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licious Member is Back! RAW novel - Chapter (118)
악성 멤버가 돌아왔다! 118화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자고 마음먹은 덕분일까?
“안녕하세요! 티오제 여러분의 로드 매니저인 조태욱입니다. 열심히 하겠슴다!”
뮤직 비디오와 트랙 비디오 촬영이 어느 정도 마무리된 직후.
다시 보면 심하게 흔들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얼굴을 두 눈에 담아도, 생각보다 괜찮았다.
“Wow, 반가워요! 저는 로건입니다!”
“오, 로건 씨! 기사로 다 만나 봤죠. 그, 영국 출신이시라고? 제가 또 축구 하나는 정말 열심히 보거든요. EPL이요!”
“Really? 좋아하는 팀을 물어봐도 되나요?!”
“하하, 한국인이라면 당연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죠! 빨간색! 트래블! 얼마나 멋집니까, 예?”
“…Oh.”
아니, 괜찮은 정도가 아니었다.
뭐랄까….
“이야, 이거 참. 제가 원래는 여배우 한 분 모시고 있었거든요. 이게 어… 상황이 잘 안 맞물려서 이별하게 됐지만! 하여간. 이번이 두 번째니까, 더 잘할 수도 있다는 말이죠. 와하하!”
그때는 내가 모르는 술게임을 알고, 폭탄주를 만들어주고, 500cc짜리 맥주를 한 방에 끝내는 형이 굉장히 어른 같다고 생각했는데.
“어어, 그럼 남자 아이돌은 처음이신 거네요? 저도 아이돌이랑 연예인은 처음이니까, 똑같이 처음이라고 생각하고….”
“뭐, 누군지 궁금하시다면 슬쩍 물어보셔도 괜찮은데 말입니다. 또 엄청 예쁘신 분이었거든요. 다음에 만나면 유찬 씨한테 인사라도 시켜드릴까 싶습니다!”
“…어후, 괜찮아요. 하, 하하.”
글쎄, 지금은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단 말이지.
“저어, 혹시… 나이가 어떻게…?”
“아, 아무래도 우리 시우 씨는 어려서 여배우는 안 궁금하신가? 그래도 조금만 나이를 먹으면 금방―”
“아, 죄송… 한데. 어, 어깨는 잡지, 않아 주셨으면….”
“어이쿠, 미안해요. 너무 내 동생 같아서 그만. 저희 딱 10살 차이 나요. 제가 매니저 일을 그렇게 오래 하지는 않았거든요!”
그래. 이거였네.
줄곧 머릿속을 맴돌던 의문이 한 방에 풀리고, 전구에 불이 켜지는 기분이었다.
스물일곱이면 한창 술에 쩔어 살고, 인생을 비관하고, 자기 관리 안 됐으며, 죄책감과 후회로 찌들어 있던 렉쓰레기랑 같은 나이.
매니저 형은 어른이 아니었다.
그냥, 그때 렉쓰레기처럼 술 마시기 좋아하는 질 안 좋은 또래였지.
그렇게 생각하니까 매니저 형이 친구처럼 보이기도 하고, 턱에 한 대 올려붙이고 싶은 웬수처럼 보이기도 하고.
나는 약간 떨떠름한 표정으로 자기 어깨를 감싸쥔 시우를 뒤에 휙 숨기며, 최대한 밝은 목소리로 외쳤다.
“안녕하세요, 저는 춘용이라고 합니다!”
“이야, 춘, 푸훕. 네. 춘용 씨!”
아니나, 다를까.
일전에도 내 본명을 듣고 한참을 웃더니, 이번에도 똑같이 반응한 형은 급기야 자기 눈가를 옷소매로 훔치기까지 했다.
아, 다른 사람이 웃는 건 그렇게 기분 나쁘지 않았는데.
이게 또 사람 바이 사람인지, 살짝 짜증이 났다.
“아, 이름이 친근하니까 너무 좋네요. 춘용 씨랑은 엄청 빨리 친해질 수 있을 거 같아! 편하게 형이라고 불러요. 태욱 형!”
“하하….”
순간, 나는 울컥하고 튀어나오려는 화를 필사적으로 참아야만 했다.
미친 건가?
친해지긴 뭘 친해져.
“렉스 씨. 렉스 씨?”
“우욱, 아, 쏠, 쏠려…”
“여, 여기서 토하시면 안 돼요! 저희 이제 룸 마감해야 하는데, 매니저님은 어디 가셨나요? 대리 불러드려요?”
