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licious Member is Back! RAW novel - Chapter (119)
악성 멤버가 돌아왔다! 119화
* * *
“그럼 다녀오겠습니당. 저희 오기 전까지 준비 많이 해 놓으셔야 해요? 저 아침 많이 먹을 거니깐!”
“조심해서 다녀와! 올 때 메로나!”
그렇게 장보기 팀이 매니저를 대동해 캠핑장을 떠난 직후.
“…후.”
드디어 잠깐 스트레스에서 해방된 호빈은, 피로한 두 눈두덩이를 문지르며 크게 한숨을 쉬었다.
‘사람이 저렇게 조심성이 없어서야, 원.’
어쩔 수 없이 오게 된 교육이지만, 그럼에도 왔으니 최선을 다할 생각이던 호빈이었다.
애초에, ‘경력직이니 크게 교육할 것도 없을 거다’라는 말을 미리 듣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오히려 아예 노 베이스가 아닌, 여기저기서 듣고, 보고, 겪은 게 있는 경력직 조태욱은….
“태욱 씨? 화장실 다녀온다고 하더니, 대체 여기서 무얼하고 있는….”
“아아, 선배님. 한 대 피우시겠습니까? 저희도 바쁘니까, 이럴 때 잠깐씩 숨을 돌려야죠. 앉으세요, 앉아.”
“―담배 끄세요! 촬영장이 지척인데,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러고 있는 겁니까?”
“허어? 괜찮지 않나요? 여기서면 보이지도 않을 텐데!”
“당장 끄세요. 빨리.”
끔찍할 정도로 말을 안 듣고, 그만큼 호빈과 맞지 않았다.
“제길….”
약간 허세 섞인 그 모습과 역한 담배 냄새가 떠오른 듯, 호빈은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다.
태욱의 서글서글하지만 자꾸만 선을 넘나드는 태도라든가, 그렇게까지 이 일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은 마인드라든가.
더 나아가서는.
“이야… 쟤들은 좋겠네요. 잘생겼고, 키도 크고. 벌써 팬도 많잖아요? 게다가, 이제 여자 연예인들도 엄청 많이 만나겠죠. 전 항상 그게 부러웠거든요. 그래서 매니저가 된 것도 있슴다, 하하!”
“…보통 그런 사소한 것 때문에 연예인이 되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희생해야하는 게 얼마나 많은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대에 서고 싶은 마음이 훨씬 커서겠죠.”
“에이. 처음에만 그렇죠. 나중 가서 유우명해지면 다 달라지는데요, 뭐! 원래 저랑 같이 일하던 배우님도….”
“―거기까지만 합시다. 이제 슬슬 멤버들 이동할 것 같아서.”
“크흠. 네엡.”
이제 자신이 맡을 아이돌에게 기대도, 바람도 갖지 않는 부분도 말이다.
호빈은 담당 연예인을 진지하게 돕고, 그들이 조금씩 성장해 나가는 것에서 뿌듯함을 느끼는 부류였다.
그렇기에, 자연히 태욱을 향한 마음이 불편할 수밖에.
“오고 갈 때 네비는 꼭 찍으시고요. 카메라에 소리 잡힐 수도 있으니까, 휴대폰은 무음으로….”
“어우, 선배님, 선배님! 다 아는 겁니다, 아는 거. 하하. 뭐, 그런 것까지 알려주실 필요야.”
“…….”
“그리고, 그렇게까지 어깨에 힘이 들어갈 필요는 없지 않나요?”
‘어차피 저희도 월급 받아먹고 사는 건데, 적당히 하면 돼죠.’
장보기 팀 멤버들과 함께 마트로 가기 직전, 태욱이 남긴 말을 떠올린 호빈은 꾹 주먹을 말아쥐었다.
적당히. 할 수 있는 만큼만. 너무 무리하지 않고.
솔직히 그런 태욱의 태도가 완전히 틀렸냐고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너무 최선을 다하면, 오히려 결정적인 순간에 너무 쉽게 무너지고 마니까.
거리를 두고 지켜봐야 하는 것도 있는 법이니까.
실제로 태욱의 케어 자체는 나쁘지 않은 편이었고, 자기 좋을대로 대하긴 하지만, 멤버들과의 소통도 그럭저럭 괜찮았다.
호빈의 마음에 차지 않았다뿐이지, 자기가 말한 것처럼 ‘적당히’ 1인분은 하는 매니저라고 해야 할까.
