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331)
제 332화
잭이 오른손을 뻗는다.
천천히 뻗어지는 그 오른손은 본 스미스의 이마에 닿았다.
그게 끝이었다.
그대로 잭이 몸을 돌렸다.
천천히 걸으며, 배 전체를 덮었던 붉은 기운이 사라져 간다.
머지않아.
콰직- 콰앙-!!!
무언가 박살 나는 소리와 함께 본 스미스의 머리가 마치 폭죽처럼 터져 나갔다.
천천히, 머리가 사라진 시체가 뒤로 넘어갔고 털썩, 쓰러진다.
두 마스터는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이 무슨.’
‘이게 얼마 전 배에서 이야기를 했던 그때 그 남자라고?’
여러 번 잔인한 모습을 보여 주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농담이 아니라, 팔색조도 이 정도는 아니다.
이건 진짜, 악마.
그것도 마왕급의 분위기.
잭이 욕조에 등을 기대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며칠이나 지난 겁니까?”
[이틀 지났다.]잭이 양손으로 머리를 쓸어 올린다.
지끈거리는 두통.
덜덜 떨리는 몸.
회복이 덜 됐다.
그것도 지나치게 덜 됐다.
[표정이 왜 그러느냐? 또, 무언가를 본 것이냐?]“……모르겠습니다. 어떤 이상한 놈 때문에 중간에 끊겨가지고, 애매합니다.”
[애매하다?]잭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연례행사처럼 잭은 쓰러질 때마다 전생에서 벌어진 ‘어떤 일’을 겪는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전생에서 잭은 데스 나이트가 되었다.
아서 군나르가 그렇게 만든 거다.
동대륙에서 넘어온 괴물을 죽이기 위해서라느니 그딴 이유가 아니었다.
아서는, 애초에 그딴 것에 관심이 없었다.
아서가 잭을 데스 나이트로 만든 이유.
간단하다.
아서의 재생 능력은 어마어마했다.
만약 그런 재생 능력이 데스 나이트가 된 전생의 잭과 합쳐진다면 어떻게 될까.
데스 나이트가 됨으로써 생기는 자연스러운 시한부 인생.
시간이 갈수록 부식되고 낡아가는 신체를, 오히려 계속 견고하게 유지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그건 그 자체로 영생이었으며, 시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신神’이라고 불릴 수도 있다.
그래서 전생의 아서는 잭을 데스 나이트로 살렸고 이후, 잭과 싸웠다.
결론만 말하면 잭은 그 싸움에서도 이겼다.
지금과 비슷한 형태로 아서를 찢었고, 세상에서 지워버렸다.
그 이후.
잠에서 깼다.
그래서 잭은 그냥 솔직하게 말했다.
“더 볼 수 있었는데. 끊겨가지고 저도 잘 모릅니다.”
[더 볼 수 있었다, 잘 모른다……?]“예.”
잠시 침묵하던 발렌타인이 잭에게 말했다.
[전부터 의아했던 게 하나 있었다.]“뭔데요?”
순간 잭은 뜨끔했다.
왜냐면 계속 인식하고 있었던 부분이니까.
전생에서 데스 나이트가 되어서 다시 살아났는데, 왜 그때의 기억이 없을까.
왜 이렇게, 계속해서 예지의 형태로 기억이 ‘보여지는’ 걸까.
잭의 머릿속에 있는 온전한 기억들은 잭 스튜어트라는 꼬맹이에게 덕담을 건네주던 그때까지다.
즉, 데스 나이트로서의 기억은 ‘잭’이 겪은 기억이지만 잭에게는 없는 기억, 과장 없이 진지하게 말하면 온전히 분리된 기억이라는 뜻이다.
발렌타인은 잭의 표정에서 답을 얻었는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으로서의 네 녀석과 데스 나이트로서의 네 녀석은 같은 인물이지만 다른 인물로 봐야 한다…… 이것인데, 참으로 흥미롭구나.]정말로 발렌타인은 흥미로워 보였다.
잭은 평소처럼 그저 웃을 뿐이었다.
“많이 즐거워 보이십니다. 저는 힘들어 죽을 거 같은데.”
발렌타인은 깜빡했다는 듯, 흥미로운 표정을 곧바로 거두었다.
[미안하구나.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닌데.]잭은 고개를 저었다.
중요한 게 아닌 것처럼 보여도, 이건 정말로 중요한 거니까.
