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232)
제 233화
오랜만에.
정말 오랜만에 말을 하다 멈추고 말았다.
나는 굳이 오래 살 생각이 없다는 그 말을 우리 꼬맹이 앞에서 할 뻔했네.
솔직히 스승님의 수명을 연장시키는 방법을 계속 고민하고는 있는데, 이게 감만 잡힐 뿐 안개 속을 걷는 것처럼 무언가 뚜렷하게 잡히지가 않는다.
실패할 가능성, 없다고는 못한다.
분명 있다.
시간을 역행하는 거니까.
이게 실패하면 난 정말 오래 못 살 것 같거든.
스승님이 두 번 죽는 모습을 난 못 견딘다.
실패하면, 스승님도 죽고 나도 죽겠지.
-난…… 그다음은요?
손을 뻗어 우리 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냥, 네가 잘 컸으면 좋겠다고.”
아까처럼 벅벅 문질러 주자 셀이 고개를 갸웃한다.
그 말을 하려던 게 아닌 것 같은데 하는 그런 표정이다.
짜식이 눈치는 빨라.
그런데 그건 눈치채지 못했나 보다.
블랑은 과연 누구한테 충성을 맹세할까.
나일까, 아니면 셀일까.
만약 놈이 나한테 충성을 맹세한다면 나는 그 자리에서 놈을 죽일 거다.
가능하면 셀한테 의견을 구한다고 했지만 이건 경우가 다르거든.
나한테 충성을 맹세한다는 건 그냥 시간 때우는 것과 다르지가 않다.
어차피 수천 년을 사는데 고작 수백 년 버리지 못할 것도 없다…… 어차피 잭 발란티에가 뒤지면 나는 자유다…… 어차피 놈에게 붙지 않으면 죽게 될 텐데 수백 년 정도야 충분히 버릴 수 있다…… 그런 심리겠지.
그런 심리가 이어지고 나한테 충성을 맹세하는 결론이 내려지면.
장담하는데, 나는 무조건 놈을 죽일 거다.
그건 효용 가치의 필요성 문제가 아니라, 그냥 쓰레기에 불과하니까.
경고는 충분히 많이 했고 거기다 드래곤은 아직 많이 남아 있다.
하지만 블랑이, 내가 아닌 셀한테 충성을 맹세한다면.
슬쩍 웃고 말았다.
그럼 사는 거지.
* * *
그린 드래곤, 디디에 루이스 블랑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싸한 공기.
그리고 어두운 공간.
곳곳에 자리 잡고 있는 수많은 마법 통신구들.
그리고.
정확히 블랑이 있는 기술 공방으로부터 남쪽 6km 떨어진 아카데미 동쪽 외곽에서 들려오는 잡다한 소리들까지.
아마 저기가 ‘괴물’이 만들었다던 ‘통신소’였던 걸로 안다.
그곳에서 수많은 이들이 오가는 소리와 공기 중에 떠다니는 먼지의 그 작은 소음까지.
모든 게 블랑의 귓가에 들려왔다.
눈을 감은 블랑은 이번에는 귀를 닫았다.
너무, 시끄러웠으니까.
양손으로 녹색 장발 머리를 뒤로 쭉 넘긴 블랑이 가볍게 숨을 토해 냈다.
하, 맙소사.
‘생각해 보면 지금껏 벌어진 모든 일들이 실제로는 사소한 일에 불과했구나.’
정확히는 너무나도 비현실적이어서 큰일처럼 느껴졌던 거다.
‘마수의 숲, 정말 잊고 있었다. 너무 안일했어.’
블랑은 바보가 아니었다.
마수의 숲이 다섯 마리의 드래곤이 지배하는 체제로, 즉 ‘오왕 체제’로 수백 년간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는 초월자이자, 마스터쯤은 손쉽게 잡아먹을 두 로드가 존재했었기 때문이다.
로드 한 명만 가도 이종족들의 마스터들은 모조리 정리가 되고 두 로드가 전부 간다면 마수의 숲에 있는 모든 이종족들은 고개를 조아려야 한다.
그게 두 로드의 힘이었다.
하지만 두 로드가 죽은 상황이다.
‘그 사실을 아는 것은 나밖에 없다. 두 로드가 머무는 아렌달 섬은 일종의 성지처럼 여겨지기에 그 어떤 드래곤이라도 함부로 찾아갈 수 없으니 이 사실을 다른 드래곤들이 알게 되는 것은 적어도 지금보다 최소 수년 뒤. 분명 그 괴물은 4년에서 5년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건 최대치다. 그 이후에는 뭐가 남을까. 뻔하지. 전쟁, 결국 전쟁밖에 없다.’
로드가 없다면 이종족들이 숙이고 있을 이유가 없으니까.
수백 년간 핍박했던 드래곤은 이종족 모두의 원수이기에 블랑 자신의 목숨도 보전할 수 있다고 쉽게 단정 지을 수가 없었다.
