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101)
제 102화
* * *
헛웃음이 터져 나온다.
뒤통수 맞은 기분까지는 아닌데, 조금 당황스럽다고 해야 하나.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미 흑마법에 걸린 18명의 교수진은 그 자리에서 멍한 표정으로 앉아 있을 뿐 그 어떤 반응도 하지 않았다.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기네스.
풀 네임이 뭔지는 모른다.
물어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냥 자기 이름을 기네스라고 소개해서 그냥 기네스인 줄 알고 있었다.
그의 코앞에 선 뒤, 슬며시 팔짱을 꼈다.
어느 부분에서 거수를 한 건지 모르겠다.
그래서 그걸 좀 알아보려 한다.
“손 내려.”
기네스가 손을 내렸다.
첫 번째, 위원회에 속해 있냐는 질문을 다시 던졌다.
기네스는 손을 들지 않았다.
두 번째, 툴칸 제국의 첩자였냐는 질문에도 기네스는 손을 들지 않았다.
세 번째.
“누군가의 명령으로 잭 발란티에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포섭하기 위해 이 자리에 왔다. 거수. ”
기네스가 멍한 표정으로 손을 들어 올린다.
내가 이렇게 보여도 단어 선택을 나름 신중하게 하는 편이다.
포섭이라는 단어는 일반적으로 종속 관계를 뜻한다.
그렇기에, 나를 포섭하려 한다는 것은 최소 일정 한계선 이상의 배경과 힘을 가진 이들만이 가능하다.
그럼 누굴까.
누가 나를 포섭하려는 걸까.
지금 왕국의 상황에서 여론을 뒤흔들고, 진실은 감추고, 포섭이라는 단어를 끄집어 낼 수 있는 배경과 힘을 가진 존재.
짐작 가는 게 없지는 않다.
“롬멜 총장이냐?”
“예.”
“포섭이 전부일 리는 없고…….”
잠시 말을 멈췄다.
내가 별장에서 지낸 기간은 한 달이 채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 기간 동안 기네스가 보고 들은 것은 생각 외로 많다.
물론, 내가 바보도 아니고, 그래도 나름 몇 가지 조심했던 게 있었는데, 그게 바로 데스 나이트들로 말론 공작의 영지와 왕성을 습격한 사실, 그리고 셀이 드래곤이라는 사실.
적어도 이 두 가지 사실을 기네스가 있는 곳에서 말했던 적은 없다.
그런데 조금 궁금해지네.
“롬멜 총장은 어디까지 알고 있냐?”
“잭 발란티에가 하루 만에 2서클에서 5서클로 성장한 것과, 10서클 마법 일루전을 맨땅에 지속 마법진으로 형성할 수 있을 정도의 말도 안 되는 재능과 알 수 없는 배경을 가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알라베스 모험가 길드의 전 어센블 지부장이었던 아베이루와 모종의 거래를 했다는 것과 다니엘 일행을 죽였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주변 상황으로 넘어가면.”
“넘어가면?”
“타노스는 잭 발란티에에게 충성을 맹세했으며 개인적인 수련을 받고 있다는 것과, 샬롯이 사실은 인간이 아니라 뱀파이어라는 것. 그리고…….”
“그리고?”
기네스의 말이 이어질수록 입가에 웃음이 새겨진다.
왠지 느낌상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기네스가 가장 마지막에 말하려는 게 무엇인지.
약 1초가 지나고, 기네스의 입이 열린다.
“셀이 드래곤이라는 것까지 알고 있습니다.”
“푸하-”
결국 터져 나오고 말았다.
와 우리 영감님 대단하네.
다 알고 있었던 거야?
조금 상황이 우습기까지 했다.
분명 앞서 말했듯 나는 셀이 드래곤이라는 사실을 굳이 숨기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떠벌리고 다니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기네스에게 단 한 번도 셀이 드래곤이라고 말했던 적은 없다.
그런데 기네스는 셀이 드래곤인 걸 알고 있다.
아마 샬롯이나 셀, 그리고 타노스가 내가 모르는 사이 자기들끼리 모여서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했고, 그게 기네스의 귀로 흘러갔다는 정황이 이야기를 짜맞추기엔 적당하다.
뭐, 퍼질 수도 있고, 알려질 수도 있다.
퍼지면 퍼지는 거고, 알려지면 알려지는 거지.
단지 귀찮아질 게 뻔해서 조심했던 거지, 그 외의 이유는 없다.
전에도 말했지만, 나한테는 별로 대수롭지 않은 일이다.
셀을 노리고 오는 놈?
