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omemaker of the Dungeon RAW novel - Chapter 205
던전 안의 살림꾼 205화
* * *
희나는 황야를 걷고 있었다. 한쪽 손에는 SSS급 신문지를 돌돌 말아 쥔 채였다.
땅은 메말랐고, 딱딱했다. 걸음마다 모래 먼지가 피어올랐다.
‘이러다 모래 인간이 되어버릴지도 몰라.’
희나는 얼굴을 잔뜩 찡그렸다. 가지고 있던 손수건으로 코와 입을 틀어막았건만, 입안은 모래를 씹은 것처럼 텁텁했다.
‘오빠랑 오색이는 괜찮으려나?’
희나는 몇 시간 전 일을 회상했다.
오색이의 경고와 동시에, 희나는 공격당했다.
‘아니, 공격이라고 하기엔 애매한데…….’
이름도, 정체도 모를 몬스터에 의해 던전 안, 낯선 곳으로 뚝 떨어져 버렸으니까 말이다.
육체적으로 직접적인 상해를 끼치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공격이 아니었고, 혈혈단신으로 황야에 떨어뜨렸다는 관점에서 볼 때는 공격이었다.
이건 천천히 말라 죽으라는 소리나 다름없었으니까.
‘진현 씨가 이런저런 아이템들을 미리 챙겨다 줘서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어.’
희나는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며 조난 키트와 복장을 인벤토리에 구겨 넣게 했던 강진현에게 감사했다.
‘진현 씨는 어디에 있을까?’
강진현을 떠올리니 또 눈가가 시큰했다. 눈을 꾹 감아 눈물을 참았다.
그리고 좀 더 건설적인 생각에 빠져들었다.
‘여긴 대체 어디지? 던전인 건 맞는데, 대체 어떻게 된 던전인 거야?’
희나는 ‘내 집은 어디에’ 스킬을 사용해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겸사겸사 보스 몬스터 위치도 확인하고 싶었고.’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이 던전에서는 희나의 지도 스킬이 먹히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지도가 울렁거려.’
모든 것들이 지도 위에서 제멋대로 떠다녔다. 지도에 표시된 지형지물들은 늘어졌다, 줄어들었다, 비비 꼬이고 난리도 아니었다.
심지어 희나의 위치조차도 계속 바뀌었다.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서 있어도 말이다!
‘멀미 나네.’
희나는 다시 지도 창을 내렸다. 계속 바라보기에는 눈도 아프고 어지러웠기 때문이다.
‘대체 여긴 무슨 던전인 걸까? 굉장히 오래 걸었는데, 몬스터는 전혀 보이지 않았어. 던전 안에 보스 외에 몬스터가 있긴 한 건가? 내가 갑자기 순간 이동됐던 것, 지도가 일그러지는 건 또 뭐고? 던전의 특성인 걸까? 아니면 보스의 능력?’
수십 가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올랐다.
‘아마 이곳 몬스터의 능력이 공간이랑 관련된 게 아닐까? 공간 이동도 그렇고, 일그러지는 지도도 그렇고.’
희나는 끙, 신음하며 제자리에 쪼그려 앉았다. 내리 걷기만 했더니 다리와 발바닥이 아팠다.
‘몇 시간이나 걸었을까? 한 시간? 아니면 한나절?’
시계가 없었기 때문에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는 전혀 감이 안 잡혔다.
뻐근한 종아리를 통통 두드리며 희나는 작게 중얼거렸다.
“진현 씨도 이런 곳에서 헤매고 있겠지. 그것도 석 달 동안이나…….”
어느새 토벌대가 던전에 진입한 지는 석 달이 지났고, 본부에서는 슬슬 다음 토벌대를 투입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나오고 있었다…….
석 달이면 가지고 들어간 식량도 다 떨어지고 남을 만한 시간이었으니까.
……희나는 여기까지 생각하다, 고개를 거세게 가로저었다.
“아니야. 살아 있을 거야. 진현 씨는 강해. 아무 일 없이 무사히 돌아오겠다고 했어.”
