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569)
제 570화
알렉스는 정신이 돌아오는 것을 느꼈다. 그다음 느낀 것은 팔다리가 결박되어 있다는 것이었는데, 이다음으로 머리가 지끈거렸다.
마치 망치로 얻어맞은 것처럼.
곧바로 생각했다.
왜 머리가 아픈가, 왜 팔다리가 결박되어 있는가.
마지막, 기억이 뭐였는가.
금방 생각이 났다.
신임 감찰관이었던 메론이 밀로스 제국 감찰청 천하성 지부의 청장 레이먼드 베크를 한주먹에 기절시키던 것.
그리고 하늘을 올려다보니 이후 자신 쪽으로 손가락을 튕겼고.
그 손가락에서 튀어나온 무언가가 머리를 후려쳤다. 그게 마지막 기억이었다.
그런 알렉스의 귓가로 메론의 목소리가 울린다.
“일어나셨습니까?”
목소리를 듣자마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고개를 바로 치켜들었다. 웃고 있는 메론이 보인다.
이 악마 같은 새끼.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다. 힘이 강하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다. 직접적인 영향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고 솔직히, ‘적’이 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같은 감찰관이고 상관과 부하의 관계다. 여기서 말하는 적은 죽고 죽이는 관계를 뜻한다.
메론의 힘을 보았다.
그래서 두려웠다.
“길게 말하지 않겠습니다. 짧고 굵게 갑시다. 배후가 누굽니까?”
“…….”
“내부 고발자가 되면 정상 참작해 드린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알렉스 크로스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럴 만도 했다. 그의 앞에는 똑같은 자세로 앉아 있는 감찰청장이 있었으니까.
지금 상황은 생각보다, 정말 매우 간단하게 정리할 수 있었다.
메론 감찰관.
이 미친 새끼가 지금 감찰청의 청장과 부장을 결박시켜 놓은 거다.
딱, 거기까지였다.
메론이 그대로 고개를 돌려 베크를 바라보았다. 베크는 진작에 정신을 차린 상태였고 지금, 메론이 알렉스와 대화를 하는 것을 조용히 지켜만 보고 있었다.
그거면, 충분했다.
적어도 메론에게 있어서 이 정도면 충분했다.
“우리 부장님께서는 아는 게 없으시군요.”
이건 분명한 진실이었다.
청장 베크가 왜 이렇게 의연할까.
알렉스의 입이 열리건 말건 상관하지 않겠다는 저 얼굴에는 딱 한 가지의 의미밖에 없었다.
부장 알렉스가 입을 열고 뭐라 말하건 전부 의미가 없을 거라는 거.
즉, 알렉스 크로스는 아는 게 없다.
메론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차가워진다.
“쓸모가 없다면 살려 둘 이유가 없는데.”
그 중얼거림에 뒤에 있던 알렉스가 흠칫했다.
“……자…… 잠깐만.”
돌아가는 상황이 묘하다.
알렉스도 눈치는 있었다. 부장 자리에 괜히 오래 있던 게 아니다. 보자.
지금 메론은 하극상을 저질렀다. 지금 그의 입장에서 알렉스를 죽이건 청장을 죽이건, 둘 중 한 명만 살려 둬도 되는 상황이다. 어쩌면 둘 다 죽여도 상관없는 상황일 수도 있고.
잊은 이는 없겠지만 메론의 직책이 감찰관이다. 감찰관, 조서를 쓰고 수사를 하고 징계를 내린다.
청장과 부장이 죽게 된다면 모든 것은 메론이 쓰는 입맛대로 전부 조정될 수 있다.
결국 힘이 지배하는 세상이다.
청장은 이미 그런 방식을 여러 번 취해 왔었다.
아는 것을 전부 말해야 한다.
알렉스가 재빨리 입을 열었다.
“……청장, 저 새끼가 따로 존칭을 하고 명령을 받는 존재가 있었어.”
“그게 누굽니까?”
“몰라. 이름도, 얼굴도, 심지어 말투도. 하지만 그가 남자라는 건 알아. 체형이 그랬으니까.”
메론이 흥미 가득한 표정으로 알렉스와 베크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베크는 여전히 의연한 표정이었고 알렉스는 다급했다.
진실성이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일단은 더 들어보자.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알렉스가 말을 잇는다.
“일은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밖으로 퍼져 나갈 일은 없습니다. 입단속은 철저히 하고 있으니까요. 이게 내가 들은 말의 전부야. 이 이상은 나도 몰라. 정말로 몰라.”
