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160)
제 161화
그때였다.
후작이.
그답지 않게 부드럽게 웃는다.
“아들아,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냐. 내 편지에 적어 보내지 않았느냐. 후작 자리에서 내려오겠다고, 그런데 그 편지는 어떻게 했느냐? 혹시, 맨티스 백작가로 보낸 것이냐?”
현실을 도피하는 이들이 어떤 모습을 보여 주는지 궁금한 사람이 있다면 눈앞의 클라크 발란티에를 보면 된다.
너무.
전형적인 예시잖아.
콰직-!
오른손에 쥐여 있던 팔걸이가 부서진다.
나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갔나 보다.
기왕 자유로워진 김에 오른손으로 품을 뒤져 편지 한 장을 꺼내 들었다.
그러고는.
파스스-
후작의 눈앞에서 가루로 만들어 버렸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후작은 봤을 거다.
그 편지에 어떤 내용이 적혀 있었는지.
“후레자식이라…… 정말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데, 피가 통했다고 다 같은 가족인가?”
그대로 허리를 펴고,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분노한 발란티에 후작의 얼굴이 보였지만, 역시 신경 쓰이지 않는다.
지금.
이상하게 딱 하나.
묻고 싶은 게 있었다.
“7살 때.”
“……7살?”
“내가 창고에 갇혀 있던 그때, 나는 분명 느꼈거든. 밖에 누군가 있다는걸.”
“…….”
“살려 달라고, 꺼내 달라고 애원했는데, 그놈, 그 자리에서 두세 시간 가까이 가만히 서 있다가 어디론가 사라지더라고.”
나는 그게 맨티스 백작가의 기사 중 한 명이 아닐까 싶었는데.
이거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뭔가 미심쩍다.
그래서 한 가지 가정을 세워 봤다.
나를 굶겨 죽이려고 했던 그때 그놈.
“당신이지?”
별 기대 안 하고 물어본 거였는데, 내 말을 들은 클라크는 아니었나 보다.
그가, 움찔 몸을 떤다.
와.
사람이 이렇게 감정을 숨기는 게 어설퍼서야.
“당신 맞았구나, 당신이었어. 7살 때 나를 죽이려 했고, 10살 때는 페일론한테 맞는 걸 구경만 했고…… 뺨도 때리고 아주.”
환하게, 웃었다.
“대단한 양반이었네.”
“나는……!”
그가 무언가 말하려 하던 그때, 그대로 발을 들어 올리고는.
퍼어억-!
그대로 후작의 복부를 걷어찼다.
“크흑!”
뒤로 벌러덩 넘어져 두어 바퀴를 구르는 후작에게, 천천히 걸어갔다.
“이게 참, 신기한 거 같아.”
쓰러져 있던 후작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사실, 지금 데스 나이트들과는 꽤 거리가 떨어져 있는 편이다.
왜냐면, 이 안으로 들어오면서 녀석들한테 의념을 보냈거든.
이 주변을 완전히 통제하라고.
집무를 보고 있는 원로들은 밖으로 내보내고, 기사들도 내보내고, 그 모든 이들.
이 후작가 본관에 있는 모두를 밖으로 내보내라고 의념을 전했기에, 지금 이 본관에는 나와 후작만이 존재한다.
그러니까.
후작의 입장에서, 14살의 꼬마를 제압하고 인질로 잡을 시간으로는 충분하다는 계산이 설 수도 있다.
내가 아는 후작이면 그런 생각, 충분히 할 만하거든.
아니나 다를까.
“멍청한 놈! 네가 뭐라도 된 줄 아느냐! 네놈을 인질로 삼을 것이다! 고작해야 다른 세력의 힘을 빌려 오는 것밖에…….”
서걱-!
“……어?”
후작의 오른팔이 그대로 하늘로 솟구친다.
허공에 뿌려지는 핏물을, 그는 멍하니 바라만 보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아무리 바보같이 보여도 후작은 나름 고서클 유저다.
그가 자리를 박찬다.
거리는 1m.
그의 남은 왼팔의 근육이 꿈틀거리고.
주먹이 쥐어지며.
겉면에 강기가 새겨지는 그 모습이, 마치 슬로우 마법에라도 걸린 것처럼 매우 천천히 이어진다.
슬쩍 몸을 옆으로 틀었다.
후웅-!
허공을 가르는 후작의 왼 주먹.
그의 당황한 얼굴.
