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RAW novel - chapter 243
다른 성배기사들이 반발할 것이고 당장 불카누스부터 불복하겠지.
카리나는 일단 용의 심장이 문제다. 사자심장을 이식하기 위해선 일단 용의 심장을 차기 드라고니아 대공에게 물려줘야 한다.
레온처럼 두 심장 모두를 잠시간 유지할 수는 있겠지만, 그건 레온이라 가능했던 일.
용의 심장을 물려줄 후계를 낳는다면 모를까······.
‘젠장, 그건 못 봐줄 거 같군.’
딸아이와 혼인할 사내자식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 레온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그런 꼬라지는 보기가 싫었다.
‘그렇다면······.’
“어머, 폐하. 어쩐 일이세요? 오늘은 흑룡의 교육일이 아닌데요?”
레온은 베아트리체의 공방으로 마련된 호실 앞에서 그녀를 만났다.
“아, 비체. 어디 마실 나가시오?”
“네, 실험을 위해서요.”
레온은 베아트리체가 들고 있는 큼직한 보따리를 보았다. 그녀의 가녀린 손으로 들기에는 다소 언밸런스했으나 신관장인 그녀에게 힘이 모자랄 일은 없겠지.
무엇보다 뛰어난 마술사인 그녀가 무거운 짐 정도로 힘들어할 일은 없다.
“이리 주시오. 짐이 들어드리리다.”
“그러지 않으셔도 되는데······.”
“레이디의 짐을 들어주는 것은 신사의 도리요.”
“그러시다면야······.”
레온은 베아트리체의 짐을 들어보곤 그것에서 익숙한 기운을 느꼈다.
“용의 기운이군.”
“네, 흑룡에게서 수험료로 받은 것을 가공해봤답니다.”
레온과 베아트리체는 함께 흑룡을 가르치고 있었다.
레온은 육탄전을, 베아트리체는 마력 운용법을.
황금과 계약의 신 드라고니아는 용을 인간이 가르친다는 상황을 탐탁지 않아 했지만, 이 시대에 제 자손을 가르칠 만한 이가 극소수라는 것을 인정했다.
베아트리체는 겸사겸사 흑룡에게서 수험료를 받았는데, 그것이 용의 사소한 부산물들이다.
“이를 들고 어디로 가실 생각이시오?”
“전에 제가 부탁드렸던 게이트가 있지요? 남포 근처에요.”
“흠, 제법 멀군. 스탈리온.”
레온은 빛의 신수를 불러들였다. 하얀 천마는 오직 사자심왕만을 제 등에 태우는 고고한 맹수지만, 베아트리체까진 의외로 순순히 등을 내어준다.
“짐의 손을 잡으시오.”
레온은 스탈리온의 안장에 올라타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기꺼이.”
* * * *
한반도 중부 상공. 서해안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북한 제2의 도시인 남포시에 도착한다.
인구가 백만 명에 육박하는 북한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지만, 평양이 악마들의 수중에 떨어져 멸망했듯 남포시도 별다를 게 없는 상황이었다.
사람이 없어 황량해진 이 도시를 차지한 건 목포에서부터 쭉 올라와 해안가를 점령한 끼끼룩족이다.
남포시는 엄밀히 따지면 현재 논의되고 있는 평양 특별자치시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지금 북한은 무주공산이나 마찬가지.
도미네이터급 잠수항모와 함께 북상하며 북한 해군을 섬멸하고 빈 도시를 점령한 끼끼룩족들은 자연스레 이곳을 자신의 도시처럼 차지했다.
그들도 엄밀히 따지면 남한 주민이니 남한 입장에서도 쫓아내기 애매한 상황.
그런 와중에 남포시 해안에 게이트가 출몰했고, 베아트리체는 게이트를 클리어 하려던 끼끼룩족 공략대에게 일시중지를 전달했다.
“실험을 위해서라곤 들었소만, 정확히 어떤 계획이오?”
남포시 해안가에 출몰한 게이트. 그 모래밭 위에서 베아트리체의 작업을 돕던 레온이 물었다.
“드래곤 피어에 대해 익히 알고 계시지요?”
“용이 자연스레 뿜어내는 기운이지.”
“네, 전에 게이트를 통해 드라고니아 제국으로 향할 적에 느꼈었지요. 강력한 신앙심의 가호를 받는다면 모를까 어지간한 헌터들도 꼼짝을 못하더군요.”
그것은 단지 존재하는 것만으로 피어내는 강자의 기운이다. 존재의 격이 높은 존재일수록 하등한 존재를 짓누르는 힘이 존재한다.
