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fe of an actor of a former idol RAW novel - chapter 7
하긴, 어느 날 갑자기 아들이 운전하지 말라며 펑펑 울기도 하고, 퇴근해 집에 들어왔는데 아들 방에서 또 통곡하는 소리가 들린다면…. 나는 아버지가 놀라신 상황을 충분히 이해했다.
“아, 그게요. 태선이, 그러니까 최태선 아시죠?”
“그래, 공부 잘한다던 그 친구?”
아버지는 좀 답답하셨는지 넥타이를 풀면서 답하셨다. 최태선은 아버지에겐 공부 잘하는 친구인가 보네. 축하한다, 최태선. 엄친아가 되셨습니다.
“네, 걔 친구들이 영화를 만든대요.”
“고등학생들이? 그런 것도 해?”
“네, 예고생들인데, 영화를 찍는다고 저도 한 장면 나오면 좋겠다고 해서요. 연습하다 보니까 재밌어서… 다른 것도 해 봤어요.”
“그래? 재밌었다고?”
이제야 안심하는 표정이 된 아버지.
“네. 재밌어요.”
“그래, 그럼 됐다. 아빠가 좀 많이 놀랐나 봐. 미안. 계속 연습해. 난 좀 씻어야겠다.”
“네, 쉬세요.”
아버지가 방을 나가시고 나서야 지금의 상황을 되짚어 봤다. 아… 내가 연기를 했구나. 이게 선생님이 늘 말씀하시던 인물 그 자체가 되는 연기인가?
감정을 이해하려는 노력 없이 그저 인물이 느낀 감정을 표현하는 것. 그런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즐거웠다. 그저 연기하는 그 순간이 즐거웠다. 그래서 한참을 시나리오를 읽고 또 읽었다.
새벽에 일어나선 언제나처럼 산책로를 달렸고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 올라 소리를 내지르며 발성 연습을 했다.
아아아 유우우, 숨을 들이쉬고, 아아, 유우우우우. 어제 연기를 할 때는 감정에 취해서 몰랐지만, 회귀 후에는 발성을 한 적이 없어서, 발음이나 발성이 엉망이었거든. 호흡도 마찬가지고.
씻고 학교에 가기 전, 태선이 녀석이 쓴 소설을 읽었다. 회귀 후 달라진 것 중 하나, 글이 빨리 그리고 쉽게 읽힌다. 외우는 것도 전보다 수월해진 느낌도 들고.
녀석이 말했던 대로 해리포터 느낌이 물씬 나는 아카데미물이었다. 그리고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피드백을 해 줄 수 있겠네. 좋은 이야기를 해 줄 수 있어 기분이 좋아졌다.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서려는데 최태선에게서 문자가 왔다.
[어디?] [지금 나감] [니네 집 앞]헐… 이 녀석 마음이 급했나 보네. 빤히 보이는 녀석의 행동에 괜히 웃음이 나서 발걸음이 빨라졌다. 아파트 단지 앞에 똥 마려운 강아지마냥 안절부절못하고 서 있는 태선이 녀석을 발견했다.
“왜 왔냐?”
반응이 궁금해서 찾아온 걸 알면서도 모르는 척 물었다.
“왜는 무슨. 같이 가려고 왔지.”
같이 가기는 무슨, 네가 궁금해서 온 게 눈에 빤히 보이는구먼.
“그럼 조용히 학교 가자.”
녀석을 놀리려 정색을 하며 길을 걷기 시작했다.
“야 씨, 정연진! 나 답답해 죽는 거 볼래? 어땠냐? 재밌었지? 그지? 그지?”
더는 놀릴 수 없어 솔직하게 대답했다.
“응, 재밌더라.”
“진짜? 진짜? 진짜?”
몇 번을 묻냐, 진짜 재밌었다니까.
“응, 재밌었어. 잘 썼더라.”
“진짜? 진짜지?”
“좀 고쳐서 올려 봐도 되겠더라.”
“뭘? 뭘 고치는데?”
녀석이 진지해졌다. 이럴 땐 나도 같이 진지하게 답해 주는 게 맞겠지.
“그거 해리포터 짭 아니고, 패러디 같던데? 그냥 솔직하게 주인공들 이름 쓰고 패러디라고 해.”
“티 났냐?”
“그럼, 그걸 모르냐? 어쨌든 잘 썼으니까 다들 재밌다고 할 거야.”
“그래야겠다. 근데 진짜 인터넷에 올려도 될까?”
“응, 글 잘 쓰더라. 내가 깜짝 놀랐잖아. 근데 그거 니가 쓴 거 맞냐?”
