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in Character is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497
그녀는 나를 끌어안은 채 수레 위를 뒹굴뒹굴했다. 마부가 당황스러운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마부에게 손짓했다. 마부는 자연스럽게 제 자리에서 뛰쳐나가 드워프 마을을 향해 뒤뚱뒤뚱 달려나갔다.
시오테르는 나를 꼭 끌어안은 채 한참을 뒹굴다가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눈은 여전히 맑고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고, 나를 향한 애정이 가득했다. 보이지 않는 꼬리가 흔들리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시오테르. 너무 늦게 찾아왔죠? 시오테르가 여기서 엄청 심심했을 텐데, 많이 신경 못써줘서 미안해요.”
“아니야. 이렇게 찾아와줬는걸? 와줬으니까 됐어. 루시우스. 그런데, 이건 뭐야?”
“술들이에요. 시오테르랑 같이 먹으려고 사 왔어요.”
내 예상에 따르면 이 술들은 나와 시오테르가 먹는 게 아니라 시오테르 혼자서 대부분 다 먹을 게 분명했다. 시오테르는 술이라는 말에 눈을 반짝거리고, 코를 킁킁거리며 술통에 달라붙었다. 어째 나보다 술을 더 반가워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녀는 술통을 쓰다듬으며 내게 말했다.
“루시우스! 그럼 일단, 우리 집으로 가자. 술만 먹을 수는 없잖아. 역시 술은 안주랑 같이 먹어야지. 그렇지? 내가 돼지 잡아서 요리해줄게.”
그녀는 발랄하게 말하며 수레 마부석으로 옮겨탔다. 말들은 이미 시오테르가 등장할 때부터 두려움에 미쳐서 발광하고 있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손으로 말들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자, 착하지. 앞으로 가자?”
그러지, 어떻게든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던 말들이 갑자기 얌전해지더니, 앞으로 곧장 걸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느긋하게 술통에 기댄 채, 시오테르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나는 그녀의 옷을 입은 뒷모습만 보아도 발기했다.
*******
“아, 그럼 내일 현장에서는 혼자서 가시는 겁니까?”
에반젤린은 드워프 가신의 질문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페타 루시우스는 비위만 맞춰주면 크게 문제없던 인물이었지만, 그 여동생인 그녀에 대해선 드워프 가신들도 정보가 없어 매우 어색하고 어렵게 대하고 있었다. 그녀로서는 드워프들과 이 정도 거리감이 딱 좋았기에, 의도적으로 얼굴을 굳히고 딱딱하게 대답을 했다.
“어.”
“네. 그럼 현장에서 합류하시는 걸로 알고 있겠습니다.”
“그래. 수고해.”
드워프들이 나가자마자, 그녀는 침대에 벌렁 드러누워서 아공간에서 만화책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저번에 갔을 때 재밌어보이는 만화를 몇 개 집어왔었는데, 그 중 아직 읽지 않은 작품이었다. 한참 동안 베개 위를 뒹굴뒹굴하며 책을 읽던 그녀는 습관적으로 먹을 걸 찾기 위해 선반을 뒤적거리다가 여기가 왕궁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얼굴을 찌푸렸다.
그녀는 소리쳐서 사람을 부르려다가, 다시 입을 다물었다. 생각해보면 사람을 부르고, 그 사람이 오길 기다리고 다시 과자를 전달받는 것보다 그녀가 직접 부엌을 찾아서 과자나 먹을거리를 빼돌리는 편이 훨씬 편했기 때문이었다.
에반젤린은 자신의 몸에 은신 마법을 건 다음 조심스럽게 출입문을 열고 밖으로 움직였다. 주변을 경계하는 드워프 병사들이 잡담하는 게 들렸다.
“저 사람이 그 루시우스 왕의 여동생이라지?”
“어마어마한 마법사라는 소문이 있던데.”
“그런데 왜 인간이지? 루시우스 왕은 엘프 혼혈이잖아.”
“혼혈인데 티가 안나나보지. 아니면 여자 좋아하는 왕답게 엄마도 짝수로 데리고 다니던가.”
“그런가? 허허허허!”
에반젤린은 조금 전에 헛소리를 한 드워프 병사의 머리를 조준하고 가볍게 딱밤을 날렸다.
“아악!”
드워프 병사가 이마를 꾹 쥐고 바닥을 동동 굴렀다. 다른 병사가 화들짝 놀라서 외쳤다.
