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291)
제 292화
“이름이 뭐라고 했었지?”
“템-아주리입니다.”
“템-아주리…… 사미트에게 재능 있는 동생이 하나 있다고 했었는데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군.”
템-아주리는 굳고 강해 보이는 인상의 남자였다.
턱수염도 많았고 머리는 풍성한.
사미트와 닮았지만 닮지 않은 그런 외모.
앞서 말했듯 베커만은 이 아주리를 지금 이 자리에서 처음 봤다.
나름 중급 마스터고 재능도 출중한 템-아주리는 수년 전 하늘 산맥이라는 유배지로 유배 보내졌으니까.
그럼에도 베커만은 그의 이름을 기억한다.
안면식도 없는데 왜 기억할까.
그건 템-아주리가 과거에 저지른 일 때문이다.
“강자존을 표방하는 이스마엘 왕국에서 왕정제를 폐지하고 귀족정을 만들겠다고 날뛰었던 적이 있던 것 같은데, 맞나?”
“과거의 일이지요.”
피식 웃고 말았다.
“그게 의미가 있나? 포기하지 않은 것 같은데.”
“맞습니다. 포기는 안 했습니다.”
베커만이 한 번 더 웃음을 터트린다.
“나보고 왕이 되어 달라고, 하.”
베커만은 바보가 아니었다.
이스칸다르가 전권을 맡길 정도로 베커만은 머리 회전이 남다른 존재였다.
그렇기에 눈앞의 이 템-아주리의 진짜 뜻을 알아챌 수 있었다.
“왜 말을 돌려서 하지?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게.”
“단도직입적이라 하시면?”
“이스마엘 왕국을 툴칸 제국의 휘하로 받아들여 달라, 이 말을 하는 것 같은데. 아니신가?”
“……맞습니다.”
“내 명성을 앞세워 왕정제를 폐하고 귀족정이라는 새로운 체제를 만들어서 툴칸 제국의 완벽한 ‘속국’이 되겠다, 이 말을 참으로 길게 하는군.”
템-아주리의 입가에 비슷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것도 맞습니다.”
베커만은 당당하게 대답하는 템-아주리를 묘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며칠이지?”
“11월 18일입니다.”
“그렇군.”
베커만은 눈앞에 놓인 술을 한 잔 마셨다.
“자네를 보니, 오래 살 것 같지는 않아.”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선 베커만은 표정으로도 말하고 있었다.
귀를, 씻고 싶다고.
“늦은 것 같지만 그래도 나름 ‘마스터’이니 충고 하나는 해 주겠네. 왕은 누가 선택해서 만드는 게 아니야.”
“…….”
“왕이란 스스로 존재하는 자를 뜻하며 만인을 통솔할 수 있는 강제력을 지닌 자를 뜻하지. 생각할수록 우습군. 그 잭이라는 남자가 ‘기준’에서 탈락했다? 허어, 농담이라고 생각했는데 표정을 보니 진심이었더군. 자네.”
베커만이 아주리의 어깨에 한쪽 손을 턱- 올렸다.
“굉장히 오만해. 오히려 내가 배우고 싶을 정도야. 대체 어디에서 그런 배짱이 나오는 건가?”
“……대륙 최강의 검사답지 않게 겁이 많으시군요.”
베커만은 화를 내지 않았다.
이 상황에서 어떻게 화를 낼까.
웃음이, 정말 참을 수 없는 웃음이 터져 나온다.
“대단하군, 템-아주리. 자네는 정말 대단한 남자였어. 난 사미트를 굉장히 괜찮은 남자라고 생각했고 굉장히 괜찮은 군주라고 생각했는데, 자네를 보니 그 생각이 맞다는 생각이 드는군.”
가시가 잔뜩 끼어 있는 말에 아주리는 슬며시 손을 내밀어 베커만의 손을 밀어냈다.
하지만 베커만의 입을 닫지는 못했다.
“하늘 산맥에서 은퇴한 마스터들과 노닥거렸다지? 그래서 시야가 좁은 것 같은데 한번 잘해 보시게.”
“그 말씀은?”
“툴칸의 속국이 되겠다느니, 왕으로 만들어 주겠다느니, 왕정제를 폐하고 귀족정을 만들겠다느니 그딴 건 관심 없어. 너 같은 이들이 세운 국가가 제대로 된 국가겠는가? 그들의 머리가 된다고 해서 그게 제대로 된 왕이겠는가? 그런데 왕정제를 폐한다? 그게 나한테 무슨 의미가 있지?”
“왜 당신만 생각하십니까. 당신이 아닌 이스칸다르 님이라면 이 상황에서…….”
베커만이 탁자를 툭, 치자 아주리는 그대로 말을 멈추고 말았다.
단순한 동작이었다.
