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75)
제 76화
실패한 결과물.
하지만 힘을 추구하는 이들에게는 그 실패의 결과물이 오히려 보약으로 작용한다.
이 상황이 무엇을 뜻하냐면, 강경파의 수장인 황태자는 천재라는 뜻이다.
놈은 드래곤 하나로 툴칸 제국을 제외한 다섯 왕국을 분열시켜 버렸으니까.
‘확실히 놈이라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지.’
정리하면 이 위원회에 속한 놈들은 전설상의 존재인 드래곤을 실제로 보았고 그 드래곤을 썰어 대며 온갖 실험을 해 대는 모습을 직접 보고 희망을 본 놈들이라는 뜻이다.
쉽게 말하면 그냥 이용만 당하는 놈들인 거지.
하지만 지금 툴칸 제국에 드래곤이 있는가.
없다.
그 드래곤, 지금 우리 집에 있다.
강경파는 드래곤을 잃어버린 상황인데, 과연 그 사실을 놈들이 위원회에 알릴까?
그럴 리가 없지.
강경파의 황태자는 바보가 아니다.
아마 나랑 스승님이라는 존재가 세상에 없었더라면 ‘괴물’을 뜻하는 단어는 황태자 그놈이었을 거다.
자, 보자.
현 상황상 강경파에게 남은 선택지는 두 가지다.
정보를 통제하는 동시에 새로운 드래곤을 찾거나, 위원회를 토사구팽시키는 것.
당연한 소리지만 두 선택지 중 어떤 것을 택하느냐는 황태자의 의중에 따라 달라진다.
그리고 오늘, 황태자는 테슬란 타임지를 통해 의중을 밝혔다.
테슬란 위원회를 토사구팽시켜 버리겠다고.
그리고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
“조만간 테슬란 왕국뿐만이 아니라 다른 국가에서도 동시다발적으로 내전이 벌어지겠군요.”
아베이루의 어조는 심각했다.
녀석도 아는 거다.
테슬란 왕국에서 터질 내전은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러니까, 이건 일종의 도미노 같은 거다.
테슬란 왕국의 내전이라는 막대기가 쓰러지면 다른 왕국의 막대기가 쓰러지고, 또 다른 게 쓰러진다.
연이어서 터져 나가는 연쇄 폭발.
즉, 지금 테슬란 왕국의 내전을 막지 못하면 대륙 전체가 일찍이 전란에 휩싸일 수도 있다.
“확실히 스케일이 다르군요.”
표면상으로는 말론 공작의 치부를 드러낸 일이지만 그 일의 여파를 아는 것은 이 대륙에서 소수일 거다.
어떤 일을 벌이고, 그 일의 여파와 그 일로 인해 파생되는 일.
그것들을 예측하는 것은 보통 머리로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나는 가능하다.
이건 나와 황태자 간의 머리싸움이다.
일종의 체스 같은 거지.
황태자는 먼저 말을 움직였고, 꽤 시간이 흐른 뒤, 뒤늦게나마 ‘나’라는 존재가 난입해 다른 말을 움직였다.
여기서 중요한건, 나는 황태자를 알지만 황태자는 나를 모른다는 거다.
그럼 누가 이길까.
당연히, 내가 이기지.
“어찌, 하실 겁니까?”
웃음이 터져 나온다.
“됐어, 그 이상 신경 쓰지 마. 전부 예상했던 범위 안이니까.”
“……이걸요?”
“어.”
간단명료한 내 대답에, 아베이루가 허탈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아베이루로서는 몰랐던 진실을 알게 된 거니, 조금 충격을 받았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자기가 모시는 나라는 놈이 바보가 아니라는 사실에 꽤나 크게 안도하고 있을 거다.
그래서 녀석은 빠르게 평정을 되찾았다.
평정을 되찾은 녀석이 빠르게 화제를 돌린다.
“그런데, 제가 알기로 그 데스 나이트라는 거, ‘제한’이라는 게 있다고 들었습니다.”
오? 이것 봐라.
“그건 또 어디서 들었어?”
“제가 책을 좀 좋아합니다. ‘너구리’라는 이름의 작가가 썼다는 소설 ‘데스 나이트’에 의하면 숙련된 흑마법사는 데스 나이트를 약 5기 정도 데리고 다닐 수 있고, 10서클에 해당하는 진정한 흑마법사인 ‘네크로맨서’는 무려 10기가 넘는 데스 나이트를 데리고 다닐 수 있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아무리 400년 전에 쓰였던 소설이긴 해도 생각보다 꽤 신빙성이 있는 부분이 많아서 읽어 보…… 왜 그러십니까?”
아, 나도 모르게 표정 관리가 안 됐나 보다.
미치겠네.
“너구리?”
“……예, 분명 작가 이름이 너구리였습니다.”
슬쩍 고개를 돌려 스승님을 바라보았다.
“아니, 스승님. 조금 섭섭합니다.”
스승님이 보기 드물게 내 시선을 피한다.
고개만 옆으로 돌려 스승님의 시선을 다시 따라갔지만, 이번에도 스승님이 내 시선을 피한다.
