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ntel life of the returning champion RAW novel - Chapter 97
귀환 용사의 인방 생활 96화
사방에서 달려오는 적들. 일행을 겨누고 내찔러지는 수십의 칼날.
가장 먼저 반응한 건 디지였다.
“도망쳐!”
외침과 달리, 디지는 제2사도와 패천검대주 남한패가 있는 곳을 향해 도약했다.
“미카엘!”
짧은 부름이었지만 의도를 눈치챈 미카엘이 화살을 시위에 재었다.
[스킬: 강검(强劍)]강철장도로 지형조건을 파악하며, 동시에 가장 가까이 있는 적을 향해 파랑인을 휘둘렀다.
“크아악!”
단숨에 한 명을 저승으로 보냈지만, 강물에서 물 한 바가지를 퍼낸 거나 다름없었다.
눈에 보이는 빛 뭉치만 100여 명이 넘었으니까.
‘그러니까 핵심부터 친다.’
진로상에 있는 적을 피하는 대신, 일부러 호접속검까지 써가며 검격을 가했다.
파랑인의 아이템 효과를 축적시키기 위함이었다.
[파랑인에 파도가 넘실거립니다.]‘이 정도면 되겠군.’
발에 진기를 집중해서 높이 뛰어올랐다.
마지막 목표는 당연히 남한패였다.
천라지망(天羅地網). 하늘과 땅에 드리운 그물이란 뜻으로 도저히 벗어나기 힘든 경계망 및 재액을 비유할 쓰는 사자성어.
무협지에선 수많은 무인을 동원해서 한 대상을 포위하고 추격할 때 쓰는 말이다.
즉.
‘우두머리를 죽여 놓으면 탈출이 쉬워지지!’
핑! 핑! 핑! 핑!
디지의 낙하와 동시에 남한패를 향해 쏘아지는 네 발의 화살.
‘역시 카엘이는 눈치가 빠르다니까.’
화살에 둘러싸인 그가 진기를 잔뜩 실은 검을 내리칠 때였다.
“우습군.”
갑작스럽게 거뭇한 진기가 폭사되었다.
쾅!
중력의 도움까지 보탠 내려치기였음에도 남한패의 한손 올려치기에 몸이 날아가 버렸다.
허공에서 몸을 돌려 착지한 디지가 혀를 내둘렀다.
“어우, 이건 안 되겠는데?”
그는 속도를 중시하는 스킬트리를 탔다. 한 방 한 방의 위력은 약할 수밖에 없단 뜻.
단점을 보완하고자 파랑인의 효과를 이용했음에도 턱없이 부족하다.
‘승리할 길이 안 보이는 건 아니지만, 단기간에는 안 돼.’
애초에 상관이 공격당하는 데 다른 이들이 두고 볼 리도 없다.
어느새 수십이 넘는 무인들이 빽빽하게 그를 둘러싸고 검을 겨누고 있었다.
“머리를 먼저 친다는 전략은 좋으나, 날 너무 쉽게 생각했구나. 가장 먼저 죽여주마, 암안휘뢰여.”
“……뭐. 1차 목표는 달성했으니까.”
그가 시간을 끄는 사이 일행은 저 멀리 도망치고 있었다.
디지가 뒤쪽에 시선을 주는 걸 본 남한패가 말을 이었다.
“스스로를 미끼로 동료를 구할 생각이었느냐? 실로 호협하구나. 이곳에서 죽여야 한다는 게 아쉬울 따름이군.”
“죽긴 누가 죽어?”
디지가 허공으로 도약했다.
“보내드릴 생각은 없습니다. 일제 사격!”
제2사도의 지시에 따라 검은 망토를 두른 이들이 일제히 허공을 겨눴다.
그들의 손에 들린 무기는 총과 유사한 무언가였다.
탕! 탕! 탕! 탕! 탕! 탕! 탕! 탕! 탕!
고막이 아릿할 정도로 쏟아지는 탄환 세례.
눈이 보이지 않아 속도를 가늠할 수는 없었지만.
위기감은 없었다.
‘저거, 기사배한테 쥐여주면 아주 좋아하겠는걸?’
그런 생각을 하며 스킬을 발동시켰다.
[스킬: 장전연보(長傳連步)]매개체는 남한패에게 달려들기 직전 왕삼에게 맡긴 검집이었다.
순식간에 왕삼의 곁으로 이동한 디지가 일행과 발을 맞춰 달리기 시작했다.
“잘했소이다, 대형!”
“디지 어그로 나이스!”
-ㅋㅋㅋㅋ이걸 이렇게 돌파하네.
-디지가 록할 때부터 어그로 다 끌고도 안 죽는 애긴 했지ㅋㅋㅋㅋ
다만, 추격을 완전히 따돌린 건 아니었다.
“이놈들!”
“곱게 죽거라!”
경신술을 쓰며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는 적들.
문제는 이쪽에 경신술을 쓸 수 없는 왕삼이 있단 점이었다.