정말 단순한 동작이었는데 아주리는 느꼈다.
저 작은 동작에 담긴 엄청난 살기를.
아주리가 침을 꿀꺽 삼키자 목울대가 크게 흔들렸다.
그에게 베커만이 말했다.
“내가 무슨 생각으로 사미트에게 시비를 걸었는지 그대는 아시는가?”
“…….”
“모르겠지. 멍청하니까. 나는 그 자리에서 사미트를 죽여야 한다고 생각했어. 설령 죽이지 못한다 해도, 반드시 ‘패배’라는 것을 사미트에게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지. 왜인 것 같은가?”
“…….”
“내분을 조장하고 싶었거든. 이스마엘이라는 국가가 ‘그’의 손에 들어간다는 것은 ‘우리’로서는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최악의 일이었으니까. 적어도 그의 손에 들어가기 전 이스마엘의 국력을 약화시켜야겠다고 생각했지. 그 일에 나는 목숨을 잃을 각오를 했네. 하지만 운이 좋게도, 정말 운이 좋게도 국가의 내분을 만드는 대가로 팔 하나만 잃었어. 그 정도의 각오가 자네에게는 있는가?”
아주리는 답하지 못했다.
그저 곁눈질로 베커만의 휑한 팔을 바라볼 뿐.
베커만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피어오른다.
“사미트가 어떤 남자인지 확실히 아는 것 같은데 성공 확률을 너무 높게 잡았군. 과연 자네는 대체 뭘 잃을까. 나는 알 것 같은데 그대는 모르는 것 같군.”
그게 끝이었다.
베커만은 남아 있던 술을 쭉 들이켜고는 걸음을 옮겼다.
천천히 사라지는 베커만의 뒷모습을 템-아주리는 아무 말 없이 응시한다.
5초, 10초.
베커만이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템-아주리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겁쟁이 새끼.”
다행히도 베커만은 듣지 못한 듯.
* * *
“그래서?”
“네?”
“왜 그런 이야기를 여기 와서 하는 건데?”
엔젤라는 내가 전에 보았던, 그녀 특유의 흥미 가득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거야, 해 주고 싶으니까.”
눈매를 슬쩍 찌푸리자, 엔젤라가 배를 잡고 박장대소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저렇게 웃으니까.
머리에 해바라기 한 송이 꽂은 정신 나간 여자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드네.
“약 먹었냐?”
“헤헤, 아니요.”
“그런데 왜 웃어. 징그럽게.”
“그냥 웃겨서요. 진짜 보면 볼수록 이해가 안 간다고 해야 하나.”
엔젤라가 슬쩍 다가오더니 내 몸을 쭉 훑는다.
“대체, 당신은 뭐예요?”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난간에 등을 기댔다.
“대체 뭐길래 그 나이에 적색 마스터들을 가지고 노는 거죠?”
방금까지 웃던 그 모습은 마치 가면이었다는 듯 엔젤라의 표정은 진지했다.
정말 너무 진지했다.
저 뜨거운 눈 좀 봐. 눈에서 불길이라도 튀어나오겠어.
“베커만이 팔 하나를 ‘또’ 잃었더라고요. 그런데 전과는 다른가 봐요. 아예 재생을 못 시키던데.”
“그래서?”
“그냥 정보 교환, 그런 거 하고 싶은데 괜찮으면 당신이 누구인지, 어떤 인물인지 말해 줄래요?”
엣헴.
어려울 거 없지.
“난 회귀자거든.”
“……장난치지 말고요. 저도 그쪽이 알고 싶어 하는 정보 꽤 많아요.”
엔젤라는 장난이라고 느꼈고, 사미트를 비롯한 나머지 마스터들은 눈을 크게 떴다.
그걸 그렇게 쉽게 말해 준다고?
이거 진짜 미친놈 아니야? 그런 표정인데.
뭘 새삼스럽게.
아, 그런데 장난이냐고?
“장난 아닌데.”
“후, 좋아요. 저부터 말씀드릴게요. 제가 모시는 필리포스 폐하는 지병을 앓고 있어요. 혈맥섬유화血脈纖維化라는 병인데, 일종의 유전병이에요.”
알고는 있었지만 그냥 이야기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툴칸의 핏줄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인데, 1대에 걸쳐 일어날지 2대에 걸쳐 일어날지는 아무도 몰라요. 이건 기밀인데, 툴칸의 황자들 중에 이 혈맥섬유화로 세상을 뜬 이들의 숫자는 총 7명. 필리포스 폐하까지 이제 곧 8명이 될 예정이죠.”
혈맥섬유화.
단어 그대로 혈맥이 섬유처럼 굳어지는 현상을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혈맥이란 문맥상으로는 피가 흐르는 혈맥을 뜻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그 혈맥이, 그 혈맥이 아니었다.
