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99)
제 100화
Chapter 1
주방에서 재료를 다듬던 기네스가 날벼락을 맞은 표정을 지었다.
“……추가로 18인분이요?”
고개를 끄덕이자, 허탈하게 웃는다.
“최근에 다니엘 일행이…… 아, 그러니까 오총사가 출근을 안 해서 식자재 정리하기도 빠듯합니다. 7인분 정도라면 모를까…… 18인분이면…… 죄송합니다. 조금 힘들 것 같습니다.”
이 문제는 생각보다 쉽게 해결됐다.
“저희가 돕겠습니다.”
학부장을 포함한 18명의 교관들 전부가 기네스를 돕기로 한 것이다.
이거 참, 상황이 묘하네.
그래도 여기가 내 집인데, 손님이 식사를 준비하는 광경이라니.
한번 거절하려 했지만 오히려 교관들이 고개를 젓는다.
힐끗 고개를 돌려 보자 내 어깨에 앉으신 스승님도 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 사람들 진짜 뭐지?
일단 그레이 학부장에게 다가갔다.
“잠시 얘기 좀 하시죠.”
팔을 걷어붙이며 채소를 다듬으려는 그레이 학부장이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잠시 식당 뒤편으로 이동한 뒤, 물었다.
“저를 돕겠다는 게 진짭니까?”
“예.”
“식자재 정리 말고요.”
“그것도 맞습니다.”
온몸에 절도가 배어 있다.
확실한 군인정신이라고 해야 할까.
입은 옷도 각이 잡혀 있는 게, 이 양반은 뼛속부터 군인이구나 싶은 느낌이 들 정도다.
“솔직히 말하겠습니다. 저는 그레이 학부장님을 비롯해 지금 저 식당 안에서 요리를 만들고 있는 교관들, 전부를 의심하고 있습니다.”
그레이 학부장이 고개를 끄덕인다.
“합리적이시군요. 저라도 의심할 겁니다.”
거참, 그렇게 말하면 내가 뭐가 돼.
물끄러미 그레이 학부장을 응시했다.
“왜 그렇게 쳐다보십니까.”
대답하지 않았다.
조금 뜬금없지만, 만약 국가가 전시 상태로 돌입한다면 어떻게 될까.
각 귀족들은 왕의 명령을 받을 것이고, 사병, 일반인을 가리지 않고 모든 이들이 징집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렇게 징집되고 군대에 편입된 이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사람은 누구일까.
국군통수권자, 즉 단순 명료하게 본다면 명령을 내리는 사람은 국왕이다.
하지만, 국왕이 전쟁 상황에 대해 세밀한 전략을 짤 수가 있을까? 혹은 지휘를 할 수 있을까?
물론, 그런 경우가 없지는 않다.
하지만 테슬란 왕국의 왕은, 내 사지를 걸고 맹세하는데, 절대 ‘그런 경우’가 아니다.
자, 보자.
명령을 내리는 사람.
전략을 짜고 군대를 통솔하는 사람.
왕의 명령을 전달하는 메신저를 표방하며, 평시 상태에는 그다지 힘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전시 상황 때의 권력은 타 가문의 귀족들은 물론 왕마저 도모할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가지게 되는 사람.
그건 바로 총사령관이다.
그레이 가문은, 아니, 정확히 시어런 가家는 대대적으로 최소 군단장 내지 최대 총사령관을 맡았던 군사 가문이며, 우직하다는 평가도 많고, 명령에 절대복종하는 것이 특징이기는 하나 귀족들과 충돌도 상당히 많은 가문이다.
왕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편리한 ‘도구’가 될 것이며, 다른 귀족들에게는 그래도 나름 계승 후작 작위에 마나 서클도 낮은 게 아니니 명령을 따르지 못할 이유도 없다.
그런데 왜 귀족들과 충돌이 많냐면.
그건 단순히 시어런 후작가의 전통 때문이다.
내 기억 속에도 있는 거고, 실제로 벌어졌던 일인데, 5년 전이었나?
이런 일이 있었다.
평민에다, 뒷배도 없는 병사 한 명이 장교로 입대한 백작가의 차남에게 평민이라는 이유로 꼬투리를 잡혀 구타를 당했던 적이 있었다.
그 평민은 사지가 부러져 그 자리에서 죽었다고 한다.
이때, 당시 총사령관이었던 그레이 학부장이 근처에 있었고, 그 일에 대해 보고받자마자 검을 뽑고 달려가 침상에 발을 뻗고 자고 있던 백작가 차남을 즉결처형했다.