그 말을 들은 메론이 베크를 바라보았다. 베크는 당당하게 답했다.
“그 말들은 사실이다.”
너무 당당하게 인정해서 의외였다.
메론이, 베크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건 정말로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데, 그게 누굽니까?”
“말 못 한다.”
“여기서 고문한다면?”
“말 못 한다.”
“그냥 죽인다면?”
“말 못 한다.”
어깨를 으쓱하며 메론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런 메론의 입가에는 웃음이 걸려 있었다.
그리고 그 웃음에, 베크는 흠칫했다.
지금까지 메론이 보여 왔던 웃음과는 매우 달랐으니까. 그건 분명히 말하는데 ‘비웃음’이었다.
“청장님. 참으로 실망입니다. 뭐 대단한 거라도 있나 싶었는데 그저 앞뒤 분간 못 하는 버러지 새끼에 불과했다니.”
“뭐라……?”
“감찰청 천하성 지부를 가지고 놀았던 존재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존재에게 휘둘렸다는 것, 너무 보잘것없습니다. 아득바득 청장 자리를 유지하면서 고작 남 밑이나 닦아 주는 관계였다니, 한숨이 나옵니다. 진심으로, 당신이 불쌍해 보입니다.”
이후 베크가 보인 반응은 굉장히 이례적이었다.
“네놈이 뭔데 그딴 소리를 지껄이는 것이냐!!”
메론은 답하지 않았다.
“개인의 신념을 어찌 네놈 같은 아해兒孩가 판단하는 것이냐. 네놈이 귀족이어도 네놈이 왕이어도, 심지어 황제여도 개인의 신념을 판단할 자격 같은 것은 없다!”
“왜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신념이 있다고 자기 합리화를 하며 현실 도피를 하고 더 나아가 범죄를 무마해 주고, 당신의 신념이 제대로 된 신념이었다면 밀로스 제국의 이름을 빌려서 범죄를 저지르는 게 아니라 자리를 내려놓고 오직 ‘레이먼드 베크’라는 이름으로 관철시키면 되는 겁니다. 그런데 지금 그러고 계십니까?”
“건방진 새끼! 이 세상의 그 누구도 신념에 대해 판단할 수 없다. 오만도 정도껏이어야지. 서대륙의 체계화된 직책 같은 것은 전부 진의를 숨긴 매우 잘못된…….”
말을 하다 말고 베크는 입을 다물었다.
그의 눈이 표독스럽게 변한다.
메론이 피식 웃었다.
“왜요? 더 말 안 하실 겁니까? 거의 끝까지 나올 뻔한 거 같은데.”
“…….”
“갑자기 합죽이가 되셨네.”
베크는 그 이상 답하지 않았다. 메론도 그 이상 묻지 않았다. 이 두 남자는, 이제 쓸모가 없다.
어찌해야 할까.
* * *
결론적으로 말하면 내 고민은 쓰잘데기없는 고민이었다.
‘누군가’, 먼저 발 빠르게 움직였으니까.
이건 나로서도 예측하지 못한 움직임이었다.
“중앙감찰청의 마이카다. 제보를 받고 왔는데 대단하군. 범죄자 두 명을 이리 쉽게 잡아놓다니.”
중앙감찰청은 밀로스 제국 전국 각지에 존재하는 수많은 감찰청들 중 가장 상위에 있는 조직이다.
상급 감찰청이라고도 불리는데 이곳의 감찰관이 되려면 어떤 식으로든 능력이 있어야 한다.
일단 예의를 차렸다.
“밀로스 제국 감찰청 천하성 지부 감찰관 메론입니다. 실례지만 중앙감찰청의 어느 부서에서 오신 겁니까?”
마이카라 불린 남자는 금색 빛을 띠는 곱슬머리를 가지고 있었으며 겉보기에는 매우 선한 눈을 지니고 있었다.
오뚝 솟은 코와 날렵한 코를 보면 미남자라는 수식어를 써도 좋을 정도의 외모였다.
그가 말했다.
“중앙감찰청 반부패부에서 나왔다. 다시 소개하지, 중앙감찰청 반부패부 수사지원과 마이카 엘튼이다. 아카데미 기수로는 너보다 정확히 열셋 기수 높아. 사적인 자리에서는 말을 놓아도 돼. 지금은 공적인 자리니 일단 공적인 업무부터 이야기하지.”
마이카가 걸음을 옮기더니 알렉스 크로스와 레이먼드 베크의 앞에 섰다.