마나 유저들의 마나가 몸 내부를 이동할 때 통로로 쓰는 곳도 혈맥이다.
혈맥섬유화는, 마나 유저의 마나가 혈맥을 통과하지 못하는 병.
정확히는 혈맥이 마나의 통로로서의 기능을 완전히 잃어버린 증상을 뜻하며, 혈맥섬유화를 겪는 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내 혈맥이, 마치 섬유처럼 변한 것 같다고.
그래서 혈맥섬유화다.
툴칸의 핏줄 중 재능이 뛰어난 이들에게서만 나타나는 증상.
마나 유저로서 정점에 설 이스칸다르같은 이레귤러급의 재능을 지닌 이들에게만 나타나는 신의 저주.
재미있게도 이 단어를 알고 있는 이들은 거의 없다.
일반인? 장담하는데 한 명도 없을 거다.
저 현상은 툴칸의 핏줄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거든.
그것도 극소수에게만.
그래서 툴칸의 최고위층, 그중에서도 진짜 고위층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들만 알고 있는 병인데, 확실히 저건 기밀 중의 기밀이라고 할 수 있었다.
“가끔 생각해요. 이스칸다르가 혈맥섬유화를 앓았으면 좋겠다고. 보통 30대에서 40대 사이로 넘어갈 때 증상이 나타난다는데 아직 나타나지 않은 걸 보면…… 안타깝게도 이스칸다르는 혈맥섬유화를 피해간 것으로 추정이 되는데.”
그리고 나도 저 병을 직접 본 적은 없다.
그보다 이 여자가 갑자기 정보를 퍼다 주네.
무슨 꿍꿍이야.
“이 정도 말씀드렸으니까 이제 말해 주세요. 당신은 누구죠? 인간이 맞긴 한 건가요? 혹시.”
“혹시?”
“제 입으로 이렇게 묻긴 좀 그렇지만, 드래곤인가요? 어린 나이에 그 정도의 힘을 담을 수 있는 신체, 이건 인간의 상식을 아득히 넘은 거잖아요. 거기다 황태자를 적대하는 모습까지. 드래곤 실험실을 운영하던 황태자니까 이유라면 차고 넘치죠. 드래곤, 맞죠?”
이게, 나도 이렇게 말하고 싶지는 않은데.
내가 진짜 인간처럼 보이지는 않나 보다.
드래곤이냐는 소리를 지금 내가 몇 번 들은 거지?
세 번인가 네 번인가.
이쯤에서 장난기가 동했다.
“맞아. 제대로 짚었네. 난 사실 드래곤이야. 그것도 과거에 멸종해서 기록조차 남지 않은 에이션트 드래곤. 무려 수천 년을 살았지.”
“……역시. 인간이 아니었군요.”
엔젤라 헬.
얘가 생각 외로 재미있는 애였네.
그걸 믿어?
“폴리모프를 한 건가요? 그런데 폴리모프 한 것치고는 마나가 전혀 새어 나오질 않는데……. 아, 그럴 만도 하겠네요. 적색 마스터를 가지고 노시는 분인데 적색 마스터가 그걸 눈치채면 넌센스겠죠. 와.”
고개를 돌려 사미트를 바라보았다.
이 코미디 언제까지 해야 돼?
내 눈에서 내 속내를 읽은 사미트가 앞으로 나선다.
“이만 가시게. 어디까지 엿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분위기 보면 알다시피 여기는 조금 심각하거든.”
엔젤라.
그녀의 표정이 이번에는 진지해졌다.
“딱 한 마디만. 딱 한 마디만 하고요.”
“해 봐.”
“……혈맥섬유화를, 치료해 주실 수 있나요?”
이야기의 흐름을 보면 이거잖아.
“필리포스의 지병을 치료해 달라?”
“네.”
“내가 왜?”
엔젤라가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그건 잠시였다.
“필리포스 폐하가 완치가 된다면 황태자를 비롯해 황태자의 측근들을 전부 쳐 낼 수 있어요. 혹은 온건파에 힘을 실어 주어서 황태자를 힘들게 만들 수도 있죠.”
고개를 저었다.
쯧쯧.
얘도 아직 이스칸다르에 대해 모르네.
그리고 나에 대해서도 모르고.
“난 툴칸이라는 이름을 쓰는 놈들을 세상에서 전부 지워 버릴 건데, 그런 놈을 살리라고? 뭔 헛소리를 하고 있어.”
“…….”
그리고.
“드래곤이라고 한 거 구라야.”
“네?”
“구라라고.”
“…….”
난간에서 등을 떼고는 엔젤라에게 다가갔다.
“참고로 난 두 번 말하는 거 되게 싫어하거든. 그런데 노력이 가상해서 한 번 더 말해 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