직위 해제도 아니고, 말 그대로 즉결 처형.
그 자리에서 검으로 두 동강 내 버린 것이다.
그런 사람이다. 그레이 학부장은.
아카데미에 오기 전 테슬란 왕국군 총사령관의 자리에 앉아 있었고, 4년 전 아카데미에 군사학부 학부장으로 부임한 그레이 시어런.
솔직히, 그가 아카데미로 온 이유는 모른다.
성격 문제일 수도 있고, 워낙 귀족들과 마찰이 있다 보니 여러 문제가 생겼을 수도 있다.
확실한 건, 총사령관이라는 자리에서 아카데미 학부장으로 보직이 변경됐다는 건 그냥 좌천당했다는 뜻이고, 이건 다른 말로 정치 싸움에서 아주 완벽하게 밀렸다는 이야기다.
아니지.
소문대로의 그레이 학부장이라면…… 글쎄.
과연 정치 싸움을 하긴 했을까?
여하튼, 선민사상이 뼈에 박힌 귀족들에게 있어서 돌연변이 같은 존재인 그레이 시어런.
잠시 벽에 기댄 채로 다시 한 번, 그레이 학부장의 모습을 살폈다.
각진 턱.
그리고 부리부리한 눈과 깔끔한 눈썹.
햇볕에 그을린 얼굴과, 40대의 나이임에도 온몸이 근육으로 뒤덮여 있는 전사 같은 몸.
부리부리한 두 눈은 깨끗했으며, 총명했고 몸가짐도 확실하다.
심성도 나빠 보이지는 않았다.
뭐라고 해야 할까.
느낌이 좋다고 해야 하나.
“식사부터 하죠.”
“예. 감찰단주님.”
* * *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있네.’
안 그래도 넓었던 식당이 오랜만에 비좁게 느껴질 정도다.
이렇게 아카데미의 교관들이랑 같이 식사를 한다는 것 자체를 나는 상상도 못 했거든.
그럴 일도 없었고, 그럴 필요도 없었으니까.
당연한 소리지만 신상 파악은 이미 끝난 상태다.
우선 아베이루가 준(정확히는 필립이라는 뒷조사 전문 요원이 준 거지만.) 자료에 의하면 저마다 경력도 만만치 않다.
총사령관 출신이자 현 군사학부 학부장인 그레이 시어런.
3군단 517 특공대대 대대장 출신 미카엘 카트루.
3군단 517 특공대대 3중대장 출신 슈누아 베도에.
3군단 22 수색대대 대대장 출신 갈라디너 라파예트.
그리고 그레이 학부장의 밑에서 참모직을 도맡아 전략을 구상하고 오류를 수정하던 전략관 출신의 라마르크.
내가 다른 건 몰라도, 그레이 학부장이 3군단과 친하다는 건 알 것 같았다.
특공대대들은 대대적으로 일반 주민들을 뽑지만, 그 전투력만큼은 확실히 일반 병사들의 수준을 아득히 뛰어넘는다는 평가를 받는다.
517 특공대대는 테슬란 왕국이 약소국임에도 타국에서도 인정받는 확실한 ‘정예’부대.
22 수색대대도 마찬가지다.
쉽게 말하면, 그레이 학부장의 밑에는 알짜배기 출신들로만 구성되어 있다는 뜻이지.
심지어 대부분이 평민 출신이지만 명예 작위까지 받은 이들이다.
명예 작위 중에서도 쓰레기라 불리는 준남작 같은 그런 작위가 아니라 남작, 자작 다양하다.
심지어 특공대대 대대장 출신인 미카엘은 고작해야 4서클에 불과하지만 무려 명예 백작이라는 작위까지 받은 인물.
군인으로서 앞날이 보장된 그들이 아카데미로 왔다……?
이거, 아무래도 그레이 학부장이랑 같이 팽당한 것 같다.
명백한 좌천.
돌겠네.
스테이크를 썰어 대면서 할 고민은 아닌데.
‘왜 이렇게 인재들이 자꾸 눈에 띄는 거지?’
세상에 우연이란 없고 있는 것은 필연뿐이라는 말이 있다.
어느 정도 동의는 하는데…… 음.
‘이러다 진짜 국가라도 만들겠어.’
피식 웃었다.
“어떻게, 식사는 입에 좀 맞으십니까?”
교수진들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입에 맞으시니 다행인데…… 하나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말씀하십시오.”
“제가 후천적 반말 증후군이라는 걸 앓고 있거든요.”
“……예?”