고개를 저은 잭이 슬쩍 손을 뻗었다.
약 30m 거리에 있던 마스터, 작센 베이스가 재빨리 입고 있던 상의를 벗어서 잭에게 건네주었지만 잭이 고개를 젓는다.
“그거 말고 포션 없어? 비상용 같은 거.”
“물론 있습니다.”
작센이 품에서 병 두 개를 꺼내 들었다.
최상급 포션.
그 두 개를 연거푸 들이마신 잭이 한숨을 푹 터트리고는 바닥에 떨어진 옷을 대충 몸에 걸쳤다.
그런 잭을 발렌타인이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본다.
[더 자는 게 낫지 않겠느냐]“괜찮습니다. 제가 자면 우리 스승님 누가 돌봐 줍니까.”
발렌타인이 헛웃음을 터트린다.
[누가 돌봐 주지 않아도 나는 혼자 지내는 게 익숙하다. 지켜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지.]잭은 웃으며 발렌타인을 안아 들더니 그대로 어깨에 앉혔다.
“말씀드렸잖습니까. 이제 혼자 지내지 않으셔도 된다고, 제가 곁에 있을 거라고.”
발렌타인이 어색하게 웃는다.
동시에 주변 분위기도 풀렸는지 작센과 나머지 한 명의 마스터도 참았던 숨을 후욱 하고 토해 냈다.
그때 잭이, 작센에게 묻는다.
“이름이 작센 베이스였지?”
“예. 맞습니다. 작센 베이스.”
“여기는 어디고 밖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세 문장으로 요약해 봐.”
잠시 고민하던 작센이 말했다.
“현재 이곳은 요람 왕국 제1 선착장 사르뎀 항구입니다. 엘리자베스 님이 사절단의 형식으로 약 7천 명의 도원들을 이 섬에 내렸고 나머지는 전부 테슬란으로 이동했습니다.”
“두 문장인데, 더 없어?”
“……안토스 요람이 쿠데타를 준비 중입니다.”
잭의 눈이 크게 떠진다.
잘못 들었나.
쿠데타?
“아, 죄송합니다. 한 문장 더, 추가해야 할 것 같습니다.”
“뭔데?”
“마티아스 왕국과 가나안 왕국에서 귀족 학살이 벌어졌습니다.”
“귀족 학살?”
“범인은 성체 드래곤 7마리와 그들에게 명령하는 은발 머리의 인간 형체를 하고 있는 여자아이인데, 지금 드래곤이 인간에게 전쟁을 선포했다고 난리입니다.”
문장이 조금 늘어난 것 같긴 한데 일단 넘어갔다.
잭은 생각했다.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쿠데타에, 드래곤과의 전쟁?
* * *
적색 마스터 안토니오 세나는 생각했다.
오늘만 같아라…….
낚시를 하는 그 상황에서 그 생각 말고는 들지 않았다.
해탈한 표정의 안토니오 세나는, 웬만해서는 잭이 짓지 않는 그런 표정으로 낚시를 하고 있었다.
덜컥하고 낚싯대가 움직인다.
물고기가 걸렸나 보다.
안토니오는 물고기의 크기를 느꼈다.
새끼, 물고기였다.
슬쩍 마나를 보내 물고기를 풀어 주었다.
보통 이런 상황에서는 낚싯대에 미끼를 다시 끼워야 했지만 안토니오는 그러지 않았다.
왜냐면.
인기척이 느껴졌으니까.
그대로 고개를 돌린 안토니오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낚시가 취미셨나 봅니다.”
똑같은 얼굴의 두 남자가 서로를 마주 보고 있는 기묘한 상황.
안토니오는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폴리모프를 풀었다.
백발이 성성한 노인.
하지만 노인답지 않게 주름도 별로 없는 그의 얼굴은 40대의 그것과 같았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섰고, 앉아 있던 의자를 잭에게 건넸다.
잭은 사양하지 않고 그 의자에 앉았고, 그대로 몸을 늘어트렸다.
“많이 수척해지셨습니다.”
잭의 얼굴은 확실히 평소와 달랐다.
지나치게 왜소한.
풍선 바람 빠지듯 살이 빠졌다고 해야 할까.
“제가 웬만해서는 노인 공경 해 드리는데, 좀 앉아야겠습니다.”
조금 뒤늦은 잭의 말에 안토니오가 어색하게 웃었다.
