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467)
제 468화
화르륵. 타오른다.
검들이 전부 불타오르며 하늘을 밝혔다. 얼마나 뜨거웠으면 주변에 있던 구름들이 사라졌을까.
압도적이었다. 손을 들어 올렸다. 땀이, 흐르고 있었다.
거리는 최소 수십 킬로가 넘었지만 느낌상 저게 만약 바닥에 떨어진다면 여기까지도 피해가 올 것 같았다.
이렇게 말하고 싶지는 않은데.
정말 자존심상 말하고 싶지는 않은데 할 수밖에 없다. 두려웠다. 정말 두려웠다.
생각했다. 생각이 꼬리를 문다. 저게, 정말 선기가 맞는 걸까.
이어서 화검들이 떨어져 내린다.
콰광, 콰아아앙. 굉음이 쉴 새 없이 울린다. 땅이 진동한다. 다행스럽게도 이 거리까지는 피해가 없었다. 그냥 진동과 열기만 느껴질 뿐이었다.
제령대사는 나름 강자의 위치에 있는 남자다. 그는 상황 판단이 빨랐다.
“이거…… 안 되겠는데.”
산이 사라졌다. 나무가 사라지고 우물이 사라졌다. 시체도 사라졌다. 사람의 흔적이 전혀 없었다.
“도망, 가야겠군.”
망설임 따위는 없었다. 그렇게 삼왕 중 한 명인 명왕 제령대사는 친위대를 데리고 다시 본가로 돌아갔다.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면서.
저 괴물이랑 엮일 일은 피해야겠구나.
하지만 세상이 그렇게 쉬웠다면 괜히 세상이겠는가.
제령대사는 도망쳤다.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쳤다.
그게 현재까지 벌어진 일이었다.
* * *
당연한 소리지만 마차를 타고 이동했다. 론도 지쳤고 나도 지쳤으니까.
텔레포트 마법이 만능이긴 하지만 이런 몸 상태로 계속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거듭 말하지만 몸 상태가 말이 아니었거든.
지금 마차가 덜컹, 거리는데 동시에 몸 전체가 욱신거린다. 심장도 아프다. 두통은 말할 것도 없고.
숨을 내쉬며 손으로 이마를 덮었다. 마차에 깊숙이 몸을 파묻은 상태라 자세는 편한데 흔들리는 게, 어후.
“도련님. 살아 계십니까?”
“아니. 죽은 거 같은데.”
“살아 계시네.”
손을 치우고 고개를 돌렸다. 우리 론이 나만큼이나 엉망인 몸 상태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론도 좀 쉬어.”
아마 내 눈빛도 론의 눈빛과 별반 다르지가 않을 거다. 왜냐면 우리 론이 입고 있는 저 옷.
갑옷을 말하는 게 아니다. 그 갑옷 내부에 입고 있는 긴팔 티셔츠는 처음 서대륙에서 출발했을 때 분명 회색이었거든.
그런데 지금 회색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피로 거의 염색을 한 수준인데 말은 안 했지만 피 비린내가 진동을 한다.
그만큼 론이 고생했다는 건데. 신기하게도 우리 론은 독심술을 쓸 줄 아나 보다.
“냄새 많이 납니까?”
“조금 나긴 하는데 참을 만해. 그 정도 냄새는 내 몸에서도 나잖아.”
“그런가요? 지금 후각이 마비돼 가지고 잘 모르겠습니다.”
론이 부드럽게 웃는다. 나도 웃었다. 웃은 김에 손을 내밀어 론의 어깨를 짚었다.
내 손에서 붉은 마나가 피어올랐고 론의 몸을 덮었다.
오랫동안 덮은 건 아니다. 한 1초? 2초? 그 정도.
이어서 치지직, 무언가 타들어 가는 소리와 살이 아물어 가는 소리, 장기가 제자리를 찾는 소리가 울린다.
론의 눈이 크게 떠졌다. 이런 몸 상태로 회복 마법이라니. 그런 표정이다. 그런 론에게 나는 아무 말 하지 말라고 고개를 저었다.
론은 하고 싶은 말이 산더미처럼 많아 보였지만 하지 않았다. 그리고 말은 론이 아니라 우리 건너편에 있는 수라도제 유제하가 했다.
“의술도 할 줄 알고 계셨는가?”
“대충 비슷하게 흉내는 내지.”
“……대단하군, 하지만 오히려 잘됐어. 이곳으로 온 게 정답이었군.”
이런 건 의술이라기보다는 마나로 만든 그냥 회복 마법이다. 그리고 누가 나를 의사라고 불러. 살면서 의사 소리는 못 들어 봤는데.
다시 몸을 드러눕혔다.
그런데 잠깐만. 이곳으로 온 게 정답이라고? 뭔가 뉘앙스가 묘하다. 이 새끼 설마 뒤통수치려고 준비하나?
