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2)
제 3화
다시 놈의 머리를 들어 올렸다.
한동안 켁켁거리던 놈이 나를 바라보더니 덜덜덜 몸을 떤다.
이 모습, 익숙하다.
전생에서 너무 많이 봐 왔던 모습.
그러니까. 죽음의 공포에 잡아먹힌 이들이 짓는 표정.
“사…… 살려…… 살려 줘…….”
나는 침묵을 깨고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살려 달라고?”
웃음이, 차마 참을 수 없는 웃음이 터져 나온다.
“내가, 왜?”
피식피식 웃으며 말하자 놈이 발광을 한다.
“살……려 줘!! 살…… 살려 줘…… 제발!!”
놈의 모습이 얼마나 애처로운지 문장으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다.
나는 다시 놈의 면상을 호수에 처박았다.
들어 올릴 생각 없이 강하게 박아 넣었기 때문일까, 위기를 느낀 놈이 아주 지랄 발광을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놈의 머리를 들어 호수의 경계면에 있는 대리석에 몇 번 쥐어박았다.
퍼억! 퍼억! 퍼억-!
그러기를 서너 번.
놈의 몸이 축 늘어진다.
놈을 옆으로 대충 치워 버리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후우…….
머릿속이 맑아진 기분이다.
그러다 병사 한 명에게 시선을 옮겼다.
“야.”
“에…… 예?”
“이거 치워.”
이름은 모르지만 솔직히 알아 둘 필요도 없다.
그가 떨리는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그 눈빛이 마치 ‘설마 죽였습니까?’라고 묻는 눈빛이다.
정말 안타깝게도 나는 뒤끝이 좀 있는 편이다.
나름 착하고 마음이 대양처럼 넓은 내가 내린 결론은 깔끔했다.
일단 살려 놓고, 죽여 달라고 애원할 때까지 괴롭히는 거.
단번에 죽이지 않는 내 행동은 가히 선인이라 칭할 만했다.
“안 죽었으니까. 데리고 꺼져.”
“예…… 예!”
내 행동은 순식간에 가문에 퍼졌고, 당연하게도 가문은 뒤집어졌다.
* * *
페일론 발란티에.
그는 잭 발란티에의 배다른 형제였으며, 가문의 둘째였고 후작 부인의 배경인 맨티스 백작가의 배경을 등에 업은 미래의 후계자였다.
페일론을 지지하는 맨티스 백작가는 왕국 전체의 세금 중 무려 20%를 혼자서 감당하는 압도적인 재력을 가진 가문이며 그 가문을 등에 업은 페일론은 이변이 없는 한 자연스럽게 다음 대 발란티에 후작이 된다.
하지만 지금 그는 머리가 깨져 두개골에 금이 갔고 물 공포증이 생겨 병석에 누워 있는 상태.
가문이 뒤집어지는 게 당연했다.
소문도 무성했다.
페일론 발란티에는 17살의 나이에 심장에 세 개의 서클을 만든, 이른바 영재였다.
그런데 마나 서클은커녕 제대로 된 무술을 배우지도 못한 막내가 어떻게 그런 둘째를 제압할 수 있었던 걸까.
혹시 남들 몰래 힘을 숨기고 있었던 걸까.
그렇다면 왜 지금 힘을 드러낸 거지?
페일론 발란티에는 내년 18세가 되어 성인식이 끝난 뒤 정식으로 후계자로 선임될 예정이었는데, 혹시 그걸 막으려는 걸까.
결국 막내는 가주의 자리에 욕심이 있었던 걸까.
무성한 소문은 조금씩 부풀려지고 거대해지고 있었다.
원로들을 비롯해 가문의 기사들은 생각했다.
장자 원칙을 고수하던 발란티에 후작.
그의 흑역사라고 한다면 ‘하인’에 불과했던 ‘노아’라는 여성과 혼인을 했다는 점이다.
첫째 부인인 노아는 엘리자베스를 낳았고, 4년 후 잭을 낳으면서 죽었다.
엘리자베스는 그 외모와 재능이 범상치가 않아서 가주의 총애를 받았지만 잭은 아니었다.
나름 복잡한 후작가의 내부 사정.
그런 상황에서 모두는 생각했다.
가주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 * *
다급한 표정으로 내게 다가온 론이 말했다.
“……가주님께서 본관으로 오시랍니다.”
“지금?”
“예.”
나는 별다른 채비를 하지 않고 그대로 걸음을 옮겼다.