“어, 매니저 형이, 그러니까… 우욱.”
“야, 야. 쓸데없는 짓하지 말고 비닐 봉투나 하나 가지고 와. 렉스 씨 매니저 아까 먼저 갔어.”
“네에? 아니, 여기 연예인은 혼자 두고 왜….”
“자주 그런댄다. 그건 그렇고. 너 그냥 가만히 그러고 있으면 여기 바닥에 렉스 씨가 토한다.”
“우욱, 술 냄새, 역겹, 윽….”
“으아아아! 잠시만, 잠시만요!”
또 술 한 바가지 마시게 해 놓고서는, 나는 클럽에 두고 혼자 대리 불러서 가 버리게?
“…네. 제 생각에도, 친해질 수 있을 거 같네요. 잘 부탁드려요.”
매니저 형.
나는 불쑥 고개를 드는 원망과 분노를 애써 삼키며, 얼굴 가득 미소를 띠며 대꾸했다.
“어, 엄. 그래, 그래요. 이야, 눈빛이….”
그럼에도 화가 난 게 살짝 티가 났는지, 내 매서운 얼굴에 매니저 형이 움찔하는 모습이 뻔히 보였지만.
굳이 이 자리에서 내가 형의 턱을 후려갈기며, 안 그래도 빡빡한 일정의 데뷔를 미룰 필요는 없었다.
왜냐하면.
“하아….”
나보다 더 때리고 싶어하는 표정의 누군가가, 아까부터 우리를 전부 지켜보고 있었으니까.
“…태욱 씨. 대체 티오제분들한테 여배우 얘기는 왜 꺼냅니까? 데뷔하기도 전에 스캔들 날 일 있어요? 인사를 왜 시키는데요?”
“에이, 형님. 뭐 제가 진짜 소개해 주려고 그러는 거겠습니까. 우리 티오제랑 친해지려고 스몰 토크를 한 거죠, 스몰 토크를!”
“전 태욱 씨 형님이 아닙니다. 호칭 지켜주시죠.”
“에헤이. 왜 이렇게 깐깐하게 구시는….”
“호칭, 지켜 달라고 했습니다.”
“…예에, 선배님.”
매니저 형의 탐탁치 않은 반응에 한참을 째려보던 남자는, 우리를 향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화성이보다도 클 것 같은 키에, 수척한 얼굴 위로 다크서클이 잔뜩 내려온 남자는 목소리도 그에 어울리게 낮은 목소리였다.
“…안녕하세요. 저는 오늘 조태욱 매니저 교육차 따라온, 유호빈이라고 합니다.”
“에엥? 호빈 형이 교육 나오신 거예요? 와, 이렇게 보니까 되게 반가운데! 형 이제 다시 현장 뛰려고요?”
“아뇨. 그건 아닙니다. …저도 바쁜데, 회사에서는 제가 제일 한가하다고 하더라고요. 이번 리얼리티 촬영만 동행하고, 다시 사무실로 돌아갈 겁니다.”
“…아쉽네요. 저는 사실, 호빈 형이 저희 매니저님이 될 줄 알았거든요. 그래서 시간이 걸리는 거라고 생각했고요.”
“…….”
재하 형의 부드러운 미성에, 잠깐 침묵한 유호빈 씨는 곧 다시 덤덤하고 피곤한 낯으로 말했다.
“…일단, 이동 시간이 좀 있으니까 일단 출발부터 하죠. 화장실 다녀오실 분 계시면 빨리 다녀오실게요.”
“어이쿠. 저 그럼 잠깐 화장실 겸 담배 타임을 좀!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탁―
그렇게 호들갑 떠는 매니저 형이 달려나가고, 유호빈 씨가 벤의 앞 좌석으로 먼저 향한 사이.
매니저 형과 가장 먼저 짧은 인사를 나눈 후, 뒤에 빠져 있던 유찬 형이 슬그머니 재하 형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 재하야.”
“음? 유찬 형, 왜 그래요?”
“저, 교육하러 와 주신 분 있잖아. 네가 방금 그분이 우리 매니저님이 될 줄 알았다고 그래서.”
“아아, 네. 호빈 형이 현장 경력도 길고. 저랑 화성이, 시우랑은 안면도 있어서요. 근데… 역시 잘 안 됐나 봐요.”
“잘 안 됐다니, 뭐가?”
“그게… 제가 말하기는 좀 그런 사정이라서요. 미안해요, 유찬 형.”