너구리.
내가 저 단어를 들어 본 건 이번이 정확히 두 번째다.
첫 번째는 전생에서다.
스승님과 함께 동굴에서 생활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분명 이런 부분이 있었지.
{글로써 무언가를 남긴다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더구나.}
{갑자기 그게 무슨 뜬금없는 소리십니까?}
{나라는 존재가 죽는다 해도, 세상에서 사라진다고 해도. 내가 남긴 문헌이나 내가 남긴 글들은 세상에 남게 되지 않겠느냐.}
{…….}
{그렇다면 그 순간만큼은 나도 살아 있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구나.}
{……스승님은 뭐든지 잘하실 겁니다.}
내 말에 과거의 스승님은 피식 웃고는 이런 말도 살짝 덧붙였다.
{너구리라는 이름으로…… 아니다. 이 이야기는 그만하자꾸나.}
그 이후 ‘너구리’라는 단어는 단 한 순간도 대화 주제에서 나타난 적이 없었다.
분명 없었는데.
이렇게 등장하네?
그때, 침묵을 이기지 못한 아베이루가 묻는다.
“공자님. 제가 무슨 말실수라도 한 건지요……?”
고개를 저었다.
“실수는 무슨. 아, 그 개체의 제한? 물론 있지. 있긴 있는데, 나한테는 예외야. 일반적인 상식 같은 거 나한테는 해당되지 않으니까. 그런 건 신경 쓰지 말고.”
“……예, 알겠습니다. 그런데, 묘하게 즐거워 보이십니다.”
웃음기를 거둔 줄 알았는데, 여전히 웃고 있었나 보다.
“그러게, 이상하게 즐겁네. 그런데 그 소설, 아직 가지고 있냐?”
“예. 있긴 있습니다. 하지만 이게 보존 마법이 걸려 있긴 하지만, 상태가 그렇게 좋지는 않습니다. 거의 400년 전에 쓰였던 고서 수준이라, 중간중간 잘려 나간 부분도 꽤 있는데…… 가져올까요?”
고개만 슬쩍 돌려 우리, 너구리라는 필명을 쓰셨던 스승님에게 물었다.
“어떻게 할까요? 한번 읽어 볼까요?”
[……마음대로 하거라.]표정변화 없는 스승님이었지만 나는 저게 약간의 부끄러움이라는 걸 안다.
아, 이러니 내가 스승님을 싫어할 수가 있나.
이렇게 인간적인 사람인데.
“이따 가져와 봐. 자기 전에 꼭 읽어 봐야겠네.”
“예. 알겠습니다. 일이 끝나는 대로 바로 별장으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손을 내저었다.
“그건 네가 편한 대로 하고. 자, 보자. 우리 암부 애들은 지금쯤 어디 있을까?”
“음. 시간과 정황상, 그리고 말론 공작의 성격상, 신문을 보고 출발시켰을 확률이 높은데…… 지금이 22시니까, 아무래도 곧 도착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안 그래도 경비에게 미리 언질해 놨으니 수상한 이들이 영지로 출입하는 즉시 제가 알 수 있…….”
그때였다.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려온다.
가볍게 헛기침을 한 아베이루가 짐짓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다.
“들어와.”
문이 열리고 한 길드원이 천천히 안으로 들어온다.
그러고는 잠시 나를 묘한 표정으로 바라보더니, 아베이루에게 가까이 다가간 뒤 그의 귓가에 무언가를 속삭였다.
작게 고개를 끄덕인 아베이루가 나가 보라고 하자 말 잘 듣는 길드원이 밖으로 나갔다.
이어서 입가에 작은 미소를 띤 아베이루가 내게 말했다.
“정체가 불분명한 남자 11명이 방금 어센블 남쪽 성문을 통과했답니다.”
슬쩍 웃었다.
시작해야겠네.
* * *
말론 공작가의 암부.
수장인 크리스토퍼는 무려 9서클의 마나 유저였으며, 그 외 10명의 단원들은 9명이 7서클이었으며 나머지 한 명이 8서클의 강자였다.
말론 공작가 암부의 핵심이라 부를 수 있는 이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크리스토퍼가 먼저 운을 뗐다.
“임무는 확실히 숙지했겠지?”
“예.”
“톨리소는 배신자다. 망설임은 필요 없다. 다만, 절대 죽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 외 질문?”
“없습니다.”
크리스토퍼가 고개를 끄덕인다.
“좋아. 바로 출발하지.”
“예.”
총 11명의 암살자는 움직였다.
일제히 자리를 박찼고,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알라베스 어센블 지부 앞에 동시에 멈춰 섰다.
빛 한 점 들어와 있지 않은 어센블 지부.
크리스토퍼는 잠시지만 이렇게 생각했다.
이상하게 지부의 모습이, 마치 입을 떡 벌린 뱀의 모습처럼 보인다고.
조금 의아했지만 그 이상 생각하지 않았다.
말론 공작가의 암부는, 그렇게 지부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그런데 괜찮으시겠습니까?”
