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490)
제 491화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던데, 윗물에 있는 새끼가 저렇게 사리분별 못하는 미친놈이니 아랫놈이 제대로 된 놈일 리가 있나.”
광존의 입가에서 웃음이 사라진다. 까드득, 주먹이 쥐어진다.
도발에 넘어가지 않겠다는 그런 다짐 같은 게 아니었다.
“아직 늦지 않았다.”
황제의 표정이 묘해진다.
“당장이라도 싸울 것처럼 행동하더니 갑자기 뭔 개소리야.”
“팔 하나만 내려놓고 사과하거라.”
그 말에 황제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광존이 마저 말했다.
“천외천의 존재를 아니까 대화가 편하겠지. 천외천을 적으로 돌리기 싫다면 팔 하나만 내려놓고 무릎 꿇거라. 외팔이로 살아가라는 말이다. 그럼 없던 일로 하고 넘어가 줄 수 있다.”
황제의 입이 천천히 벌어진다. 광존은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동대륙의 역사상 그 누구도 개방을 건드리고 무사하지 못했다. 서쪽에서 왔다는 것은 면죄부가 될 수 없다. 개방을 건드리면 네놈도 무사하지 못하…….”
“파…….”
“파?”
“파하하하하하-!”
황제가 배를 잡고 웃는다. 폭소를 터트렸다. 사방이 진동한다. 자연스럽게 황제의 기운이 주변으로 뻗어 나간다. 동시에 원재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 남자가 이 정도의 기운을 품고 있었다고?
“하하하하하-!!”
그건 폭소를 넘어선 광소, 그 수준이었다.
“하하하하-! 아…… 와…… 세상에, 어떻게 하는 말 하나하나가 다 주옥같을 수가 있지.”
황제는 느긋하게 손을 뻗었다. 허리춤에 있는 장검의 손잡이를 잡았고 뽑았다. 챠릉.
검집도 없는데 청명음이 세상에 울린다.
검을 잡자 황제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무거워졌다.
말투도 달라졌다.
“짐이 네놈에게 하나 궁금한 게 있는데 말이다.”
광존이 묻는다.
“그게 뭐지?”
“여기서 네놈을 죽이면 개방의 거지들이 짐에게 달려드나?”
무슨 의도인지 광존은 확실하게 파악하지 못했다. 그냥 자기 멋대로 해석했다. 수백만이 넘는 거지들이 한꺼번에 달려들면 그건 굉장히 귀찮은 일이다. 안 그래도 명성에 굶주린 무인들이 많다. 개방의 거지들을 상대하며 그들도 상대해야 한다. 그건 지상의 지옥이다.
그래서 당당하게 말했다.
“물론. 이미 개방의 거지들은 무장을 마쳤다. 개방의 모든 거지들이 이곳 마궁으로 몰려오고 있다. 자, 이제 팔 하나를 잘라서 무릎…….”
“그럼 이 자리에서 네놈을 죽이고 개방도 멸문시켜야겠구나.”
미간이 깊게 파인다. 잘못 들었나 싶었다.
“뭐라?”
“하나 더 궁금한 게 있는데, 내가 개방을 멸문시키면 천외천은 어찌 행동하지?”
확신하지는 못했다. 천외천이 하나의 뜻으로 뭉친 단체이긴 하지만 모두가 같은 사람인 것은 아니다. 악불군처럼 단독 행동을 하는 이가 있고 지금의 광존처럼 단독 행동을 하는 이가 있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해야 할 말은 정해져 있었다.
“……네놈을 죽이러 나타나겠지.”
황제의 입가에 새겨진 미소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럼 이 자리에서 네놈을 죽이고 곧바로 개방도 멸문시키고 이어서 천외천도 멸문시켜야겠구나.”
잠시 말을 멈춘 황제가 검을 들어 어깨에 걸친다. 천천히 말을 이었다.
“진심으로 놀랍구나.”
“……놀랍다?”
“이토록이나 오만하고, 한심하고, ‘단합’도 안 되는 오합지졸 같은 조직이 하늘 위의 하늘이라는 이름을 쓴다? 과연 어디까지 무지해야 그런 오만이 가능할까.”
광존의 다리에 힘이 들어갔다. 팔에도 다시 힘이 들어갔다. 심장이 두근거린다. 온몸의 힘이, 영혼이 반응했다.
긴장의 끈이 당겨진다.
무시하고 황제가 말을 잇는다.
그리고 그건 광존 원재에게 한 말이 아니었다.
“론.”
“……예, 폐하.”
“유제하랑 하후돈 데리고 가서.”
황제가 검을 고쳐 쥔다.
“이 주변에 있는 거지새끼들, 전부 죽여.”
원재가 외쳤다.
“그만-! 거기 세 놈, 한 발자국이라도 움직이면 죽는다.”