그것은 단지 강함만으로 저항할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비슷한 강자인 S급 헌터나 성배기사단원들이 같은 상위존재를 목도해도 달리 반응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용의 비늘이나 부산물들은 용에게서 떨어져도 여전히 그 기운이 남더군요. 그것도 상당히 강력한 기운이요.”
“그렇소?”
말뚝을 박던 레온은 문득 주변에 끼끼룩족이 보이지 않음을 떠올렸다.
막 착지했을 때만 해도 레온에게 인사를 하러 오던 그들이었지만, 무언가 꺼림칙한 듯 서둘러 자리를 피한 것이다.
“용린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을 피한 것인가.”
“예, 신들의 가호를 받고 있는 그들도 용의 기운은 피하고 싶은 것이니까요. 그렇다면······.”
몬스터들은 어떨까요?
그런 질문에 레온은 눈이 번뜩였다.
“몬스터들이 용의 기운을 피할 것이다?”
“바로 그렇답니다. 그래서 게이트의 공략을 중단해달라 한 것이에요.”
베아트리체는 일부러 던전 브레이크를 일으키고 그곳에서 튀어나온 몬스터들이 용의 기운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려던 것이다.
“재밌는 방법이로군. 짐의 치세에서는 생각지 못한 발상일세.”
그것도 당연했다. 레온의 치세에서 용은 쓰러뜨려야 할 적이었으니까.
하지만 만신전에 드라고니아가 입신하고 공존을 택한 이상, 앞으로 탄생할 용족들 또한 라이온하트와 공존하는 길을 택해야 한다.
그렇다면 용의 비늘 같은 것이야 얼마든지 얻을 수 있을 터.
베아트리체는 그러한 미래를 예감하고 용의 힘을 활용할 방법을 연구한 것이다.
“그럼 던전 브레이크도 얼마 남지 않았을 테니 이곳에서 시간을 좀 보내볼까요?”
“모처럼 바다에 왔으니 놀이라도 하시겠소?”
“그건··· 삼가고 싶군요. 맨살을 드러내는 건 역시··· 부끄럽습니다.”
수영복을 그리 질색하던 베아트리체였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짐이 말한 건 뱃놀이오만?”
“아······.”
레온의 능글맞은 대답에 베아트리체의 볼에 붉은 꽃이 피었다. 하지만 이내 부드럽게 화제를 돌리는 베아트리체.
“그나저나 플르께서 폐하를 말려달라는 이야기를 하셨는데, 무슨 이야기 중이셨나요?”
“아~ 별것 아니오. 짐의 뒤를 이을 사자심왕을 토로해본 것이니. 비체 그대도 강력한 후보라오.”
“······!”
레온이 가볍게 꺼낸 말이었지만, 베아트리체는 화들짝 놀라 덥석 레온의 손을 붙잡았다.
“안 돼요.”
“······비체?”
베아트리체는 슬픈 눈망울로 그를 올려다본다.
꼭. 꼬옥.
가녀린 손이 혹여나 도망칠 것처럼 힘을 주고 있었다.
떠날 예정
“안 돼요.”
“······비체?”
베아트리체의 슬픈 시선에 레온은 잠시 멈칫거렸다.
“폐하. 만신의 대리인이시며 용감한 기사왕이시자 나의 기사들을 축복하시고 타락의 굴레에서 저를 구원하신 분.”
그녀가 쥔 레온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가녀린 손에 어찌 이토록 강한 힘이 나올까 싶을 정도였다.
“저희들을 저버리고 어디로 가시려고 그러시는 건가요? 부디··· 부디 저를 두고 어디론가 떠나시려 하지 마세요.”
“······.”
레온은 베아트리체가 무엇을 그리 걱정하고 슬퍼했는지 깨달았다.
사자심왕의 후계를 논한다는 것. 그것은 레온이 신들의 대리인 자리를 내놓고 그들과 함께할 만찬장으로 향한다는 것이다.
숱한 성배 수호자들과 기사들이 전장에서 스러지지 않는다면 자신의 후계자를 낙점하고 승천했으니까.
“삼백 년일세, 비체.”
레온은 마냥 공수표를 남발할 수 없었다. 레온은 충분히 오랜 삶을 살았고, 평범한 인간이었다면 진즉 윤회를 거듭하거나 만찬장으로 향했을 노인이다.
“본디 인간의 수명은 길지 않아 언젠가 떠날 운명인 것을 신들의 사랑으로 불로의 삶을 살았네.”