“제보가 들어왔다. 이 두 남자가 천하성에서 신임 감찰관들을 죽이고 뒷거래를 통해 밀로스 제국의 신성한 의무 복무 규정을 강제로 면제시켜 준다는 제보였지. 조사차 나왔는데 이미 자네가 발 빠르게 움직였군.”
마이카는 혼자 오지 않았다.
꽤 많은 숫자의 인원들을 데리고 왔는데, 그들이 알렉스 크로스와 레이먼드 베크를 데리고 마이카의 뒤에 섰다.
“자네 덕분에 일이 편하게 됐어. 이건 정말 고맙게 생각해. 혹시 원하는 게 있나?”
원하는 거? 있다.
“아직 저 둘의 입에서 들어야 할 말이 남았습니다.”
“그래? 그런데 이거 어쩌지? 나도 상부에서 내려온 지시라 저 둘을 지금 당장 데려가야 하는데.”
진지하게 질문했다.
“제보자가 누굽니까?”
“익명이라고 말했을 텐데.”
“익명의 제보에 중앙감찰청이 직접 움직인다? 납득이 안 갑니다.”
마이카가 조금 어처구니없다는 듯한 웃음을 지었다.
“납득이라……. 이봐, 메론 감찰관. 자네는 지금 신임 감찰관이야. 자네가 납득하지 않으면 어쩌게? 상부 지시라니까?”
이번에는 내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었다.
“꼬리를 잡기 일보 직전이었는데 갑자기 와서 가로채 간다? 그것도 익명의 제보로? 중앙감찰청 반부패부 수사지원과가 그런 식으로 움직인다는 것을 저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없겠지. 수사지원과는 수사지휘과와는 다르게 뒤에서 이렇게 움직이고 정보를 종합해서 지휘과에 넘기는 역할이니까. 수사지원과의 움직임은 은밀해. 세간에 알리지 않고 최정예의 소수가 움직이는 게 철칙이지. 동네방네 다 소문내고 다니면 범죄자들 다 도망치게? 이봐, 메론 감찰관.”
마이카가 큰 제스처로 어깨를 으쓱했다.
“어떤 기분인지는 충분히 알아. 아는데 어쩔 수가 없어. 후우.”
한숨을 푹 터트린 마이카가 잠시 옆으로 따라오라는 듯 턱짓했다. 그가 걸음을 옮겼고 나도 걸음을 옮겼다.
나와 마이카는 굉장히 구석진 곳으로 이동했다. 마이카가, 매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솔직히 말할게. 네 말이 맞아. 익명이라고 했던 건 어쩔 수 없었던 거야. 나라고 아카데미 후배 공을 가로채고 싶겠어? 그런데, 이번에는 정말 말 그대로 위에서 지시가 내려왔어.”
갑자기 친절해지는 마이카였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정보는 가려서 받으면 그만이다. 이 남자가 왜 이러는지, 호의를 가지고 이러는지 아니면 혼선을 주기 위해 이러는지 나는 천천히 알아내면 그만이다. 조용히 들었다.
“칼 세이건 후작, 알지?”
“압니다. 과거 요람 왕국의 북부 지역을 다스렸던 ‘공작 가문’ 아닙니까? 밀로스 제국으로 편입되면서 후작이 되긴 했으나 조만간 공작으로 격상할 것이 유력한 가문.”
“잘 아네. 칼 세이건 후작은 중앙감찰청 반부패부 부장이기도 해. 곧 중앙감찰청 청장이 되실 분이기도 하고, 그분이 명령한 거야. 그분으로서도 도저히 움직이지 않을 수가 없는 제보가 들어왔거든.”
“그게 익명의 제보다?”
“앞서도 이야기했듯 자네가 어떤 기분일지 충분히 알아. 아카데미 후배의 공을 가로채고 싶지도 않고, 문제는 지시가 내려왔다는 거야. 그 지시를 나는 따라야 하고. 나라고 여기 동대륙으로 오고 싶어서 왔겠냐?”
말을 완전히 놓았다는 것은 이 자리를 공적인 자리가 아니라 ‘사적인 자리’로 보자는 뜻이기도 했다.
“너, 여기에서 사고 많이 친 거 같더라. 제보를 한 사람이 천하성의 대당주 남궁철영이야.”
천하성의 직책은 전에 말했듯 성주와 부성주를 제외하고 주령, 대당주, 당주, 순찰사, 실원 이렇게 다섯 개의 직책이 존재한다.
천하성의 체계에 따르면 당주는 네 명이고 대당주는 두 명이었으며 주령은 한 명이다.
