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233)
제 234화
우우웅-!
전에, 블랑은 잭에게 대들었었고, 잭에게 비 오는 날 먼지 나듯 얻어터진 적이 있었는데, 그때 블랑은 용인화를 시도했었다.
그리고 지금, 블랑은 또다시 용인화를 시도했다.
키가 조금 커지고, 눈매가 변하고 머리에 뿔이 자라나는.
그런 과정이 블랑의 몸에서 일어났고, 그가 천천히 주변을 둘러본다.
대부분의 이들을 우습게 여길 정도의 기세.
블랑은 드래곤이고, 나이는 400살이 채 되지 않았지만 상당한 무력도 지니고 있었다.
등급을 엄밀히 말하자면 금색과 적색 사이에 있는, 금적색 마스터라고 해야 할까.
어찌 됐든 전투 병력으로써 데리고만 있어도 큰 도움이 되는.
심지어 마법도 자유자재로 사용한다.
잭이 찾아다니는 인재 중에서도 이런 능력을 지닌 이는 거의 없다.
그가,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그런 블랑을 잭과 셀은 물끄러미 바라만 보았다.
잭은 생각했다.
얘는 나한테 충성을 맹세하겠구나.
셀도 생각했다.
이 드래곤은 잭한테 충성을 맹세하겠구나.
천천히, 블랑의 시선이 움직였다.
셀이 아닌 잭에게로.
“로드가 말하기를 드래곤은 세상의 균형을 맞춰야 하고 세상을 감시해야 한다고 했었지. 개소리로 치부했다. 굳이 왜 그래야 하는지 이해조차 되지 않았기에 관심조차 없었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하지만.”
“하지만?”
“그렇다고 어느 공방 같은 곳에 처박혀 무언가를 만들기만 하는 지루한 삶을 원한 것은 아니었다.”
요 며칠, 잭은 블랑에게 먹고 싸고 자는 시간 빼고 나머지 모든 시간을 전부 통신구를 제작하는 데 쓰라고 명령했었다.
그래서 요 며칠 블랑은 계속 공방 안에 처박혀 있었고, 그걸 지금 짚은 거다.
천천히, 잭의 표정이 변했다.
도통 이놈이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감이 안 잡히네…… 그런 표정이다.
“나는 유람하는 게 좋고, 세상을 돌아다니는 게 좋다. 그렇게 사는 것이라면 수천 년이 아니라 수만 년을 살아도 좋다고 생각했었다. 실제로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래서.”
“그래서?”
블랑의 시선이 옮겨진다.
잭이 아닌, 셀을 향해서.
“당신을 모시고 싶습니다.”
잭과 셀이 동시에 서로를 바라본다.
와우.
사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과론적으로 보면 어떤 식으로든 잭의 밑으로 들어가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해결책이다.
심지어 잭은 능력이 있는 이들을 우대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나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그 누구도 지적하지 않았던 사실인데, 잭은 그 누구보다 인성을 중요시한다.
심리학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보통 사람들은 자신과 반대되는 성격의 이성에게 호감을 느끼기 마련이다.
잭의 경우도 그것과 비슷했다.
잭은 학살자였고, 무법자였으며 괴물이었다.
그 누구보다 극단적으로 치우친 삶을 살았고, 이 세상 그 누구도 못 한 대학살을 이미 전생에서 했었다.
그런 잭은 자신이 아무리 연기를 하고, 아무리 노력을 해도 보통 사람이 말하는 ‘착한 사람’이 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 확신했다.
입버릇처럼 착하다고 말하는 건 일종의 자기부정 같은 거였지 실제로 잭이 착한 사람인 것은 아니었다.
수많은 학살을 저질렀고, 지금도 저지를 생각이니까.
그런 잭은, 아무리 능력이 있는 이라도 미친놈이라면 절대 밑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미친놈은 하나면 충분하니까.
당연한 소리지만 잭은 블랑의 능력을 높이 샀다.
인성이나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별개로 전투 능력? 말도 안 되고.
마법 능력? 두말하면 입 아프다.