“더 쉬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래야 하는데, 웬 이상한 놈 때문에 중간에 깼습니다.”
느낀 게 있다는 듯, 그러고는 조금 죄송스럽다는 듯 안토니오가 말했다.
“끼어들까 하다가 끼어들지 않았습니다. 찰나이기도 했고 사실 반응이 조금 늦었다고 해야겠지요. 문책하신다면 달게 받겠습니다.”
잭이 고개를 저었다.
정신을 차리자마자 느꼈다.
작센 베이스를 비롯한 다른 마스터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이건 누군가 읽었다는 뜻이다.
잭이 정신을 잃은 그 상태에서도 일정 부분까지의 공간을 지배하고 있다는 그 사실을 말이다.
안토니오 세나는 분명 강자였다.
그 일을 미연에 방지까지 했다면 더 좋았겠지만 모든 게 완벽할 수는 없지.
“그런 걸로 문책할 생각 없습니다. 제가 깨어날 때까지 일정 거리에서 용서를 비는 그런 걸 생각하셨겠죠. 혹여 무슨 일이 벌어진다 해도 해결될 거라고도 ‘확신’하셨고, 그냥 저를 믿으신 거 아닙니까?”
“맞긴 한데, 독심술도 할 줄 아십니까?”
잭이 작게 웃는다.
“그런 거 모릅니다. 관찰 같은 거죠. 느끼셨다시피 대화나 하려고 왔습니다.”
“독심술 맞는 것 같은데요.”
그리 말하던 안토니오는 문득 깨달았다.
이 남자가 말을 높이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 만났을 때는 그냥 바로 말을 놓더니 웬일이지.
“제 입으로 말하긴 그래도, 제가 그렇게 예의 없는 놈이 아닙니다.”
말을 하는 것도 힘겹다는 듯 말을 잠시 멈춘 잭은 심호흡을 하며 숨을 조절했다.
“저와 함께하시겠다고 하셨잖습니까. 일어나면 가장 먼저 챙겨야겠다고 판단한 거뿐입니다.”
깔끔하게 본론을 꺼낸 잭의 말에 안토니오는 웃었다.
확실히 이 남자, 괜찮구나.
“몇 가지 궁금했던 게 있는데 이참에 여쭤봐도 됩니까?”
잭의 아래로 들어가겠다고 이야기했던 안토니오였기에, 그는 생각보다 저자세였다.
잭이 말했다.
“말씀하시지요.”
“느끼셨듯, 섬이 사라졌어도, 도관이라는 단체가 사라졌다고 해도 군나르의 핏줄은 저희에게 굉장히 큰 의미가 있습니다. 혹여, 군나르라는 이름을 이어 가실 생각이 있으신지요.”
잭은 발란티에라는 이름을 싫어한다.
발란티에라는 이름을 계속 쓰면 인간 쓰레기였던 클라크나 페일론이나 그 외 기타 멍청한 새끼들의 이름도 자연스럽게 높아진다.
바꿀 생각? 당연히 있다.
누나인 엘리자베스를 생각해 ‘당분간’ 이 이름을 쓰고 있는 거지, 계속해서 이 이름을 쓸 생각은 없었다.
그런 잭의 생각을 다른 이들이 눈치채지 못했을까.
적어도 가까이에 있는 이들은 이미 전부 눈치챈 상황이다.
특히 아베이루가 그러했다.
그렇기에 ‘군나르’라는 선택지가 생겼을 때, 아베이루는 망설이지 않고 잭에게 그 이름을 물려받으라고 권했던 것이다.
전통적으로는 자식이 아버지의 이름을 따르는 게 맞지만 그건 대륙의 귀족들이 만든 규율에 불과하다.
잭은.
그딴 규율에는 얽매이지 않았고 관심 없었다.
그렇다고 ‘잭 군나르’가 될 것이냐고 묻는다면.
“그럴 생각, 전혀 없습니다.”
“그러십니까.”
“예. 어머니가 군나르라는 이름을 버린 이유는 아서 군나르가 그 이름으로 어떤 행동을 하고 있었는지 알았기 때문입니다. 저도 그걸 알게 된 상황이고 직접 묶인 매듭도 풀었습니다. 군나르라는 이름은 앞으로 쓰일 일이 없을 겁니다.”
잭은 말하고 있었다.
이제 군나르는 없다고.
그딴 이름은, 이제 대륙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그 이야기는 그만합시다. 저는 잭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