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161)
제 162화
* * *
끝났다.
이걸 뭐라고 해야 할까.
내 발목을 붙잡고 있는 작은 고리?
발을 휘저으면 끊어지는 고리지만 그래도 끊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그런 고리를 나는 끊었다.
아마 이런 걸 천륜이라고 하는 것 같은데, 그냥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 내 기분은.
그냥.
후련했거든.
그거면 된 거잖아.
실라리온을 허공에 가볍게 털어 내자 핏물이 씻겨 내려간다.
그렇게 계단을 내려오자, 한 남자가 나를 기다리는 게 보인다.
아베이루.
그리고 그 뒤로, 약 100미터 정도의 거리에서 발만 동동 굴리고 있는 론.
일단 아베이루한테 다가갔다.
“고생하셨습니다.”
무슨 대화가 오갔는지, 안에서 구체적으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아베이루도 모를 거다.
그냥, 결과만 알 뿐.
실라리온을 건네주자, 녀석이 두 손으로 공손히 받는다.
그때, 멀리 있던 론이 이쪽으로 뛰어왔다.
“도련님!”
“왜?”
평소와 다름없어 보이는 내 말투가 론은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나 보다.
“……괜찮으십니까?”
“당연히 괜찮지. 이게 뭔 큰일이라고.”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은 확실한데.
내가 별일이 아닌 것처럼 말하니, 론도 약간 혼란스럽나 보다.
정말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은 건가?
그런 의구심이 표정에 완전히 드러나 있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하랴.
그대로 고개만 돌렸다.
“아베이루.”
“예, 주군.”
“안에 들어가면 시체 하나 있을 거야. 양팔이 잘리고 심장 뚫려 있는.”
내 말에 론은 그 자리에서 움찔 몸을 떨었고, 아베이루는 평소처럼 담담한 태도를 유지했다.
하지만 그 담담한 태도는 이어지는 내 말에 완전히 무너졌다.
“그거, 가져다가 뒷산에 버려.”
“……예?”
“전에 양아치 몇 놈 죽이고 뒷산에 파묻었다매? 거기에 같이 묻든지, 아니면 그냥 뒷산에 버려 놓고 들개들 먹이로 주든지.”
잠시 멍한 표정을 짓고 있던 아베이루가, 고개를 끄덕인다.
“뒷산에, 버리겠습니다.”
그렇게 아베이루가 사라졌고, 론과 나만 남았다.
“……진심이십니까?”
론은 심정이 생각보다 복잡한가 보다.
“그럼 진심이지. 왜?”
“……그래도 아버님, 아니십니까?”
웃고 말았다.
“난 셀의 부모를 죽였어.”
“…….”
“죽이고 어떻게 했는지 알아? 시체도 찾지 못하게 불태워 버렸어. 뼈, 가죽, 피,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그냥 세상에서 지워 버린 건데, 그런 내가 발란티에 후작한테 차등을 둬야 해?”
“…….”
“성대한 장례를 치러 주거나 하는 거, 못 할 짓이잖아. 그렇게 하고 싶은 생각도 없고, 하고 싶지도 않아. 그리고.”
잠시 말을 멈췄다.
“그런 장례를 받을 정도의 인간은 아니었어. 효수해서 성벽에 걸 생각도 하고 있었는데, 그냥 참은 거야. 거기다가.”
걸음을 옮겨 론의 어깨에 가볍게 손을 올렸다.
“나는 발란티에 후작, 단 한 순간도 아버지라고 생각해 본 적 없어. 나를 죽이려고 한 놈인데, 아버지? 론.”
“……예, 도련님.”
“사람 웃기는 재주가 생각보다 뛰어난데, 하인 그만두고 코미디언 같은 거 해 볼 생각 없어?”
진담인지, 상황을 넘기려는 가벼운 조크인지, 론은 이번에도 헷갈려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게 무슨 상관이야.
이미 일은 벌어졌고, 나는 그 일을 후회하지도 않으며 오히려 후련하다고 느끼고 있는데.
“이제 누나를 묶는 족쇄는 사라졌어. 그거면 충분하잖아?”
“도련님…….”
“전에도 말했지만, 론은 누나 곁에 있어 줘. 똥물 안에 들어가 있는 내 곁에 있다가 냄새 배기면 안 되잖아. 누나도, 론도.”
그 말만 남기고 론을 스쳐 지나갔다.
그렇게 다섯 걸음 걸었을까.
“도련님!”
론의 외침에 고개를 돌렸다.
“후회, 안 하십니까?”
꽤 의미가 깊은 말이다.
후작을 죽인 걸 후회하냐고 묻는 건지, 아니면 자기를 누나 옆에 붙여 두는 걸 후회하는 건지.
그런데 내 직감상 전자인 것 같다.
그래서 이번에는 실소니, 작은 웃음이니, 피식이니 그딴 게 아니라.
