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fe of an actor of a former idol RAW novel - chapter 68
“그러게. 정말 멘탈을 얼마나 부여잡아야 그렇게 활동할 수 있었을까.”
배운 것도, 가진 것도 없었던 어린 사내가 독립운동가로 변모해 가는 과정을 신새롬 작가는 다양한 이유를 들어 보여 주려고 노력했었던 것 같다.
가장 큰 이유는 아버지에 대한 마음이었을 것이고, 아이코 역시 지대한 영향을 미쳤겠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더 많은 것들을 알고 싶어졌다. 자한이라는 인물이 너무나 궁금했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계속해서 태선과 나누었던 대화에서 느꼈던 것을 잡으려고 노력하며, 다시 자한을 불러 보려고 하였다. 하지만 자한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내가 자한을 따라가 볼 수밖에. 눈을 감았다. 그리고 경성 어딘가에 있었을 자한의 모습을 떠올렸다. 계속해서 너의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그렇게 되뇌면서.
* * *
아버지가 자한에게 남긴 것은 한글로 쓰인 편지였다. 그래서 아이코는 자한에게 먼저 한글을 가르쳐 줬다. 원래 머리가 좋았던 자한은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이 아이코가 가르쳐 주는 것들을 모두 흡수해 나가고 많은 것들을 배웠다.
이제, 글을 읽을 수 있게 되었지만, 자한은 아버지가 남긴 편지를 꺼내 읽지 못했다. 집 깊숙한 곳에 숨겨 두고 가끔 꺼내서는 봉투만을 살펴보곤 다시 깊숙이에 숨겼다.
아이코와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그녀에 대해서 알아 가는 것들이 많아졌다. 그녀는 뼈대 깊은 유학자의 집안에서 태어나 자랐다고 했다. 그리고 아버지의 의거 소식을 듣고 기생이 되겠다고 결심했다고.
그리고 자한은 아이코에 대해서 더 많은 것들이 궁금해졌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아이코가 실은 독립운동 비밀 결사 조직의 일원이었음을. 아이코가 독립운동가임을 알게 되자 그간 그녀에 대해서 품었던 의문들이 사라졌다.
1940년대, 일제가 정말 전쟁의 광기에 물들었던 그 암울했던 시절. 조선 내에서 독립운동을 해 왔던 단체들은 모두 근거지를 해외로 옮겼다.
그리고 몇 남지 않은 비밀 결사 조직이 아이코가 속한 조직이었고, 아이코는 일본군 수뇌부의 정보 수집을 맡고 있었다. 자신의 발로 기생 학교를 찾아가 기생이 된 이유도 이를 위해서였다. 누구보다 더 일제에 동조하는 걸로 위장하기 위해서 기모노를 입고, 이름을 아이코로 바꾸고.
청화각에 대한 감시가 조금은 느슨한 것도 아이코의 노력 덕분이라고 하였다. 최근 자한에 대한 감시가 조금은 유해진 것도. 물론, 늘 따라붙는 친일파 순사 놈, 이치로가 있었지만, 그놈도 청화각까지 들어와 감시하진 못했으니 이전보다 조금은 자유로워졌음을 체감하고 있기는 했었다.
그리고 아이코의 비밀을 알게 된 날에, 자한은 깊숙이에 숨겨 뒀던 아버지의 편지를 꺼냈다. 아버지는 조선이 일제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된 것에 분노했으나,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고 했다. 3.1 운동 이후 더 심해진 일제의 감시하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어려워졌다고. 그리하여,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살고자 하였다 했다.
그래서 어머니와 혼인을 했고, 자한을 낳았으며 그저 평온하게 살길 바라는 마음으로 사람 자, 한가로울 한. 자한者閑이라 이름을 지었노라고.
그러나 자한이 자라날수록, 그저 포기하고 멈춰 선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노라 했다. 자한을 사랑해서, 자한에게는 독립한 조선을 물려주고 싶어서 떠나고자 결심했다고.
