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612)
제 613화
양불휘는 한 묘비 앞에 서있었다.
그 묘비에는 달랑 이름 하나만 적혀있었는데, 그 이름을 양불휘는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의 큼지막한 두 눈은 멀리서 보면 아무런 감정 없는 그런 눈이었지만 가까이서 보면 달랐다.
미세하게 흔들리는 양불휘의 눈동자에 담긴 그 감정은 슬픔이었다.
양불휘가 묘비에 적힌 이름을 작게 읊었다.
“오판석.”
어린 시절 혈교에서 나고 자란 두 남자는 친형제처럼 지내왔다.
아니지.
처럼이 아니다. 그냥 친형제라고 봐도 무방했다.
오판석의 재능은 비범했지만 양불휘도 만만치 않았다.
오히려 더 뛰어났다.
그렇기에 양불휘가 혈교의 지존이 되었고 오판석은 혈교의 최정예이자 천마신교의 정통 장로급의 대우를 받는 ‘삼불’로 인정받아왔고 양불휘의 오른팔로 활동했다.
그리고 정확히 13년 전, 오판석은 사망했다.
회천교의 잔당들 손에 사망한 거다.
묘비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양불휘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 이름을 아냐?”
그건 누군가에게 하는 질문이었고 그 질문을, 한 남자가 받았다.
“직접 본 적은 없지만 들어는 보았습니다.”
메론이었다.
정확히는 현 밀로스 제국의 황제인 잭 밀로스의 단 하나뿐인 아들 다니엘 밀로스. 그가 양불휘의 뒤에서 대답한 것이다.
양불휘는 여전히 묘비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인생 참 허무하더라. 천외천과의 전쟁, 천마신교와의 전쟁, 라그나로크와의 전쟁, 그 모든 전쟁에서 살아남은 애가 고작 천월, 그 버러지 같은 패배자 새끼한테 죽을 줄이야.”
“…….”
“다른 사람은 몰라도 얘는 나보다 오래 살 줄 알았어. 그런데 그런 게 아니었네.”
허탈하다는 듯, 웃음을 터트린 양불휘가 고개를 돌렸다.
“곤륜산은 어떻든?”
“좋습니다. 경치도 훌륭하고 공기도 훌륭하고.”
“사람들은?”
“분위기는 좋은 것 같습니다.”
이곳 곤륜산에는 신교의 후인들이 살아간다. 정확히 말하면 천마신교의 축을 이루던 백마교, 혈마교, 명교 등등. 그 모든 교의 후인들이 산다.
이들 모두 작게 보면 각각 다른 교에 몸을 담고 있지만 크게 보면 그 모든 교가 ‘천마신교’ 하나로 뭉쳐있다.
그렇기에 신교의 후인들이라 부르는 거다.
솔직히 이제 와서 백마교나 혈마교, 명교, 이런 것들은 전부 머리가 사라졌고 팔다리도 사라졌다. 20년 전의 전쟁에서 모두 사망했고 그 자리를 다른 이들이 채우려 노력했지만 전부 회천교의 지존이었던 천월이 숙청했다.
내부적으로 매우 복잡한 게 천마신교의 사정이고 메론은 그 천마신교를 한꺼번에 정리할 생각이다.
백마교, 혈마교, 명교, 배화교.
이런 건 없다.
앞으로 전부 천마신교다.
메론은 그렇게 만들 생각이다. 그리고 양불휘의 말에 대답했던 대로 곤륜산의 분위기는 좋았다.
멀리 갈 거 없이, 어린아이들이 웃고 있었다.
메론은 안다.
아이들이 해맑게 웃고 떠드는 곳은 절대로 나쁜 곳이 아니라는 거.
“그리고 신교의 후예들 중에서도 특출한 애들은 많아. 아카데미로 가서 교육을 받기도 하는데, 걔 알지? 사혼제.”
“예. 압니다. 남궁철영과 함께 천하성의 한 축을 담당하는 남자.”
“엊그제였나. 공식적으로 발표 났더라, 앞으로 천하성의 대당주는 기존처럼 두 명이 아닌 단 한 명의 체제로 갈 거고 이름도 대원당주로 바꿀 거라고.”
맞다.
공식적으로 발표가 난 사안이다.
“사혼제, 공식적으로 천하성의 ‘대원당주’가 된 걔가 신교 출신이야. 본명은 배도재. 배화교의 소교주였는데 회천교로 들어오라는 천월의 말을 씹고 천하성으로 갔지. 너도 알지? 황제가 데려가 특별 교육을 했던 수백 명.”
“예. 압니다.”