게다가. 태욱이 티오제의 매니저가 된 까닭에는 호빈의 문제도 적지 않게 영향 끼친 부분이 있어서, 더 뭐라 할 수 없기도 했다.
“연락 두절이라니, 참… 직원 돌아가면서 붙여 주는 것도 한계가 있는데. 티오제 애들한테 미안해서 어떡하지, 정말.”
“…일단, 제가 이따가 한 번 더 연락해 보겠습니다. 이력서에 남긴 긴급 연락망으로도요.”
“응. 그래도 연락 안 되면, 차순위로 경력직이었던 사람들한테 전화 돌려줘. 오늘 촬영장 케어는 내가 갈게. 호빈 씨도 데스크에서 신경 좀 써 줘. 부탁할게.”
“넵.”
“…어휴, 어디서 갑자기 괜찮은 사람 한 명 뚝 안 떨어지나, 몰라.”
그렇게 말하며 자신을 바라보는 팀장의 눈빛에서, ‘네가 적임자인데, 지금이라도 나설 생각 없니?’라는 뉘앙스를 읽지 못 한다면 바보였다.
이미 멤버들 몇 명과 안면이 있어, 현장 경험도 길어. 근속 년수가 길어서 회사 분위기까지 잘 알아.
그런 와중에 새로 사람을 뽑아서 생기는 인건비 지출까지 줄일 수 있으니, 얼마나 안성맞춤의 자원이란 말인가.
그 탓에, 굳이 할 일이 있다며 몇 번이나 완곡히 거절한 호빈을 태욱의 교육 담당으로 정한 거였다.
지금이라도 ‘내가 하겠다’고 말해 주길 바라서.
“…….”
호빈은 그런 시선을 최대한 모른 척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껏 저를 향했던 안쓰러운 눈빛과 함께 베풀어진 안배에 기대서.
은근히 내밀어진 매니저 자원 서류를 다른 사람의 책상으로 넘기고, 귀를 막고.
지금 앉아 있는 자기 자리를 강제로 빼앗기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며 말이다.
현재 상황이 곤란하다는 것도 알고, 저를 강제로 꽂아버리면 어쩔 수 없이 퇴사와 부서 이동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그랬다.
왜냐하면….
호빈마저 티오제로 떠나 버리면, 레이디스완의 일정과 스케줄을 담당하는 사람은 이제 없어지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재계약을 하긴 했는데, 솔직히 앨범 활동을 더 할 것 같진 않아. 아주 나중에라면 몰라도….”
“…누나들.”
“무슨 말 하려는지 알지? 이제 모두 개인 스케줄 위주로 다닐 거고, 그럼 우리 단체 일정 조율할 필요는 없어져. 스케줄 잡는 것도 말이야.”
“맞아. 애초에, 우리를 불러 주는 곳도 없을걸. 아하하….”
“…….”
“호빈이, 네가 이제 우리 로드를 할 짬은 아니잖아. 근데, 우리 단체 스케줄이 언제 있을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너를 계속 붙잡아 두기도 미안해.”
“아뇨, 아뇨. 차라리 제가 잠깐 다른 일을 하다가, 누나들 활동할 때 다시―”
“그때가 언제일 줄 알고 그러겠어. 호빈아.”
‘…사장님께서 사무 쪽으로 부서 이동할 수 있게 도움을 주신대. 그쪽으로 가는 게 좋을 거 같아.’
호빈과 레이디스완의 유대, 그리고 사정을 이해한 회사의 배려로 홍보 섭외 쪽으로 책상을 옮긴 지 3년째.
제게 배정된 일을 하면서도, 호빈은 몰래몰래 레이디스완과 관련된 스케줄을 잡아보기 위해 애를 썼다.
어딘가는 불러 줄 수도 있으니까.
“Be your swan! 안녕하세요, 레이디스완입니다!”
정말 멋지고, 노래도 잘하고, 근사한 자신의 누나들을, 누군가는 알아볼 수도 있으니까.
그러나, 그가 아무리 노력해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가장 최근 단체 스케줄이 [타겟팅 스타>의 깜짝 출연이었고, 그마저도 호빈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스케줄이었으니.
말은 다 했다고 봐야지.
“…….”
여러 감정이 소용돌이치는 가운데, 호빈은 이마를 짚으며 가만히 침음했다.
함께 꿈을 좇던, 그 누구보다도 빛나던 레이디스완을 향한 그리움.