나쁜 생각은 금물이었다.
거기다 지금 당장은 이런 우울한 생각에 빠져 있어선 안 됐다.
희나, 그 자신의 생존에 집중해야 했다.
희나는 실전 경험도 거의 없는 데다, 강진현보다 훨씬 약했다.
‘아니, 훨씬 약한 수준도 아니지. 형편없을 정도로, 비교할 수 없이 약해.’
강진현이 살아 돌아온다고 해도, 여기서 희나가 살아남지 못하면 모든 건 말짱 꽝이었다.
“그나저나, 당장은 어떻게 해야 할까?”
던전 지도 스킬이 먹히지 않는 게 치명타였다. 이래서야 ‘홈 스위트 홈’을 찾아갈 수가 없었다.
아니면 보스 몬스터를 처리하고, 게이트를 통해 던전을 탈출해야 하는데…….
‘……내가 그걸 할 수 있을 리가 없지.’
희나는 현실을 잘 알고 있었다.
앞서 들어간 토벌대도 아직 하지 못한 걸, 희나가 할 수 있을 리가.
“그래도 어떻게든 살 수 있을 거야!”
희나는 애써 기운을 차리려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엉덩이를 팡팡 털고, 앞으로 걸었다.
‘걷다 보면 뭐라도 나오겠지.’
행운 수치 하나는 기깔 나게 높은 희나 아닌가!
희망을 잃지 않고, 무엇이든 최선을 다하다 보면 행운이 찾아오곤 했으니까. 이번에도 그러기를 바랄 수밖에.
씩씩하게 걷고 있는데, 등 뒤에서 대뜸 목소리가 들려왔다.
“넌 누구야?”
“꺅!”
희나는 깜짝 놀라 그대로 제자리에 주저앉을 뻔했다. 보통이었다면 주먹이 날아갔을 텐데, 이번에는 너무 놀라 다리에 힘이 풀렸다.
“안녕.”
자욱한 모래바람 때문일까? 희나는 바로 직전까지 근처에 사람이 있다는 사실조차 눈치채지 못했다.
상대는 헌터 차림을 한 남자였다.
“흠. 역시 처음 보는 얼굴인데.”
……아니, 남자가 맞을까? 남자라기에는 목소리 톤이 조금 높은 것 같기도 했다.
‘생김새도 여자인지, 남자인지 구분이 잘 안 가네.’
한편, 희나가 상대를 재빨리 훑은 것처럼 상대도 희나를 이리저리 살폈다.
“흐음. 어떻게 사람이 갑자기 생겨날 수 있지? 딱히 대단한 능력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데…… 시스템 오류인가?”
그, 혹은 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혼자 웅얼웅얼, 뭔가를 중얼거렸다.
그사이 희나는 벌렁거리는 심장을 가라앉히고, 상대를 불렀다.
“저기요!”
“어? 왜?”
“일행은 어디 있나요?”
마음이 급하니 본론부터 튀어나왔다.
“일행?”
“토벌대로 함께 들어간 다른 헌터들이요.”
다급한 물음에 헌터는 천천히 눈알을 굴렸다.
“음……. 다들 흩어져 있어.”
“1000명이 넘는데, 그 사람들이 전부 뿔뿔이 흩어졌다고요? 어쩌다가?”
“그러게. 어쩌다가 그렇게 됐을까.”
시큰둥한 대꾸에 희나는 한숨을 폭 내쉬었다.
“하긴. 그걸 알았으면 흩어지지도 않았을 테고, 여길 계속 헤매고 있을 리도 없겠죠. 그나저나 석 달이나 지났는데, 멀쩡해 보이네요. 다른 사람들도 헌터님처럼 상태가 괜찮을까요?”
“아직은 괜찮을걸. 죽으면 곤란하잖아.”
조금 핀트가 나간 것 같은 대답에 희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절대 죽으면 안 되죠.”
“어. 그래, 그래.”
