 정도다.
분명 정보에 따르면 동부에서만 해도 천 명이 좀 안 되는 군세였다 했으니.
하지만······.
‘······힘들겠군.’
망원경 렌즈에 불그스름한 기운이 일렁이는 게 보였다.
대대로 수도를 지켜주었던 피닉스의 결계다.
‘저 정도 군세로는 결계를 뚫을 수 없을 텐데······.’
저 결계는 투석기 수십 대가 일제히 바윗덩어리를 쏘아댄다고 해도 버텨낸다.
마법사들이 모여 대마법을 쏘아내거나, 한순간 거대한 화력을 쏟아붓는 게 아닌 이상 부서질 일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농성을 벌일 생각은 아닐 텐데.’
곧 겨울이 시작된다.
이미 밤공기는 쌀쌀해져 있었고,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면 저들에게 체력의 소모와 식량의 고갈을 가져올 것이다.
더군다나 북부에서 용병들과 설산의 전사들이 집결하고 있었다.
코하르펜이 국고를 털어서 뿌린 막대한 양의 금화를 받아먹기 위해서.
즉, 이대로 가만히 있다가는 루퍼스의 군대가 성벽을 넘어가는 일은 없을 것이란 이야기였다.
그렇기에.
‘내부 공작이 절실할 때로군.’
내부에서 적들의 작전을 유출하고, 군중들을 흔들어야 한다.
그건 솔튼의 의지이기도 했다.
붉은 까마귀, 가가사르는 미소 지으며 종탑 아래를 빠르게 내려갔다.
불이 꺼진 어두운 골목길 사이를 누빈 가가사르가 도착한 곳은 수도의 한 광장.
글레바 후작. 그녀와 연관이 있을 흑마법사들이 이곳에서 무언가 꾸미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음, 저놈들인가?’
망설임 없이 쓰레기 더미에 몸을 숨긴 그때.
열 명 정도 되는 이들이 하나 같이 수상쩍은 회색 로브를 뒤집어쓴 채 무언가를 옮기는 게 아닌가.
그들이 옮기고 있는 건 웬 미술품으로 보이는 동상이었다.
처음에는 왕좌를 차지한 코하르펜의 동상인가 싶었는데 아니었다.
음식을 씹고 있는 모습과 술을 마시는 모습의 동상.
어딘가 섬뜩하고 음울함이 느껴지기까지 했다.
‘저게 대체 뭐지? 평범한 동상일 리는 없고······ 저주받은 아티팩트인가?’
순간 의문이 들었다.
회색 로브의 무리는 광장 중앙에 동상을 세웠다.
그 주위로 작은 항아리들을 설치하고는 빠르게 사라졌다.
‘저건 대체······.’
쓰레기 더미에서 나온 가가사르는 수정구를 조심히 꺼내 들었다.
섬뜩한 동상의 주위로 항아리들이 자욱한 검은 연기를 피워내기 시작했다.
어두운 밤하늘보다 시커먼 연기는 광장 바닥에 깔리기 시작했다.
그 기운이 섬찟하면서도 불쾌했기에 가가사르는 얼굴을 구기며 뒷걸음질 쳤다.
대체 무엇을 꾸미고 있길래, 이런 기분 나쁜 연기가 피어오른단 말인가.
가가사르는 곧 정신을 차리고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흑마법사, 악마와 결탁하였다는 코하르펜과 글레바. 그 둘을 찌를 비수를 만들기 위해서는 확실한 보고가 필요했다. 놈들이 무슨 짓을 벌이는지 증거를 포착해야 한다.
한걸음. 또 한걸음.
가가사르가 조심스럽게 나아가던 그 순간.
쉭──!
자욱하게 깔려 있던 연기가 한순간 뭉치며 촉수처럼 형체를 갖추더니 가가사르의 발목을 잡아챘다.
당황한 가가사르가 뒤로 물러나려 했지만, 촉수는 더욱이 그를 붙들기 시작했다.
“뭐, 뭐야. 몸이!”
뱀처럼 둘러싼 검은 촉수가 가가사르의 몸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당황하려는 찰나 어디선가 음울한 웃음이 들려왔다.
– 쥐새끼 한 마리가 있었군.
– 쥐고기 역시 먹을 만하지. 에피타이저다.
붙잡힌 발목을 기점으로 점차 가가사르의 체액이, 근육이 메말라가기 시작했다.
생기를 흡수당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이게 무슨······!’
“크아아악!”