은거하긴 했어도 그가 활동했던 시대는 비교적 최근이다. 그 시대를 살고 있는 유제하와 하후돈은 안다. 광존 원재가 얼마나 어마어마한 위명을 지니고 있는지.
하지만 지금은 그딴 건 관심도 없다. 약속했다. 맹세했다.
닭을 잡겠다고, 양치기가 되겠다고, 그럼 이 상황에서 해야 할 말과 해야 할 행동은 하나밖에 없다.
“폐하의 명을 받듭니다.”
세 남자가 몸을 돌린다. 일그러진 표정의 광존이 자리를 박찼다. 공간을 격한 거다. 공간을 격하는 그 와중에 광존은 순간 오싹했다. 행동을 그만두고 고개를 뒤로 젖혔다.
서걱-!
긴 머리카락의 절반이 잘려 나갔다.
어느새 휘두른 황제의 검이 잘라 낸 거다.
“짐이 말하지 않았느냐. 너를 죽이고 개방도 멸문시킬 거라고.”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린다. 하물며 서대륙의 지존인 황제는 받은 만큼 돌려주는 남자다.
광존 원재의 태도로 천외천의 태도를 알 수 있었다. 천외천은 정말로 서쪽의 황제를 장기말로 생각하고 있었다. 언제든 죽일 수 있는 이용 가치가 있는 장기말.
언제 봤다고, 그리고 얼마나 안다고 그런 오만함을 보이는 건지 황제는 진심으로 궁금했다. 그래서. 전부 죽일 생각이다.
광존이 뒤로 물러선다. 황제가 검 끝으로 광존을 가리켰다.
그 스승에 그 제자라는 말이 있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늦지 않았다?”
광존이 황제에게 했던 말과 패턴이 같았다. 황제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스스로의 팔다리를 부수고, 이어서 두 눈을 뽑은 뒤 바닥에 엎드린 채 일주일을 버티면.”
“버티면?”
“살려는 주마. 그게 아니라면.”
“아니라면?”
“개방의 시체들로 탑을 쌓을 건데, 그 탑의 꼭대기에 네놈의 목을 장식할 것이다. 말뚝에 꽂아서.”
이 정도의 대화면 충분했다.
“개……새끼가-!”
광존이 자리를 박찼다. 황제도 자리를 박찼다.
* * *
광존의 말대로였다.
마궁 주변에는 거지들이 타구봉을 들고 온갖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개방을 건드리는가-!”
“누가-!”
“마존이-!”
“그럼 어찌해야 하는가-!”
“죽인다-! 뭉친다-! 개방은 멈추지 않는다-!”
저 말들이 거지 몇 명이 주고받는 대화였다면 정말 우스웠겠지만 그런 게 아니었다.
수천이 넘는 거지들이, 아까 잭이 취걸개를 죽인 순간 도망쳤던 마궁의 모든 거지들이 일시에 외치고 있었으니까.
이걸 어떻게 우습게 볼 수 있을까.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위협이 되건 숫자가 많건 그게 무슨 상관인가.
이미 명령은 떨어졌고 이미 시작했고 이미, 적이 되었다.
그럼 된 거다.
가장 먼저 론이 자리를 박찼다.
론의 몸이 푸른빛에 휩싸인다. 이어서 푸른빛이 금빛으로 바뀌었다. 파지직, 스파크가 튄다.
론의 발이 뻗어 갔다. 거지들 중 명령을 내리는 지휘관처럼 보이는 남자의 머리가 퍼석, 터진다.
주변에 있던 거지들 중 물러나는 이들도 있었고 달려드는 이들도 있었다.
론의 몸에서 바람이 불어온다.
웅얼웅얼, 짧게 주문을 외운 론이 한쪽 손으로 바닥을 짚었다.
그 순간.
콰아아아앙-!!
굉음과 함께 주변 땅이 뒤집어졌다.
초급 마스터를 넘어 중급이 되어 가는 론이 펼치는 어스퀘이크 마법이다.
이어서 하후돈과 유제하도 자리를 박찼다. 하후돈은 말없이 달려든 거지만 유제하는 달랐다.
“이 쓰벌 놈의 거지새끼들이 감히 이곳이 어디라고-!”
유제하의 도가 하늘을 갈랐다. 거지 세 명의 목이 날아갔다. 주변에 있던 거지들이 달려든다. 유제하가 몸을 회전하며 도를 크게 베었다.
다섯 거지의 목이 날아갔다.
“이곳은 마궁이다-!”
거지들의 숫자는 수천이 넘었다. 그리고 그들은 이제 망설이지 않았다. 오제. 이 ‘무림’에서 제의 자리에 앉은 괴물 두 명이 황제에게 충성을 맹세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상관없다.
개방을 먼저 건드린 이가 있다. 그가 죗값을 치르기 전까지 개방은 절대 물러서지 않는다.
거지들의 눈이 희번덕 떠진다.
모두가 달려들었다.
