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102)
제 103화
슬쩍 고개만 돌려 어깨에 앉아 있는 스승님을 바라보았다.
마침, 스승님도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본다.
와 씨.
아카데미를 정리하는 일이 뭐 이렇게 갑자기 커지냐.
[국가를 버리려는 이들과, 지키려는 이들 모두가 등장했구나. 그리고 너처럼 방관하는 이들도 등장했고.]내 말이 그거다.
갑작스럽게 커지는 스케일이었지만 그냥 신경 쓰지 않았다.
다시 고개를 돌려 그레이 학부장을 바라보았다.
결국.
“반란을 일으키겠다는 거네?”
“그렇습니다.”
“왜? 왕이 되려고?”
“아닙니다.”
눈꼬리가 살짝 꿈틀했다.
“왜? 왕 되면 좋잖아. 왕국에 있는 모든 것이 너의 손에 들어오는 건데. 그래도 싫어?”
“저는 왕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왜?”
“저는 군인입니다. 백성을 지키는 군인. 왕의 자리는 저에게 맞지 않습니다.”
잔을 내려놓고, 다시 팔짱을 꼈다.
아까부터 궁금했던 건데.
“내가 롬멜 총장이랑 별 사이가 아니라는 건 알고 있지?”
“예.”
테슬란 타임지가 롬멜 총장이 내 배후에 있고, 내가 벌인 모든 일들이 사실은 롬멜 총장이 벌인 일이라고 아무리 떠들어 대도 아는 사람은 아는 만큼 보이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만큼 보이는 법이다.
그레이 학부장은 알고 있는 거다.
롬멜 총장과 내가 각별한 사이가 아니라는 것을.
“롬멜 총장…… 아니지, 정확히 어센블 공작가는 친국왕파를 표방하고 있으니, 반란까지 생각하고 있는 네가 그쪽이랑 얽힐 일은 없을 테고, 그래서 나한테 온 거네?”
“그렇습니다.”
“방패니 뭐니 해도, 결국 나를 포섭하려는 의도가 첫 번째였을 텐데…… 지금 생각은?”
“무조건 죽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슬쩍 웃고 말았다.
“그게 쉽겠냐. 세상 그 누구도 못한 일인데. 그럼 차선책은?”
“어떻게 해서든 한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게 정석이지.
죽이지 못할 놈이면 무조건 한편이 되어야지.
이 부분은 좀 넘어가고.
“반란을 획책한다……. 보니까 단순히 국가를 뒤집는다기보다는 죽일 놈들만 죽인다는 것처럼 들리는데, 맞아?”
“예. 맞습니다.”
이것 봐라.
그렇다면.
“표적을 확실하게 정했다는 건데…… 그 말은, 위원회에 속한 놈들의 명단을 확보하고 있다…… 이렇게 봐도 무방한 거 같은데?”
그레이 학부장이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저는 위원회에 속한 테슬란의 귀족들이 누구인지 전부 알고 있습니다.”
전생에서 그레이 학부장은 분명 파업을 주도했다.
그 결과, 학부장 자리에서 쫓겨났고, 하루 만에 야산에서 변사체로 발견된다.
즉 암살당했다는 뜻인데, 단순히 파업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암살을 당한다?
말도 안 된다.
그레이 시어런은 그래도 총사령관 출신이고, 배경이 후작가다.
거기다 숨기고 있었을 뿐 서클도 9서클이다.
다른 국가에서라면 몰라도, 이곳 테슬란 왕국에서 9서클은 희귀하다.
쉽게 암살할 수 없다는 말이다.
전에도 말했지만 벌어지는 모든 일에는 합리적인 이유가 있어야 한다.
그레이 학부장은 위원회의 존재를 알고 있으며, 위원회에 속한 이들의 명단을 확보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을 죽이려 한다.
그래서, 죽은 거다.
근위 기사단이 나섰을 수도 있고, 강경파의 마스터가 나섰을 수도 있다.
그러다 마침 궁금한 게 하나 더 떠올랐다.
“아카데미를 정리하는 것이 시작에 불과하다는 네 말은 정리하면 ‘곧’ 반란을 일으키겠다…… 이 말인 거 같은데. 이것도 맞아?”
“예. 맞습니다. 저희는 아카데미를 정리하는 그 즉시 여세를 몰아 위원회에 속한 이들을 전부 죽일 것입니다.”
조금 의아한 게 있었다.
