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103)
제 104화
대충 짐작이 맞았다.
어떤 일을 진행할 때, 그 일을 성공시키기 위해 이것저것 계획을 짜고 전력도 만들고 차근차근 하나하나 준비를 한다.
이게 정석이고 이게 성공으로 가는 기본 매뉴얼이자, 빼놓을 수 없는 절차다.
하지만 그런 준비도 하지 못했다는 건, 간단하지.
그런 준비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이미 왕국의 상황이 엉망이었다는 거잖아.
충분히 이해는 간다.
그런데.
“다른 곳은 내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발란티에 후작가 정도면 합류시킬 만도 하지 않나?”
정말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다.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발란티에 후작님께서는 이 대륙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전혀 모르고 있거든.
그런 사람이라면 장기짝으로 쓸 법하잖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내게, 그레이 학부장이 말했다.
“……발란티에 후작은 지금 왕국 내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쪽이랑은 다르게.”
“그러니까 장기짝으로 쓰기에 딱 좋잖아?”
“모르시는 겁니까?”
“뭘?”
그레이 학부장이 묘한 표정으로 나를 응시하더니, 나도 모르는 사실을 알려 주었다.
“맨티스 백작가. 그쪽이 위원회에 속해 있습니다.”
“와…… 진짜?”
“예. 그리고 맨티스 백작이 발란티에 후작을 뒤에서 조종하고 있지요. 사교계에서 알 만한 이들은 다 아는 사실인데, 모르고 계셨군요.”
우리 발란티에 후작님을 장기짝으로 쓴다는 생각을 나만 한 게 아니었다.
이미 맨티스 백작가가 실행에 옮기고 있었다니.
“이야, 진짜 개판이었네 이거.”
너털웃음을 터트리자, 모든 교수진이 그런 나를 복잡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그래, 맨티스는 어차피 정리할 거니까 그렇다고 치고.
고개를 돌려, 입을 열려던 그때.
굳은 표정의 그레이 학부장이 내게 물었다.
“당신은 어디에 속해 있으신 겁니까?”
익숙한 질문이네.
“총장도 나한테 그렇게 물었는데, 그때 한 대답을 그대로 들려줄게. 나는 중립이야.”
“중립…… 그 정도의 힘을 가지고도 중립……?”
턱을 괴고 있던 팔을 슬며시 풀었다.
“중립이긴 한데, 툴칸 제국을 싫어하는 중립이라고 해야겠지?”
“그게 무슨 중립입니까.”
“왜? 받아들이는 사람 마음이지. 내가 중립이라 생각하면 중립인 거지.”
그레이 학부장이 짧게 심호흡하더니, 질문을 던졌다.
“어디까지 알고 계시는 겁니까?”
“음…… 마자르 테슬란이랑 말론 공작이 확실하게 위원회에 속해 있다는 거, 그리고 롬멜 총장이랑 어센블 공작 둘 중 한 명 이상이 위원회에 속해 있다는 거. 그 외에는 몰라.”
“…….”
“그런데 보면 볼수록 아깝네.”
“……뭐가 말입니까.”
“너.”
“…….”
“버리긴 아까워. 왕의 자리에 욕심도 없고, 신념도 뚜렷한 거 같고, 무엇보다 자기 목숨을 바쳐서라도 신념을 관철시키는 의지…… 다 마음에 드네.”
그레이 학부장을 제외한 교수진들은 이 대화에 끼어들지 않았다.
정확히는 못했다고 해야겠지.
검지에 마나를 모은 채, 탁자를 두어 번 두드렸다.
툭-툭-
그 소리에 담긴 의념이 별장 전체로 뻗어 나간다.
“우리 거래 하나 할까?”
“……거래 말씀이십니까?”
“네가 가지고 있는 그 명단, 나는 그게 탐나거든.”
“아까 그 마법을 펼치셨을 때 가져오라고 했으면 당장이라도 제가 가져왔을 텐데요.”
“맞아. 그때 내가 시켰으면 너는 군말 없이 그걸 가져왔을 거야. 그런데 앞서 말했듯 나는 네가 상당히 마음에 들거든, 그래서인지 몰라도, 강탈은 하고 싶지가 않네.”
“…….”
그때였다.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려온다.
내가 괜히 탁자를 두드린 게 아니다.
별장에 있을 우리 데스 나이트를 이리로 불러오려고 두드린 거다.
말없이 아까처럼 검지에 마나를 모은 뒤 탁자를 한 번 툭 치자.
끼이익-
문이 열린다.
모습을 드러낸 두 기의 데스 나이트.
이름은 돌쇠와 마당쇠.
둘을 바라보며 손가락을 까딱하자, 두 녀석이 내 양옆에 정렬한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카데미를 정리하는 것까지는 도와줄게. 단, 일 처리는 내 방식대로 한다.”