저와 정반대의 마인드를 가진 태욱이 불편하면서도, 그런 그가 자신 대신 티오제 매니저를 차지해 줬기 때문에 이번에도 자리를 보전했다는 저열한 안도감.
‘지금이라도 잘 생각해 보는 게 좋을 거다’라는, 회사가 내려준 마지막 배려를 향한 불안함.
그리고, 저 때문에 이래저래 안 해도 될 고생을 했고, 앞으로는 태욱과 함께 다니게 될 티오제 멤버들을 향한 미안함과 죄책감.
그런 것들이 뒤죽박죽 섞여들면서, 새카맣게 내려앉은 호빈의 두 눈을 더 깊게 만들었다.
“하….”
그리고 그때.
“아, 어디 계셨나 했더니. 여기 있으셨네요.”
“아?”
곧 땅바닥에 머리를 처박기 직전이었던 호빈을 향해, 누군가가 경쾌한 목소리와 발걸음으로 다가왔다.
“호빈… 님. 맞으시죠? 호빈 형이라도 불러도 될까요?”
“…네. 편하게 부르세요. 근데 갑자기 저는 왜…?”
“아, 다른 게 아니고요. 남은 요리 팀끼리 가위바위보를 해서 물 떠올 사람을 정했는데, 제가 걸리는 바람에. 근데 떠 와야 하는 물은 되게 많고, 식수대는 멀어서….”
“도움이 필요하셨겠네요. 네.”
“넵. 가급적이면 멤버 둘이서 가는 게 방송 분량상으로도 좋겠지만, 하하. 제가 힘 세다고 허세만 안 부렸다면 좋았을 텐데요….”
“―도와드리겠습니다. 네. 그리고, 카메라 보이는 부분부터는 혼자 들고 가시면 될 것 같네요.”
방금 전까지 미안함과 죄책감을 갖고 있던 대상과 마주하자, 호빈의 말은 저절로 빨라졌다.
자신과 대화 중인 상대와 최대한 빨리 떨어지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고 해야 할까?
“가시죠. 빠른 길을 봐 뒀습니다.”
그렇게 호빈이 상대가 들고 온 양동이를 자기 손에 쥐며, 10분거리에 있는 식수대로 향하려고 하던 그 순간.
쏴아아아―
캠핑장 너머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며, 상대방의 머리카락이 아주 근사하게 흩날렸다.
“…호빈 형. 근데 제 이름은 아세요?”
“네? 아, 당연히 알….”
“안 불러 주시길래, 모르시는 줄 알았어요.”
호빈이 빼앗아 간 양동이를 다시 자기 손으로 천천히 가져온 남자는, 제 이마 위로 쏟아진 새빨간 머리카락 아래로 눈을 빛내며 말했다.
매우 날카롭고 자칫 무서워 보일 수도 있었지만, 상냥하게 휘어진 눈 말이다.
“경칭으로 부르지 마시고요. 편하게 부르세요.”
춘용아, 하고요.
“…….”
그 순간, 유호빈이 ‘지금 피하더라도, 얘는 어쩌면 계속 볼지도 모르겠다’고 잠시 생각한 건….
어쩌면, 착각이 아닐 수도 있었다.
* * *
식수대까지는 정말 금방이었다.
적어도 오가며 20분은 걸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도착까지 10분도 안 걸리다니.
덕분에, 개인적인 대화를 하면서 알아가 볼까 했던 계획은 쓸 수 없게 됐다.
“여기서 떠 가면 될 것 같습니다. 4개면 충분할까요?”
“…아, 네. 저희가 하나씩 들면 될 거 같아요. 하하, 형이 하나만 드셔도 되고요.”
“아닙니다. 제가 춘용 씨를 도와드리겠다고 했는데요. 두 개 들겠습니다.”
게다가 분명 편하게 불러도 된다고 했는데, 아직도 저런 딱딱한 경칭이라니.
“…뭐. 겸사겸사 힘을 합치자는 거죠. 네.”
이거, 이래저래 쉽지가 않겠는걸.
나는 호빈 형 몰래 혀를 내두르고는, 들고 온 핸드캠에 대고 멋대로 떠들기 시작했다.
의도가 있어서 데리고 오긴 했지만, 어쨌든 촬영 중인 것도 맞으니까.