떠나기 전, 자한의 이름자를 바꾸었으며 자한의 이름은 스스로 자, 대한제국의 한. 자한自韓이 네 이름이라고 잊지 말라고.
스스로 일어설 조선에서 아들이 행복하기를 바라며 자신은 그 거름이 되기 위해서 거사를 준비하고 있지만, 두렵다고도 하였다.
자신의 목숨이 다하는 것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떠나면서 자한의 어머니와 자한을 보고 가지 못하는 것이, 소식도 전할 수 없음이 안타깝고 미안하다고. 부디 행복하라고.
자신의 거사로 조선의 백성들이 희망을 찾길 바라며, 희망을 버리지 말라고. 편지는 그렇게 끝을 맺었다. 자한은 처음으로 아버지를 부르면서 울었다.
“시발. 이따위 게 다 무슨 소용이야. 죽으면 그냥 개죽음인 거지. 희망을 찾으라고? 배웠다는 양반이 개풀 뜯어 먹는 소리를 하고 앉았어! 당신 죽은 거 아무도 몰라. 엄마도, 자식인 나도 몰랐다고! 왜놈들이 꽁꽁 감춰 뒀다고! 그렇게 먼 땅에서 당신이 목숨 바쳐 가며 죽어 갔어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다고!”
자한은 아버지의 편지를 부여잡고 울부짖었다.
“대체 그깟 독립이 무엇이기에! 대체 무엇이기에! 조선이 뭘 해 줬다고! 대체 뭘 해 줬다고….”
아버지의 스러진 청춘이 안타까워서. 어머니와 자신을 버리고 간 아버지가 미우면서도, 자신을 위해 독립을 바랐다는 그 마음이 절절하여서.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아버지를 부르며 울었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편지를 보여 드렸다. 어머니는 한참을 자한의 얼굴을 바라보시다가 말씀하셨다.
“하거라.”
“네?”
“네 얼굴에 다 쓰여 있지 않니. 너도 아버지와 같은 길을 가고자 하는 게 내 눈에는 보이는구나. 사람은 바보 같은 구석이 있어서 자기 마음을 잘 모를 때가 있지. 너를 못 믿겠다면 이 어미를 믿어라. 결심이 부족하다면 이 어미가 등을 떠밀어 주마. 조선의 사내로 태어나 네가 가고자 하는 길, 그 길로 가거라.”
“어머니!”
“나는 말이다. 배운 것 없지만, 이게 잘못된 거라는 건 알았다. 그래서 네 아버지 가시는 길 잡지 않았지. 잡고 싶었지만, 큰일을 하러 떠나시는 양반 발걸음을 무겁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걱정 말고 가시라고 했다.”
“….”
“그래도 옹졸한 여인네 마음. 너까지 그 길을 간다고 할까 사실 무섭기도 하였다. 그래서 너에겐 말하진 않았지. 하지만 나 역시 조선의 여인. 아들이 뜻을 세운다면 어미가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되지 않겠니? 하거라. 이 어미는 걱정 말고, 네가 뜻하는 바를 행하거라.”
자한은 답하지 못하고, 그거 고개를 숙였다. 제 어머니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너무나 잘 알기에, 그 곁을 지켜 온 자신이 누구보다 잘 알기에 선뜻 그리하겠다 답하지 못했다.
“기일은 언제라고 하더냐.”
“사월 초하루요.”
“그랬구나. 시신은 어디에 있다더냐.”
“상해요.”
“그래. 언젠가 네가 꼭 모셔 오거라. 그래도 돌아오셔야 하시지 않겠니. 그랬으면 좋겠구나. 제사는 이 어미가 모시마.”
그렇게 자한은 비밀 결사 조직의 일원이 되었다. 처음에는 반대도 있었지만, 아이코의 지지로 무사히 그들 사이에 받아들여졌고, 자한에게는 처음으로 동지들이 생겼다.
아이코에게 배운 것들은 모두 좋았지만, 자한이 특히 좋아했던 것은 아이코가 가르쳐 준 광복군의 노래들이었다. 아이코가 살짝 눈을 내리뜨고 노래를 부르는 순간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특히, 광복군 아리랑을 좋아했는데, 자한은 가끔 아이코에게 광복군 아리랑을 청해서 듣곤 했다.