이 이상 상황에 대한 고민은 무의미했다.
사실, 이미 마음속으로 블랑은 심지를 굳힌 상태였다.
그저, 하나가 걸릴 뿐이다.
‘잭 발란티에, 그의 밑으로 들어가느냐 혹은 셀, 후에 분명 로드가 될 그녀의 밑으로 들어가느냐. 양자택일이구나.’
블랑도 눈치는 있었다.
드래곤이라는 종족의 특성, 거기다 해츨링도 아닌 성체 드래곤이다.
10서클이고, 인간들 기준으로 따지자면 금색에서 적색 사이의 힘을 지닌 마나 유저, 거기다 마법을 쓸 때 수식어가 필요 없다.
그냥, 시동어만 외치면 발현된다.
언령이라는 사기급 특성을 탑재한 그런 마나 유저의 가치가 적다면 그건 말도 안 되는 헛소리겠지.
블랑은 스스로의 가치를 알았다.
여태껏 잭이 보여준 모습들로 보면, 잭도 자신을 필요로 하고 셀도 자신을 필요로 한다.
필요로 하지 않는다 해도 밑에다 두고 써달라고 하면, 무조건 써주겠지. 지금처럼.
그래서 고민하고 있는 거다.
잭 발란티에, 그는 인간이다.
아무리 날고 기어 봐야 수백 년을 산다.
인간이니까.
하지만 드래곤은 수천 년이다.
‘거기다 지금 잭 발란티에는 부리고 있는 이들이 많다. 그의 밑으로 들어가면 그들 중 하나가 될 뿐이겠지. 지금처럼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할 거고.’
블랑은 등을 젖히며 몸을 쭉 늘어트렸다.
하지만.
‘그건 오히려 장점이 될 수도 있다. 잭, 그 괴물의 수하들과 함께하며 유대감을 쌓고 그들이 죽을 때쯤 되면 나는 잭 발란티에에게 나름 특별한 존재가 될 수 있겠지. 특별한 수하. 그 이후에 남는 것은 자유겠지. 수천 년의 수명 중 고작해야 수백이다. 위기를 피하는 대가로 충분하다 못해 넘치는 대가.’
반대로 셀의 밑으로 들어간다면 어떨까.
그것도 나쁘지는 않다.
하지만 좋지도 않다.
셀이 부리는 이는 현재 단 한 명도 없다.
뿐일까, 셀은 잭을 따른다.
셀에게 충성을 맹세하면 셀의 일도 도와야 되고 잭의 일도 도와야 한다.
이건 그냥 고생한다는 문장을 써서는 안 된다.
뭐 빠지게 개고생하는, 이런 문장을 써야 한다.
그냥 결정적으로, 너무 어리다.
뒤에서 배후처럼 자리 잡고 싶어도 잭이라는 괴물이 버티고 있는데, 그게 가능할까.
대리청정도 상황을 봐가면서 하는 거지, 지금 상황에서 대리청정 비스무리 한 걸 하는 순간 그 즉시 몸이 열 등분으로 쪼개질 것을 블랑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모순되게도, 그런 힘을 가진 잭이기에 그의 주변이 이 세상에서 가장 안전했다.
와, 맙소사.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라니. 드래곤이 이런 고민을 하게 될 줄이야. 이 무슨 어처구니없는 상황이란 말인가.’
고개를 털어 낸 블랑은 눈을 떴다.
결정은 끝났다.
이후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선 블랑이 기술공방을 나섰다.
재미있게도 하늘에는 이미 해가 떠 있는 상황.
정말 잠시 동안 고민했을 뿐인데 9시간이 넘게 지났나 보다.
블랑은 걸음을 옮겼다.
그가 향한 곳은 잭 발란티에와 셀이 있는 별장이었다.
* * *
셀은 생각했다.
‘내가, 확실히 다르긴 다르구나.’
어센블에 없었던 셀은 그동안 아카데미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른다.
시험도 보지 않았다.
잭이 말하기를 너를 보통 아이들처럼 생각하는 건 너에 대한 배려가 아니라 너에 대한 무시라고. 너는 더 많은 이들을 만나봐야 한다고. 그렇게 셀은 엘리자베스를 따랐고 최근 몇 주 동안 영지를 돌아다녔다.
많은 것을 보았다.
99명의 행렬도 보았고, 엘리자베스가 일을 하는 모습도 보았고, 마법적인 대련도 했고, 많은 이들과 대련도 했다.
그래서 지금 당황했다.
토닥토닥-
품에 안겨 울고 있는 샬롯의 등을 토닥여주는 지금 상황.
솔직히 생각도 못 했다.
밝은 성격의 샬롯은 회복이 빨랐다.
빨랐는데.
이번에는 조금 늦을 것 같았다.