“네, 여러분. 저는 지금 물을 뜨러 왔습니다. 형들에게는 제가 4개 다 들 수 있다고 허세를 부렸지만… 사실 힘들 것 같아서 지원군을 좀 불렀어요. 쉿. 형들한테는 비밀입니다.”
내가 우리 ‘구’ 매니저 형을 갈아치우겠다 마음먹은 지금.
무조건, 이 촬영이 끝날 때쯤에는 호빈 형이 나를 포함한 티오제 멤버들에게 호감을 가져야만 했다.
그 속사정까지는 내가 알 수 없어도, 재하 형의 말을 떠올려 보면 분명 회사에서도 내심 호빈 형이 매니저 자리에 들어가길 바랐던 상태.
여기서 본인이 생각만 바꾼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지.
– X: 물어보고 싶은 게 뭔데 ㅡㅡ 쓰잘데기 없는 거면
– 김춘용: 쓰잘데기 없는 거면 뭐
– 김춘용: 뭐
– X: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지 하 너 정말 짜증난다
– X: 본론만 얘기해 봐 ㅃㄹ
– 김춘용: 나한테 있는 스킬들 말이야
– 김춘용: ‘그래도 저 마음에 드시죠?’랑 ‘아니 근데 들어보세요’ 이거 두 개
– X: ㅇㅇ C급이긴 한데 ㄱㅊ은 애들이지
– X: 그게 왜??
– 김춘용: 혹시 합성 같은 거 되냐?
– 김춘용: 내가 예전에 했던 게임에서는 되던데
– X: 합성? 이게 뭔 개소리야
– X: 근데 흥미로워 계속 말해 봐
어제 엑스와 나눈 메시지를 가만히 떠올린 후, 나는 목을 큼큼 가다듬고 최대한 쾌활한 척 외쳤다.
“호빈 형! 여기 캠에 인사 한 번만 해 주세요. 팬분들한테요.”
“네? …저는 여러분 담당 매니저도 아니라서. 어차피 편집될 텐데요.”
“에이, 그래도요.”
나는 어울리지도 않는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형 쪽으로 가볍게 카메라를 들이밀었다.
뭐, 편집당할 수도 있지. 내 컷이 아예 안 쓰일 수도 있고.
그렇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 X: 그니까 스킬 두 개를 다른 거 하나로 바꿔 달라? 두 개 합친 속성인 걸로?
– X: 이런 골 때리는 놈을 다 봤나 진짜 개웃기네 ㅋㅋㅋㅋㅋㅋㅋ
– X: 너 같은 계약자는 진짜 처음이야 ;-D
– X: 근데 존나 마음에 들었습니다 야 이거 아이디어 괜찮다 건의하면 나 상여금 탈 수 있을 듯?? 대박인데??
– X: 일단 저지르고 보자 원하는 스킬이 뭔데? 좀 구체적으로 얘기해 봐 리스트에 있나 함 보게
– 김춘용: 그러니까 대충 상대방이 내 말을 듣거나 볼 때
– 김춘용: 과거 자기가 좋았던 상황과 비슷하면 그게 즉시 떠오르는… 뭐 그런 건데
– X: 아 씨 바라는 거 개많아 ㅈㅁ 기다려 봐
– X: 오 근데 하나 있어 ㅁㅊ 너 운 개좋네?? 로또 사야겠네??
– X: 음음 근데 등급이 낮아 F야 ㄱㅊ음?
– 김춘용: 당장 내놔
잠깐 망설이던 호빈 형의 입술이 천천히 움직였다.
“그, 음. 아, 안녕하세요. 저는, 그. 임시로 티오제를 케어하고 있는 그런….”
됐다.
나는 형을 향해 활짝 웃어 주며 한 마디를 내뱉었다.
어젯밤.
잠도 안 자고 봤던, 레이디스완 자컨 속 수인 선배님과 똑같은 한 마디를.
“하하! 누가 그런 식으로 인사를 해요, 호빈 형!”
“아, 안녕하세요… 저는, 그. 레이디스완 누나들…을 케어하고 있는, 네. 그런 사람입니다.”
“아하하! 누가 그런 식으로 인사를 해!”
“…아.”
순간 커다랗게 뜨인 호빈 형의 두 눈을 보며, 나는 이게 아주 제대로 먹혔다는 확신을 얻을 수 있었다.
호빈 형.
분명 아직 레이디스완 누나들이 엄청나게 그립겠지만….
우리 팀도, 정말 열심히 한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