동지들에게서는 총을 다루는 방법을 배우고, 무장을, 그리고 활동하는 방법들을 배워 나갔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모두가 충칭의 광복군으로 합류하기로 결의를 하였다. 떠나기 전 그들은 마지막 거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암살 대상은 아이코가 처음부터 작업을 해 왔던 제국군의 장성, 사카구치 마코토였다. 그리고 여러 경찰서의 폭파도 계획되어 있었다. 오랫동안 준비해 온 계획이었고, 그들의 준비는 완벽했다.
그리고 그들의 거사는 성공적이었다. 모든 순사와 군인들을 따돌리고 모두가 무사히 빠져나왔다. 자한은 아이코가 기다리고 있던 안가로 무사히 돌아왔고 아이코를 부르려고 할 때, 그들의 앞에 이치로가 나타났다.
“안 그래도 수상쩍다 했지, 주요 감시 대상에 대한 감시를 한 단계 낮추라니 누가 들어도 이상하잖아? 수상해서 따라오길 잘했어. 이자한이 네놈은 오늘 여기가 무덤이 되겠네.”
권총을 겨눈 이치로가 말했고, 자한은 이미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치로가 자한을 향해서 총을 발사하는 순간 아이코가 자한의 앞을 막았고, 아이코가 자한 대신 총알을 맞았다.
서둘러 권총을 잡은 자한이 이치로를 향해서 발사했다. 그리고 이치로는 즉사했고, 자한은 쓰러진 아이코에게 다가가 총상을 당한 부위를 누르며 지혈을 하려고 했다.
“안 돼. 안 돼. 아이코 아가씨, 대체 왜. 왜.”
총상을 입은 곳에서는 끊임없이 피가 흘러나왔고, 지혈을 할 수 없음을 알면서도 계속해서 상처 부위를 누르다가 결국 포기하고 아이코를 끌어안았다.
사위는 조용했고, 어느덧 새벽 해가 주위를 밝히며 떠오르고 있었다.
자한의 품에 안긴 아이코는 자신의 이름 애자愛子, 일본식 발음으로는 아이코가 되는 자신의 이름을 불러 달라고 하였다. 그리고 겨우 숨을 내쉬면서 떠오르는 해처럼 조선에도 독립의 해가 떠오르길 바란다고도 말했다.
자한은 그만 멈추라고 제발 더는 말하지 말라고 그녀를 말렸지만, 그녀는 남은 모든 힘을 다해 조선의, 그리고 자한의 행복을 빌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애자는 광복군 아리랑을 들려 달라고 했다.
“아리랑… 스리랑… 아라리요… 광복군… 아리랑 불러 보세. 우리네… 부모가… 날 찾으시거든… 광복군… 갔다고… 말 전해 주소.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소….”
자한은 울부짖듯이 애자가 가르쳐 준 광복군 아리랑을 불렀고, 어느 순간 자한이 받치고 있던 애자의 목이 기울어졌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산속에 마련되었던 안가 근처에는 자한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깨끗하게 차려입은 자한이 어머니에게 큰절하고 무릎을 꿇고 앉았다.
“늘 몸 조심하거라. 무엇보다 건강한 것이 최고다.”
“네.”
“우리 아들, 이렇게 다 컸는데, 정말 어미만 몰랐었구나.”
“아… 아버지를 모시고 꼭 돌아오겠습니다.”
“그래. 이 어미는 우리 아들이 잘할 것을 믿는다.”
다시 절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난 자한은 밖으로 나섰고, 어머니가 자한을 따라 나왔다. 자한은 한 번 뒤돌아 어머니를 보고는 손을 흔들어 들어가시라는 뜻을 전했고,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자한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가 되어서야, 자한의 어머니는 자리에 주저앉아 참았던 눈물을 토해 냈다.