진짜 재밌어서 깜짝 놀랐거든. 솔직한 감상을 이야기하자 그제야 녀석의 표정이 풀린다. 녀석의 진지한 표정을 보니 궁금해졌다.
“넌 글 쓰는 게 재밌어?”
“응, 재밌어. 막 생각들이 떠오르는데, 그걸 그대로 쓰기가 엄청 어렵거든. 막 떠오르는 건 많은데 그대로 써지진 않으니까. 근데 어떨 때는 상상했던 그대로 써질 때가 있거든. 그때는 진짜 좋지. 계속 그 상태만 계속되면 소원이 없겠어.”
글 쓰는 것도 비밀로 하던 녀석이 들떠서 말하기 시작했다. 이런 모습의 최태선이 새로웠다. 이렇게 신나서 이야기했던 건 드물었던 것 같은데. 그래, 재밌으면 되었다. 나 참… 내가 아버지처럼 생각하고 있네, 싶어 웃음이 나왔다.
“그래, 최태선 너의 꿈을 응원한다.”
“뭔 개소리냐, 오그라들게.”
팔을 벅벅 문지르는 척을 하며, 태선이 덧붙였다.
“어제 너한테 보낸 임혜선 시나리오 나도 읽었거든. 재밌더라고. 시나리오 쓰는 것도 재밌어 보였어.”
“어? 누구?”
“아, 내가 말 안 했나? 그거 시나리오 쓴 애 이름이 임혜선이야. 중딩 동창.”
임혜선? 회귀 전, 새로운 로코퀸이라 불리던 드라마 작가가 있었다. 내가 군에 있을 때쯤 데뷔를 했던 작가였는데, 매년 로맨틱 코미디를 써냈었고 연달아 흥행했던 스타 작가였었다.
작가가 젊은 나이에 보조 작가 같은 것도 거치지 않고 한 번에 미니시리즈 공모전으로 데뷔를 했다고 해서 놀랐던 기억이 있는데…. 설마 그 임혜선과 이 임혜선이 동일 인물일까? 만약 동일 인물이라면, 미래의 스타 작가를 미리 만나는 건가?
“아, 걔가 너한테 연락한 거야?”
“아니, 임혜선은 그냥 동창이고, 그거 연출하는 김대우가 내 친구. 임혜선이 그렇게 널 출연시켜야 한다고 해서 그냥 말이나 해 본다고 했었대. 기대는 하지 말라고 했었다는데, 너 한다는 거 알면 엄청나게 놀라겠지.”
“뭐, 그런 거로 놀라.”
“놀라겠지. 근데 걔 시나리오 읽으니까 신기하더라. 나는 매일 마법만 팠는데, 고딩이 주인공인 거잖아. 그런 걸 쓴다는 생각을 안 해 봐서….”
“그럼 너도 쓰면 되겠네.”
“시나리오를?”
태선이가 깜짝 놀라 되물어 왔다.
“아니, 꼭 시나리오일 필요는 없지 않아? 걔는 촬영을 위해서 쓰니까 찍을 수 있는 내용을 쓴 거고. 너처럼 마법 날리는 건 촬영을 못 하잖아.”
“이야… 정연진. 너 그런 생각도 하면서 읽었냐? 대단한데. 배우다, 배우.”
녀석은 놀렸지만, 내가 정말 어떤 생각을 하면서 시나리오를 읽었는지 알면 네가 얼마나 놀랄까.
“그래서 너도 그런 거 쓰려고?”
“모르겠어. 생각나는 게 마법밖에 없어서 그런 걸 쓴 건데, 걔네는 영상을 만들잖아. 신기하기도 하고.”
태선이 녀석도 어제 시나리오를 읽고 고민을 많이 했는지 생각이 많아지는 듯싶었다.
“너 글 잘 쓴다니까. 너도 써.”
“그럴까?”
녀석이 장르 소설 때문에 고생했는 줄 알고 웹소설 작가로 가는 방향을 알려 줄까 싶어 인터넷에 올리라는 이야기도 한 건데, 방송 쪽이 원래 길이었나 보네.
내가 미래를 알고 있다고 해서 함부로 조언하거나 바꾸려고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도 다시 한번 하고. 이건 수미 누나가 미튜브 채널을 만들어서 영상을 올린 것과는 다른 이야기니까.
“촬영하는 거 보고 결정해. 같이 갈 거지?”
“어. 같이 가야지. 너 걔네들 모르잖아. 이 형님이 또 니 매니저를 해 주시겠다, 이 말씀이야.”