아주, 환하게 웃었다.
“후회? 그딴 거 안 해.”
왜냐면.
전생에서 아주 지랄맞게 후회했거든.
* * *
모든 일은 생각보다 깔끔하게 정리됐다.
발란티에 후작의 죽음.
후작 부인의 죽음.
현재까지 두 사실은 후작가 내부에만 알려진 상태였다.
하지만 머지않은 미래에 영지민들도 그 사실을 전부 알게 될 것이다.
그건 타의가 되었건 자의가 되었건 의미가 없었다.
그냥 자연스러운 흐름이니까.
그렇기에, 나는 아베이루에게 말했다.
그때 알게 되나 지금 알게 되나 별 상관 없으니까, 그냥 지금 영지민들에게 알리라고.
그리고 이런 말도 덧붙였다.
굳이 명분이니 이딴 거 따지려고 있지도 않은 사실 같은 거 집어넣지 말고, 그냥 사실 그대로를 전하라고.
그래서 아베이루는 숨기지 않았다.
막내인 잭 발란티에는 아버지인 클라크 발란티에를 죽였고, 둘째어머니인 히스테인 발란티에를 죽였다…….
그리고 이틀 뒤 아침.
그러니까 내일.
후작령 광장, 공공 분수대에서 ‘엘리자베스 발란티에’의 후작 즉위식이 열린다는 공문이 영지 곳곳에 뿌려졌다.
본래라면 왕이 직접 공문을 써 내리고, 새로운 후작의 등장을 반기는 등의 온갖 절차가 따라야겠지만 당연히, 무시했다.
왜 그런 걸 신경 써.
그때, 잠자코 계시던 스승님이 물었다.
[독립, 하려는 것이냐?]전에도 말했지만 나는 왕의 눈치나 귀족들의 눈치, 볼 생각 없다.
정말 추호도 없다.
그런데 독립이라…… 생각해 보니까, 나쁘지는 않네.
하지만 좋지도 않다.
왜냐면, 영지를 다스리는 건 우리 누나가 될 테니까.
솔직히 말하면, 누나는 내가 봤을 때 한 영지의 주인으로서의 일을 잘 할 것 같긴 하다.
확실히 잘 할 것 같기는 한데, 문제는 아직 제대로 시작을 안 해봤다는 거.
일종의 적응기라고 해야 할까.
그런 상황에서 갑자기 독립을 하고 온갖 전쟁이 일어나고 그래봐.
우리 누나.
이른 나이에 탈모 걸리면 어떻게 해.
그럼 안 되잖아.
그래서, 이렇게 말했다.
“일단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지켜본다? 무엇을?]“제 개인 욕심 때문에 영지민들이 불안에 떨면, 그건 또 그거 나름대로 문제가 되지 않겠습니까?”
스승님이 작게 웃었다.
[그리 생각하느냐?]어깨를 으쓱했다.
우리 스승님이 꽤 신기한 생물 바라보듯 하는 저 시선, 이제는 익숙해질 만도 한데 이상하게 시간이 지나도 익숙해지지를 않네.
[그나저나, 너의 누이랑 이야기는 해 보았느냐.]이번에는 할 말을 잃었다.
우리 누나.
발란티에 후작이 어떻게 되었는지 듣고 조금 충격을 받은 모양이더라.
내가 클라크 발란티에를 죽일 거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을 거다.
똑똑하니까.
하지만 그 이후.
클라크의 시체를 어떻게 했는지, 그 부분에서 충격을 받은 거다.
장례도 안 치르고 뒷산에 내다버린 그 사실은 확실히 누나가 아니더라도 나름 충격을 받을 만한 일이었다.
론도 그랬고 아베이루도 그랬잖아.
그래서.
“지금도 방에 박혀 있습니다. 하지만.”
[하지만?]“걱정할 필요는 없을 겁니다.”
[이유가 무엇이냐?]자리에서 일어섰다.
“우리 누나, 어떤 사람인지 저는 알거든요.”
스승님이 고개를 갸웃한다.
그런 스승님을 어깨에 두고, 나는 ‘뒷산’으로 향했다.
Chapter 6
날은 어두워졌다.
클라크의 시체가 있는 뒷산.
그리고 그 시체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한 나무 위에, 나는 앉아 있었다.
[왜 여기에서 이러고 있는 것이냐?]날이 어두워졌고.
우리 누나 성격상 딱 지금 시간쯤이면 나름 정리도 했을 거다.
말없이, 고개만 뒤쪽으로 살짝 돌렸다.
나를 따라 스승님도 고개를 돌린다.
그런 우리의 시선에, 망토를 뒤집어쓴 한 인영이 천천히 산을 오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호위도 없고, 시종도 없는.
‘론한테 한 소리 해야 하나.’