전신이 뒤틀리는 고통에 가가사르가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이내 그의 몸을 검은 촉수가 뒤덮었다.
이내 어두운 광장에는 짧았던 비명만이 작게 메아리쳤다.
* * *
같은 시각.
포이닉스 성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근처의 마을의 여관.
그곳에서 카일이 팔짱을 낀 채 앉아 있었다.
“······앞으로 어쩐다.”
“킁, 여기 자갈돌 스튜는 꽤 나 먹을 만하군.”
그런 카일의 옆에는 바바크가 스튜를 양손에 하나씩 들고 배를 채우고 있었다.
하나는 카일 몫의 스튜였고, 하나는 새로 시킨 스튜였다.
한입에 두 그릇을 모두 털어 넣은 바바크가 트림하고는 슬쩍 카일에게 물었다.
“끄윽. 적당히 배가 부르군. 어떻게 할 생각인가.”
“글쎄. 일단 제이드를 찾아봐야겠는데······.”
카일이 입을 삐쭉 내밀며 말했다.
카일과 바바크는 며칠을 내리 달려서 마누스 왕국에 도착했다.
하지만 이미 마누스의 수도는 루퍼스의 군대가 포위하고 있었고, 수도를 에두르고 있는 드높은 성벽에는 마법 결계가 펼쳐져 누구도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 녀석은 루퍼스와 함께 있다고 하지 않았나?”
“그건 지금부터 알아봐야지. 마침 알아봐 둔 데가 있거든.”
카일은 여관을 나와 마을의 길을 따라 움직였다.
새벽이었기에 마을은 어두웠고, 여관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가게가 문을 닫았다.
하지만 외진 골목길 안쪽, 한 곳만큼은 달랐다.
바로 정보 길드 말이다.
“음? 이런 시간에 웬 놈이지?”
“정보를 사러 왔다.”
한쪽 눈에 흉터가 길게 난 뱀 같은 얼굴의 사내가 피식 웃으며 말을 꺼냈다.
“뭔 놈인지는 몰라도 지금 영업은─”
잘그락!
카일은 그가 앉은 책상에 곧장 금화 한 개와 패 하나를 꺼내 책상에 올렸다.
“이건 의뢰비. 그리고 최고의 정보를 원한다.”
“이건······.”
말을 잘렸음에도 사내는 불쾌해하는 대신 잠시 패를 바라보고는 태도를 고쳤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납작한 황금패를 들어 보인 사내는 고개를 숙이고는 안으로 후다닥 들어갔다.
바바크는 갸웃거리며 카일에게 물었다.
“카일, 저게 뭐길래 저러는 거지?”
“보증패. 헤파이토 영감님께서 주셨어. 저거를 주고 암호를 대면 최고의 대우를 받을 수 있다고 했지.”
결사, 세계 관측자들은 세계 곳곳에서 막대한 권력과 재력을 축적한 자들이었다.
아마 저 보증패도 그중 하나가 아닐까?
카일은 그렇게 생각했다.
곧이어 뱀 얼굴의 사내 대신 수염을 짧게 기른 후덕한 중년의 사내가 나왔다.
“반갑군. 정보 길드장이오. 그냥 길드장이라고 부르면 되지.”
그는 의자에 끌어당겨서 앉고는 손바닥을 비비며 물었다.
“그래서 뭘 찾으려고, 보증패까지 써가며 이 길드장을 호출한 거지?”
“사람을 찾고 있다.”
“사람? 보증패까지 쓸 정도면······ 제국의 사생아라도 찾아줄 수는 있다만······.”
“제이드. 그 유명한 용병 제이드가 어디 있는지 알고 싶은데, 정보가 있나?”
카일의 물음에 길드장의 눈이 살짝 커졌다. 그리고 잠시 후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음, 마침 그 정보는 준비되어 있지.”
마침 준비돼?
그 부분에서 의아함을 느낀 카일이었으나, 정보상에게 정보를 어떻게 구한 건지 묻는 것도 어불성설이었다.
“단······ 돈이 좀 드는─ 오, 알겠네.”
길드장이 뭐라 하기도 전에 카일은 추가로 1골드를 더 냈다.
금화를 받아든 길드장이 만면에 미소를 가득 채웠다.
“2골드짜리 정보의 제이드라면, 마누스 영웅인 제이드를 말하는 걸 테지. 맞나?”
길드장의 물음에 카일은 계속하라는 뜻으로 턱짓했다. 길드장이 말을 이었다.