“지금 마궁으로 가고 있는 거 맞지?”
“물론. 다만 마궁으로 가는 길에 의궁이 있어서 그쪽에 잠깐 들르려고 했는데, 마음에 안 드시는가?”
물끄러미 수라도제를 바라보자 녀석이 말을 덧붙인다.
“당연한 거지만 난 자네가 어떤 사람인지 몰라. 하지만.”
“하지만?”
“자네의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는 건 알아. 그리고 그 몸을 자네는 스스로 치료할 수 없어. 방금 홍포신군의 몸을 치료해 준 게 그 증거지. 그게 가능했다면 자네는 자기 몸을 먼저 치료했을 테니까.”
그러니까.
“그래서?”
“만약에, 그 몸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어찌하시겠는가.”
음.
“앞서 말했듯 나는 자네가 어떤 인물인지 자세하게는 몰라. 하지만 몇 가지는 알지. 자네는 공짜를 싫어해. 그리고 이유 없이 누군가를 핍박하지는 않아. 짧게 말하면 은원이 확실하다는 거지.”
듣고 보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은원.
이쪽 세상의 단어인데 이상하게 꽤 마음에 든다.
“의궁의 궁주인 신의 부운영은 괴팍해. 그리고 스스로의 의술에 자부심도 있지. 이 자리에서 확실하게 말해 줄 수 있는데 신의는 협박 같은 것에 굴하는 남자가 아니야. 만약 협박을 당한다면 자기 목숨을 끊었으면 끊었지 절대 굽힐 인물이 아니라네. 하지만.”
수라도제의 눈빛이 열망으로 이글거린다.
“신의는 내게 빚이 있어. 나는 신의를 움직일 수 있네. 내가 무슨 말 하려는지 아시겠는가?”
웃고 말았다.
수라도제 유제하.
이 남자는 생각보다 단순한 남자였다. 단순명료해서 이상하게 마음에 든다.
첫 만남이 조금 엉키긴 했지만 수라도제는 그 일을 온전히 자기의 잘못으로 알고 있는 것 같다. 은원이 확실하다고 해야 하나. 괜히 의심했네.
정리하면.
“신의에게 내 몸을 봐 달라 할 수 있으니까, 그 대가로 조언 좀 해 달라?”
“……앞서도 말했지만 난 자네가 과격하긴 해도 은원은 확실한 남자라고 생각해. 다른 건 몰라도 그건 확신할 수 있어.”
수라도제를 바라보던 내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의궁으로 가자.
내 몸이 완벽하게 회복되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다면 당연히 시도해 보는 게 맞다.
그런데, 갔다가 정천맹에서처럼 막 시비 걸리고 그러는 건 아니겠지.
이게 아무리 생각해도 마가 낀 거 같다.
아니면 내 성격이 지랄맞거나.
* * *
의궁은 상당히 거대한 영지였다.
분명 거대했는데 뭐라고 해야 할까. 작다고 해야 하나.
땅덩어리는 큰데 거기서 살고 있는 이들은 굉장히 적어서 이걸 영지라고 부를 수가 있을지 모르겠다. 크면서도 작았다.
영지이면서도 마을 같은 그런 곳.
대충 느껴지는 기척이 약 300명 정도 되는데, 분명 마을이라는 단어는 틀리지 않았다.
그리고 유제하가 말했던 신의 부운영은 약 60대 중후반쯤으로 보이는 남자였는데 밑으로 약 10cm 길이의 흰 턱수염과 ‘흰머리와 검은색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머리’는 꽤나 어울렸다. 정말 신선 같았다. 유제하가 말했다.
“환자가 있소. 봐주셨으면 하는데.”
신의의 눈이 내 쪽으로 향한다. 그러고는 내 옆에 있는 론에게로도 향했다.
“한 명? 아니면 두 명?”
“어때 보이시오?”
정말 궁금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묻는 유제하가 못마땅한 듯 신의가 미간을 찌푸린다.
“어디 보자, 한 명은…… 정상이군. 핏자국이 마른 지 대충 하루? 이틀? 그 정도 된 거 같고, 보면 절대 정상일 수가 없는데 정상이야. 여기 오기 전에 나 말고 다른 의사를 만났나? 실력은 대충 괴의 정도는 되는 것 같은데, 은거한 그놈을 용케 찾았군.”
유제하는 답하지 않았다. 나도 답하지 않았고. 나와 유제하의 반응에 신의가 웃음을 터트린다.
“허허, 보아하니 괴의는 아니구만. 그보다.”
재미있는 일은 그다음 벌어졌다. 신의의 시선이 내게 옮겨진다.
“이쪽이 더 놀랍군.”
신의가 내게 걸어온다. 나를 바라보며, 마저 말했다.
“자네, 살아 있는 게 맞는가?”
신의의 눈은 커질 대로 커져 있었다.