“뭐래.”
“걔네 작년에도 단편 하나 만들어 봤었대. 이번엔 작년보다 좋은 거 만들 거라고 의욕이 대단하더라. 청소년 영화제 출품도 계획하고 있던데?”
“그래? 대단하다. 진짜.”
학교에 도착할 때까지도 태선은 친구들이 만드는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런 녀석의 모습을 보니 이 녀석도 잘되었으면, 이전과는 다르게 자신의 길을 빨리 찾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힘든 일을 겪었던 누나와는 달리 이 녀석에게 일어났던 일을 나는 모르니까 지금은 녀석을 어떻게 도와야 할지 모르겠다.
예고 친구들이 만드는 단편 영화에 출연하는 것도, 태선이가 같이 가는 것도 과거에는 없었던 일. 그저 이번 일이 태선에게도 좋은 계기가 되었으면 싶다.
주말엔 태선과 함께 예고 친구들을 만났고, 촬영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무대 공연 장면은 학교 축제 때 찍기로 했다고. 하긴 무대를 빌려 그런 대규모 촬영을 할 수는 없겠지.
내 촬영 장면은 무대 뒤에서 찍기로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졌다. 시나리오를 쓴 임혜선이란 친구는 일이 있어 나오지 못했다는데, 미래의 스타 작가를 보지 못해 조금 아쉬웠다.
매일 아침엔 달리기를 하고, 발음, 발성, 호흡 연습을 했다.
학교에선 공부만 했다. 연기가 지금은 즐겁지만 어떤 것도 결정된 것이 아니기에 수업에 충실히 하려고 노력했다.
문과임에도 최태선은 수학과 과학도 잘해서 녀석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괴물 같은 놈.
그냥 공부를 잘했지, 기억하긴 했는데 전교에서 놀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또 많이 놀랐다. 녀석은 그래도 중간은 가던 내 성적이 하위권으로 떨어진 것에 충격을 받은 듯싶었지만. 뭐, 성적이 내려갔으면 올라갈 날도 오겠지. 그냥 편히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도 노력하고 있으니까.
그리고 저녁엔 연기 연습만 했다. 시나리오를 읽고 분석을 하고 연기를 해 보고 또 연습하고 나중엔 영화를 봤다. 내가 한 분석과 어떻게 달랐는지를 확인하고 다시 연기해 보고. 그러다 보니 조금 답답해졌다.
연기엔 정답이 없다지만, 내가 지금 옳은 길로 가고 있는지가 궁금했기에.
KJ 엔터의 김 실장에게 연습생 안 하겠다고, 미안하다고 연락을 한 후, 데뷔 후에 만났던 사람들에게 따로 연락해야겠다 생각한 적은 없었다. 사실, 만나고 싶은 사람들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들과 안면이 없는데 연락을 한다는 것도 이상했고.
그러나 연기가 재밌어진 지금, 연기를 가르쳐 주시던 강 선생님을 뵙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다행히 선생님의 전화번호를 기억하고 있었다.
지금도 연기 수업은 하실 텐데….
수업을 받고 싶다고 연락해도 되지 않을까?
시작은 늘 설레는 걸까?
과거로 돌아온 후,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은 꼭 아버지와 함께 아침을 먹는다는 점이었다. 아침에 운동하고 들어오면, 아버지가 아침을 차리고 계셨다. 이건 주말도 마찬가지. 가볍게 샤워를 하고 함께 아침을 먹으니 대화를 하는 것도 부쩍 늘었다.
“그 영화 촬영한다는 건 언제냐?”
“중간고사 다음 주요, 걔네 학교 축제가 그때라 그때 찍는대요.”
“뭐, 필요한 건 없고?”
“네, 없어요.”
“연기하려면 학원 같은 데 다녀야 하는 거 아니야? 혼자 해도 돼?”
아… 선생님께 연락을 드리긴 할 건데….
“지금은 필요 없고요, 개인 레슨을 받으려고요. 필요하면 말씀드릴게요.”
“그래. 그리고 게스트 룸 말인데, 연습실로 만들면 어떨까?”
“네?”
내가 조금 놀라서 되묻자 아버지가 설명하셨다.
“너 학원 안 다니고 연습하려면 연습실 필요하잖아. 게스트 룸은 어차피 비어 있으니까 방음 공사 하고 거울도 좀 달고, 그러면 연습실로 괜찮을 거 같은데.”
아… 우리 아버지. 그런 것도 생각하고 계셨구나. 어쩐지 조금은 부끄러운 기분이 들어, 아버지에게 농담을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