설령 그 삶이 끝없는 투쟁과 싸움의 반복이었을지언정 레온은 다른 이들보다 부유했고, 존경받았으며, 명예로운 자리에 있었다.
그는 삶에 대한 미련이 없었다. 300년이면 충분히 살았다 여기기에, 위대한 선조와 기사들이 그랬던 것처럼 신들의 만찬장으로 향할 날을 기대했다.
“그럼 갈 때, 저도 데려가 주세요! 저도 여신의 신관장이니 자격은 충분할 것입니다!”
“비체··· 그대는 아직 어려. 숱한 세월을 그저 반복해오며 살지 않았는가. 그대는 천천히 있다 오시게.”
“폐하께서 계시지 않는 삶은 상상해본 적도 없어요. 그러니 부디······.”
레온은 말문이 막혔다.
그는 이별은 언젠가 찾아오는 것임을 알았다.
그는 언제나 다른 이들을 떠나보냈기에. 언제나 가족과 친구, 동료들을 떠나보낸 이별의 피해자였다.
그리하여 자신이 그 가해자가 될 것이라는 걸 실감하니 감히 무슨 말을 꺼낼 수 있을까.
오랫동안, 그는 침묵에 잠길 수밖에 없었다.
* * * *
실험은 성공적이었다.
베아트리체가 설치한 용린의 결계석은 던전 브레이크를 일으키며 쏟아져나온 몬스터들을 틀어막았다.
그들은 감히 결계석의 범위 바깥으로 나오기 두려워 했으며 좁은 반경 안에서 미어터질 때가 되어서야 겨우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결국 몬스터들은 레온과 베아트리체의 손에 일소되었고 용의 기운이 서린 부산물에 대한 실험은 1차 성공인 셈이다.
“그럼 먼저 들어가보시오. 짐은 이 주변을 살필 생각이니.”
“예······.”
류경호텔 앞에 착륙한 레온은 실험의 성공에도 힘없이 등을 보이는 베아트리체를 한동안 지켜보았다.
여신의 옥음. 레온은 평소와 달리 힘이 빠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나의 여신이시여.”
[네 여신은 언제나 나의 기사가 안쓰럽다.]“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여신의 옥음에 레온은 난처했다. 여신을 슬프게 했다는 것조차 신도인 제 잘못이기에.
[네가 울프릭 드라고니아의 품을 떠나 방랑의 길을 걷던 걸 기억한다. 네 여신은 줄곧 너의 여정을 지켜보았지.]그것이 열일곱 즈음이었을 것이다.
성배기사 고르딕 경에게 직접 훈련받은 청년기의 레온은 곧장 수행의 여정을 떠났다.
여정에 오른지 수년 여만에 배알한 여신의 존안은 어찌나 아름답고 신성하였는지.
레온은 자신이 멍하니 여신을 올려다본 불경을 기억한다.
[너는 나의 퀘스트를 받아 그것을 훌륭히 수행했고, 가장 어린 성배기사가 되었지.]“분에 맞지 않은 영광이었나이다.”
[허나, 그것은 어쩌면 나의 실수였을지도 모르겠구나.]“······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레온의 인생은 끝없는 싸움의 연속이었다.
열일곱에 수행길에 올라 성배기사가 되고, 사자심왕이 되어 짐승들과, 야만족과 악마들과 싸웠다.
제국의 폭주와 배신을 맞아 오랜 동맹에게 칼을 겨눠야 했고, 같은 인간도 수없이 피를 묻혀야만 했다.
끝내 가족도, 친구도, 신하와 백성들도 떠나보내 홀로 남았어도 그는 전쟁을 계속했던 것이다.
그의 300년 인생은 밀도 높은 전쟁의 역사로만 가득 차 있다.
[레온아. 네 여신은, 우리 만신은 네게 갚을 수 없는 빚을 졌도다. 사라져갈 낙원의 모든 영혼들이 너의 굳건함에 존속할 수 있었지.]여신은 희미한 형태로 모습을 드러내 레온의 뺨을 어루만졌다. 오래도록 지켜본 제 아이는 너무도 빨리 행복을 잊었고, 빈자리를 강철과 피의 기억으로만 채웠다.
[만신은 네 행복을 기원한다. 우리의 만찬장 상석에 너의 자리는 언제나 마련되었으나 그 날이 오는 것은 멀고도 먼 이야기였으면 하구나.]레온의 삶이 행복하지 않았냐고 한다면, 레온은 분명 고개를 저었을 것이다.
일생일대의 사랑을 했고, 아이를 낳았으며, 존경할 수 있는 친구들과 동료들을 사귀었다.