대당주 중에는 천하성 내부 활동에만 전념하는 남궁철영과 외부 활동에만 전념하는 사혼제, 이렇게 두 명으로 나누어지는데 그 둘의 힘은 현재 알려진 바로는 ‘초월자’다.
여기서 신경 써야 할 것은 하나다.
대당주 남궁철영.
“제보를 받은 건 언제입니까?”
“이틀 전, 시간을 정리해 보니까 네가 박무기라는 당주를 죽였을 그 시각에 제보를 했더라고, 그것도 통신구로.”
미간이 구겨진다.
“대충 짐작이 가지?”
“버린 거군요.”
“맞아, 버린 거야. 저 두 명, 아마 압송당하는 와중에 죽거나 도착해서 죽거나, 둘 중 하나겠지. 이렇게 말하긴 조금 그런데 폐하께서 천명하신 천하성의 자율 정책 때문에 중앙감찰청도 천하성을 어찌하지 못해. 천하성도 우리를 어찌하지 못하는 건 매한가지지만 이번에는…… 조금 경우가 달라.”
바로 눈치챘다.
“밝혀진 게 있기 때문입니까?”
“맞아. 네 명이라며? 지금 사망으로 위장하고 멀쩡히 잘 살아 있는 놈들이.”
“그것도 제보받은 겁니까?”
“맞아.”
제보를 한 남궁철영은 모든 내막에 대해 알고 있다.
알고 있기에 지금 입을 막으려 베크를 고발했고 베크는, 마이카가 말한 대로 가는 도중에 죽게 될 것이다.
아마 암살일 거고 중앙감찰청은 막을 수 없을 거다. 정확히는 막지 않을 거다.
이미 모든 이야기가 끝나 있을 테니까.
“쟤네 둘은 무조건 사형이야. 그건 확실해. 그동안 이곳 감찰청 천하성 지부에서 벌였던 모든 일을 뒤집어쓰고 죽게 될 거야. 결국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니까. 무슨 말인지 알지?”
“압니다. 결국 천하성과 감찰청은 미리 이야기가 끝났다, 이거 아닙니까?”
“눈치가 빠르네. 맞아.”
천하성은 죽은 박무기와 레이먼드 베크, 알렉스 크로스, 그리고 당적상이 일을 꾸몄고 그것을 뒤늦게 눈치채 서대륙 감찰청에 고발을 한 것으로 체면치레를 하고, 감찰청은 사망으로 위장한 네 명을 찾아내 죗값을 받게 하는 식으로 체면치레를 하고.
결국.
“깊숙한 곳까지는 감찰청도 파고 싶지 않다는 건데, 꼭 그래야 합니까?”
“난 뒤집고 싶은데 어쩌겠어? 윗선에서 이미 이야기가 끝난 것을.”
웃고 말았다.
생각해 보면 크게 달라진 건 없다.
알렉스는 아는 게 없고 베크는 입을 열 생각을 하지 않았으나 그 둘과 연관되어 있는 남궁철영을 알게 되었다.
그럼, ‘내 수사’는 끝나지 않았다.
“그 네 명, 제가 잡겠습니다.”
마이카가 부드럽게 웃었다.
“가능하겠어?”
“예.”
“그럼 저 둘은 내가 데려갈게. 괜찮지?”
고개를 저었다. 마이카의 눈썹이 꿈틀한다.
그가 말하기도 전에, 나는 행동했다.
그대로 손가락을 튕겼다.
퉁.
그 소리와 함께 내 손에서 튀어나온 한 줄기의 섬광이 동시에, 알렉스 크로스와 레이먼드 베크의 머리를 뚫었다.
퍼걱.
그 소리가 뒤늦게 울린다.
두 남자를 포박하고 있던 서대륙의 병사가 눈을 크게 떴고 내 옆에 있던 마이카도 눈을 크게 떴다.
지금 알렉스와 베크가 죽었다.
알렉스는 조금 억울할 수도 있겠으나 나는 ‘정상 참작’을 해 준다고 했지 반드시 목숨을 살려 준다고는 하지 않았다.
내게 있어서 알렉스 크로스에게 내리는 정상 참작은 사형이다. 그것도 고통 없는 사형.
무엇보다 내가 잡은 물고기다.
죽여도 내가 죽이고 살려도 내가 살린다.
묵묵히 말을 이었다.
“알렉스 크로스와 레이먼드 베크는 제압당하기 전 스스로의 마나 서클을 폭발시키며 자살했습니다.”
“……뭐…… 뭐?”
“그렇게 합시다.”
마이카가 뭐 이런 미친놈이 다 있나 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