후드로 얼굴을 가렸다고 해도 나는 알아볼 수 있다.
저 ‘인영’.
우리 누나다.
스승님도 조용히 우리 누나를 바라보았다.
클라크의 시체 앞에 선 누나가, 쓰고 있던 후드를 뒤로 젖힌다.
검은 머리가 은은하게 빛나고, 그 사이로 두 눈이 총명하게 빛났다.
그 눈에 담긴 감정.
분명 안타까움이다.
시체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누나가, 천천히 깊은 한숨을 터트린다.
“아버님은 죽고, 둘째어머님도 죽었네요.”
운을 뗀 누나가, 잠시 숨을 멈추고는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거 아세요? 두 분을 죽인 게 잭이라는 그 사실을 영지민 모두가 알고 있다는 거요.”
당연히 시체는 말이 없었다.
“잭은 굳이 그 사실을 숨기지 말고 세상에 퍼트리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지금 영지민들 모두가 알아요. 잭이 아버님을 죽였다는 거. 그런데요.”
죽기 직전까지 눈도 감지 못한 클라크의, 부릅떠진 눈이 누나의 눈과 마주했다.
“이상하게, 아버님을 동정하는 이들은 단 한 명도 없더라고요. 왜곡하는 게 아니라, 정말 없었어요. 영지 외곽에서는 불꽃놀이도 벌어졌다고 하더라고요.”
솔직히 말하면, 저기까지는 나도 몰랐다.
불꽃놀이라니.
그건 내일 우리 누나 즉위했을 때 한 번에 해야 되는 거 아니야?
왜 미리 힘을 빼.
그런 내 생각을 짐작이라도 한 듯 스승님이 슬쩍 나를 바라본다.
[…….]“잭이 후작이 되건, 제가 후작이 되건, 적어도 아버님이 하는 것보다는 나을 거라는 여론이 압도적이라는데…… 솔직히, 놀랐어요.”
누나가 천천히 주변에 있는 잡초들을 제거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손수, 마치 검을 잡는 전사처럼 굳은살이 박여 있는 그 두 손이 잡초를 뽑는다.
“조작이 아니라는 그 사실에 더 놀랐고, 아버님은 결국 그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에 더 놀랐어요.”
툭- 툭-
“어머니께서 그러셨거든요. 아버님은 굉장히 불쌍한 사람이라고.”
툭-
“그 말, 이제야 이해가 가요. 그러길래 대체 왜 그러셨던 거예요. 제가 10살 때부터 계속 말씀드렸잖아요. 잭은 작위 같은 것에 관심이 없는 아이라고, 그러니까 제발 욕심 좀 버리고 자식으로 대우해 주라고…….”
툭-!
“어머니가 이런 말씀도 남기셨어요. 아버님과 잭, 둘을 부탁한다고. 그래서 책임감을 다했고 제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일을 했는데…… 아버님은 항상 외면하셨고 저를 어느 가문에 팔아 버릴까에 대한 고민만 하셨죠. 그리고 이제, 아버님이 죽으니까 저는 자유가 되었네요. 망나니라 불리는 사 황자한테 시집갈 일도 없고, 누군가의 입맛에 따라 씨받이가 될 일도 없는, 정말 아이러니해요.”
누나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뽑는 잡초도, 그 이상 뽑지 않았다.
그냥, 입을 다물고 침묵을 지킨다.
그러다, 한마디 내뱉었다.
“저는 다를 거예요.”
누나의 말에는 힘이 실려 있었다.
언젠가 말했었는데, 말에 힘이 실리고, 그게 진화를 거듭하다 보면 언령이 된다.
그 언령을 드래곤도 아닌 인간이 깨우치는 건, 어디까지나 ‘재능’의 영역이었다.
누나는 지금 말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약속하고 있었다.
“저는 절대로 아버님 같은 귀족이 되지 않을 거예요.”
“…….”
“제가 관리하게 되는 울타리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고, 행복을 줄 거예요. 아버님이랑은 다르게요. 그러니까.”
누나는 클라크 발란티에의 뜨여 있는 눈을, 감겨 주려다 잠시 멈칫했다.
그러고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두 눈 뜨고, 지켜보세요. 당신이 버리고, 죽이려고 했던 이가 얼마나 성장하는지, 그리고 발란티에 영지가 어떻게 바뀌어 갈지.”
그 말이 끝이었다.
누나가 조용히 손을 들어 올리고는.
“……[파이어 월].”
화르륵-!
클라크 발란티에의 시체가 재가 될 때까지, 누나는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나무에 앉은 나는 그런 누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고, 내 어깨에 앉은 스승님은 참 신기한 남매구나 하는 생각을 표정으로 말씀하고 계셨다.
음.
전에도 말했지만.
우리 누나.
영지 관리하는 거, 참 잘할 것 같다.
그냥, 그런 느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