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cho Florist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1045
1044화
돌변한 상황을 두고 하나하나 따질 겨를도 없었다.
바로 이어진 전투에선 로두카와 프티머스, 스트로앤 교황도 참여했다.
그들의 참전은 단순히 강력한 NPC의 숫자가 늘어난 것으로 볼 게 아니었다.
아코아 섬에서 본격적인 작전이 시작되기 전, 천사 진영과 악마 진영으로 나뉘어 소속되었던 플레이어들.
그들에게 직접적으로 강력한 버프들이 부여되며 전체적인 전력 상승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순간 전황은 완전히 플레이어 쪽으로 넘어오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들뜬 기분은 오래 지나지 않아 푸식 꺼졌다.
기세만 그럴싸했을 뿐, 칼리토의 힘은 이전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막강해졌음을 알게 된 것이다.
세 명의 전설 이상 NPC들이 참전했음에도 칼리토는 밀리지 않았다.
무려 대천사인데… 거기다 대악마도-사람들은 로두카가 이젠 대악마가 아니지만- 세계관 최강자라 생각하던 스트로앤 교황조차도.
그들이 전투에 합류했는데도 전황은 비등하게 흘러가고 있으니 사람들의 머릿속은 점점 부정적인 생각으로 가득 찼다.
특히 오랜 시간 이어진 전투로 인한 피로감이 이 지경이 되자 폭발하기까지.
그렇게 얼마나 전투가 이어졌을까.
쿠구구구-
그때, 아코아 섬이 또 한 번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주변의 바다 아래에서 또다시 무언가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구어어-
바다 혹은 아코아 섬이 울음을 터트렸다.
아코아 섬의 팔이 하나가 또 나타났다.
“?!”
“저, 저게 무슨…….”
그게 끝이 아니었다.
하나… 또 하나…….
최종적으로 아코아 섬은 총 여덟 개의 팔을 갖게 되었다.
아코아 섬 내부도 더는 본래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땅은 모조리 뒤집히고 무너져 내렸으며, 무너진 자리로는 피인지 용암인지 모를 것이 끈적거리며 흘러나왔다.
거대 생명체의 내장이 위에 선 듯한 느낌.
섬을 포위하듯 둘러싼 거대한 팔과 끔찍한 내부의 풍경.
마치 외계인의 둥지 안으로 들어온 착각도 들게 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 착각은 아주 기분 나쁜 경험이었다.
아코아 섬은 더는 섬이 아니었다.
쿠드드드-
아예 지면과 단단히 결속되더니 섬의 일부가 된 칼리토.
그의 하반신을 감싼 붉은 핏줄 같은 것들은 이전에 몇 번 본 인간 여과기와 비슷해 보였다.
하지만 가운데 자리한 게 커다란 칼리토의 몸뚱이란 점이 달랐다.
‘어째 나무 같기도 하네.’
그걸 보자마자 든 생각에 재호는 헛웃음을 흘렸다.
피와 피륙으로 이루어진 한 그루의 나무…….
세계수 뿌리가 있던 이곳에 피와 생명으로 빚어 낸 죽음의 세계수가 자라났다.
또 한차례 바뀐 분위기에 절망하는 사람들.
전투에 새로 합류한 초네임드 NPC들로도 숨이 턱 막히는 상황이 이어졌거늘, 그럼에도 결말은 보지 못하고 칼리토는 또 변신해 버렸으니…….
심지어 NPC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태연함을 유지 중인 건 스트로앤 교황이나 로두카, 프티머스 정도.
저들은 이 상황을 낙관적으로 보고 있기에 저런 여유로운 표정을 짓는 것일까?
분명 어려운 상황은 맞다.
하지만 저들이 합류한 순간부터 계속 가지고 있던 의문이 있었다.
‘알드리온이 아직 안 보여.’
재호는 생각했다.
차원 큐브에 붙어 함께 의식을 치르던 알드리온은 홀로 전장에 합류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이유에 관해 묻지는 않았다.
이야기하지 않은 것엔 이유가 있을 터.
칼리토에게 한 방 먹일 만한 걸 준비 중이라고 믿었다.