“만약 너희의 ‘거사’가 성공한다면, 그 이후에는? 왕도 죽고 귀족도 죽으면 국가는 혼란스러워질거고 피해는 고스란히 백성들이 볼 텐데, 그 뒷일, 생각 안 해봤어?”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정말 짧은 대답이었고, 짧은 문장이었지만, 저거면 충분했다.
그 안에 담긴 뉘앙스.
속 뜻.
나는 파악했다.
슬쩍 고개만 돌려 스승님을 바라보았다.
진지한 눈으로 그레이 학부장을 응시하는 스승님은 꽤나 만족하고 있는 모양새였다.
스승님도 파악했나보다.
뒷일에 대한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
반란을 일으키지만 그게 성공할 가능성은 없다.
성공할 가능성이 없으니 그 뒷일을 생각할 필요는 없다.
그저 마지막을 불사르는 불꽃처럼.
생을 마감하고, 세상에 그런 흔적을 남기겠다.
스스로를 희생해 많은 이들에게 본보기가 되겠다.
그레이 학부장은.
반란이 성공할 확률을 0%로 잡고 있었으며, 자신의 죽음을 기정사실화했다.
그런 뜻이다.
저 짧은 문장에 담긴 속뜻은.
“마음에 드네.”
진심이다.
정말로, 마음에 든다.
전생에서 그레이 학부장이 파업을 주도했던 건 마침 테슬란 왕국이 내전으로 불완전한 상태에 놓여 있었을 시기였다.
그때랑 지금, 분위기를 비교해 보면 얼추 비슷하다.
내전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나’라는 존재가 왕국에 유성처럼 떨어져 시선을 집중시켰고 아카데미에서 학살을 저지르며 분위기를 어지럽혔다.
왕국이 겉으로는 평온해 보여도 내부적으로는 혼란스러운 상태라는 거다.
거기에 토벌단도 복귀하지 않은 상황이다.
성공 여부를 둘째치고서라도, 반란을 일으키기에 이만한 상황도 없다.
즉, 이만한 상황이기에 그레이 학부장은 한두 명 정도는 더 죽일 수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죽일 놈을 최대한 죽이고 가야 남길 흔적이 흔적답게 남는 법이니까.
어깨를 으쓱했다.
이 정도면 충분한 대화를 나눴고 납득도 했다.
슬며시 팔을 휘젓자.
쩌엉-!
마법이 해제된다.
“아…… 아아?”
“어…… 어?”
“이게 대체…….”
마법에 걸렸던 이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내뱉는다.
멍한 표정, 그리고 당황한 표정.
복잡한 표정.
제각각 다양하다.
18명, 아니, 창가 쪽에 있는 기네스까지 총 19명.
그들은 방금 벌어진 일을 모두 알고 있다.
조금 자세하게 말하면, 내가 무슨 질문을 했고 자기들이 무슨 답을 했는지, 그 모든 내용을 이들은 전부 알고 있다.
내가 건 흑마법은 세뇌가 아니고, 그냥 현혹일 뿐이니까.
나는 그대로 팔짱을 끼고 기다렸다.
모두가 진정되기를.
“…….”
잔뜩 굳어져 있는 그레이 학부장이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 내 눈을 물끄러미 응시한다.
미약한 살기가 감도는 걸 보니, 아까 그레이 학부장이 말한 대로 이 자리에서 나를 어떻게 해보려는 것 같은데…….
그냥 무시했다.
1분.
풀고 있던 팔짱을 풀고, 팔걸이에 팔을 댄 채 턱을 괬다.
2분.
고개만 돌려 학부장의 눈을 바라보았다.
마치 눈싸움하듯, 우리는 서로의 눈을 계속 응시했다.
3분.
내 눈매가 살짝 휘고, 입가에는 자연스러운 미소가 새겨진다.
4분.
그레이 학부장의 눈에서 살기가 사라진다.
반대로 내 웃음은 짙어졌다.
아주.
“현명한 선택이야.”
“…….”
“들을 건 다 들었고, 의심은 사라졌는데, 몇 가지 궁금한 게 있어. 대답해 줄 거지?”
“……그걸 왜 지금 물어보시는 겁니까?”
턱을 괸 채로 고개만 살짝 옆으로 기울였다.
“그냥, 제대로 듣고 싶어서.”
“……말씀하시지요.”
“병력은 얼마나 모았냐?”
“…….”
“왜? 대답 안 하게?”