“야, 야! 왜 그래 임마!”
“아, 몰라! 머리가 너무 아파. 누가 때린 거 같아! 아아악!”
에반젤린은 자신을 볼 수 없는 드워프 병사에게 씩 웃어준 다음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찾았다. 드워프 왕궁은 드워프들 특유의 똥고집과 괴상망측한 미적 감각이 합쳐져서 매우 복잡하고 방어적인 구조를 자랑하고 있었다. 그녀는 머리를 긁적거리며 주변을 돌아다니다가, 도리어 발코니로 올라가는 계단을 찾았다.
“아, 그냥 사람 부를까.”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다시 돌아갈 준비를 했다. 생각해보면 그녀는 부엌이 정확히 어딨는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쉿. 조용히 하세요.”
하지만 돌아가려던 그녀의 귀를 잡아끄는 익숙한 목소리가 있었다. 에반젤린은 돌아가려다 말고 발코니 위를 쳐다보았다.
“폐. 폐하.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되십니다.”
“하지만, 선생님. 저는 저 더러운 재무대신과 더는 몸을 섞고 싶지 않아요.”
로맨틱한 이야기가 오간다고 생각하는 찰나, 에반젤린은 이 대화의 주인공들이 수염 난 여자와 수염이 나지 않은 남자란 사실을 떠올리고 헛구역질을 했다. 그녀는 굳이 올라가 보려던 마음을 접고 방금 들은 대화를 잊어버리기 위해 도리질을 했다.
“씨발.”
그녀는 욕을 뱉으며 다시 방으로 향했다. 방에는 그녀가 읽던 만화책이 널브러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돌아가는 길에 보니, 조금 전 딱밤을 얻어맞은 병사가 이마에 커다란 혹을 달고 눈물을 훌쩍이고 있었다. 그는 말했다.
“흑, 여자는 얼굴이 생명인데.”
“아니, 씨발. 이 새끼들 뭐야?”
에반젤린은 어이가 없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남녀 구분이 안 되는데 저 새끼들은 대체 뭘 보고 성욕을 느끼는 걸까? 에반젤린은 딱히 궁금하지 않은 미스터리를 떠올리며 방문을 열었다. 그리고 다시 침대에 몸을 던진 다음 시종을 불렀다.
주변을 돌아다니던 시종이 문을 활짝 열고 굽신거렸다. 에반젤린은 침대에 고고한 자세로 앉아서 말했다.
“배고파. 먹을 것 좀 가져다줘. 간단하게 씹을 거리로.”
“네. 알겠습니다.”
시종이 나가고 나자, 에반젤린은 싱글벙글 웃으며 다시 침대 위에 발랑 드러누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말린 육포와 땅콩 같은 견과류가 바퀴 달린 테이블에 끌려왔다. 에반젤린은 만화책을 숨기고 다시 딱딱한 자세로 말했다.
“거기 놔두고 나가.”
“네.”
에반젤린은 땅콩을 입에 던져넣으며 생각에 잠겼다. 왕이 저렇게 재무대신을 싫어하고, 새로운 사랑에 푹 빠졌다면, 또 한 번 드워프 왕국에 피바람이 불겠다고.
“맛있어!”
시오테르가 활기찬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앞에는 커다란 멧돼지가 향긋한 냄새를 풍기며 구워지고 있었다. 이 숲에서 구할 수 있는 향신료와 다양한 버섯을 조합해서 잡내를 없앴다고 하는 데, 역시 시오테르는 요리를 잘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와 나는 본격적으로 고기를 뜯기 전에 술을 한 잔 마셨다. 그녀는 첫 잔은 나와 건배를 하고 싶어 했기에 우리는 투박한 나무잔을 탁 부딪히고 사나이다운 자세로 술을 단숨에 들이켰다. 시오테르는 알딸딸하게 올라오는 즐기며 헤벌쭉 웃었다. 시오테르가 말했다.
“이 술 어디서 만든 거야?”
“드워프 왕국에서 유명한 주조장인이 이번에 새로 만든 술이라고 하네요. 어때요? 끝내주죠? 한 입 마시는 순간, 우리 시오테르 얼굴이 떠올라서 바로 사 왔어요. 시오테르가 이렇게 웃는 걸 보려고요.”