“제이드, 그자는 제르멜 영지에 있네. 푸른 마탑으로 향했다고 하더군.”
“푸른 마탑? 거긴 왜?”
“거기까진 우리도 알지 못해. 알잖나? 마탑은 권외라고.”
“너무 부정확한 정보인데. 이미 떠났을 수도 있잖아? 우린 그를 찾아야 한다고.”
“걱정하지 마. 그저께 제르멜 영지에 들어간 것이니까 아직 있을 거라고.”
카일은 길드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더 정확한 정보는 없는 게 아쉬웠지만, 이것만으로도 큰 소득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길드장이 작게 말했다.
“그나저나 별일이군. 같은 사람을 여럿이 묻고 말이야. 역시 현시점 최고의 유명 인사란 말인가.”
“······그게 무슨 소리지? 제이드를 찾는 사람이 더 있다고?”
“그래. 자네와 똑같은 2골드로 특급 의뢰를 넣었지.”
정보 길드에서 특급 의뢰라면 가장 빠르게, 정확한 정보를 주는 것을 의미한다.
“그걸 말해주는 이유는 뭐지? 정보 길드에서 의뢰는 비밀 엄수 아니었나?”
그리고 특급 의뢰는, 절대적인 비밀 보장을 원칙으로 한다.
카일은 경계심을 키우며 길드장을 노려보았다.
막말로 그가 자신을 속이려는 것일 수도 있지 않은가.
“그쪽에는 신세를 진 게 있어서 말이야. 그에 대한 보답이라 해두지.”
그제야 카일은 길드장이 결사와 관련 있는 인물임을 깨달았다.
“······신세를 졌네. 고마워.”
“그만 가게. 곧 의뢰인이 오기로 했거든. 그 의뢰인이.”
끌끌 웃은 길드장이 눈을 빛냈다.
반면 카일의 눈은 가라앉았다.
‘제이드를 왜 찾는 거지? 그것도 특급 의뢰라······.’
밖으로 나온 카일은 슬쩍 마을 밖을 바라보았다.
수도 포이닉스가 있는 방향이었고, 악마가 봉인된 동상이 저 안으로 들어갔을 터였다.
‘흑마법사 쪽에서 보낸 살수일 가능성도 있다. 확인해봐야겠어.’
만일 제이드를 해하려 하는 인물이라면······.
‘이쪽에서 처리해주지.’
파마(破魔)의 힘을 가진 자를 건들 게 둘 수는 없었다.
이내 카일은 바바크와 함께 근처에서 숨어 있었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등에 대검을 메고 후드로 몸을 가린 한 인물이 골목길로 들어가는 게 보였다.
정보 길드가 있는 곳이었다.
그로부터 10분 정도가 지나자 후드의 인물이 걸어 나왔다.
얼굴이 아름다운 여인이었는데, 그녀는 다시금 후드를 뒤집어 쓰려하고 있었다.
“암살자라 하기엔 얼굴이 너무 곱군. 눈에 확 띄어.”
“바바크. 독을 품은 뱀이 화려한 법이야.”
그리고 보통 그런 뱀은 치명적인 맹독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녀가 위험한 인물인지 확인해야 했다.
카일은 바바크와 함께 골목길을 빠져나오려는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
“거기, 아가씨.”
“······뭐야?”
이내 카일의 시선이 회색 후드의 여인으로 향했다.
카일의 예민한 기감이 알리고 있었다.
그녀가 상당한 강자라는 것을.
카일은 조심스럽게 그녀를 떠봤다.
“길 좀 물읍시다.”
“난 이 동네 사람이 아니야.”
“우리의 행선지가 같은 것 같아서.”
“뭐?”
후드 안, 여인의 눈초리가 굳었다.
이에 카일이 나지막이 말했다.
“제이드.”
“······미행한 건가?”
그러자 그녀의 기세가 더욱 사나워졌다.
“왜 찾는 거지. 제이드를.”
“네가 누군지 밝히는 게 우선일 텐데.”
그녀의 기세가 점차 커지자 카일은 확신했다.
저 여인은 분명 살수일 거라고.
여인이 허리춤의 검에 손을 올렸다.
카일 역시 숨을 들이켜며 마나 하트를 달궜다.
등 뒤에서 바바크의 콧바람이 느껴졌다.
“제이드의 친구다.”
“친구?”
“뭐······ 사실 딱 하루의 인연이지만, 친구가 될만한 사이지. 그리고 사내들의 의리상 친구한테 붙은 암수를 그냥 넘길 수는 없잖아?”