헌터는 이해한다는 듯 적당히 손을 휘저으며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자기 옆자리를 툭툭 두드렸다.
“그나저나 이리 와서 앉아 봐. 이야기 좀 나누자고. 누구랑 대화를 나눠 본 지가 너무 오래됐어.”
희나는 조심스럽게 자리에 쪼그려 앉았다.
“사람들이랑 헤어진 지 오래됐나 봐요?”
“음. 다들 너무 사나워서 대화를 나눌 만한 상태가 아니었지.”
“혹시 한국에서 온 강진현이라는 S급 헌터를 아시나요?”
“이런 식으로 직접 얼굴을 마주하고 나누는 대화야말로 정말 특별한 건데 말이야.”
“……제 말을 듣고는 있나요?”
“어. 듣고 있어. 그러니 너도 내 말을 들으렴.”
헌터는 정말로 사람이 고팠던 모양인지, 대화란 이름의 혼잣말을 마구 이어 갔다.
‘앞에 사람만 앉혀 놓으면 대화를 하는 거라고 생각하나 봐.’
희나는 ‘황야에 홀로 너무 오래 있다 보니 정신이 살짝 이상해진 게 아닌가요?’ 하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올 때까지 헌터의 수다를 꾸욱 참았다.
그리고 마침내.
인내심이 다해 갈 때쯤, 헌터가 물었다.
“나한테 뭐 묻고 싶은 거 있어?”
“네.”
희나는 재빨리 물었다.
“다른 헌터들은 어떻게 됐는지 정말로, 전혀 모르는 거예요?”
“계속 그 인간들 소식만 물어보네. 그 사람들이랑 무슨 사이라도 돼?”
“네. 거기에 소중한 사람들이 있거든요.”
강진현, 우민아, 그리고 청룡 길드원들 등등…… 떠오르는 얼굴들이 많았다.
헌터는 희나의 근심 어린 얼굴을 유심히 지켜보다, 문득 물었다.
“그래서 여기까지 찾아온 건가? 그…… 이상한 방법으로?”
“예?”
“모른 척하기는. 너, 갑자기 허공에서 나타났잖아.”
“그게 무슨…….”
등골을 따라 짜르르 소름이 돋았다. 갑작스러운 위화감에 희나는 떨리는 눈동자로 헌터를 올려다보았다.
‘……아니, 이 사람. 헌터는 맞긴 할까?’
불쑥 든 생각에 벌떡 일어섰다.
“뭐, 뭐예요?”
그대로 한 걸음 주춤 물러나자, 상대는 희나가 물러난 만큼 다가왔다. 여전히 태연자약한 표정이었다.
“특이한 능력이 있는 것 같아서 직접 대화 좀 해 보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평범하네. ……겁도 많아 보이고.”
“가, 가까이 다가오면…… 때릴 거야!”
“아닌가? 폭력적인 건가?”
희나는 신문지를 움켜잡고 경고했으나, 그, 혹은 그녀는 위협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아무튼, 나랑 얘기나 계속 하지 그래?”
“그, 그, 그러고 싶지 않아요!”
그 모습이 이상할 정도로 섬뜩했으므로 희나는 곧바로 공격 스킬을 시전했다.
“이런 건 별로 도움이 안 될걸.”
분명히 상대를 향해 신문지를 휘둘렀다고 생각했는데, 다음 순간 허공을 내리치고 있었다.
그러기를 수 회.
모든 공격은 헛수고로 돌아갔다.
무언가, 무형의 힘이 공격을 뒤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희나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이 사람, 정체가 뭐지?’
그 순간, 상대가 어깨를 으쓱했다.
“좀 특별한 줄 알았는데, 너도 결국 다른 놈들과 비슷한 것 같네. 쓸데없는 공격만 날리고…… 재미없어졌어.”
순식간에 상대의 얼굴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채 반응조차 하기 전에, 희나의 이마에 손가락이 닿았다.
“나는 이제 여길 구경해야겠어.”
단조로운 목소리와 함께 시야가 뚝, 암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