후천적 반말 증후군.
학계에 보고된 적도 없고, 아마 이 세상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말일 수도 있다.
그럴 만도 한 게, 지금 즉석에서 내가 지어낸 거거든.
“여러분들도 보시는 눈들이 있어서 제가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걸 아실 겁니다. 그리고 그런 저한테 부탁을 하러 오셨죠.”
“…….”
“그러니, 그냥 말 놓겠습니다.”
“그리하십시오.”
수저를 내려놓고, 토마토 주스를 쭉 들이켰다.
그러고는 의자에 몸을 깊숙이 파묻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니들을 믿는 게 쉽지가 않네.”
곧바로 놓아 버리는 내 말투에, 몇몇은 조금 충격받은 표정을 지었고, 몇몇은 납득했으며, 몇몇은 아무런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천천히, 말을 이었다.
“초면에 믿음이니 뭐니 하는 건 웃길 테니, 이 부분은 그냥 넘어가고. 이런 상황에서 나를 찾아온다? 이유는 뭐, 하나밖에 없지.”
“하나…… 말씀이십니까?”
벌어지는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는 법.
눈앞에 있는 이들도 마찬가지다.
이들이 나를 찾아온 이유.
간단하다.
“방패가 필요한 거지?”
“……!”
“풀어서 말하면 흔적을 남기고 싶은 거고.”
“……!!”
모두가 당황했다.
정곡을 찔린 이들이 짓는 표정과 흡사하다고 해야 하나.
보면, 눈앞에 있는 이 교수진은 그레이 후작과 3명 정도를 제외하고는 전부 평민 출신이다.
쉽게 말하면 뒷배가 없는 거지.
심지어 그 3명은 시어런 후작가의 가신 가문이다.
남작 2명에 자작 1명.
이런 이들이 어떤 일을 벌일 경우에 그 일에 호응해 줄 이들이 얼마나 될까.
설령, 호응을 해 주는 이들이 있다 해도 그들이 반발하려는 이들보다 많을까?
아니라는 데에 내 전 재산 모두와 두 팔목을 걸 수 있다.
이들의 상황은 간단하다.
아카데미 개혁이라는 신념을 펼치고 싶은데, 막고 있는 게 너무 많은 상황.
이런 걸 진퇴양난이라고 하지.
이들은 때를 기다리며 숨을 죽이고 있었을 거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갑자기 내가 등장했고, 어어어어? 하는 사이에 검술학부와 마법학부가 정리됐다.
그들로서는 매우 아쉬운 일이었을 테고, 준비한 것도 있으니 아쉬움이 배가됐을 거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궁금했고 당황스러웠겠지.
잭 발란티에.
그 더럽게 잘생긴 놈은 대체 정체가 뭘까.
뭐길래 우리랑 같은 생각을 하고, 그렇게 거리낌 없이 움직일 수 있었던 걸까.
포섭할 수 있지 않을까.
같은 편으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우리 쪽으로 끌어당길 수 있지 않을까…….
쉽게 말하면, 이들은 나를 포섭하려는 거다.
조용히 교수진들을 둘러보았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가라앉은 것을 느낀 건지, 그들도 전부 수저를 내려놓은 상태.
그래, 이래야 이야기할 맛 나지.
“사실, 이유가 뭐든 상관은 없는데, 이거 하나는 알아 둬라. 내가 뒤통수치는 새끼들을 X라게 싫어해. 그러니 확실히 해야겠지? 니들은 나한테 부탁을 하러 온 거고, 나는 그 부탁을 들어주려는 거야. 그러니 이거 먼저 짚고 넘어가자고, 누가 갑이고 누가 을인지.”
당연히 내가 갑이다.
이 교관들은 전부 을이고.
그때, 그레이 학부장이 입을 열었다.
“이들은 제가 엄선하고 또 엄선한 이들입니다. 청렴한 것은 확실하고, 교육자로서의 마음가짐도 확실한 이들…….”
“그러니까.”
중간에 말을 끊자, 그레이 학부장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말을 잇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무언가를 느낀 모양인데.
여하튼.
“마음가짐이니 청렴이니 엄선이니…… 그건 학부장 네 개인적인 생각이잖아. 얘들 중에 속내 숨기고 있는 놈이 없다고, 정말 확신해?”
“그건…….”
“그레이 학부장.”
손에 쥐고 있던 토마토 주스를 식탁에 탁, 내려놓았다.
“세간에는 8서클로 알려져 있는데, 지금 보니 9서클이네?”
“그…… 그걸 어떻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