“오, 아니야. 그런 거면 어쩔 수 없지. 미안하긴 뭘! 별 걸 다 미안하다고 하네, 하하.”
그런 대화를 잠시 훔쳐 들은 후, 나는 멤버들 중 그 누구보다 빠르게 벤의 제일 뒷자리를 선점했다.
“흠….”
유호빈, 유호빈이라.
전에도 교육 때문에 왔던 사람이라서, 그것 때문에 익숙한 거라고 생각했는데.
AG에서 오래 연습한 재하 형, 화성이, 시우와 안면이 있고, 현장 경력이 길다는 말을 듣고 나니 불현듯 그의 정체가 떠올랐다.
“오랜만에 스완캠! 다들 너무 보고 싶었어요. 안녕, 안녕, 밥은 먹었어? 응, 나는 녹음실 가기 전에 우리 오데트들 보고 싶어서 왔지! 이따가 잠깐….”
“수인 누나, 밑에 차 대기시켜 놨는, 아. 죄, 죄송합니다.”
“응? 아냐! 여러분, 호빈이 아시죠? 호빈아, 오데트들한테 인사해.”
“아, 안녕하세요… 저는, 그. 레이디스완 누나들… 을 케어하고 있는, 네. 그런 사람입니다.”
“아하하! 누가 그런 식으로 인사를 해!”
―레이디스완 선배님들의 로드 매니저.
내가 AG에 들어간 후에는 레이드스완 선배님들의 활동이 전무했기 때문에, 누가 매니저인지 얼굴을 익힐 새도 없었던 거다.
하긴, 서바이벌을 몇 개월이나 했는데 회사에서 매니저 한 명을 준비 안 했겠어.
준비를 했는데, 어그러진 거겠지.
“…….”
오랫동안 사무직 일만 해 온 레이디스완 선배님들의 매니저라는 정보를 머리에 입력하자, 자연스럽게 도출되는 결론이 있었다.
첫째.
이걸 잘만 활용한다면, 보기만 해도 주먹이 바들바들 떨리는 우리 매니저 형을 일찍 갈아치울 수 있을 거란 것.
슥―
– 김춘용: 야
– 김춘용: 야 엑스
– X: ㅇ? 태양 폭발했냐? 갑자기 먼저 메시지를 다 보내네
– X: 아 ㅡㅡ 잠만
– X: 김춘용 너 또 나한테 뭐 요구할 거 있지
– X: 지긋지긋해 이렇게 나에게서 무언가를 갈취해가기만 하는 관계
– X: 그럴 때가 아니더라도 나를 좀 찾으라고! 외롭다고! 너한테 나는 고작 그런 존재야?
– 김춘용: ㅇㅇ
– 김춘용: 그리고 역한 소리 좀 그만해 제발 니가 드라마퀸이야?
– X: ㅡㅡ 왜 메시지 보냈는데?
– 김춘용: 물어볼 게 있어서
– X: 또 또 비장한 척 빌드업 한다 아이고 렉쓰렉아
그리고 둘째.
그러기 위해서는….
“아이고! 제가 그래도 좀 빨리 왔습니다. 이제 다들 출발하시죠. 티오제 분들! 벤에 타세요!”
“아! 용용 형이 좋은 자리 먼저 앉았어! 자리 바꿀 생각 없어요? 동생한테 양보하는 멋진 형, 그런 이미지 있으면 좋을 텐데요!”
“…하하. 네가 늦은 거야, 인마. 그리고 싫어.”
나는 엑스와 한창 어처구니없는 메시지를 주고 받던 휴대폰을 주머니에 쑤셔 넣으며, 뒤늦에 벤에 오르는 멤버들에게 아무렇지 않게 웃어줬다.
그래. 지금 당장 서두를 건 없었다.
지금 촬영하러 가는 리얼리티 캠핑은 이틀짜리.
일단 오늘은 가평에 있는 숙소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내일 아침부터 본격적으로 촬영에 들어가게 되니까….
“네비 찍으셨습니까? 길 안 틀리게 찍고 가세요. 어딘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어음, 제가 또 엠티 때문에 가평은 많이 가 봤기 때문에….”
“찍으세요. 당장.”
저기서 매니저 형을 갈구는 유호빈 씨.
그러니까, 내가 점 찍은 우리의 새 매니저 형 후보와 함께 있을 시간은 총 3일.
그 사이에만 해결을 보면 될 일이었다.
“흐, 흠… 으음.”
“음? 이거 춘용이 파트인가?”