한 차례 포위망을 따돌렸음에도 도주 속도가 느려서 거리가 점점 좁아졌다.
“아무래도 이대론 안 될 것 같소. 급급여율령! 태산거체! 가보보쾌!”
[왕삼 님이 딱빵 님에게 도술을 사용합니다.] [태산거체(太山巨體): 육체가 두 배로 거대해집니다.] [가보보쾌(加步步快): 하반신의 움직임이 빨라집니다.]“딱빵 선배, 잠깐 실례 좀 하겠소이다!”
왕삼이 거대화된 딱빵의 어깨 위에 올라탔다.
“오, 그럼 저도요. 앉아서 쏘는 게 명중시키기 편해서.”
반대쪽 어깨는 미카엘의 차지였다.
“급급여율령! 보보무중!”
근접한 적들을 죽이고 도주하길 반복하자 점점 눈에 보이는 추격자들이 적어졌고, 이내 완전히 사라졌다.
“휴우, 일단은 따돌린 모양이군.”
“이벤트 종료 메시지가 안 뜨는 걸 보면 아직 방심할 때는 아닌 거 같죠?”
“그럴 거요. 애초에 천라지망은 포위망이 한 겹이 아니거든.”
천라지망은 이미 여려 겹의 포위망이 구축된 상태라 뒤뿐만 아니고, 앞, 옆에도 추격자들이 포위를 좁혀온다는 점에서 악랄한 전법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전방의 숲 자락이 부스럭거리기 시작했다.
“적이다. 방향을 꺾어야겠는데?”
그렇게 되면 한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지금 그들은 발치에 있는 성결지를 가리키는 화살표를 따라 도망치고 있었으니까.
“성결지에서 멀어지는 방향으로 우릴 몰려는 거야.”
디지는 탐로안을 통해 보이는 빛뭉치의 개수를 세었다.
‘눈에 보이는 건 일단 30. 그렇다면.’
“꺾지 말고 돌파하죠. 수에 넘어가 주는 건 좋지 않아요.”
포위망에 추격당하는 경험 정도야 와 비타 시절 잔뜩 겪었다.
“이럴 땐 허를 찔러서 변수를 만드는 게 좋아요. 다들 동의?”
“음. 대형의 말이 옳소이다.”
“그냥 도망만 치는 건 자존심이 상하기도 하니까…….”
“오케이. 그럼 싸우는 걸로.”
디지는 땅바닥에서 자갈 여러 개를 주운 뒤 진기를 실어서 전방의 추격자들에게 던졌다.
맞아서 머리가 깨져주면 좋고, 아니더라도 장전연보의 매개체로 사용할 수 있다.
“미카엘.”
“어, 디지야.”
“시간 없으니까 전력으로 가자.”
“좋아. 누가 더 많이 죽이나 내기할까?”
“너도 은근 내기에 환장하는구나. 난 돈이 안 되는 내기는 별로 관심 없어서.”
피식 웃은 디지가 몸을 날렸다.
“저쪽에서 돌멩이가 날아왔다!”
“돌격! 후방의 추격대가 올 때까지 붙잡아둔다!”
잡아둔다라.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전력으로 간다.’
어두컴컴했던 눈앞이 밝아진다. 여전히 어둡긴 하지만, 분명한 사물의 윤곽이 시야에 그려졌다.
그 뜻은.
“진정한 쌍검사의 위엄을 보여주마!”
좌검은 상단세, 우검은 중단세. 그 상태로 장전연보를 발동시킨 디지가 순식간에 추격대의 중심으로 이동했다.
[스킬: 호접속검(胡蝶速劍)]일격으로 오격으로 만드는 스킬이 작렬하자 한 번의 턴에 다섯의 적이 쓰러졌다.
이어서 후방에서 날아오는 검날을 막기 위한 동작을 취하려 할 때였다.
“혼자 활약하게 둘 생각은 없어!”
핑!
힘없이 떨어지는 검을 보며 디지가 입꼬리를 올렸다.
“그럼 템포 맞춰서 잘 따라와.”
전 세계에서 최고로 손꼽히는 피지컬의 소유자인 미카엘.
그런 미카엘을 1대1 승부에서 이긴 전적이 있는 디지.
두 사람이 진심을 발휘하자 30명의 적이 죽는데 걸린 시간은 단 3분이었다.
“허허허, 대형과 카엘 군은 정말 싸움 하나는 기가 막히게 하는구려.”
“그러게. 삼국지에 태어났으면 황충이랑 장비였겠는데?”
“빵형. 제가 장비라는 거예요? 기왕이면 관우라고 해줘요.”
“저도 황충보다는 로빈훗이 좋습니다, 형.”
어깨를 으쓱거리는 디지와 미카엘을 기사배가 부럽다는 듯이 쳐다봤다.
“나도 총만 있으면…….”
멀티 플레잉만 아니었어도 적에게 돌격해서 어떻게든 총기를 탈취했을 거라고 생각하는 기사배였다.