아마 괜히 그것에 관해 입을 놀리다 정보가 새는 것을 경계했으리라.
게다가 알드리온은 전에도 아코아 섬에 대해 계속 조사를 해 왔으니 어떠한 비밀을 알아냈을지도 몰랐다.
‘일단은 믿고 버티는 거야. 마냥 답도 없는 싸움이라면 스트로앤 교황도, 로두카나 프티머스도 계속 이어 나갈 리 없으니까.’
그대로 전투는 계속 이어졌다.
칼리토의 공격 방식도 바뀐 모습에 따라 달라졌는데, 이젠 아코아 섬 전체가 칼리토 그 자체가 된 것 같았다.
거대한 팔에서 쏟아지는 저주와 물리적인 공격들.
두 개일 때도 성가셨는데 여덟 개나 되니 탄막 슈팅 게임이 따로 없었다.
이쯤 두들겨 맞으니 플레이어들은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어쩌면 조금 늦은 것 같기도 하지만.
“파티를 분산하죠!”
“각각 하나씩 처리합시다!!”
비정상적으로 거대한 적을 상대할 때의 국룰!
흩어져 섬의 전 방위로 흩어진 플레이어들이 각자 팔을 공략했다.
그리고 남은 이들은 그 중심의 칼리토를 계속 상대했다.
남은 전력의 핵심은 역시나 일성 플라워즈.
칼리토의 광범위한 공격으로 인한 피해를 파티 보호 스킬로 모두 자신에게 돌리는 진아.
급속도로 바닥을 향하는 그녀의 체력을 완식이 명불허전 무한 힐로 채워 주었다.
레드는 늘 그렇듯, 자신의 몸을 한껏 불태워 칼리토를 공격했다.
그리고 고잉헬호에서 부활하면 다시 달려들었다.
지난 2주 동안에도 너무 죽는 바람에 팀 감독인 두표가 제발 그만 죽으라며 애원을 했을 정도.
그리고 사만다는 강력한 레드의 화염을 이용해 자신의 정령검을 강화해 죽음의 세계수를 난도질했다.
우현은 수인들과 의외의 시너지를 보였다.
드루이드 쪽 클래스라서인지 그들의 능력을 한껏 증폭시키는 동시에 자신 역시 수인의 능력들을 흡수해 강한 위력을 선보였던 것.
그래서인지 수인들과 함께 이번 전투에 참여한 우람과의 궁합도 좋았다.
‘아버지를 팀에 섭외해도 좋겠는데?’
최고령 뉴월드 프로로 기록하는 동시에 은혜의 놀림거리가 되어 꽤 재밌는 구경도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가 들었다.
다키스트는… 이번에도 골드투스와 함께였다.
그리고 늘 그렇듯, 그들은 강력한 듀오로서 칼리토를 훌륭하게 상대 중이었다.
좀 시끄럽긴 했지만…….
일성 플라워즈는 아니지만, 뒤늦게 트라이던트를 통해 섬에 도착한 테일러와 빅썬더의 활약도 뛰어났다.
이렇듯 재호의 동료 모두가 평소보다 훌륭하게 자신의 실력을 뽐내는 중이었다.
재호는 한 곳에 구애되지 않으며 모두를 보조했다.
일성 플라워즈뿐 아니라 NPC들도, 주변에 남은 소수의 플레이어 파티까지.
특히 재호의 는 버퍼로서의 능력도 뛰어났으니 위험한 타이밍의 사람들을 몇 번이나 구해 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재호도 슬슬 한계가 다가오고 있었다.
아무리 게임이라지만, 이토록 장시간 극한의 집중력을 놓지 않은 채 싸우는 건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재호가 이 정도의 피로감을 느낄 정도인데 다른 사람들은 오죽할까?
콰아앙-!!
칼리토로부터 뿜어져 나온 붉은 파동 땅을 뒤집으며 핏빛 용암을 뿜어냈다.
그것에 닿은 사람들은 몸속으로 침투하는 강한 독기에 비틀거리며 쓰러졌다.
투웅-
바닥에 내리꽂힌 프티머스의 창이 주변 대지를 정화하며 신성군을 보호했다.
로두카 또한 자신의 힘을 퍼트리며 칼리토의 힘을 저지했다.
