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261)
제 262화
* * *
오후가 되었고, 이스마엘 아카데미는 분주해졌다.
오전에 대진표가 짜이고 오후에 예선이 시작되는데, 분주한 게 당연했다.
굉장히 큰 무대.
밀로스 아카데미에도 시험장이 존재했듯 이곳에도 시험장이 존재했는데, 그 크기는 놀랍게도 밀로스 아카데미보다 거대했다.
그걸 보고 스스로 반성했다.
“스승님, 아무래도 우리 아카데미, 리모델링 좀 해야 할 듯싶습니다.”
[음. 확실히 이쪽 아카데미의 건물은 신식 느낌이 나는구나. 으음.]신식.
신식이란다.
무려 400년 만에 세상에 나오신 스승님의 입에서 처음으로 신식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예선까지만 지켜보고 바로 아베이루한테 말해서 계획 좀 짜 보라고 해야겠습니다. 혹시.”
[혹시?]“원하시는 디자인 같은 건 없으십니까? 건물도 몇 개 더 올려야 할 거 같은데. 설비나 그런 것도 만들어야 할 것 같다 싶으시면 바로 말씀해 주십시오. 같이 만드는 아카데미 아닙니까.”
픽 웃은 스승님이 내 머리를 툭 쳤다.
[아직은 없으니 너무 앞서가지는 말거라. 천천히, 급할 것 없지 않느냐. 그러니 천천히 가자꾸나. ‘시간’은 많으니까.]전이라면 몰라도, 이제는 저 시간이라는 것에 얽매일 이유가 없다.
왜냐면.
강제로 8서클이 되면서 몸을 성장시킨 내 행동의 의미를, 스승님과 나는 아니까.
인과를 비틀고, 시간을 역행하는 것.
이제 가능할 것 같거든.
문제는 힘.
지금의 이 몸뚱이로도 부족하다는 거.
일시적으로 내 몸을 34살로 만들어 버려서 스승님의 수명을 늘리는 거? 안 된다.
그걸 하게 되면 성공한다 해도 내가 죽게 될 것 같거든.
길게 설명할 게 있나.
이건 그냥 리바운드 문제다.
34살로 몸을 강제로 변형시키면 강제로 시간을 역행한 것만큼의 리바운드가 몸에 작용하게 되는데, 그걸 과연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신 스승님이 고쳐 줄 수 있을까.
혹은, 시간을 역행해 스승님 심장에 박혀 있는 ‘혼의 속박’을 강제로 끊어 버린다면 그 이후 스승님이 곧바로 전생의 모든 힘을 쓰실 수 있을까.
모든 게 불확실하다.
그래서 변수 하나를 줄여야 하는데, 역시 하나밖에 없다.
그냥 시간만 흐르면 된다.
지금 이대로면 약 2년.
딱 2년이면 전생의 힘을 되찾을 것 같으니까.
어쩌면 그 이상도 가능할 것 같고.
그렇게 고개를 돌렸다.
셀과 샬롯.
그리고 타노스와 다른 아이들까지.
그들 모두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바라볼 만하지.
이제 진짜 시작이니까.
“개인 부문은 오늘 16강에 참가할 애들이 정해질 때까지 진행되고, 단체 부문은 오늘 우승팀이 정해지더라. 뭐 길게 말할 거 있나?”
작게 웃으며, 꼬맹이들을 바라보았다.
“연습한 애들, 땀을 흘린 애들, 이를 악물고 토할 정도로 움직이고 체력을 기르던 애들. 많잖아. 너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모습을 보여 봐. 나한테가 아니라 세상에. 이 큰 세상에 너희라는 존재를 각인시켜.”
천천히, 내 몸에서 마나가 뿜어져 나왔다.
이건 위압을 하려거나 분위기를 잡으려거나 그런 이유는 아니다.
그냥, 긴장한 녀석들의 몸과 마음을 조금 진정시켜 주는 용도일 뿐.
리커버리 마법에서 파생된 마법인데, 굳이 긴 설명을 할 필요는 없다 본다.
“가자.”
“예!”
그렇게 전의를 다지고, 꼬맹이들이 밖으로 나갈 때였다.
내 옆에 있던 베네딕트의 품에서 진동이 일어나고. 녀석이 잠시 뒤로 돌아가 마법 통신구를 꺼내고, 그곳에 나타난 아베이루와 무언가 대화를 나누고, 놀란 표정으로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린 그때.
후우우우웅-!!
이스마엘 아카데미 하늘 쪽에서 기묘한 마나의 흐름이 감지되었다.
공격 마법이나 그런 건 아니다.
이거, 내 감각에 의하면 텔레포트가 분명했다.
이어서 그곳에서 나타는 약 서른 명 정도의 인기척.
동시에 내 옆으로 다가온 베네딕트가 말했다.