“자자. 수다는 여기까지 하고. 아직 이벤트가 끝난 건 아니니 어서 도망칩시다.”
-ㅇㅇㅇ3이 말이 맞음.
-천라지망이라 지금은 가뿐해도 시간 지날수록 힘들어질 거임.
-진기 다 떨어졌는데 적은 수두룩할 때가 진짜 핀치지.
시청자들의 채팅이 맞았다.
죽이고 달아나고, 죽이고 달아나길 몇 번이나 반복했을까.
슬슬 진기량이 바닥을 보이는 데도 추격은 멈출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거, 큰일 난 것 같은데.”
“이러다 진짜 게임오버되는 거 아니에요?”
“난이도가 왜 이렇게 높지?”
“높은 게 당연하오. 사실 천라지망은 중후반부는 되어야 나오는 이벤트니까.”
진기량이 충분하고 스킬 레벨도 높은 상태에서 맞이하는 이벤트란 뜻.
‘나 혼자서면 몰라도 일행을 데리고 추격을 뿌리치는 건 불가능할 것 같은데.’
지금까지 100은 넘게 죽였는데도 추격자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었다.
연이은 습격에 소모한 진기를 보충할 시간적 여유 자체가 없었다.
전투를 최대한 피하며 도주에만 집중했지만, 어느덧 핀치에 몰리고 말았다.
“후후후, 이곳의 당신들의 마지막 거취가 남는 곳이 되겠군요.”
앞, 뒤, 좌우. 사방에서 일행을 에워싸는 추격자들.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었다.
-아 아쉽다.
-여기까진 듯?
-ㅇㅇㅇㅇ 탈출할 방법이 안 보이네.
“저들에게 안식을 선사하도록 하세요!”
“존명!”
탕탕탕탕탕탕탕!
굵은 나무를 베어 얄팍한 엄폐물을 만들고 숨었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버틸 수는 없었다.
‘하지만 방법이 없어.’
최후의 수단으로 자신만 빠져나가는 걸 제외하곤 지금 상황을 타파할 방법이……
‘아. 잠깐.’
결국 문제는 전투 인원의 부족이다.
딱빵은 주술로 보조하는 왕삼을 지켜야 하고 기사배는 근접 전투에 약하니 실질적인 전투를 미카엘과 자신 둘이서 하고 있었으니까.
그렇다면.
“카엘아. 나 없이 잠깐만 버텨줘. 삼아, 나랑 사배한테 모든 주술을 다 걸어줘.”
“좋은 생각이 떠오르셨소?”
“응.”
일행에게 자신의 아이디어를 공유했다.
가장 먼저 찬성하고 나선 건 기사배였다.
“난 죽어도 찬성. 그동안 다들 활약하는데 나만 아무것도 못 보여줬잖아. 죽더라도 뭐라도 보여주고 죽을래.”
디지가 제안한 방법은 리스크가 무척이나 큰 전략이었다.
왕삼은 기사배가 자포자기해서 이판사판으로 나가는 건가 싶어서 그녀의 눈을 들여다 보았다.
그리곤 미소를 지었다.
기사배의 눈엔 체념 대신 승부욕이 가득했으므로.
“알았소이다. 한번 보여주시오, 금메달리스트의 위용을!”
[왕삼 님이 DG 님, 기사배 님에게 가보보쾌, 보보무중의 주술을 사용합니다.]“사배야, 내가 먼저 적들 시선을 끌 테니까 그사이에 접근해라.”
“오케이.”
쌍검을 뽑아든 디지가 장전연보를 발동하며 적진으로 도약하는 사이.
[스킬: 삼변면구(三變面具)]다국인의 검은 망토를 두른 기사배가 은영지체 특성 발동을 위해 그림자 속으로 몸을 숨겼다.
은밀하게 다국인의 총사들이 있는 곳으로 접근하며, 기사배는 수십과 전투를 벌이는 디지를 응시했다.
‘눈도 안 보이면서 저렇게…….’
감탄을 넘어선 미지의 감정이 느껴진다.
그리고 그 감정은, 자신의 트라우마에 의한 것이리라.
기사배가 주먹을 말아쥐었다.
‘지난 일이야. 지금도 즐거우니까.’
그런 의미에서.
더더욱 즐거워지기 위해선 작전을 성공시켜야 한다.
어느덧 다국인 무리의 후열까지 접근했다.
디지를 향해 정신없이 탄환을 발사하고 있는 이들.
기사배는 가장 뒤쪽의 NPC에게 단도를 찔러넣었다.
“끄으윽?!”
심장을 갈라 단숨에 절명시키곤 놈의 손에 들린 것을 빼앗았다.
“너희들…….”
나직한 목소리가 포효가 되었다.
“다 죽었어!”
탕탕탕탕탕탕!!!
탄환이 무한인 총이, 사격 금메달리스트의 손에 쥐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