“네, 뭐. 저희 노래 좋잖아요? 잘될 거 같고.”
그래. 잘될 거 같았다.
지금은 또….
일이 착착 진행되는 타이밍이거든.
* * *
이튿날 아침, 가평 소재의 한 숙소에서 하루를 보낸 후.
마이크 착용을 마친 나의 티오제 멤버들이 향한 곳은, 지정된 에리어마다 캠핑카가 하나씩 서 있는 프라이빗 캠핑장이었다.
나름 마지막이라고 공을 들인 건지, 리얼리티 제작진이 미리 세팅해 둔 캠핑카에는 이번 티오제 앨범의 시그니처인 여섯 개의 잎이 달린 클로버가 멋들어지게 그려져 있었다.
“우와, 이거 하나하나 그리신 걸까? 진짜 멋지게 그려졌는데.”
“그건 아닐 거 같아요. 프린팅? 아니면 시트지?”
“음, 어느 쪽이라도 기분이 좋긴 하네요. 진짜 데뷔하는 거 같아서….”
“어어? 형들! 잠깐만요. 여기 테이블에 뭘 뭐가 있어요!”
“편지… 같아요. 제작진, 분들이 두고 가신 거 같은데….”
‘멤버들끼리만 있는 느낌을 내야 시청률이 잘 나온다’는 주철영 피디의 지론을 반영한 편지에는 그렇게 적혀 있었다.
“Wait. 한국어 연습을 위해서 제가 읽어 볼게요. Um. …‘ToZ 멤버들. 아침 일찍부터 캠핑장으로 오느라, 지금 배가 정말 고프실 텐데요’.”
“야, 로건. 너 영어 발음이 너무 네이티브야. 한국어 연습에 도움은 안 되는 거 같은데?”
“Oh, 춘용 형. 제 공부에 방해돼요! 흐흠, 다시 갈게요… ‘일단, 저희가 드린 용돈으로 장을 보는 것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이름하여, 텔레파시 식사!’”
리얼리티에서 자주 쓰는 소재 중 하나였다.
장 보러 가는 팀이 하나, 그리고 남아서 요리 하는 팀이 하나.
장보기 팀은 어떤 음식을 먹을지 상의한 후 그 음식에 맞는 재료를 구매하고, 요리 팀이 딱 맞는 요리를 할 때만 식사를 할 수 있는 미션.
물론, 슬프게도 아무것도 먹지 못 하는 불상사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텔레파시’라는 요소에 맞춰 추가 미션이 붙는다.
요리팀이 쪽지에 따로 먹고 싶은 간식 등을 적고, 거기에 맞는 간식을 사 온다면 그걸 나눠 먹는 거.
“와 씨! 이거 재밌겠는데요? 그럼 일단, 팀을 나눠서 누가 장 보러 갈지 정하죠? 가위바위보? 아니면 손바닥 뒤집기?”
나는 잔뜩 신이 난 화성이의 목소리를 BGM 삼으며 천천히 눈동자를 굴렸다.
원래대로라면, 나는 라면 끓이는 것 외에는 요리도 잘 못 하고. 애들 걱정돼서라도 장보기 팀에 합류하려고 하겠지만….
“…형 팀, 동생 팀으로 나누죠? 그리고 어리고 튼튼한 동생들이 장 보고 오는 걸로. 다들 배고프니까, 이렇게 빨리 하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어후, 나는 완전 찬성. 대찬성. 나 지금 배고파서 완전 죽을 거 같아.”
“아싸, 그럼 가서 아이스크림 하나만 사먹어도 돼요? 제작진분들 카드로?”
“Oh, 저도 동의는 하는데, 엄청 빨리 진행되네요…?”
로건의 의아함이 들려 왔지만, 내게는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다.
여기 캠핑장에서 제일 가까운 마트는 차를 타고 왕복 40분.
자연스럽게, 장보기 팀 멤버들이 마트를 가기 위해서는 매니저 형을 대동해야만 했다.
그러니까, 나는 굳이 여기에 남아서….
“…담배, 좀… 멀리….”
“괜찮… 보이지도, 않….”
저 멀리, 카메라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매니저 형을 갈구고 있는 유호빈 씨를 좀 공략해 볼 생각이거든.
“…후.”
나름대로 머리로 계획 작성을 마친 나는, 시우에게 장바구니를 들려주는 로건과 화성이의 어깨에 팔을 턱 걸치며 씨익 웃었다.
“다녀와라, 동생들.”
형은 새 매니저 좀 구해 보고 있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