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63)
제 64화
* * *
잭 일행이 머무는 별장은 상당한 크기를 자랑했다.
무려 3층짜리 건물에다가, 옥상에는 수영장까지 존재했고, 현재 식구가 나름 늘어난 상황이었음에도 빈방이 넘쳐흘렀다.
복잡한 표정의 샬롯이 천천히 계단을 오른다.
표정만 복잡했던 게 아니라, 속마음도 복잡했다.
‘내가 잘못한 걸까.’
개강식이 끝나고, 저택에서 잭을 기다렸다.
금방 온다고 했던 것 같은데 삼십 분이 넘도록 잭은 오지 않았다.
그때, 타노스가 검을 들고 수련을 시작했고 물끄러미 그걸 바라보던 샬롯은 타노스에게 검술을 좀 알려 달라고 했다.
그렇게 해서 시작된 대련.
머지않아 잭이 왔고 칭찬을 했다.
칭찬을 받을 때는 기분이 좋았지만 잭의 분위기가 이상했다.
조금 화가 난 것 같다고 해야 할까.
적어도 샬롯은 그렇게 느꼈다.
‘허락도 안 받고 대련을 해서 그런 걸까.’
옥상에 도착한 샬롯이 옥상의 문을 열었다.
넓은 수영장과 어센블 전경이 보이는 매우 좋은 경관임에도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맞아. 내 잘못이야. 보스는 아마 나 때문에 기분이 안 좋아지신 거야. 어떻게 하지? 가서 사과해야 하나?’
평소였다면 바로 내려갔을 테지만 잭이 말했다.
셀이랑 함께 있으라고.
‘기다렸다가 보스가 올라오면 바로 사과드리자.’
샬롯의 사고는 간단했다.
잭의 명령은 최우선 순위고, 샬롯 본인의 기분은 후순위.
복잡 미묘한 표정의 샬롯이 고개를 들었다.
정면 테라스.
그 넓은 공간에 흰 옷을 입고 있는 또래의 여자아이가 의자에 앉아 있었다.
샬롯은 아무 말 않고 셀의 맞은편에 가서 앉았다.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던 걸까.
뒤늦게 인기척을 느낀 셀이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곧바로 바닥에 무릎을 꿇는다.
그 반응에 샬롯이 오히려 당황했다.
“왜…… 왜 그래?”
-죄송…… 죄송해요. 오시는 걸 모르고 제가 인사를 드리지 못했어요.
샬롯은 어리긴 했지만 바보는 아니었다.
이 아이.
드래곤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삼촌’이었던 발락투스가 떠올라 화가 나긴 했었지만 잭이 말했다.
발락투스랑은 다른 녀석이라고.
그래도 약간의 경계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게 지금 눈 녹듯 사라졌다.
굴종, 굴복.
두려움. 공포.
온갖 감정이 혼합되어 있는 셀의 모습에 샬롯은 저도 모르게 눈가가 시큰해졌다.
여전히 무릎 꿇고 고개를 숙인 채 몸을 덜덜 떨고 있는 셀의 모습에, 샬롯은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셀을 안아 주고 말았다.
동병상련이라고 해야 할까.
샬롯은 셀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 자세하게는 듣지 못했다.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잘못된 생각이었다.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아직 어린 샬롯이지만, 분명 샬롯은 성장하고 있었다.
* * *
기네스가 말하기를 아침부터 셀은 쭉 옥상 테라스에 있었다고 한다.
셀한테 가 있으라고 했으니 당연히 샬롯도 옥상에 있을 거라 생각하고 올라왔는데, 왜 둘이 껴안고 있는 거지.
“그새 친해진 건가.”
[한쪽만 친해졌다고 보는 게 맞지 않겠느냐.]스승님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음.
멀쩡한 의자 내버려 두고 바닥에 쪼그려 앉아 서로를 끌어안고 있는 건 둘째 치고, 왜 셀은 저렇게 겁먹은 듯 몸을 덜덜 떨고 있는 거고, 샬롯은 왜 저렇게 금방이라도 울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걸까.
밑에서 보낸 시간이 그렇게 길지는 않았는데, 진짜 궁금해지네.
일단 둘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가장 먼저 나를 발견한 샬롯이 내게 다가오더니 말했다.
“보스. 죄송해요.”