자한은 그동안 함께했던 동지들과 합류하여 중국 충칭으로 먼 길을 떠났다. 그들의 길을 떠나신 아버지와 애자가 함께할 것을 믿으며.
Fin.
* * *
대본과 시놉시스를 받아 온 날에 한 대표님은 이 작품은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셨다. 하지만 나는 선뜻 이 작품을 하겠다고 말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읽어 보니 정말 좋은 작품이었지만 내가 이 극을 이끌어 나갈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당장 결정해야 할 것은 아니었고, 한 대표님도 시간을 두고 생각해 보라고 하셨었다.
그러나 자한의 이야기를 듣고, 자한에 대해 궁금해하고, 내가 다시 이야기를 살피니 이젠 결심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의지를 떠난 문제가 되었다고 해야 할까. 그냥 이건 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
“공 실장님, 연진인데요.”
그래서 공 실장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그래. 결정했어?”
“네. 신 작가님 작품 할게요.”
“그래. 잘 결정했어. 나도 읽어 봤는데, 작품 좋더라. 신 작가가 그런 결의 작품을 쓰는 작가인 줄은 몰랐지 뭐냐.”
“네. 좋더라고요.”
“그래. 대표님께는 내가 말씀드리고, 신 작가 쪽에도 연락할게.”
“네. 감사합니다.”
통화를 마치고 나는 다시 눈을 감았다.
자한. 이자한.
그가 어쩌면 더 그의 이야기를 들려줄지도 모르니까. 내가 이어 나간 이야기가 맘에 들지 않는다고, 자신의 이야기를 더 들려주려고 할지도 모르니까.
그렇게 자한을 그리며 눈을 감았다.
웰컴 투 정글, 드루와, 드루와
엘오피 뮤직비디오 촬영이 예정된 주말. 새벽부터 일어나 샤워하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최대한 조용히 준비한다고 했는데, 아버지가 문을 열고 거실로 나오셨다.
“아, 조용히 준비한다고 했는데, 소리가 컸나 봐요.”
“아니야, 아빠가 일어나서 깨워 주려고 했는데 혼자도 잘 일어났네. 밥 차려 줄 테니까, 아침 먹고 가.”
“아니에요. 촬영장 가면 먹을 거 많아요.”
“밖에서 먹는 게 어디 집에서 먹는 거랑 같니. 기다려 봐. 간단하게 차려 줄게.”
그렇게 말씀하신 아버지가 주방으로 향하셨다. 준비를 마치고 주방으로 가자, 간단하게 준비하신다는 말씀이 무색하게도 평소의 아침과 다름없는 한 상이 준비되어 있었다. 어제 미리 준비를 해 두신 건지, 잠깐의 시간 동안 이렇게 차려 주시다니.
“오늘 걸 그룹 뮤직비디오 촬영이라고?”
자리에 앉아서 국을 뜨는데, 아버지가 물어보셨다. 오늘 국은 시래기 된장국이다. 이모가 보내 주신 시래기는 언제나 시원하고 맛있었다. 내가 설렁탕 다음으로 좋아하는 게 시래기 된장국. 크으, 시원하네. 간을 보고 아버지의 질문에 답했다.
“네. 엘오피라는 그룹인데, 아빠도 아세요?”
“응.”
“아, 정말요?”
“지금 제일 잘나가는 걸 그룹 아니야? 예능도 많이 나오고. 모르는 게 더 이상하지 않아?”
음, 아버지랑 종종 주말에는 예능 프로그램을 함께 보기도 했으면서 아버지가 연예인이나 연예계 이야기를 기억하실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것 같다.
“엘오피 좋아하세요?”
“글쎄, 뭐 딱히 좋다 나쁘다 생각해 본 적 없는 거 같은데?”
“아, 그래요?”
“그냥, 너랑 같이 촬영한다고 하니까 좀 더 보긴 했어.”
아아, 그런 거였구나. 난 또 아버지가 엘오피 삼촌 팬인 줄 알았네. 사인이라도 받아 와야 하나 싶었는데.
“연진아.”
“네.”
“재미있니? 지금 일하는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