“방식이라 하시면……?”
“너희가 모았다던 그 증거들, 거기에서 강간이니 이런 건 전부 빼.”
“……그럼 피해자와 가해자를 명확하게 구분할 수가 없습니다.”
피식 웃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
“…….”
그레이 학부장의 눈을, 아까처럼 물끄러미 응시했다.
“손에 똥물을 묻히기 싫은 이가 똥물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 하네. 확실히 해. 악당이 되고 싶은 거냐 아니면 영웅이 되고 싶은 거냐?”
“…….”
“과정, 절차, 이딴 걸 하나하나 따지는 게 네가 하려는 일이냐?”
“…….”
“마음이 흔들리면 행동도 흔들리지. 왜? 막상 악당이 되려니까 내키지 않아?”
그레이 학부장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무슨 말이 하고 싶으신 겁니까?”
먼저 시간을 확인했다.
현재 시간 08시 26분.
“내 옆에 두 놈 보이지?”
“……예.”
“둘 다 데스 나이트거든. 말론 공작가의 암부 출신이기도 하고.”
그레이 학부장을 비롯해, 교수진들의 대다수가 그 자리에서 펄떡 뛰었다.
“말론…… 공작가의 암부?”
“그 암살자들?”
“조직이 전부 모이면 왕도 암살이 가능하다는 그 암부……?”
뭔 감탄을 저렇게 설명충처럼 하는 건지 모르겠다.
“말했잖아. 나는 툴칸 제국을 적대하는 중립이라고. 데스 나이트가 뭔지는 굳이 말 안 해도 알지? 흑마법 펼치는 거 봤으니까.”
그레이 학부장이 고개를 끄덕인다.
“얘네 둘 너한테 붙여 줄게. 가서 군사학부랑 행정학부 정리해.”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거래라고 하셨던 것 같은데요.”
“거래 맞아. 이 일이 끝나면 너는 왜 이게 거래인지 알게 될 거다.”
그레이 학부장이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을 짓는다.
무시하고, 뒤쪽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방금 한 말 들었지?”
((예 주군.))
“우리 학부장님 좀 도와 드려라. 여기 이 교관님들도 죽지 않게 보호해 주고.”
(충!)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여전히 앉아 있는 그레이 학부장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이런 말이 갑자기 떠오르네. 힘없는 자는 자유를 갈구하고, 힘 있는 사람만이 진정한 의미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꽤 재미있는 말이지?”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 주며, 여전히 창가 쪽에서 굳은 표정으로 서 있는 기네스에게 다가갔다.
내가 가까이 다가갈수록, 안 그래도 굳어있는 기네스의 표정이 이젠 마치 극에 이른 석화 마법에 당한 것처럼 완전히, 아주 단단하게 굳어져갔다.
* * *
그레이 학부장을 비롯한 교수진들 전원이 데스 나이트들과 함께 식당을 벗어났다.
식당에 남은 나와 기네스.
나는 기네스의 앞에 선 채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당연히 아무런 감정 변화도 보이지 않았는데, 기네스는 달랐다.
침을 꿀꺽 삼키고,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흐르고, 그의 등은 축축해졌다.
앞서 말했듯 현혹 마법은 세뇌 마법과 다르다.
대상자가 마법에 빠진 그 순간부터 마법에서 풀려나는 순간까지, 모든 기억이 대상자에게 남아 있다.
기네스가 정보원인 건 조금 의외긴 한데, 뭐 어쩌겠어.
이미 벌어진 일인데.
긴 침묵 끝에, 먼저 입을 열었다.
“오늘 점심이랑 저녁 메뉴는 뭐냐?”
“……예?”
“메뉴가 뭐냐니까?”
“……점심은 칠리소스를 곁들인 스테이크와 오믈렛. 저녁은 채소 스튜와 완두콩을 곁들인 피시앤칩스로 준비하려 합니다.”
“그래? 피시앤칩스는 처음 먹어 보는 요린데…… 기대되네.”
그대로 몸을 돌려 식당 밖으로 나가려는 나를, 기네스가 붙잡았다.
“잠시…… 잠시만요.”
고개를 돌렸다.
침을 꿀꺽 삼킨 기네스가 내 눈을 응시하며 말했다.
“왜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는 겁니까?”
“뭐를?”
“……저는 정보원입니다. 공자님의 밑에서 표정을 연기했고 정보를 얻었으며 샬롯과 셀, 그리고 타노스에 대한 모든 정보를 롬멜 총장님에게 건넸습니다. 그런 제게 왜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는 겁니까.”
정말 궁금해서 물어보는 표정인데, 답해 주지 못할 것도 없다.