-다 잘 될 거야.
다른 이도 아니고, 잭이다.
잭에게 처음으로 벌을 받고, 혼난 샬롯은 정말 슬퍼보였다.
-보스는 다 너를 생각해서 그런 거잖아. 그러니까 울지 말고.
사람들이 잘 모르는 건데.
샬롯은 11살이고, 셀은 10살이다.
굳이 따지자면 셀이 동생이고 샬롯이 언니라는 뜻.
한참을 울던 샬롯이 울음을 뚝 그쳤다.
“나.”
-응. 말해.
“너한테, 절대 안 질 거야.”
갑자기 왜 화제가 그렇게 돌려지는 건지 모르겠지만, 셀은 웃었다.
눈가의 눈물을 슥 훔친 샬롯이 말했다.
“보스한테 벌을 받은 게 슬프긴 하지만 내가 잘못한 게 맞아. 그래서 금방 털어낼 수 있어. 내 잘못이니까. 그래서.”
샬롯의 눈이 셀의 눈을 직시했다.
“너한테 안 져. 그리고.”
셀은 생각했다.
아마, 샬롯이 자기를 이길 일은 없을 거라고.
샬롯도 어렸을 때 많은 걸 겪긴 했지만, 자신만큼은 아니었다.
만약 피안화 상태에서, 본인의 신체 한계를 완전히 깨부수고 잭이 하는 것처럼 마법 자체를 파훼시키는 방법을 깨우치지 않는 한.
셀은 항상 샬롯보다 위에 있을 거라고.
셀은 생각했다.
너무나도 많은 일을 겪었기에, 그리고 너무나도 많은 고통을 받았기에.
‘나는, 그 누구와도 같아질 수 없어.’
샬롯의 금발 머리를 쓸어내려 주던 셀의 눈이 몽롱하게 변했다.
‘나는 너처럼 밝은 아이로 남을 수도 없어.’
그건 스스로에 대한 자아 성찰이었다.
그런데, 샬롯은 무슨 말을 하려던 걸까.
“오늘 같이 자자.”
그리고는 작게, 네가 없어서 옆이 허전했다고.
그렇게 말하는 샬롯을, 셀은 강하게 껴안았다.
부디, 이 아이는 밝은 아이로 남았으면.
* * *
여느 때처럼 아침 식사가 끝났다.
샬롯은 간밤에 셀과 무슨 대화라도 나눈 건지 어제보다는 씩씩해 보였고, 타노스는 아직 감도 못 잡는 건지 아침부터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평소에 말이 별로 없던 셀이 가장 해맑아 보일 정도다.
그렇게 식당에 앉아 있을 때였다.
“공자님?”
요리사 기네스가 식당으로 들어오더니 밖에 블랑이 왔음을 알려 주었다.
이것 봐라.
지금 시간이 08시밖에 안 됐는데.
뭐 이리 일찍 왔어?
“어떻게 할까요? 식당으로 들어오라고 할까요?”
새삼스럽지만 우리 기네스, 꽤 유능한 인재다.
식당으로 들어오라고 할까요? 이 말에는 식당으로 들여보내고 새로 밥을 내올까요? 차를 준비할까요 등등.
그런 게 함축된 문장일 거다.
당연히 나는 이렇게 말했다.
“밖에서 대기하라고 해.”
통신구 만드느라 고생한 건 알겠는데, 곧 죽을 놈일 수도 있잖아.
그럼 뭐 하러 먹여.
재료 아깝게.
* * *
마당에서 대기하던 블랑이 천천히 눈을 떴다.
공방에서 고민할 때는 긴가민가했지만 이곳으로 오면서.
정확히는 한 걸음씩 옮기면서 생각을 정리했고, 결정했다.
이 선택에 후회가 없기를.
코앞에 잭과 셀, 그리고 나머지 두 꼬맹이가 보였다.
잔뜩 무게 잡고 있던 블랑이 잭에게 말한다.
“일단 흑의 굴레인지 뭔지 하는 이것부터 풀어 주십시오.”
“왜?”
살면서 이런 말을 입 밖으로 내뱉을 줄은 몰랐지만. 그냥 했다.
“경건한 마음으로, 처음을 시작하고 싶습니다.”
픽 웃은 잭이 가볍게 손을 휘젓는다.
그에 따라 허공의 마나가 춤을 췄고, 블랑의 심장 부근에서 검은 연기가 허공으로 천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 순간 블랑은 느꼈다.
심장이, 정확히는 혼을 묶고 있던 속박이 사라졌다는 것을.
그거면 충분했다.
블랑은 입고 있던 옷을 단정하게 정리했다.
흐트러져 있던 머리를 위로 가볍게 쓸어 올리고는, 구겨진 셔츠와 코트의 결을 다듬고.
먼지를 털어 냈다.
이어서 천천히 그의 몸이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