“하, 살수라니.”
여인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동시에 눈동자가 카일을 위아래로 훑더니 입을 열었다.
“하루의 인연이라고? 나는 제이드와 적어도 이 주일을 같이 보낸 사이다. 내가 더 친구에 가까울 것 같은데.”
“글쎄, 요즘 살수 집단의 이름들도 그렇더라고. 검은 형제단. 죽음의 친구. 적야의 가족처럼 말이야. 아니면 신분을 밝히지, 그래?”
여인은 한숨을 내쉬고는 카일을 향해 말했다.
“이봐, 뭔가 오해가 있는 모양인데······ 내가 오해를 풀 생각도 시간도 없거든? 그러니······.”
여인이 등에 메인 대검을 꺼내 들었다.
“다쳐도 책임 안 질 거다.”
“이쪽도 마찬가지다. 제이드 쪽에 위해를 가하면 용서할 생각이 없거든.”
그에 카일이 호응하며 검을 뽑아 들었다.
바바크가 몸을 풀며 말했다.
“카일. 놈들이 움직이는군.”
“음습하게 숨어 있는 건 살수들의 특징이지.”
그들이 여인을 살수라고 의심한 이유 중 한 가지.
마을 곳곳에 숨어 있는 녀석들이 그녀의 주위를 따라 이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부단장님.”
아니나 다를까, 똑같은 후드를 뒤집어쓴 이들이 튀어나와 카일과 바바크의 주위를 포위했다.
하나 같이 그 기세가 제법이었다.
“제이드에겐 가지 못할 거다.”
“저 두 놈, 제이드를 캐고 있었다. 제압해서 심문한다.”
카일과 여인이 서로 검을 들었다.
당장이라도 맞붙으려는 일촉즉발의 순간.
쿠우우우웅!
커다란 소리가 저 멀리서 들려왔다.
카일은 격음의 진원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어스름한 새벽의 하늘 위로 솟아오르는 커다란 검은 연기.
그 모습이 마치 화마의 연기가 치솟는 것만 같았다.
“저기는 포이닉스일 텐데?”
수도에서 정체불명의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를 본 바바크가 중얼거렸다.
“카일······ 전투가 시작된 거 아닌가?”
“아니, 뭔가 달라.”
카일은 얼굴을 구긴 채 하늘을 바라보았다.
“저 기운은······.”
마찬가지로 하늘을 바라본 여인이 입술을 씹는 게 아닌가.
“······마기다.”
그녀의 말에 깜짝 놀란 카일이 여인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마기, 라고?”
고개를 든 그녀의 후드 안쪽.
십자가 목걸이가 흔들리는 게 아닌가?
“······교단? 설마 당신들, 성기사단인가?”
문득 카일은 제이드의 병사 시절 일화를 떠올렸다.
마누스와 페르딤에서 해치웠던 마수들과 흑마법사의 소탕.
분명 주신교단에서 명예 실버 크로스 칭호를 받은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자 전혀 염두하지 않았던 하나의 가능성이 떠올랐다.
제이드를 찾는 것이 살수가 아니라 교단이라면?
“이거 아무래도 큰 오해를 하고 있던 것 같은데······.”
카일은 기세를 풀고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나는 카일이다. 아까 말한 대로 제이드의 친구라고 할 수 있지.”
그제야 자신이 크나큰 오해를 했다는 걸 깨달은 카일이 사과하며 검을 집어넣었다.
“저기 보이는 연기가 그쪽도 이쪽도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거 같은데. 성기사단이면 저 연기가 뭔지 감이 잡히는 게 있나?”
카일의 물음에도 여인은 여전히 솟아오르는 연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설마······ 수도 전체를, 제물로?”
거기까지 깨달은 여인은 곧장 검을 집어넣었다.
그녀의 예상이 맞다면 이곳에서 소꿉놀이나 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어정쩡하게 서 있는 카일을 향해 여인이 물었다.
“거기, 가일이라고?”
“카일이다.”
“아무튼. 제이드, 그 녀석과 아는 사이라고 했지?”
여인이 후드를 벗자 오렌지색 머리가 흘러나왔다.
“내 이름은 이네스다. 그리고 주신교단의 성기사지. 제이드의 친구고 이 시점에 제이드를 찾는 거라면······.”
눈살을 구긴 이네스가 카일에게 다가갔다.
“제이드의 옆에 서기 위해서 온 것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