샬롯한테는 정말 미안한 소리지만, 대답하지 못했다.
내 시선은 샬롯의 뒤쪽, 셀에게로 향해 있었으니까.
“……으음.”
[음…….]침음을 삼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뒤늦게 샬롯이 고개를 돌리고, 재빨리 셀에게 다가간다.
나를 향해 엎드린 채, 감히 고개를 드는 것도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것처럼 바닥에 완전히 머리를 밀착시킨 채 굴종의 자세를 취하고 있는 셀.
샬롯이 어떻게든 셀을 일으켜 세워 주려고 하는 그 모습과 온 힘을 다해 버티며 굴종의 자세를 취하는 그 모습들이, 조금 이해가 가지 않는다.
[매치가 되지 않는구나.]슬쩍 고개만 돌려 스승님을 바라보았다.
[어젯밤, 증오를 품고 있던 그 아이와는 완전히 다른 아이가 되었구나.]내가 학자는 아니지만, 오다가다 들은 게 몇 개 있다.
엄청난 정신적인 충격을 받은 이들은 가끔 자아가 분리되고 정신이 나간 것처럼 행동하기도 한다는데, 왜 이런 말이 지금 떠오르는 걸까.
일단 셀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때까지도 녀석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여전히 몸을 덜덜 떨고 있는데, 그 모습에 차마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그냥 한 손으로 녀석을 들어 올렸고, 품에 안았다.
당연히 나머지 한 손으로는 샬롯을 들어 올렸고.
그런데.
“죄송하다고?”
샬롯이 죄책감 가득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인다.
“제가 보스 허락도 없이 수련해서 화나셨잖아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돌겠네.
“수련을 하고 싶으면 하는 거지. 그런 건 굳이 허락받을 필요 없어. 그리고 야, 꼬맹아 내가 왜 화를 내? 난 네가 목검으로 내 머리를 후려쳐도 화 한 번 안 낼 사람이야. 나 몰라?”
“……그럼 화 안 나신 거예요?”
“그래, 뭐 그런 걸 걱정해? 그냥 타노스가 미련하게 수련하는 게 안타까워서 그런 거야.”
아, 그렇다고 목검으로 내 머리는 치지 말고.
속마음을 대충 넘기고 싱긋 웃었다.
“그나저나 검술에 재능이 있는 건 확인했으니까. 이따 밤에 같이 마법 수련도 한번 해 볼까?”
기분이 풀린 걸까.
샬롯이 헤헤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한 손으로 샬롯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가볍게 숨을 몰아쉬고, 이번에는 문제의 꼬맹이 드래곤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음…….”
덜덜덜 몸을 떨고 있는 꼬맹이 드래곤.
이걸 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아침에 올렸던 스테이크는 다 먹었다고 하던데, 맛있었냐?”
-……네.
“따로 먹고 싶은 건?”
-…….
거참.
“야, 누가 너 잡아먹는데? 왜 이렇게 힘이 없어?”
-…….
“어젯밤 나한테 막, 살기 보이고 그러더니, 하루밖에 안 지났는데 너무 이상해졌잖아. 어디 아프냐?”
셀이 고개를 젓는다.
“왜? 여기에 있는 애들이 그 실험실에 있는 놈들처럼 네 팔 자르고 그럴 거 같아?”
여전히 셀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슬쩍 스승님을 바라보려 조언을 구하려던 그때.
-……검게 물든 악마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검게 물든 악마?
-땅과 하늘을 바꾸고.
피식 웃고 말았다.
아, 그거야?
“세상을 멸망시킬 것이다?”
-……네.
뜬금없는 셀의 말이었고, 그걸 받고 내뱉은 내 말도 뜬금없었다.
하지만 듣고 있던 스승님에게는 아니었다.
[3대 로드가 죽기 전 남겼던 유언이구나.]당연히 여기서 로드는 드래곤 로드를 말한다.
400년 전에는 정확히 세 명의 로드가 있었다.
바하무트는 정확히 4대 로드.
그리고 볼리모트는 5대 로드다.
당시의 많은 드래곤 중 가장 강했고, 4대와 5대를 뛰어넘는 힘을 가지고 있던 존재였던 3대 로드. 그는 스승님의 뜻에 반기를 들었고 스승님을 죽이고자 했다.