“자세히 보니 더 놀라워. 눈은 흔들리고 뼈는 제자리도 못 찾았고…… 머리는 안 아프신가? 빈혈이나 그런 게 엄청날 텐데.”
그건 보면 아는 거고.
“선기를 끌어다 썼나? 이거 참, 희한하구만. 피로가 누적되어 있어. 피로뿐만이 아니지. 자네 단 한 번도 쉰 적이 없군.”
그 말에 속으로 조금 놀랐다. 이거 돌팔이는 아닌 것 같다. 신의의 눈이 계속 내 몸을 훑는다. 그리고 속으로 내가 놀란 것의 한 열 배 정도의 모습으로 말을 잇는다.
“어찌 이런 몸으로 살아 있을 수가 있지? 내 살면서 이런 건 본 적이 없는데. 혈맥은 꼬여 있고 근육은 뒤틀려 있고 뼈는, 맙소사, 이건 도저히 살아 있는 사람의 몸이 아니야. 그리고 말 좀 해 보시게. 자네는 시체인가?”
그런 신의를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확실히.”
“확실히?”
“돌팔이는 아니네.”
신의가 피식 웃는다. 수염이 살짝 떨리는 게 꽤 멋스러워 보이는데 나도 수염이나 길러 볼까.
그냥 든 생각이었다. 신의가 말했다.
“의도하고 하는 건가?”
뜬금없는 질문처럼 들렸을 거다. 적어도 론이나 유제하에게는 분명 뜬금없었을 거다. 하지만 난 아니었다. 진짜 돌팔이가 아니네.
“자연 치유력, 경지에 이른 이들은 보통 사람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치유력을 가지지. 하지만 자네는 그것들보다도 두 단계, 아니 세 단계는 더 위에 있어. 이 정도의 치유력은 내 본 적이 없는데…… 오호.”
신의가 묘한 웃음을 짓는다. 긴가민가했던 사실을 마치 확신이라도 하는 그런 웃음이었다. 신의가 수라도제를 힐끗 바라보더니 내게 말했다.
“자네가 그 소문의 마존魔尊이군.”
귀를 의심했다.
“마존?”
“얼마 되지 않았네. 현 무림에는 일마가 있고 삼존이 있고 삼왕이 있다. 일마는 천마요 삼존은 검존과 광존 그리고 마존, 삼왕에는 명왕과 독왕과 암왕이 있다, 그런 소문이 퍼졌었다네.”
입가에 웃음이 지어진다. 이것 봐라. 신의의 실력에 대한 건 잠깐 옆으로 제쳐 둬야 할 것 같다. 궁금해서 도저히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소문의 근원지는?”
“음, 다른 대륙에서 왔다지?”
이젠 모르는 사람이 없네.
태극검제 그 늙은이가 뒤지기 전 사방팔방 다 떠들고 다녔나. 말없이 신의를 바라보자 그가 답한다.
“현 무림에는 정보를 다루는 단체가 총 두 개 있네. 개방과 하오문, 보통 어떤 무인이 죽었다거나 어떤 새로운 무인이 등장했다거나 하는 그런 소문들은 저 두 개의 단체가 퍼트리기 마련이지. 이 경우도 마찬가지야. 개방과 하오문에서 특급으로 뿌렸더군. 전국 각지에 퍼져 있는 문도들이 같은 내용을 떠벌리고 다니니 의궁인 여기까지 들어오는 건 당연하지.”
스멀스멀 올라온다. 불쾌감이라는 감정이.
염존을 죽여서 삼존의 자리에 내가 들어간다는 건 오케이. 충분히 납득할 만하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마존魔尊일까.
내가 서대륙에서 왔고 염존을 죽여서 존의 자리에 들어간다? 그건 너무 편하게 생각한 거고. 세상은 그렇게 쉽지 않다.
설령 존이라는 이름이 달린다 해도 하필이면 ‘마魔’라니. 마존이라니. 이건 선을 많이 넘었다. 신의가 말한다.
“눈치챈 것 같은데 확답을 좀 해 주자면 이런 말이 떠돈다더군.”
“무슨 말?”
“천마天魔와 마존魔尊이 서로 마魔라는 이름을 공유하는데 과연 누가 위일까.”
신의가 내 눈을 바라본다.
“조금 노골적이어서 우습기까지 해. 마치 자네와 천마를 싸움 붙이려는 모양새던데. 어찌 생각하시는가?”
웃고 말았다. 어떻게 생각하긴.
난 누구한테 휘둘리는 걸 혐오한다. 그럼 굉장히 간단해진다.
“염존이 죽은 이유는 나를 자기가 만든 판의 장기말로 생각해서였거든.”
“…….”
“그런데 같은 방식으로 나를 가지고 놀려는 놈이 있다면 더 생각할 게 있나. 잡아 죽여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