“또 뭐가?”
“톨리소가 말하기를 암부의 수장은 9서클. 그리고 단원들은 기본적으로 6서클을 이룬 이들만 받는다고…….”
“그러니까?”
아베이루가 머리를 긁적인다.
“말론 공작의 성격으로 보면, 최정예들을 보냈을 확률이 높습니다. 수장은 무조건 왔을 테고, 일반 단원을 보내는 것보다 그보다 한 수 위인 최소 7서클, 그쯤 되는 이들로만 명단을 구성했을 텐데…….”
“걱정되나 봐?”
어색하게 지어져 있는 미소를 보니, 아베이루는 확실히 긴장한 모양새였다.
“이렇게 불도 다 꺼 놓고, 심지어 직원들도 다 퇴근시켰는데…… 설마 여기로 올까요? 아직 저와 공자님의 관계를 짐작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고 해도, 영지 전체를 이 잡듯 뒤질 수도 있는 거고…… 이렇게 딱 봐도 함정처럼 보이는 지부로 그들 모두가 몰려오는 건, 그들이 거의 아메바급으로 멍청한 게 아닌 이상…….”
아베이루가 말을 멈춘다.
닫혀 있던 문이 강제로 열렸으니까.
고개를 든 아베이루와 나는 볼 수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한 남자와, 그 뒤에 약 10명의 남자들이 일제히 지부 안으로 들어오려는 것을.
음.
“멍청한 놈들 맞는 거 같은데?”
11명의 암살자가, 일제히 그 자리에서 멈칫한다.
그들의 시선이 내게 집중되고, 그 시선에 맞춰 반갑다는 듯 손을 흔들었다.
“…….”
가장 앞에 서 있던 한 남자.
서클을 보니 무려 9서클짜리다.
나를 암살하러 왔던 펜타닐 암살단의 대장과 흡사한 경지.
그리고 그 뒤를 이어 걸어오는 10명의 남자는 한 남자가 8서클, 나머지는 전부 7서클이다.
솔직히 조금 놀랐다.
괜히 정예라고 한 게 아니었네.
“신기하네, 말론 공작가가 이 정도 전력을 가지고 있다고?”
“……누구냐, 네놈.”
정면에 있는 9서클짜리가 내게 물었지만, 그냥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저 손가락을 까딱하자, 그늘 속에 있던 톨리소가 천천히 한 걸음 앞으로 나선다.
(암부의 수장인 크리스토퍼 슈베른, 이스마엘 왕국 출신이자, 반란에 엮여 몰락한 슈베른 백작가의 자제입니다.)
“오호, 몰락한 가문?”
(예. 말론 공작가의 암부는 대대적으로 ‘고아’로만 구성이 되며, 용병 출신, 몰락 귀족 출신, 그런 걸 가리지 않습니다. 현재 제 눈앞에 있는 11명의 암부는 툴칸 제국과 이스마엘 왕국을 비롯한 각 왕국에서 말론 공작이 직접 영입했고 키운 이들입니다.)
툴칸 제국이 각국의 인재들을 자기들 품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수작질을 하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다른 왕국이라고 그런 짓을 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말론 공작은 툴칸 제국의 전략을 참고삼아 대륙적으로 인재를 끌어모았고, 그놈들로 암살자 집단을 만들었나 보다.
뒤에서 움직이는 고서클 유저들이라…….
얼핏, 말론 공작가의 힘이 엿보이는 듯하다.
“재미있네, 얘들이 기존에 하던 일은?”
(우선 슈베른의 경우 현 말론 공작의 장남인 네르송 말론의 뒤를 지켰으며, 네르송이 저지른 불법적인 일들을 주로 처리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불법적인 일?”
(예.)
“예를 들면?”
(가장 최근 것을 예로 들자면, 한 달 전, 아카데미 방학 기간 중 영지에서 머물던 네르송은 약 5명의 평민 아녀자와 시골 남작 가문의 영애를 강간했습니다. 평민 가족의 경우 슈베른은 그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제거했으며, 남작 가문과는 협의를 종용했고, ‘평소처럼’ 일은 원만하게 처리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살짝 헛웃음이 터져 나올 뻔했다.
데스 나이트로 만든다는 게, 사실 엄밀히 말하면 시체를 능욕하는 것과 다르지가 않다.
내가 아무리 나쁜 놈이어도 적어도 선은 지키는 놈인데, 이건 뭐, 더 말할 것도 없다.
“살짝 양심에 찔릴 뻔했는데, 이 정도면 죽여도 상관없겠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톨리소, 네놈…… 배신했구나. 공작님을 배신했어!”
크리스토퍼 슈베른.
그가 분노한 얼굴로 양 허리춤에서 단검 한 자루씩을 꺼내 든다.
“개자식!!”
순식간에 그의 몸이 마나로 뒤덮였고, 푸르게 물든 그가 톨리소를 향해 자리를 박찼다.
콰앙 하는 소리와, 쌔액 하는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동시에 울리고, 자연스럽게 내 몸도 움직였다.
콰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