시오테르는 내 말에 정말 감동한 기색이었다. 그녀는 입술을 우물거리다가 얼굴을 붉게 물들이고 나를 꼭 끌어안았다. 그리고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제 가슴에 나를 파묻었다. 나는 그녀의 푹신하고 부드러운 가슴을 주무르며 다른 한 손으로 등을 쓸었다.
“시오테르. 왜 그렇게 감동했어요. 우리 사이인데.”
“모, 몰라…….”
나는 술을 한잔 더 따랐다. 통을 기울이면 간단하게 술이 흘러나왔다. 시오테르가 화들짝 놀라더니 제 잔에 술을 따르려고 했다. 나는 시오테르가 술통을 기울이려는 걸 막고 씩 웃어줬다. 시오테르는 의아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나는 내 술잔의 술을 들이켠 다음, 시오테르의 얼굴을 붙잡고 키스했다. 입에서 입으로 술이 쭉 넘어가자, 시오테르는 마치 불이 난 것처럼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서 픽 쓰러졌다. 나는 입맛을 다시며 시오테르 위에 올라탔다.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숨을 헐떡거리고 있었다.
“맛있죠?”
시오테르는 손가락을 하나 쳐들고 내게 물었다.
“하, 한 잔 더 되나요?”
“당연하죠.”
나는 술통을 열고 술을 한 잔 더 따랐다.
******
아침부터 병사들이 소란스럽게 움직이며 에반젤린의 잠을 깨웠다. 그녀는 이 어수선한 복도의 소음이 익숙했다. 왕궁에 있을 때도 공식행사가 있을 때면, 시종들이 오가는 복도는 이런 분위기를 풍겼기 때문이었다. 생긴 모습은 달라도 아랫사람의 고충은 달라지는 게 없는 모양이었다.
에반젤린은 느긋하게 기지개를 켠 다음 침대 위에 널브러져 있던 만화책을 치우고 방을 나섰다. 마침 세안을 위해 따뜻한 물을 담은 대야가 문 앞에 대기하고 있었다. 더 필요한 게 없냐고 묻는 드워프 시종들을 전부 물린 다음, 얼굴을 대야에 푹 담그고 기분 좋게 늘어져 있었다.
“어으…….”
한참 동안 그러고 있던 그녀는 뻐근한 목을 주무르며 다시 일어났다. 수건을 챙겨주러 들어왔던 드워프 시종이 오묘한 표정으로 에반젤린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머리를 묶으며 물었다.
“뭘 봐? 나가.”
“네!”
드워프 시종은 아주 싹싹한 태도로 수건만 두고 나갔다. 그녀가 옷을 갈아입고 준비를 마쳤을 때, 왕과 재무대신은 마차 위에 탄 채 바짝 붙어 있었다. 그 옆에는 에반젤린이 탈 마차가 있었는 데, 본래 루시우스까지 태울 계획이었기에 2인용으로 자리가 널찍했다. 에반젤린은 의자에 비스듬하게 기대앉은 채 재무대신과 왕을 쳐다봤다. 재무대신은 왕에게 거머리처럼 찰싹 달라붙어서 허벅지를 쓰다듬고 있었다. 왕은 재무 대신 앞에서는 억지로 웃었지만, 그녀가 시선을 돌리기만 하면 벌레 보는 듯한 표정으로 재무 대신을 내려다보았다.
에반젤린은 말했다.
“가시죠. 드워프 왕이시여.”
“네. 알겠습니다. 모, 모두 출발하라!”
현장을 향해 마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재무 대신은 왕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흘리고 있었다. 주된 이야기는 오늘 밤에 두 사람이 무엇을 할지에 대한 이야기였고, 다음 생일 때 자신에게 어떤 선물을 해줄 것인지 기대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들은 사회적 통념상으로 매너있다고 할 만큼 작은 소리로 말하고 있었으며, 이 대화를 듣고 있는 건 전적으로 에반젤린의 귀가 밝은 탓이었다.
그녀는 고개를 돌리며 주변을 살피다가, 수행원 끝자락에 가정교사가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그녀는 긴 수염을 쓰다듬으며 작은 마차에 타고 있었다. 에반젤린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린 재무 대신 겸 여왕이 왕에게 물었다.
“폐하. 그런데 어찌하여 가정교사를 이런 자리에 초대하셨습니까?”
“선생도 나름대로 지식과 견문이 넓은 사람이기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불렀습니다. 그……. 아기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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