서걱-! 서걱-!!
콰아아앙-!!
굉음이 터지며 비명이 터지고 피가 터졌다.
개방의 거지들은 계속해서 죽어 나갔다. 특히 그중에서 론의 무력이 독보적이었다.
유제하와 하후돈이 많아야 세 명에서 다섯 명을 죽일 때 론은 최소 수십을 죽이고 있었으니까.
마법.
이게 도관의 대전사다.
처음 이 마궁에서 구호를 외치며 난리를 치던 개방의 문도들은 총 3900명이었다. 그들이 전부 죽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해야 10분이었다.
세 남자가 숨을 헐떡인다.
어느새 합류한 마궁의 무인들도 곁에서 숨을 헐떡였다.
짧게 심호흡한 유제하가 론에게 다가갔다.
“이보시게, 괜찮으신가.”
“예. 괜찮습니다.”
유제하가 잠시 주변을 둘러본다. 모두가 이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의문을 품고 있는 마궁의 일반 주민들과 마궁의 무인들. 그 외 등등. 유제하가 말을 잇는다.
“폐하께서는 그대에게 우리 둘을 데리고 가라 했지.”
“그랬지요.”
고개를 끄덕이는 론의 손에서 뚝뚝, 피가 떨어졌다.
유제하와 하후돈은 바보가 아니다. 잭의 말을 확실하게 알아들었다.
분명 유제하의 말대로 잭은 론에게 이렇게 말했다. 유제하와 하후돈을 데리고 가서 개방의 거지들을 죽이라고.
이건 명령 체계를 정리해 준 것과 같았다.
최종 명령권자는 잭이지만 잭이 부재시 최종 명령권자는 론이 된다는 그런 간단한 원리.
론도 바보가 아니다. 어깨가 무거워졌지만 상관없다.
버틸 수 있으니까.
잭이 지금껏 살아오며 버틴 고통이나 그 무게에 비하면 이건 조족지혈일 테니 못 버틴다면 나가 죽어야지.
론이 말했다.
“개방과 폐하의 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두 남자가 고개를 끄덕인다.
“폐하는 아무 이유 없이 어떠한 일에 휩쓸려 무의미하게 죽어 나가는 그런 상황을 굉장히 혐오합니다.”
그건 사실이었다. 서대륙에서 잭이 했던 행동들은 다 그랬다. 전생에서 소년병들을 죽이지 않고 살려 둔 것도 그런 범주에 속한다.
무기를 겨눴다면, 적이 되었어도 한두 번의 경고 정도는 해 준다. 솎아 내는 것이다.
나름의 신념과 나름의 뜻으로 무기를 들고 잭을 적대하는 이들은 무조건 죽였지만 아무 이유 없이 휩쓸린 이들은 가능하면 살려 둔다. 툴칸 제국을 멸문시킬 때가 그러했다. 잭은 왜 혼자 움직였을까. 왜 피난민을 받아들였을까.
이 모든 것들은 잭의 성향을 보여 주는 행동들이다.
“마궁의 ‘일반 주민’들은 전부 ‘빙궁’으로 대피시키십시오.”
“빙궁으로?”
“마궁에 수십만 명이 산다고 들었습니다.”
“정확히는 14만이네. 호구 조사를 한지 조금 되긴 했지만 오차는 크지 않아. 하지만 그들 모두에게 무기를 들라고 명령만 하면 무기를 들 거야. 그 정도면 충분한 전력이…….”
“폐하는.”
“…….”
“희생을 최소화시키는 것을 원합니다. 적의 희생이 아니라 ‘아군의 희생’을 말하는 겁니다.”
유제하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참으로…… 이상적인 지도자가 아닌가.
론이 덧붙인다.
“싸우고자 하는 이들도 있을 겁니다. 저쪽에 있는 무인들은 마궁의 직속 부대로 보이는데, 맞습니까?”
유제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갑작스럽게 벌어진 이 살육전에 참전한 약 280명의 무인들이 있었다.
이들은 유제하의 사병이다.
정확히는 마궁의 직속 무력 부대인 마전대의 병사들이다.
최소 일류 무인 이상으로 편성되어 있고 개중에는 절정에 달하는 무인이 100명이 넘는다. 총 3개의 부대로 나눠져 있는데 각 대대의 장은 초절정 무인들이다.
“저들 중 남길 이들을 고르십시오.”
“남길 이들? 그럼 나머지는?”
“나머지에게는 주민들의 호위를 맡기셔야죠.”
“호위…… 맞아. 충분한 대인원이 움직이는 거니 호위가 필요하겠지. 기한은?”
론이 고개를 돌린다. 거지들의 시체가 주변에 쌓여 있었고 멀리서 두려움 섞인 표정으로 이곳을 바라보는 마궁의 주민들이 보인다. 그들을 바라보며 짤막하게 답했다.
“지금 즉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