“공자님, 지금 툴칸 제국에서…….”
손을 들어 녀석의 말을 막았다.
왜냐면 무슨 말이 이어질지 알 것 같았거든.
그대로 가볍게 손을 휘저었다.
내 손짓에 허공의 마나가 반응했고 그 마나는 천막을 그대로 젖혀 버렸다.
그대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정말 오랜만이라고 해야 하나.
전에 실험실에서 본 이후로 처음인 ‘그 남자’가 16살 남짓한 꼬맹이들 10명 정도와 후드를 뒤집어 쓴 이상한 사람과 함께 하늘에 떠 있었다.
그 남자와 대련장 정중앙에서 대기하던 템-사미트가 눈을 마주치고.
동시에.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두 남자가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사미트는 저놈이 왜 여기에 있냐고, 왜 이곳에 온 거냐고, 너랑 관련이 있는 거냐고 눈으로 묻고 있었고.
하늘에 떠 있던 남자.
하인케스 베커만은 이글거리는 눈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뭔가 할 말이 많은 표정 같았다.
예상이 맞았는지 놈이 소리 없이 입 모양으로 무언가를 말한다.
동시에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녀석은 이렇게 말했거든.
‘그때보다 키가 컸군. 가면은 안 챙겨 왔나?’
무슨 자신감일까.
그리고 무슨 생각으로 여기 온 걸까.
참, 일이 재미있어졌다.
* * *
“아카데미 대전, 생각해 보면 참 재미있어.”
이스칸다르의 말에 베커만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렇습니까?”
“그렇지. 자네도 알다시피 각국의 아카데미는 다른 아카데미와 교류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어. 농담이 아니고 수백 년 역사 중 단 한 번도 없었지. 왜인지 아나?”
검을 잘 쓰는 것과 정치를 잘하는 것은 다르다.
베커만은 정치를 잘 몰랐다.
역사도 잘 몰랐다.
그래서 베커만은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하면 이스칸다르가 설명해 줄 것을 알았기에.
“각 아카데미는 귀족들의 전유물이 된 지 오래였거든. 무엇보다 대륙의 첫 아카데미였던 ‘테슬란 아카데미’가 극도의 폐쇄성을 추구했었고, 자연스럽게 테슬란 아카데미를 본받아 만든 다른 아카데미들도 폐쇄성을 추구하게 되었기 때문이지.”
“음, 그렇군요.”
“정말 이해하셨는가?”
“어느 정도는 했습니다.”
이스칸다르가 피식 웃었다.
“귀족들의 놀이터. 이게 중요해. 각국을 다스리는 왕이나 왕족들은 자기들 아카데미가 어떻게 굴러가는지 알고 다른 아카데미도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있어. 그런 상황에서 교류를 한다? 자기 아카데미 내에서 사고를 치는 것이라면 몰라도 글로벌적으로 사고를 치고 다니면 그건 꼬투리가 될 수 있고 약점이 될 수 있지.”
“…….”
“그래서 모두가 교류라는 것을 회피하고 있었어. 괜히 귀찮게 엮일 필요가 없었으니까. 그런 상황에서 툴칸 아카데미도 끼어들 틈이 없었지. 전체적으로 폐쇄적인 분위기인데 아무리 강국이라 해도 명분이 없었어.”
“그런데 그게 깨진 거군요.”
“그렇지. 어디까지 생각하고 일을 진행하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 잭 발란티에라는 남자, 참으로 대단한 것 같아.”
베커만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때 자신의 팔을 자른 그 하얀 가면을 쓴 남자가 고작 14살의 꼬마라는 사실을 깨닫고, 한 번 더 충격을 받았었다.
아니, 이게 말이 되나.
인생 두 번 사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14살의 꼬마가.
그대로 이를 악문, 베커만은 천천히 눈을 떴다.
그러고는 화들짝 놀라며 뒤로 한 걸음 물러서고 말았다.
코앞에.
정확히 2cm 거리에 황태자 이스칸다르 툴칸의 얼굴이 있었으니까.
“무엇을 그리 깊게 생각하시는가.”
“……그냥 그 꼬마에 대해 생각해 봤습니다.”
이스칸다르가 웃었다.
그 웃음은 아주 해맑았다.
“궁금하면 한번 만나 보시겠는가?”
베커만은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말을 내뱉고야 말았다.
“……예?”
이스칸다르가 시키고, 물으면 예 혹은 아니오, 그리고 몇몇 의견을 제시했겠지만 이렇게 잘못 들었다는 듯 되물었던 것은 처음이었다.
그럴 만도 한 게, 한번 만나 보라니.
“폐하, 무슨 말씀이십니까. 만나 보라니요. 그는 적이 아닙니까.”
“맞지. 적이지. 드래곤 실험실을 폭파시킨 그 이후부터 그는 우리의 적이었지. 하지만.”