많은 이들이 우러러볼 권좌에 앉았고, 영광을 드높였고 명예로운 삶을 살았으니까.
“제가 불경하던 시절을 기억하십니까?”
레온이 처음부터 맹신을 가졌던 건 아니다.
그는 젊은 나이에 요절해 알지 못하는 세계에 환생한 새 영혼이었고, 로망과 판타지를 품으며 기사도를 추구하던 젊은이였다.
거기에 신앙은 없었고, 단지 판타지에 심취한 젊은이가 있었을 뿐이다.
실재하는 신을 눈앞에서 마주하고 생각을 달리 고쳤을 뿐.
“이 세계의 성서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보지 않고 믿는 자가 참된 믿음이로다.”
[틀린 말은 아니구나.]“그런 의미에서 보면 저는 참된 신앙인은 아니었던 셈이지 않습니까.”
[그 누가 너에게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느냐.]여신의 관대함에 레온은 감사히 웃어넘겼다.
“저는 신들께서 생각하시는 것보다 타산적인 사람입니다. 신들의 실재함을 알았을 때, 낙원의 존재에 그토록 심장을 쿵쾅거리던 여느 신도와 다를 것 없지요.”
낙원, 여느 성서에도 묘사되듯 천당과 같은 존재.
영원한 행복과 풍족함이 가득한 세상. 레온도 그 세상을 꿈꾸었다.
“여느 신도와 기사들이 그러하듯, 제게도 만찬장에 대한 숙원이 있습니다. 그것이 신들과 마주하고 싶은 욕심도 있습니다만······.”
성배기사들은 그 자체로 늙지 않는 불로의 성자다.
젊음과 강함을 그가 죽을 때까지 독점할 수 있는 축복받은 존재.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배기사들은 자신들의 후임이 결정되면 별다른 망설임 없이 승천한다.
“우리들은 우리가 사랑한 사람들과는 다른 시간을 살지요. 영원한 젊음은 우리가 사랑했던 이들 사이에 섞이기엔 이질적이기까지 합니다.”
레온은 쓴웃음을 지었다. 하다못해 일생의 반려가 자신과 같은 성인이었다면··· 제 친구들은 어떤가.
철의 성배기사가 되었던 안토크를 제외하면 군라르도 어느덧 노쇠한 나무가 되어 세상을 느릿하게 바라보았고, 길두스는 손자 자랑을 하는 할아버지가 되었다.
많은 걸 물려준 아버지는 제 손녀와 다를 바 없이 젊은 아들에게 천천히 오라는 말을 하며 떠났고, 갓난아기일적 제 연애 문제는 없겠다 싶었던 미모의 어머니는 어느덧 주름진 피부의 노부인이 되어 아버지의 뒤를 따랐다.
자식이 부모를 묻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 반대가 되면 어찌할까?
“카리나는 참으로 효녀이지요. 제 아비보다 먼저 죽지는 않을 테니 말입니다.”
레온은 카리나가 자신보다 먼저 죽을까 두려웠다. 제 손으로 아이의 무덤을 파고 흙을 덮게 될까 몸서리쳤다.
그 아이가 어둠과 복수의 성배기사가 되었다는 걸 알았을 땐, 크나큰 실망을 하기도 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다행인 일이다.
적어도 레온이 그녀의 무덤을 팔 일은 사라지지 않았는가.
“사람은 갈 때가 되면 가야 하는 법입니다. 저는 너무 오래 살았지요.”
[······.]레온은 말없이 거리를 걸었다.
악마 군주는 격퇴했다. 아직 놈들의 세력이 남아있는 만큼, 언젠가 마계로 향해 놈들을 격멸할 생각이지만, 그마저도 끝나고 나면 어찌할까.
의무를 다해낸 레온은 그저 끝이 다가올 다음 날을 기다릴 뿐이다.
“으음? 폐하. 어째 청승맞은 얼굴을 하고 계시오.”
그러다 문득 만난 붉은 갑주의 기사. 그는 만신창이가 된 하리와 수호, 재혁을 데리고 막 돌아온 모양이다.
“훈련은 잘 되고 있나?”
“흐흠, 뭐, 그럭적럭이외다.”
불카누스의 훈련방식을 아는 레온은 세 사람을 조금 동정했다. 하지만 그의 훈련법은 정석적으로 통한다.
실제로 발탄 불타는 검 기사단은 불카누스의 훈련을 통과한 자들만 입단할 수 있었으니까.
“폐하, 술이나 한잔 마시지 않겠소?”
갑작스럽지만, 그리 이상할 것도 없는 제안. 레온은 별 말없이 이를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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