“……517 특수대대와 수색대대 출신의 1200여 명과 마나 유저들로만 이루어진 특수부대 850명입니다.”
거짓인지 진실인지는 모르겠다.
그냥 진실이라고 치지 뭐.
“그중 고서클 마나 유저의 숫자는?”
“7서클 3명, 9서클 1명입니다.”
무심결에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납득을 했다고 해야 할까.
확실히.
“실패할 만도 하네.”
“……뭐……?”
의문을 표한 것은 그레이 학부장이 아니었다.
특공대대 대대장 출신, 미카엘 카트루.
당황해하는 그의 모습에 오히려 내가 당황했다.
“그 반응은 뭐야? 설마, 너는 성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어?”
“…….”
와, 진짜야?
이거 심각하네.
침묵을 지키는 그레이 학부장을 힐끗 쳐다보고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애들이 아직 현실을 모르는 모양인데.
“그 정도 전력이면 잔챙이 몇 명은 죽일 수 있겠지. 그건 확실해. 그런데 뱀의 머리 정도 되는 국왕? 절대 안 될 걸, 말론 공작? 말도 안 되지.”
그레이 학부장은 굳어진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앞서 말했듯, 그레이 학부장은 안다.
저 인원으로는 뭘 해도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걸.
그 밑에 교관들은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지만 거기까지인 것 같다.
굳이 말하면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혼동하고 있다고 해야 할까.
조금만.
이해를 도와줘야 할 듯.
“직접 본 적은 없는데, 말론 공작의 양아들 이름이 슈샤이어였나?”
“맞습니다.”
“걔 마스터잖아. 걔 혼자만 있어도 네가 말한 전력은 전부 썰려 나갈 텐데, 말론 공작은 어떻게 죽이게?”
내가 워낙 규격 외의 괴물이라서 부각되지 않는 것도 있지만 마스터의 영역에서 신체를 재구성한 이들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들을 괜히 초인이라 부르는 게 아니다.
마법 자체를 부숴 버릴 수 있는 내게 있어서 마스터 마법사들은 초인이든 아니든 상대가 되지 않는 게 당연하지만, 마스터 검사의 경우 이야기가 매우 달라진다.
마스터 검사 혼자서 9서클 마나 유저 10명을 상대할 수 있고, 목숨까지 걸면 20명까지도 상대할 수 있다.
괜히 고서클 유저와 마스터 유저를 나눠서 부르는 게 아니다.
그건 나도 알고, 그레이 학부장도 안다.
“하지만 슈샤이어는 지금 토벌단의 총사령관으로 마수의 숲에 있는 상황입니다.”
“내가 말하려고 하는 게 무슨 뜻인지 몰라?”
“…….”
“너희가 데리고 있는 전력은 고작해야 어디 시골 촌구석의 백작가 기사단 정도의 전력밖에 안 돼. 그 전력으로 뭘 할 수 있는데? 너희 목표가 고작해야 자작가나 남작가 같은 잔챙이들이라면 모르겠는데, 아니잖아. 국왕도 죽일 거라며? 그런데 그 정도 병력이면 근위 기사단의 2군만 출동해도 모래성처럼 부서질걸? 그리고 말론 공작가? 그쪽은 기사단이 나설 필요도 없어. 암부만 전부 출동해도 하루면 전부 썰려 나간다에 내 손모가지랑 내 발모가지를 건다.”
“…….”
그렇게 우리 특공대대 대대장 출신 미카엘 카트루님께서는 조용히 주둥이를 닫으셨다.
슬며시 고개를 돌려 그레이 학부장을 바라보았다.
“궁금한 게 있는데, 위원회의 명단을 확보하고 있으면 그 반대 세력을 규합할 수도 있는 거 아니냐? 규합, 안 해 봤어?”
“해 봤습니다.”
“해 봤는데 병력이 왜 그래?”
“…….”
그레이 학부장은 대답이 없었다.
설마.
아니지?
“외면 당했나 보네. 그것도 아니면 너의 뜻에 합류시킬 정도로 전력이 뛰어난 이들이 없었거나. 둘 중 뭐야?”
“……둘 다입니다.”
음…….
“반란죄가 구족을 멸하는 거였지 아마?”
“……예.”
“이미 불로불사로 뭉친 위원회 소속의 귀족들은 한 배를 탄 사이고, 그 사이를 비집는다는 건 쉽지 않은 일 수준이 아니라 거의 불가능한 수준이었을 테니…… 병력이 적을 만도 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