하지만 둘 다 완벽한 방어는 하지 못했다.
이 아코아 섬 전역이 칼리토의 몸속이나 다름없기 때문이었다.
‘변수가 필요한데.’
칼리토를 이렇게 계속 때린다고 답이 나올 상황은 아니었다.
무언가 다른 변수가 필요했다.
아마 가장 기대할 만한 변수는 역시 모습을 감춘 알드리온.
부디 빨리 그쪽 소식이 있기를…….
-야야…….
그때, 재호의 귀에다 작게 속삭이는 징징이의 목소리에 기겁하며 펄쩍 뛰었다.
“뭐, 뭐야?! 네가 왜 여기 있는데?”
난데없는 속삭임에 놀란 게 아니었다.
진작에 사라지고 없어야 할 징징이가 이 위험한 곳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설마 또 칼리토의 최면에 당한 건가?!”
-…그건 아닌 거 같아. 나도 헛것이 보이거든.
꼰대도 놀란 얼굴로 갑자기 나타난 징징이를 쳐다봤다.
-크흠… 쓸데없는 소리 말고 일단 따라올래? 알드리온이 찾아.
“?!!”
그 말에 재호의 고개가 반사적으로 로두카를 향했다.
그러자 로두카도 이미 알고 있다는 듯, 재호를 쳐다보고 있었다.
슥-
가볍게 위아래로 움직이는 고개.
역시 알드리온은 무언가가 준비 중이었다.
* * *
전장을 조용히 이탈한 재호는 징징이의 안내를 따라 차원 큐브 의식을 진행하던 장소로 향했다.
“왔군.”
그곳에 기다리고 있던 알드리온이 재호를 반겼다.
“알드리온!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나는 이곳에서 현 상황을 분석해야 했다. 아무래도 우리 예상과는 다른 방향으로 일이 흘러가고 있었으니 말이야.”
“그럼 칼리토를 저지할 방법을 찾은 거야?”
재호의 물음에 알드리온이 애매한 각도로 고개를 움직였다.
“처음 우리의 계획엔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네 요청으로 문제의 파편을 먼저 소환하며 변수가 발생했다. 그리고 내가 이 섬에 느끼던 위화감을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아코아 섬은 이미 섬 전체가 오염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이 전체가 칼리토의 힘을 담은 저장고였던 거다. 난 나무를 볼 뿐 숲을 보지는 못했던 거다.”
호그나이트에게 들어가 있던 칼리토의 파편이 이곳에 소환된 것이 방아쇠였다.
그때부터 칼리토는 섬의 힘과 공명을 시작했으며 그 결과가 현재였다.
“그나마 좋은 소식이라면 이 상황을 칼리토 역시 원하지 않았으리란 거다. 원래라면 지금보다 더 힘을 모은 뒤, 파편을 통합하며 완벽한 준비를 한 뒤 이 섬으로 돌아오고 싶었을 거다.”
재호의 빠른 판단 탓에 그 준비 과정이 모두 삭제된 셈이었다.
“여전히 극도로 위험한 건 사실이다. 이 섬 그리고 저곳에 있는 파편이 칼리토의 핵심이지. 놈이 수많은 파편이 되었음에도 각기 멀쩡히 존재할 수 있었던 것도 이 섬이 매개체였기 때문이다. 즉, 현 상태의 칼리토는 나름 완전체라고 할 수 있지.”
비록 파편을 모두 회수하지는 못했지만, 가장 중요한 건 다 모인 것이다.
“이 섬 전체가 칼리토다. 이걸 무력화하면 남은 파편은 그저 의지를 잃은 마기일 뿐. 그건 후에 차원 큐브로 봉인하면 된다.”
분명 희소식이긴 했다.
“그럼 무력화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섬을 정화해야 한다.”
“그러니까 어떻게?”
“칼리토가 근간으로 삼은 건 죽은 세계수의 흔적들. 그것을 다시 본래의 모습으로 돌려야 한다! 넌 이미 비슷한 일을 한 적이 있지 않나?”
“…페르마 사막…….”
칼리토의 저주가 서린 땅에 기어이 꽃을 피워 냈던 재호.