“걔도 그중 한 명이야. 재능은 의심할 여지가 없어. 무력 자체가 대단하지는 않지만 걔가 사용하는 술법은 상대하기 꽤 귀찮을 거다.”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이미 짐작하고 있던 내용이고 영월에게서도 들었던 내용이니까.
“천마신공은 배울 만하냐?”
“예. 배울 만합니다. 사실 이미 다 배우긴 했습니다.”
“확실히 그놈 자식답네. 그런데 표정이 왜 그래? 천마신공 그거, 별로냐?”
“그건 아닙니다. 그런데 완전한 무공은 아닙니다.”
“완전한 무공이 아니다? 그거 내가 알기로 진본이 맞을 텐데.”
“그런 게 아닙니다. 천마신공이라는 이 무공에는 결정적인 게 하나 없습니다.”
이건 양불휘도 의아스러웠다.
결정적인 게 없다니?
“무공 자체에 한 군데씩 빈 게 느껴집니다. 마나 회로의 부재라고 하면 편할 겁니다.”
“마나 회로의 부재?”
“예. 양불휘 님도 아시다시피 모든 무공들은 마나 회로가 어떻게 겹쳐지고, 어떻게 만들어지느냐에 따라 발현되는 모습이 달라집니다. 천마신공도 마찬가지로 초식 하나하나에 각각 다른 마나 회로가 길을 만들고 있습니다. 문제는 모든 초식에 ‘하나씩’ 구멍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구멍이 무공의 위력을 증폭화시키는 구간입니다.”
양불휘는 매우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재미있네. 그런 게 있었다고?”
“예. 냉정히 말하면 지금의 천마신공은 ‘그저 뛰어난 무공’일 뿐입니다. 하나씩 빠진 구멍에 제 식대로 회로를 구성해서 넣어봤는데, 모자랍니다.”
“어떻게 모자라다는 건데?”
“단순히 마나 회로가 들어가는 게 아니라, ‘어떤 물질’에 담긴 힘을 넣어야 하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듭니다.”
양불휘의 결론은 간단했다.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네.”
밀로스의 황제를 죽기 직전까지 몰아붙였던 천마 영정은 천마신공으로만 지존의 자리에 올랐다.
그러다, 양불휘의 머릿속에서 한 가지 잊고 있었던 사실 하나가 떠올랐다.
“성화.”
“……성화요?”
“영정뿐만이 아니라, 천마신교의 역대 모든 교주들이 공통적으로 내렸던 명령 중 하나다. 성화라는 걸 찾아야 한다고, 그게 천마신교의 기원이고 천마신교의 모든 것이라고. 그게 무슨 소리인가 했는데, 네 말이랑 대충 연결이 되네.”
“…….”
“성화에는 신의 힘이 깃들어있다고 하더라, 그 힘이 네가 말하는 천마신공의 그 구멍 중 하나가 아닐까 싶네.”
메론이 한숨을 터트렸다.
아무래도 양불휘의 말이 맞는 것 같았으니까.
성화.
성화를 찾아야 한다.
안 그래도 몸은 하난데 해야 할 게 산더미다. 하지만 상관없다. 조금 복잡하긴 했지만 하나하나씩 해결하다 보면 결국 그 끝에 다다르기 마련이다.
지금은, 그중 한 가지를 먼저 끝낼 생각이다. 양불휘가 물었다.
“잘해 봐라. 저기 있는 신교의 후인들이 네 백성이 될 테니까.”
양불휘는 다시 추억에 담기려는 듯 묘비 쪽으로 몸을 돌리려 했다.
대뜸 묻는 메론이 아니었다면 정말 그렇게 몸을 돌렸을 거다.
“그중에는 양불휘 님도 있습니까?”
“……뭐?”
“양불휘 님도 그중에 있냐고 물었습니다.”
“……무슨 의미로 하는 말이냐, 그거?”
“간단합니다. 저는 천마신교의 모든 것을 가질 생각입니다. 조직도 개편했습니다. 앞으로 천마신교에는 한 명의 교주, 한 명의 대호법, 그리고 다섯의 장로가 있을 겁니다.”
“…….”
“교주는 저고, 대호법은 양불휘 님도 익히 아는 영월입니다.”
“다섯의 장로는 아직 미정이고?”
“정확히는 네 명의 장로가 미정입니다. 천마신교를 완전히 가지겠다고 마음먹었을 때부터 한 자리는 이미 채워져 있었으니까요.”
양불휘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메론의 말이 어떤 뜻을 내포하고 있는지 모를 수가 없으니까. 양불휘가 단호하게 말했다.
“일없다. 꺼져, 인마.”
“싫습니다.”
“일없다고, 안 해, 그딴 거.”