잡아 죽이면 된다.
한 놈이 아니고, 그 수가 백을 넘어 천에 이르고, 만에 이른다?
상관없다.
전부 죽이면 되니까.
그러고 보니, 위원회에 속해 있냐고 물었을 뿐, 알고 있냐고는 묻지 않았다.
생각난 김에 바로 물어봤다.
“위원회에 대해 알고 있냐?”
내 질문에 대한 기네스의 답은.
“예.”
짝-!
살이 맞부딪치는 소리가 식당에 울려 퍼졌다.
기네스의 뺨을 후려치거나 그런 게 아니라, 손뼉을 친 거다.
짝짝짝-!
“대단하네. 대단해.”
나도 나름 한 연기 한다고 생각했는데, 기네스나 영감님에 비하면 새 발의 피였다.
박수가 안 터져 나오는 게 이상하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기네스를 열정적인 요리사라고만 생각했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식자재를 정리하고, 메뉴를 짜고, 단 한 번의 불평도 하지 않는다.
거기다 내가 별장에서 머무는 기간 중, 기네스가 나한테 했던 질문들은 전부가 이러했다.
토마토 주스보다 요즘 남부 지역에서 망고가 유행입니다. 망고 주스 한번 드셔 보시겠습니까.
최근에 면 요리를 새로 개발했는데 한번 드셔 보시겠습니까.
동쪽 지역에서 유목민들이 먹는다는 ‘찌개’라는 게 있는데 한번 드셔 보시겠습니까.
등등.
전부 요리에 대한 질문들이었고, 사생활에 대한 것들은 일절 질문하지 않았다.
그래서 대단하다.
내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내 앞에서 표정 관리를 완벽하게 했다는 이야기잖아.
“요리사…… 그래, 고정관념이지. 대부분 정보원들은 밖에서 뛰어다닐 거라는 고정관념. 왕성에서 경력을 쌓고, 공작가에서 수석 요리사로 일했을 정도의 경력이면 솜씨 하나는 완벽할 테니 그 솜씨로 고위급 귀족들에게 요리를 선보일 수 있을 테고…… 그 말은 접근성이 용이하다는 뜻이니, 정보를 얻어내는 것도 쉽겠네. 보니까 입도 무거운 거 같고…… 이야, 기네스, 대단하네.”
진심이다.
셀이 드래곤이라는 걸 알았을 때, 기네스는 얼마나 놀랐을까.
그런데 그걸 내색하지 않았다는 건 그 자체로 대단한 일이다.
이제 보니 오총사 그 머저리들은 그냥 눈속임이었고 진짜는 기네스였네.
이야……
늙은 생강이 맵다는데, 진짜였어.
그렇게 감탄하고 있을 때, 어깨에 앉아 있던 스승님이 말했다.
[셀이 드래곤인 걸 알고 있는데도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계속해서 너와 너의 주변에 대한 정보를 모으는 형태…… 대략, 두 가지가 떠오르는구나.]“제 약점을 잡으려는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제 뒤에 누가 있는지 그 실체를 파악하려 하는 것일 수도 있죠. 둘 중 하나거나, 둘 다일 수도 있고.”
처음 나를 만났을 때의 아베이루는 내 뒤에 어떤 ‘배후’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게 아니라는 걸 녀석은 알게 되었지만, 지금 내 뒤에 있는 교관들과 롬멜 총장은 모른다.
뿐이랴, 그 뒤의 있는 이들 모두가 모른다.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고, 천재 중의 천재라고 합리화를 한다 해도 내 힘은 상식의 선을 아득히 뛰어넘었다.
합리적으로 생각해 보면 ‘왜 그런 행동을 할까.’를 알아보는 게 아니라, ‘어떻게 그런 힘을 가지게 된 걸까.’를 알아봐야 한다.
롬멜 총장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거고, 눈앞의 교관들도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을 거다.
서로 알고 있는 정보는 다르지만 하는 행동이 같다?
심플하고 좋네.
그보다.
“조만간 우리 영감님이랑 찐하게 대화 한번 해야겠습니다.”
스승님이 묘한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의외구나, 당장이라도 뛰쳐나가 검을 휘두를 줄 알았는데.]“에이, 제가 무슨 꼬맹이인 줄 아십니까. 섭섭합니다. 스승님.”
이번에는 스승님이 피식 웃는다.
“일단, 눈앞에 닥친 일부터 끝내야겠습니다.”
고개를 돌려보자, 여전히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18명의 교수진이 보인다.
* * *
기네스에 대한 일은 일단 옆으로 미뤄두고, 교수진들과 다시 대화를 나눴다.