“내가 처음 이 별장에 왔을 때 뭐라고 했는지 기억 나냐?”
“……예.”
분명 오총사와 기네스를 처음 만나던 그 날, 나는 이들에게 말했다.
요리에 독 넣지 말고, 감시할 거면 열심히 감시하라고.
“네가 요리에 독을 넣은 것도 아니고, 말 그대로 열심히 감시했을 뿐이잖아?”
“…….”
“그럼 된 거지. 뭐가 더 필요해?”
기네스가 할 말을 잃은 듯 멍한 표정을 짓는다.
그런데, 사실이잖아.
기네스가 내 뒤통수를 친 것도 아니고, 생각 외로 정보 수집 능력이 뛰어났을 뿐인데 그거 가지고 뭐라 하는 건 우습지.
처음 기네스에게 말했던 것처럼 감시할 거면 열심히 하라고 한 건 나였으니까.
물론. 기네스랑 비슷한 행동을 했던 오총사는 쓸모가 없고 살려 둘 필요가 없었기에 죽인 거지만, 기네스는 아니잖아.
요리 잘해, 입도 무거워. 표정 관리도 잘해.
오총사랑 다른 기네스는 당연히 다른 대우를 받아야 한다.
이렇게.
“기네스야.”
“예…… 예?”
그간 내 앞에서 표정 관리를 하던 기네스의 모습은 없었다.
지나치게 당황한 그 모습이 너무 사실적이어서 나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너, 나랑 같이 일할 생각 없냐?”
“……예?”
앞서 말했듯, 오총사랑 다른 기네스는 다른 대우를 받아야 한다.
“요리도 하고, 정보원도 겸하고, 고위급 귀족들을 여기서 접대하면서 몰래 정보도 취득하고…… 그걸 또 전달하고…… 그렇게 살면 안 피곤해?”
“…….”
“다른 건 몰라도 요리하는 걸 가장 좋아하는 거 같은데, 심장 보니까 마나 유저는 아니었던 거 같고, 너도 이루고 싶은 게 있을 거 아니야. 왜 그렇게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면서 살아가냐? 나이도 꽤 있을 텐데.”
기네스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흔들리고 있는 건 확실하다.
아무리 봐도, 기네스는 정보 수집 능력이 뛰어나긴 해도 그건 부가적인 능력일 뿐이다.
기네스는 요리사다.
어딜 봐도 그냥 요리사로 살고 싶은 사람.
그래서 죽이지 않는 거다.
내 눈에는 그게 보이니까.
“외줄타기 같은 인생 말고, 네가 진짜 하고 싶었던 일이 있었을 거 아니야. 내가 다른 건 몰라도, 네가 요리를 정말 좋아한다는 건 알거든. 그런 생각 안 들어? 너무 피곤하다…… 이런 건 내가 원했던 삶이 아닌데…… 그런 거.”
“저…… 저는…….”
“그간 이 별장에서 셀이랑 샬롯, 타노스를 지켜보며 정보를 취득해 온 너라면 알 수 있잖아. 내가 다른 놈들이랑 많이 다르다는 거. 요리하는 게 즐거우면 요리만 하게 해 줄게. 원하면 요리 학교 같은 것도 만들어 줄 수 있고. 알잖아? 나 돈 많이 번 거. 거기다 그 실력도 버리긴 아깝잖아. 후학도 양성하고 그래야지. 안 그래?”
기네스가 멍한 표정을 짓는다.
마치, 이런 말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는 것처럼.
픽 웃고는 그대로 몸을 돌렸다.
밖으로 나가려는 나를.
이번에도 기네스가 붙잡는다.
“저…….”
“왜 또?”
“……조금만, 고민해 봐도 되겠습니까?”
어깨를 으쓱했다.
“시간 많으니까. 충분히 고민해 봐.”
“……예.”
“그리고.”
“예?”
“아까 그레이 학부장한테 했던 말, 기억나지?”
귓가에 속삭이긴 했지만, 솔직히 목소리를 조금 크게 낸 감이 없지는 않아서 아마 들을 놈들은 다 들었을 거다.
“……힘없는 자는 자유를 갈구하고, 힘 있는 사람만이 진정한 의미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그 말씀이라면 기억하고 있습니다.”
식당 문에 손을 올렸다.
“그 말에서 조금 덧붙여 줘야 하는 말이 있는데, 뭔지 알아?”
“글쎄요.”
“힘이 없는 자는 힘이 있는 자에게 몸을 의탁하면 적어도 자유로울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어.”
나는 쥐고 있던 문고리를 돌렸다.
끼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식당 문이 열린다.
“기회는 올 때 잡는 게 좋지. 그러니까 기억해 둬.”
그 말만 남긴 채 나는 자연스럽게 식당을 벗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