뒤따라오려는 론에게는 손을 들어 따라오지 말라는 표시를 하자 그가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진짜 혼자 가시게요? 그런 표정이다.
어깨를 으쓱하고는 마저 걸음을 옮겼다.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이 장미 정원은 후작가의 본관이라 할 수 있는 대저택과 매우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 있었다.
그 거리는 고작해야 400미터.
‘구석진 곳에 위치해 있다’라는 문장이 완벽하다고 느껴질 정도의 위치 선정이라고 해야 할까.
그렇기 때문에 나는 금방 본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본관에 도착한 내가 처음으로 느낀 것은 사방에서 느껴지는 찌릿찌릿한 시선이었다.
장미 정원과는 차원이 다른 넓이에다가 곳곳에 위치한 호위 기사들을 비롯해 바쁜 듯 오가는 행정관들과 병사들이 나를 힐끗힐끗 쳐다본다.
그 시선에 담긴 감정은 분명 호의는 아니었다.
정말이지, 감회가 새로울 정도다.
‘오랜만이네 이렇게 무시당하는 거.’
문득 고개를 들어 거대한 후작가의 성을 올려다보았다.
저기 꼭대기에는 가주와 원로라 불리는 이들이 존재한다.
새삼스럽지만 한 영지의 주인이라는 자리는 항상 바쁘기 마련이다.
처리해야 할 직무는 물론 원로들을 비롯한 가신들의 조언 그 외 기타 등등.
그래서 후작은 대부분의 시간을 집무실에서 보낸다.
나는 곧바로 가주의 집무실로 향했다.
주변에 걸려 있는 미술품이나 석상 같은 것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가질 생각도 없고, 이딴 거에 시간을 낭비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으니까.
집무실 앞으로 다가가 문을 열려고 손을 뻗으려던 그때, 집무실 앞에 서 있던 두 명의 기사가 들고 있던 창을 교차하며 나를 막는다.
목적 잃은 손을 슬며시 내리고 기사를 힐끗 쳐다보았다.
내 시선을 느끼고 있는 게 분명하지만 기사의 시선은 정면을 향하고 있었고 다른 기사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나를 투명인간 취급하는…… 거참.
어이가 없네.
“저기요, 기사님?”
역시 기사는 아무 말 하지 않는다.
피식 웃으면서 발로 놈의 정강이를 두어 번 툭툭 두드리고, 주먹으로 기사의 복부를 서너 번 툭툭 두드렸다.
그럼에도 기사는 아무 말도 없이, 그저 정면만 바라본다.
“벙어리야? 말 못해?”
정면만을 응시하던 기사가 귀찮다는 얼굴로 고개를 돌리고는 나를 내려다본다.
과거의 나였다면 저 표정을 보고 그대로 뒤로 물러섰을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아니잖아.
이미 산전수전 다 겪은 나한테 저 표정은 제발 저 좀 죽여 주세요. 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장난기 어린 웃음을 거두고, 이번에는 주먹으로 기사의 복부를 강하게 후려쳤다.
퍼억-!
미약하게 느껴지는 통증에 기사가 인상을 찌푸린다.
그런 기사에게, 나는 뼈가 되고 살이 되어 줄 조언을 건넸다.
“인상 펴. 척추 접어 버리기 전에.”
“……예?”
기사의 자세, 표정, 기도.
종합적으로 판단해 보건대 6서클 정도의 마나 유저가 분명했다.
대륙에 퍼진 ‘마나 유저의 정의’라는 책을 보면, 마나 유저의 등급을 총 10개의 등급으로 나눈다.
1~3서클 유저들은 입문. 즉 비기너.
4~6서클 유저들은 익스퍼트.
7~9서클 까지는 고서클 마나 유저라 부른다.
그리고 10서클.
10서클 마나 유저를 부르는 단어는 마스터다.
초인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사실 둘 다 10서클 마나 유저를 뜻하는 단어다.
분명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 주변에는 고서클 유저부터 마스터들만 즐비했는데, 이제는 6서클짜리랑 놀아주고 있네.
기분이 참 싱숭생숭하다.
여하튼, 눈앞의 이놈은 아마 후작가의 정예라 불리는 철혈 기사단 소속일 거다.
놈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두 번 안 묻는다. 가주가 나를 불렀는데 왜 못 들어가게 하는 거지?”
그제야 기사가 답한다.
“……가주님께서 대기하라 하셨습니다.”
“대기? 언제까지?”
나와 대화를 하는 듯했던 기사는 방금 전 상황을 머릿속에서 잊으려는 것처럼 곧바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그건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냥 기다리라고?