무시하고, 실라리온을 휘둘렀다.
위에서, 아래로.
서걱-!
툭-!
후작의 왼팔이 떨어지고, 핏물이 사방을 적신다.
“……아.”
그대로 발만 들어 후작을 다시 한번 걷어찼다.
뻐억-!
콰앙-!
구석에 처박히는 클라크 발란티에.
그를 향해 아까처럼 천천히 걸었다.
“여전히 착각이 심해.”
저벅저벅.
“다른 세력의 힘?”
“크으…….”
신음을 내뱉는 후작의 코앞에서, 잠시 멈췄다.
“난 그런 거 필요 없어. 다른 세력…… 생각할수록 웃기네. 그럼 이것만 말해 봐. 그 다른 세력, 대체 누구일까? 대체 어떤 세력이라고 생각하는 건데?”
“……툴칸 제국…….”
실소를 터트리고 말았다.
아, 진짜 안 웃으려고 했는데.
“이건 멍청한 건지 뇌가 없는 건지, 툴칸 제국? 걔들이 이런 허접한, 그것도 변방에 있는 후작가 따위를 왜 노리겠어. 정치적인 기반도 없고, 요새로 쓰려면 쓰겠지만 그게 전부인 이런 땅을 툴칸 제국에서? 국경을 넓혔으면 넓혔지 왜 굳이 이런 영지를 먹으려고 수작질을 해? 얻는 게 없잖아.”
자리에 쪼그려 앉았다.
“당신은 몰라, 툴칸 제국이 얼마나 큰 국가인지. 놈들이 어떤 힘을 숨기고 있는지, 그런데 툴칸 제국에 지원을 해 달라고 요청을 하면서도 툴칸 제국이 배후라고 의심을 해? 이건 뭐 하자는 거야. 당신 진짜…… 왜 그래?”
“무엇이…… 무엇이 말이냐!”
정말 몰라서 묻는 것 같다.
“누나의 재능 정도면 마스터를 넘어서 초월자의 영역에 이를 수 있어. 그건 확실해. 그런데, 그런 누나를 툴칸 제국에 팔아 버린다고? 그것도 사 황자 따위한테?”
“……초월자라니! 무슨 개소리를 하는 것이야!”
“왜 당신을 세간에서 계산적인 남자라고 부르는 건지, 그 의미를 생각이라도 했어야지. 거기다 히스테인이 당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알고 있었나? 그년, 당신을 그냥 꼭두각시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더라고, 나름 후작이라 체면만 세워 줬을 뿐인데. 그걸 당신은 짐작도 못 했잖아. 알았다고는 하지 마. 누가 봐도 당신은 몰랐으니까. 정말이지…… 이렇게 보니까 그냥…… 아는 게 단 하나도 없네.”
다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고는 장검을 고쳐 쥐었다.
분노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발란티에 후작.
그의 심장.
두근거리는 그 심장을 향해.
푸욱-!
실라리온을 가볍게 찔러 넣었다.
“커……헉…….”
그 상태로, 후작의 옆자리에 나란히 앉았다.
에휴.
“전생에서 당신은 독살당해. 범인은 둘째인 페일론, 그런데 이번 생에서는 나한테 죽네. 얄궂지? 이게 운명이라는 건가 봐.”
“전……생?”
설명해 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것 말고 할 말이 아주 많았거든.
“그거 알아? 당신, 그냥 가만히만 있어도 부와 명예, 그 모든 걸 얻을 수 있었다는걸?”
“…….”
“내가 툴칸 제국을 무너뜨리면 그 이후에는 뭐가 남을까. 변수라는 게 존재한다지만 확실한 건 내 주변 사람들은 부와 명예, 심지어 권력까지 얻게 될 거라는 거지. 그런데 나와 피가 통한 당신이라면 대체 얼마나 큰 권력을 얻게 될까. 그걸 조금만 이용하면 당신은 황제가 될 수도 있었어. 그걸 당신은 걷어찬 거지.”
후작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궁금한 건 많은데, 제대로 말이 안 나오는 기분.
저 기분.
나도 몇 번은 맛봤었지.
“그런데, 느껴져?”
“…….”
“지금 그쪽 심장 되게 빨리 뛰는 거 같은데. 안 느껴지나?”
“……빌어……먹을 새끼…….”
피식 웃고 말았다.