이스칸다르가 뒷짐을 지고 그대로 몸을 돌렸다.
햇살이 이스칸다르를 비춘다.
“그와 나의 싸움은 최소 1년에서 길면 2년 후에 벌어져. 지금은 안정기에 불과하지. 이렇게까지 말했는데 모르겠는가?”
“…….”
이스칸다르가 고개를 돌려 베커만을 직시했다.
“오직 개인의 힘으로 따지면 잭 발란티에, 그를 능가하는 이는 없어. 그러니 어쩌겠는가. 장단에 놀아 줘야지. 그리고 기회를 봐야지.”
“기회, 그렇군요.”
“그의 버릇, 그의 약점, 그의 생각, 그의 정확한 외형, 그의 버릇. 나는 그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싶어. 아니, 알아야 해. 왜냐면 그 남자가 가장 큰, 걸림돌일 테니까.”
말을 멈춘 이스칸다르는 잠시 생각하는듯하다, 흘러가듯 이야기했다.
“툴칸 아카데미에서 가장 유망한 이들 열 명을 뽑게. 그리고 이스마엘 아카데미로 날아가시게.”
“가서, 무엇을 할까요.”
“뭐겠는가. 당연히 아카데미 대전에 참가해야지. 자네도 알다시피 아카데미 대전의 ‘책임자’는 각 왕국의 왕이 아니야. 잭 발란티에 그 남자지.”
“…….”
“그 남자라면 무조건 수락하겠지. 사실 거절할 필요가 없어. 아카데미 대전은 국가 간 전쟁의 소규모판이나 다름이 없으니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하겠지. 그리고 우리도 ‘유망주’라면 지지 않을 인재가 하나 있지 않은가?”
기다렸다는 듯 베커만이 반사적으로 말했다.
“로만 스튜어트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툴칸 제국의 땅은 거대하다.
땅이 거대하다는 뜻은 인재들이 다른 국가들보다 넘쳐 난다는 거고 그중, 최근에 주목받고 있는 이는 툴칸 아카데미 검술학부 4학년인 로만 스튜어트였다.
얼마 전 무려 6서클을 달성한 로만 스튜어트는 툴칸 제국의 미래라고 불릴 정도로 검술에 대해 특출 난 재능을 보이고 있었다.
“이스마엘로 날아가시게. 그 이후 해야 할 일을 그대는 알고 있을 것이야. 평소 하던 일과 다르지 않아. 원칙만 지키게. 그러니 믿겠네.”
이스칸다르는 그렇게 베커만을 스쳐 지나갔다.
그의 뒷모습을 베커만은 무언가에 홀린 듯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건 잠시였다.
이스칸다르는 베커만에게 있어서 하늘 그 자체였고, 그가 명령하면 따른다.
그거면 충분했다.
그렇게 베커만도 걸음을 옮겼다.
이건 이스마엘 아카데미에서 대회가 시작되기 2시간 전에 벌어진 일이었다.
* * *
당연한 소리지만 긴급회의가 소집되었다.
왜냐면 그럴 만했거든.
갑작스럽게 웬 꼬맹이들을 데리고 온 베커만은 이렇게 말했다.
‘아카데미 대전에 각국의 아카데미가 모였는데 툴칸 아카데미가 없다는 게 말이나 되는가.’
대륙에서 명실상부, 현재 최고의 아카데미를 뽑으라고 한다면 100명 중 1명을 빼고 모두가 툴칸 아카데미를 꼽을 것이다.
그리고 그중 1명인 잭은 그거야 모르는 거 아니냐고 말했을 테지만 아마 동의해주는 이는 없었을 것이다.
그 정도로 툴칸 아카데미는 거대했고 인재들이 많다고 소문이 났으니까.
베커만은 이런 말도 덧붙였다.
‘호랑이가 없는 상황에서 여우끼리 굴의 주인을 뽑는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냥 호랑이도 끼워서 정당하게 서열을 정하는 게 옳지 않겠는가.’
그냥 길게 말해서 그렇지, 쉽게 말하면 ‘우리 툴칸 아카데미 좀 대전에 끼워 주세요’ 이 말이었다.
그렇게 각 아카데미에서 파견 온 교관들 중 최고 책임자라 할 수 있는 이들 모두가 모였다.
장소는 이스마엘 아카데미 대강당.
약 열다섯 명 정도가 자리한 그곳에 묘한 침묵이 감돈다.
가장 먼저 입을 뗀 것은 사미트였다.
그가 베커만에게 말했다.
“오랜만이군. 잘 지냈나?”
“잘 지냈지. 누구 덕분에 침대에서 며칠 잠도 잤고.”
베커만의 말에는 뼈가 있었다.
그런데 왜 저렇게 말하면서 나를 바라보는 건데.
그냥 웃어넘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