실소를 터트리고 말았다.
후작의 의도는 너무 뻔했다.
너는 여기에 설 자리가 없으니 반성해라…… 뭐 이런 의도겠지.
당연히 나는 그딴 의도에 놀아 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대로 몸을 돌린 뒤 걸음을 옮기자, 뒤에서 기사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공자님? 어딜 가십니까?”
“내가 갈 데가 한 군데 말고 더 있나?”
“……예?”
“할 말 있으면 직접 와서 하라고 해. 별 시답잖은 걸로 오라 가라 하고 있어. 짜증 나게.”
다시 고개를 돌리자 기사가 입을 떡 하고 벌리고 있는 게 보인다.
그 옆의 다른 기사는 마치 나를 미친놈처럼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냥 무시했다.
아니, 문 앞에서 대기하라고 하면 내가 하루 종일 그 앞에서 대기하고 있을 줄 알았나?
그렇게 나는 다시 장미 정원으로 돌아왔다.
* * *
“그냥 돌아갔습니다.”
기사의 말에 발란티에 후작의 펜대가 살짝 멈칫한다.
“돌아갔다고?”
“……예, 그렇습니다.”
기사는 차마 잭이 마지막으로 내뱉었던 말을 입 밖으로 꺼낼 수가 없었다.
그러다 후작이 결국 피식 웃는다.
“막내가, 많이 변했군.”
이어서 후작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마치 갈 곳이 있는 사람처럼.
Chapter 2
장미 정원에 있는 작은 호수.
나는 호수 앞에 의자를 가져다 놓은 뒤, 그곳에 앉아 여유롭게 호숫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쪽 손에는 토마토 주스를 들고 있는 내 모습이 호수에 비쳐 보인다.
그 모습은 마치 해탈한 사람처럼 맑았으며, 자애롭게 웃고 있는 모습은 가히 신의 재림이라 할 수 있을 정도였다.
물론, 호수에 비친 내 얼굴을 본 나만의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었지만, 그래도 몇 명은 동의해 주지 않을까.
그렇게 얼마가 지났을까.
머지않아 입구 쪽이 소란스러워진다.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내 기억 속에 있는 발란티에 후작이, 약 십여 명의 기사들과 후작 부인을 대동한 채 장미 정원의 입구로 들어서고 있었다.
다른 이들의 면상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발란티에 후작.
나는 의자에 앉은 채로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사각턱에, 굵은 눈썹.
좁혀져 있는 미간과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있는 이마의 주름.
한눈에 봐도 아, 저 인간 정말 고집스러운 성격이구나…… 하는 소감이 절로 터져 나올 정도의 모습이다.
농담이 아니고, 내 기억 속의 그 모습과 너무 똑같아서 헛웃음이 터져 나올 뻔했다.
이어서 후작이 장미 정원을 쭉 둘러본다.
마치 이곳은 언제 봐도 아름답구나 하는 그런 감상이 후작의 얼굴에 쓰여 있는 듯했다.
이번에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어처구니가 없네.
후작이 이내 나를 발견하더니 나를 향해 천천히, 그리고 묵직하게 걸음을 옮긴다.
의자에 앉아 있던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았고 그저, 후작의 행렬을 물끄러미 바라만 보았다.
어찌 보면 패륜에, 예의 없는 개망나니로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글쎄.
내가 보기엔 전혀 아니다.
나는 아버지라는 존재를 그냥 없는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감정의 골이 깊다거나 하는 그런 수준이 아니다.
내가 전생에 집을 가출했을 때 아버지는, 아니, 발란티에 후작은 나를 죽이려고 했다.
그 이면에 숨겨진 다른 감정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은 이미 십수 년 전에 했었고 그게 아니라는 것을 전생에서 확실하게 깨달았다.
답지 않게 웃기지도 않는 욕심을 부리고, 그 욕망을 현실화시킬 능력조차 없는데도 혼자 무게란 무게는 다 잡는 인간.
솔직히 여기까지는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책임감이 없는 건 다른 이야기다.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
부모가.
자식을 양아치에게 성노예로 던져주고, 인생과 정신 그 모든 걸 파멸시키면, 안 되는 거잖아.
그건.
정말 하면 안 되는 거잖아.
숨을 토해내며, 그대로 다리를 꼬았다.
여하튼, 그게 내가 아는 발란티에 후작이고 세상이 모르는 진짜 발란티에 후작의 모습이다.
저런 인간을 어찌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