비록 사막 전체는 아니지만, 그곳에서 엘리시아 화원이라는 생명의 축복으로 가득한 땅을 일구어 냈던 게 재호였다.
“하지만…….”
재호의 눈이 주변의 끔찍한 풍경을 돌아보았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보이던 섬의 초목은 모두 마기에 불타고 시들어 버렸다.
그런 상황에서 이 거대한 괴물이자 섬 그 자체인 칼리토를 어찌 정화한단 말인가?
인벤토리에 있는 꽃씨를 죄다 꺼내도 불가능했다.
그리고 섬에 뿌리고 다닐 여유도 없었고.
“방법이 있는데 어떻게 할 수가 없네.”
하늘을 올려다보며 한탄하듯 중얼거리는 재호.
“……어?”
그 순간, 재호의 눈에 밤하늘 가운데 뜬 달이 보였다.
보통 달이라고 하면 노랗거나 창백한 흰색을 떠올리곤 한다.
아니면 사람을 불안하게 만드는 붉은색 달이거나.
하지만 지금 보이는 달은 흔히 상상하는 그런 이미지와 전혀 달랐다.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기에 누구도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달을 달로만 바라보면 차이점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달의 정체를 알고 있는 재호의 눈에는 보였다.
‘색이…….’
푸르렀다.
창백함을 머금은 은은한 푸름이 아니었다.
저 하늘 너머, 커다란 거울을 세워 둔 채 이 세상을 돌아보기라도 하는 듯… 은은한 초록과 파랑으로 물든 달.
달… 이클립스는 완연히 생명의 세계로 바뀌어 있었다.
…어쩌면 재호가 그리 믿고 싶은 걸지도.
현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 묘한 감상은 잠시.
‘모든 세상을 이어 주는 기둥…….’
재호는 문득 이번 작전을 시작할 때의 풍경을 떠올렸다.
프티머스, 로두카, 알드리온, 그들의 힘을 하나로 모아 만들어 낸 빛의 나무를…….
“다시 의식을 시도하자! 세계수로 길을 뚫는 거야!”
재호가 결정했다.
“로두카와 프티머스를 다시 불러와야 해.”
“음… 그건 별로 좋은 생각 같지 않군. 그 둘이 있기에 전황이 간신히 유지되고 있는 상태다. 지금 빠지면 주도권이 완전히 넘어갈 거다.”
“쯧…….”
다급해서 일단 뱉긴 했지만, 알드리온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둘을 불러들이면 섬 중앙에서 칼리토를 상대하는 동료들은 단숨에 무너질 수도 있었다.
그건 곧 이쪽에서 벌일 작업도 위태로워진다는 의미.
“…좋아. 그럼 편법으로 해 보자고.”
“편법?”
재호는 차원 큐브 앞에 섰다.
큐브 안으로 끝까지 들어갔던 지팡이이자 세계수의 뿌리는 다시 바깥으로 밀려 나온 상태.
재호는 그 지팡이를 다시 잡으며 꼰대와 징징이, 그리고 알드리온에게 말했다.
“우리가 하는 거야!”
“?!”
-우, 우리가?
-…저기 난 악마가 아닌데…….
반응은 저마다 달랐지만, 고맙게도 재호의 계획에 순순히 따라 주었다.
로두카와 프티머스가 했던 것처럼 손을 큐브에 넣은 두 정령.
그리고 알드리온도 손을 넣은 걸 확인한 재호는 다시 한번 지팡이를 밀어 넣었다.
파앗-
어두운 밤하늘을 가르며 빛의 나무가 자라났다.
그걸 본 재호는 미소를 지었다.
“악마 맞네.”
-아, 아니라고! 그냥 마기 때문에……!
징징이의 반발은 잠시 덮어 두고, 재호는 큐브를 붙잡고 방향을 비틀었다.
저 끝없는 하늘로 뻗어 나간 빛의 나무가 우주 너머 끝없이 자라나기 전에…….
이 세계에 뿌리를 내린 빛의 나무.
그리고 이클립스는 나무의 꽃과 열매가 되었고, 메마른 대지를 향해 반짝이는 꽃씨들을 하늘하늘 내려보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