“심장 박동이 세 배 빨라진 건 출혈이 심해서야. 한 30초쯤 후면 몸이 굳어지면서 숨통이 막힐 거고 자연스럽게 시야는 흐려질 것이며 귀는 먹먹해질걸. 그래, 그거. 그게 죽음이라는 거야.”
후작이,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 낸다.
“넌…… 넌 누구냐. 대체 넌…….”
거참.
자기 아들도 몰라보네.
“적당히 욕심부렸어야지. 내 인생에서 당신은 우선순위도 아니었고 그냥 찌꺼기에 불과했어. 그냥 얌전히, 그냥 조용히만 있으면 자리도 유지해 주고 나름 편한 여생을 주려고 했는데. 왜 자꾸 죽여 달라고 발악을 하는 건데. 그러면 어떻게 해. 죽여 줄 수밖에 없잖아.”
“끄윽…… 지금…… 대체 무슨…….”
그대로 몸만 돌려, 벽에 등을 기대고 있는 후작에게 얼굴을 밀착시켰다.
그 눈에 비친 내 얼굴.
분명.
웃고 있었다.
“끄……윽…….”
“이런 모습, 가능하면 보여 주고 싶지 않았어.”
단 한 번도.
이런 모습을 그 누구에게도 보여 준 적은 없었다.
헤르만 후작가를 멸문시킨 거?
두 로드를 죽인 거?
아카데미에서 교관들을 학살한 거?
그때랑 지금은 분명 달랐다.
나는 그때, 놈들을 죽일 때 행복해하지는 않았거든.
그냥, 청소하는 기분.
딱 그런 기분이었는데.
지금 봐봐.
나.
나 지금.
너무 행복하다.
정말, 미칠 정도로 행복하다.
“윽…….”
“아…… 왜 이렇게 기분이 좋은 건지 모르겠네. 지금 보이지? 나 웃고 있는 거.”
“개……새……끼.”
“나 말이야, 사실 지금이라도 당신 살려 줄 수 있어. 뚫린 심장, 재생시켜 줄 수 있거든. 그런데 그러고 싶지가 않아. 왜냐면…….”
터억-
양손으로 후작의 옆얼굴을 잡아챘다.
“당신은 살려 줘도 계속해서 죽여 달라고 발악을 할 테니까. 무식하고, 무능한 새끼들이 그런 모습을 하도 보여 줘서, 그런 꼴 다시는 보고 싶지가 않아.”
쌔액- 쌔액-
내 양손에 얼굴이 잡힌 후작.
그의 숨소리가 점점 작아진다.
“느껴져? 지금 죽음이라는 게 오고 있어. 반갑다고 손이라도 흔들어 봐.”
후작의 핏발 선 눈동자는 여전했다.
당연히, 내 웃음도 여전했고.
쌔액-
“왜 그래? 손 흔들어 보라니까? 힘들어? 못하겠어? 그딴 것도 못 해?”
후작의 입에서 무언가, 작은 목소리가 흘러나왔지만 무시했다.
그냥, 신음에 불과했거든.
심장이 막히고, 온몸의 혈액이 의지를 벗어났을 때 터져 나오는 작은 신음.
그래서, 그 순간 내 웃음은 더욱더 진해지고 있었다.
“뭐라고?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제대로 해. 주둥이에 철 쪼가리가 박혀 있는 것도 아닌데 왜 말을 못 해? 고작 그 정도의 고통도 못 참아? 난 그것보다 더 심할 때 웬 꼬맹이 하나랑 이야기도 나누고 그랬는데, 당신은 말 한마디도 못 내뱉네? 당신, 대체 정체가 뭐야? 사람 맞아? 아니 너무 한심하잖아. 너무, 역겹잖아.”
쌔액-쌔액-
잠시 후작을 내려보다가, 한마디 내뱉었다.
“27초.”
“윽…… 으윽…….”
후작의 눈을 직시했다.
죽음에 가까워지는 생명체.
내 과거.
나를 저능아로 만들고, 두드려 패기까지 했던 잔재.
그게, 사라지려 한다.
“28초.”
“꺽…… 꺽…….”
후작의 숨이 뒤로 넘어가고, 그렇게…….
“29초.”
조용했다.
“30초.”
“…….”
“31초.”
“…….”
“32초.”
“…….”
그렇게 집무실에는 한 사람의 숨소리만 남았다.
정확히는.
숨소리라기보다는 한 사람의 웃음소리.
그게, 집무실을 천천히 휘감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