그리고 지금, 블랑은 흑의 굴레가 지워졌는데도 스스로를 묶을 수 있는 사슬을 자기 목에 채웠다.
즉, 죽음의 기로에서 빠져나온 것이다.
“셀을 모시겠다? 재미있네.”
그 말만 남긴 잭이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마치 셀에게 네가 선택하라는.
너의 의견을 존중한다는 그런 뉘앙스였는데, 셀은 그걸 눈치챘다.
그래서 셀이 물었다.
-왜요?
“……?”
-왜 저를 모시겠다고 하시는 거죠?
셀의 표정에는 숨길 수 없는 의아함이 가득했다.
정말 궁금했거든.
“간단합니다. 저는 드래곤이니까.”
셀의 표정은 여전했다.
여전히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는데, 그 반응을 블랑은 이해했다.
누가 봐도, 잭의 밑으로 들어가는 게 가장 이상적인 방법임이 확실했으니까.
“당신이 아닌 저 괴물의 밑으로 들어가는 것, 그건 다소 고생을 하는 결정이긴 해도 100% 안전한 결정입니다. 저 남자의 밑에 있게 되면 확실히 장수할 것 같거든요. 하지만.”
-하지만?
“앞서 말했듯 저는 드래곤입니다. 마수의 숲에 있는 고룡 마루앙과 로렌초의 자식이지만 두 고룡과 연을 끊은 지 오래입니다. 다른 드래곤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변인, 아웃사이더처럼 살았고 평생 살 예정이었습니다만, 조금 잘못된 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잘못된 생각이요?
“인간, 엘프, 오크, 하피, 지금은 멸종한 페어리와 오우거. 그 모든 종족에게는 중심이 있었습니다. 그들을 군주, 혹은 왕이라 불렀죠. 저는 스스로의 그릇을 압니다. 저는 군주가 될 수 없습니다. 왕도 될 수 없죠. 저는 중심을 잡아 줄, 그러니까 궁극적으로 모든 드래곤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군주’가 필요합니다. 사실 생각할 것도 없는 결정이었죠. 저 남자, 잭 발란티에가 괴물인 것은 압니다. 인간을 초월한 진짜 괴물이라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저는 드래곤입니다. 드래곤의 군주는 드래곤이어야 합니다. 그게 구심점, 제 기준으로 군주는 그런 겁니다.”
대사로 벽돌 치는 것도 아니고.
뒤에 있던 잭은 나름 만족한다는 듯 가볍게 웃었다.
셀도 나름 만족하긴 했다.
하지만 모자랐다.
확실히 수하는 필요했다.
잭의 뒤를 잇고자 하는 셀이었기에 수하가 없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셀은, 천천히 한 걸음 나섰다.
시선은 블랑을 내려다보고. 뻗어진 한쪽 손이 블랑의 뿔을 쓰다듬었다. 어린아이의 손짓이 아닌, 이 세상의 유일한 로드의 핏줄.
향후 괴물이 될 셀은 조금씩이지만 그런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
그 증거로 블랑의 몸은 빳빳하게 굳어져 있었다.
이건 로드의 기세.
드래곤이라는 종족이 보다 높은 상위 개체를 만났을 때 보일 법한 반응.
즉, 복종의 반응이다.
-그거 아세요?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지성체는 죽을 위기를 겪고 나면.
꽈악-
-이상해진다는 거.
블랑은 자신의 뿔을 강하게 움켜쥐고 있는 셀에게서 순간, 알 수 없는 묘한 느낌을 받았다.
위화감이라고 해야 할까.
언젠가, 해츨링이었던 자신에게 이름을 내려 주던 두 로드.
그 이름이 로렌초 어쩌구 블랑이었지만 후에, 앞에 이름을 전부 버렸다.
그리고 디디에 루이스라는 이름을 새로 만들었고, 그 이후 블랑의 풀 네임은 디디에 루이스 블랑이 되었다.
로드와, 그리고 다른 드래곤과 연이 평생 끊어졌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지금 느끼는 이 위화감은 어렸을 때 그 둘을 처음 보았던 그때 느꼈던 그 위화감이 확실했다.