“천마신교의 첫 번째 장로로 저는 양불휘 님을 선택했습니다.”
“지랄 마라. 안 한다고 했다.”
그대로 걸음을 옮기려는 양불휘의 어깨를 메론이 잡아챘다.
“함께합시다.”
“……새끼가, 안 한다니까?”
“묘비 앞에서 궁상떠는 거보다 저랑 함께하시는 게 나을 겁니다.”
“……뭐?”
“저는 천하성을 먹을 생각입니다. 같이 합시다.”
“그때 그 꼬맹이 새끼가 많이 크긴 했다.”
“예. 제가 좀 크긴 했습니다. 그리고, 아무래도 천하성과 회천교의 관계를 저보다 더 모르시는 것 같습니다.”
무슨 소리냐.
그렇게 물으려 했다.
메론이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뒤에서 한 여자가 걸어 나온다.
영월이었다.
“혈마님, 외람되지만 제가 한 말씀 드려도 되겠습니까?”
“……한번 해봐.”
“삼불 오판석을 죽인 건 회천교의 회주였던 천월이지만 혈마님도 아시다시피 오판석은 신화경의 초월자였어요. 그런 초월자를 천월이 혼자서 죽였을까요?”
미간이 구겨진다.
이건, 양불휘가 알지 못하는 진실이었다.
“저는 회천교의 총책이었어요. 그런 저였기에 말씀드릴 수 있는 건데 오판석은 함정에 빠진 거예요.”
“함정에 빠졌다고?”
“네. 천하성이 동대륙을 지배하기 위해 벌였던 수도 없이 많은 일들, 그 일들의 뒤에는 회천교가 함께했었죠. 천하성의 요구를 여러 번 들어주었던 회천교였기에 천하성에 당당하게 요구를 할 수 있었던 거예요. 천월은 삼불 오판석을 죽이고 싶어 했고 그 과정에서 천하성은 도움을 주었죠. 이 일에 대한 자세한 자료를 원하신다면 교주님을 설득하세요. 그럼 준비해서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양불휘의 미간이 와락 구겨진다. 그가, 메론에게 물었다.
“지금 뭐하자는 거냐?”
“보시는 대로입니다.”
“……보시는 대로?”
“예. 삼불의 죽음에 관련된 이들이 전부 죽었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서 조금 도움을 주었을 뿐입니다. 그러고 보니 제가 참 많은 도움을 주었군요. 감옥에서도 꺼내드렸고, 이제는 전우의 죽음에 얽힌 비밀까지 알려주었고, 이 정도면 거의 은인으로 봐야 하는 거 아닙니까?”
양불휘의 입가에 살벌한 미소가 그려진다.
“새끼, 그놈 아들답게 일 한번 화끈하게 하네. 그런데, 난 일없다. 이대로 은둔할 거다. 그러니 꺼져, 이제.”
“그건 안 되겠습니다.”
“…….”
“제가, 당신의 힘이 필요합니다. 제가, 당신을 거느리겠습니다.”
“꿈 깨, 새끼야. 내가 천월 그 새끼한테 잡혀있었다고 지금 너 하나 못 잡을 거 같냐?”
메론은 당당하게 말했다.
“네.”
“…….”
“개인적으로 궁금한 것도 있고, 그 전에 상하 관계부터 확실히 합시다. 내 밑으로 들어와요. 천마신교의 첫 번째 장로가 되어주십시오. 나와 함께 천하성을 먹읍시다. 배부르게 해드리겠습니다.”
양불휘는 순간 흔들렸다. 그리고, 거기에서 이미 게임은 끝났다.
메론이 웃으며 말했다.
“이렇게 합시다. 저를 제압하면 제가 천마신교의 첫 번째 장로가 되겠습니다. 단, 제가 이긴다면 천마신교의 첫 번째 장로가 되십시오. 어떠십니까?”
“교주는?”
메론이 뒷짐을 지며 답했다.
“그쪽이 하면 되겠네.”
“그쪽?”
“내가 이기면 말을 놓을 필요가 없지 않나? 어차피 내가 내기에서 이길 테니 먼저 말을 놓는 건데, 왜? 불만인가?”
“당연히 불만이지, 새끼야.”
뻐어어억-!
양불휘의 주먹에 메론이 멀리 날아간다. 허공에 퍼져나가는 핏물들 사이로 양불휘의 몸이 빛살처럼 뻗어나간다.
이어서 양불휘가 발을 휘둘렀다.
그것은 날아가던 메론의 옆머리에 그대로 적중했다.
그렇게.
콰아아아아앙-!!
메론의 몸이 곤륜산 정중앙에 처박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