정확히는 일방적인 질문이었지만, 그래도 오고 가는 말이 있으니 대화라고 쳐야지.
결론만 말하면 눈앞의 교관들은 깨끗했다.
아카데미로 오기 전 범죄를 저지른 적도 없고, 횡령을 한 적도, 뒷주머니를 채운 적도 없다.
중요한 건, 그레이 학부장이었다.
“위원회에 대해 알고 계신다고?”
“정확히 ‘위원회’라는 단체명은 처음 들어봅니다. 그저 ‘비밀 조직’이라고만 알고 있었을 뿐입니다.”
“계속 해 봐.”
“툴칸 제국의 황태자가 새끼 드래곤을 입수했고, 그 드래곤으로 불로불사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그 연구에 협조한다면 연구의 결과인 불로불사를 받아, 선택받은 이들만이 사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했습니다.”
“누가?”
“마자르 테슬란, 즉 국왕입니다.”
어깨를 으쓱하고, 가볍게 턱짓하자 그레이 학부장이 말을 잇는다.
“선택받은 자들만의 ‘비밀 조직’에 속하고 싶다면 툴칸 제국의 황태자, 즉 강경파에게 줄을 대고 그의 명령에 따르라는 이야기였지만 저는…….”
“거절했고?”
“예.”
“왜? 오래 살면 좋잖아.”
그레이 시어런이 맹한 표정으로 답했다.
“고작 하루를 산다 해도, 혹은 고작 일 년을 산다 해도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어떤 미래를 만들어 가느냐가 단순히 오래 사는 것보다 더 의미가 있고,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오…….”
[호오…….]표정은 맹했지만, 그 말에는 진심이 담겨져 있었다.
나와 스승님이 동시에 감탄했다.
이게, 현혹 마법이라서 그렇지, 아니었다면 엄청 분위기를 잡고 했을 법한 이야긴데.
재미있네.
그레이 학부장.
확실히 괜찮은 사람인 것 같다.
진심으로.
“또한 강경파를 신뢰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의 말은 결국 자국을 버리라는 이야기입니다. 솔직히 국가는 버려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국가에 속한 백성들은 버릴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죄가 없으니까. 군인으로서 백성을 버린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입니다.”
그레이 학부장은, 적어도 내 눈에는 신념이 확고한 장군처럼 보였다.
“고작해야 오래 사는 것 따위에 넘어가는 왕국의 귀족들에게도 환멸을 느꼈고, 그 뜻에 동조하면 총사령관의 자리에 복직시켜 주겠다는 국왕의 말에는 좌절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저는 뜻을 정했습니다.”
계속 이어지는 말을 조용히 들었다.
그런데…… 마지막에 묘한 말이 있네?
“뜻을, 정해?”
“왕국은 썩었습니다. 귀족의 책무란 백성을 지키는 것. 왕의 책무란 국가를 지키는 것. 마자르 테슬란은 강경파의 책략에 넘어가 국가를 버릴 생각을 하고 있었으며, 그에 동조한 귀족들은 지켜야 할 백성을 버리고 자기들의 안위를 선택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뜻을 따르는 이들을 모았고, 규합했으며, 조직했습니다.”
이거 이야기가 점점 심각해진다.
“그래서?”
“아카데미는 교육의 장터입니다. 하지만 그 장터가 일부 귀족들의 놀이터로 전락한 지는 오래됐습니다. 관례라는 이유로, 전부터 행해졌다는 단순한 이유로 귀족들은 평민들에게 제대로 된 교육의 기회를 주지 않습니다. 평민 중에서 귀족들보다 뛰어난 이들이 넘쳐나는데도 그 웃기지도 않는 관례로 그들의 재능이 빛을 보기도 전에 사그라집니다. 그걸 바꾸려 합니다. 아카데미의 썩은 뿌리를 도려내고자 합니다. 아카데미의 변화는 시작에 불과합니다.”
자리에 앉아 반쯤 남아 있는 토마토 주스를 다시 한 모금 마셨다.
시작에 불과하다…….
마지막으로 그레이 학부장이 내뱉은 그 말의 뉘앙스가 참 묘하다.
“빼먹은 게 있는 거 같은데, 너의 ‘뜻’이라는 게 뭐지?”
그레이 학부장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현혹에 빠져 멍한 눈동자가 나를 응시한다.
천천히, 그의 입이 열렸다.
“악역이 되어서라도 국가의 뿌리를 갉아먹는 이들 전부를 죽이는 것입니다. 설령, 그 대상이 국왕일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