그리고, 당연한 소리지만 역으로 스승님에게 뒤졌고.
재미있는 건 그놈이 혼의 힘을 사용할 때마다 미래를 본다는 점이다.
그런 놈이 죽기 전 유언을 남겼다.
‘머지않은 미래, 검게 물든 악마가 하늘과 땅을 바꾸고 세상을 멸망시킬 것이다.’
그러니까.
“검게 물든 악마는 나고, 내가 세상을 멸망시킬까 봐 겁내고 있는 거였네?”
-…….
맞나 보다.
그런데.
“그 예언, 그거 개소리야.”
-……네?
“다 개소리라고, 멸망은 쥐뿔.”
-하지만 3대 로드의 예언은 단 한 번도 빗나간 적이 없어요.
어쭈. 너도 드래곤이다 이거야?
재미있게도 우리 드래곤 꼬맹이의 목소리가 조금씩 힘을 되찾고 있었다.
얘는 이런 식으로 달래 줘야 하나 보다.
그런데.
“단 한 번도 빗나간 적이 없다고 누가 그래?”
-네?
“바하무트한테 못 들었나 보네. 그 3대 로드가 했다던 예언, 전부 조작된 거야.”
-네??
“드래곤이라는 종족을 신격화하기 위해서 놈들이 지어낸 개소리라고.”
-아…….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셀의 머리를 대충 흩트려 주었다.
“그런 쓸데없는 걸 걱정하고 있었구만. 그러니까. 정신적으로는 문제가 없는 거지?”
-네. 문제는 없는데, 저, 안 잡아먹으실 거죠?
“어떻게 하면 이야기가 그렇게 되냐? 내가 널 왜 잡아먹어?”
-……그러네요.
“그런데 지금 점심인데, 제대로 말해 줬으면 좋겠네. 아침에 먹은 스테이크 어땠어?”
-아, 맛있었어요.
슬쩍 웃고 말았다.
“다행이네, 그럼 일단 점심은 스테이크로 통일하는 걸로 하고, 내일부터는 새로운 요리도 한번 만들어 보라고 요리사한테 말해 줄게. 맛있는 거 먹고 기운 차리고. 응?”
셀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데 서로 통성명은 했냐? 대충 한 거 같은데 그래도 한 번 더 하자. 얘는 샬롯, 나중에 뱀파이어 여왕이 될 몸이고 얘는 셀, 제6대 드래곤 로드가 될 꼬맹이.”
-드…… 드래곤 로드요? 제가?
놀라는 셀과 희미하게 웃고 있는 샬롯을 그대로 바닥에 내려놓았다.
“타노스는 이따 밥 먹을 때 소개시켜 줄 테니까. 일단 내려가서 기네스한테 밥 만들어 달라고 해.”
두 꼬맹이가 옥상을 벗어났다.
테라스 의자에 앉아 있던 내게, 스승님이 다가온다.
그러고는 맞은편 의자에 앉는다.
[거짓말도 수준급이구나.]슬며시 눈을 감았다.
[3대 로드는 매우 특이한 녀석이었지. 너와 내가 혼기를 마나 대신으로 사용하는 것과는 다르게 혼기를 정신적인 능력에만 사용하던.]“…….”
눈을 떴다.
스승님이, 표정 없는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녀석이 했던 예언 중 유일하게 이루어지지 않은 예언은 단 하나.]그러니까.
“스승님은 제가 세상을 멸망시킬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내가 보기엔 적어도 이 세상에서 멸망이라는 걸 논할 수 있는 이는 너 말고는 없느니라.]칭찬 같지만 칭찬이 아닌 것 같은 묘한 말이다.
“글쎄요. 아무리 봐도 그 예언은 빗나간 거 같은데.”
[…….]“그 예언이 진짜였다면 전생에서 제가 세상을 멸망시키지 않았겠습니까?”
[안 그랬느냐?]“예. 국가 하나만 무너뜨리고 그냥, 자살했습니다.”
[자살?]“그 이상 살아갈 이유가 없었거든요. 살고 싶지도 않았고, 그러니까, 그 예언은 분명 빗나간 예언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검게 물든 악마’는 아마, 저를 지칭하는 게 아닐 겁니다.”
잠시 침묵하던 스승님이 한마디 내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