드래곤은, 드래곤이구나.
무슨 탈을 쓰건 드래곤은 드래곤이구나.
그런 블랑에게, 셀은 천천히 고개를 내밀고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지금부터가 중요하신 거예요.
셀의 손에서, 천천히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지금 상태에서는 믿음을 주기도 어렵고, 신뢰는 더 말할 것도 없죠. 그러니…… 어떻게 하셔야 할지, 아시죠?
의미심장한 셀의 말에, 블랑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천천히 뒤로 한 걸음 물러서는 셀.
그리고 그런 셀을 바라보며, 블랑의 입이 천천히 열린다.
“[나…… 나, 디디에 루이스 블랑은 이 자리에서 거룩하고도 지엄한 마나에 선언하노라!]”
우우웅-!!
뒤에서 팔짱을 끼고 있던 잭과 궁금한 표정의 셀.
그리고 뒤쪽에서 물끄러미 구경만 하던 타노스와 샬롯.
그보다 더 뒤에 있는 창가 쪽에 고개만 빼꼼히 내밀고 있는 요리사 기네스까지.
모두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있었다.
하늘에서.
기묘한 기류가 생겨나고 있었으니까.
그건 마나 유저도 아닌 기네스의 눈에도 선명히 보이는 마나.
거의, 마나가 노래하는 하늘의 찬가와도 같았다.
“[이 몸이 썩어 문드러지고, 숨이 끊기고, 영혼이 썩어 문드러질 때까지! 나 디디에 루이스 블랑은 모든 드래곤의 종주이자 군주가 되실 ‘셀’, 그녀에게 충성하고 그녀만을 모시기로 거룩한 마나에 선언한다!!]”
언령.
사전의 뜻을 빌려 오자면 그냥 말의 힘을 뜻한다.
드래곤은 마나를 시동어만 사용하며 온갖 마법을 형상화시킬 수 있었다.
그건 그들이 마나의 사랑을 받는 존재이기 때문인데.
그것은 다른 종족에 비해 너무나도 큰 혜택이고 혜택을 넘어선 특혜, 그 이상이었다.
그런 이들이, 자신들의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는 마나를 걸고 선언을 한다면 이런 진풍경이 펼쳐진다.
하늘에 있던 구름이 셀과 블랑을 중심으로 기묘한 기류를 만들었고.
주변에 있던 땅은 떨렸으며, 근방 수십 킬로미터 안에 있던 모든 마나 유저들은 숨을 죽였다.
드래곤이 목숨을 걸고 마나에 한 맹세는 그 정도로 거룩했으니까.
그렇게 잠시간의 시간이 흐르고, 기류가 사라졌다.
여전히 무릎을 꿇고 있는 블랑과, 그 앞에 서 있는 셀.
참 이상하게도 셀과 블랑의 거리는 의외로 가까웠다.
분명 셀은 블랑으로부터 한 걸음 물러섰었는데 왜 저렇게 가까이 있는 걸까.
아까 기류가 감쌌을 때 무슨 대화를 나눈 걸까.
다른 이들은 몰라도 잭은, 분명 들었다.
기류가 둘을 감싸고 있을 때.
셀이 블랑의 귓가에 이렇게 속삭이는 것을.
-언령으로 하는 복종의 맹세, 좋네요. 신뢰는 아직 어렵지만 믿음 정도는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해맑게 웃던 셀이 잠시 말을 멈추고는 이렇게, 말을 끝냈다.
-잊지 마세요, 앞으로가 중요하다는 걸. 그리고 명단 작성해서 오늘 중으로 가져와요. 아셨죠?
그렇게 셀에게 첫 번째 수하가 생겼다.
뒤에서 구경만 하던 잭이 슬쩍 끼어든다.
“밥 안 먹었지?”
블랑과 셀이 동시에 잭을 바라본다.
“우린 먹긴 했는데, 넌 안 먹었잖아. 새 식구가 왔는데 한 끼 더 못 먹을 것도 없지. 같이 먹자.”
블랑은 무심결에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