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licious Member is Back! RAW novel - Chapter (162)
악성 멤버가 돌아왔다! 162화
나를 침대 밖으로 이끌어 낸 유찬 형은 지금 시간에 맞지 않게 온몸에 무장을 한 상태였다.
마스크에, 모자에.
심지어 체형을 알아볼 수 없는 펑퍼짐한 자켓까지.
…휴가라서 어디 잠깐 나갔다 오려는 건가?
그리고 내가 뭐라고 짐작을 꺼내기도 전에, 잔뜩 신이 난 유찬 형이 와르르 말을 쏟아냈다.
“아, 오늘내일 우리 휴가잖아. 멀리 갈 수는 없고… 잠깐 이 주변 좀 돌고 올까 싶어서. 그 정도는 괜찮겠지?”
역시 맞네.
살짝 기대 중인 유찬 형의 얼굴을 보니, 확실히 짚이는 부분이 있었다.
“어디 가려고요? 혹시, 노래방?”
“어어? 어떻게 알았어? 뭐야, 나 얼굴에 써 놨나?”
“하하….”
놀람과 당황 속에서 내 어깨를 잡고 마구 흔드는 유찬 형을 향해서, 나는 짧은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아니, 내가 어떻게 모르겠냐고.
“어어, 유찬 형. 어디 가요? 오늘 약속 있나?”
“응. 나 오늘 대학교 동기들이랑 만나기로 했어.”
“헐, 형은 진짜 지치지도 않아요? 활동 끝난 지 얼마나 됐다고 또 밖을 나간대?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독하다고 해야 할지….”
“좋아서 가는 거지, 좋아서. 아, 화성이 너도 갈래?”
“에잇, 싫어요! 전 숙소에서 게임 할 거예요!”
우리 멤버들 중에서 유일하게 바깥 문물을 마음껏 접하고 다녔던 유찬 형은, 휴가 때 고등학교와 대학교 시절 친구를 만나며 그들에게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듣고 오곤 했다.
그리고, 그런 외출 시간 속에서 형이 제일 많이 가는 장소가 바로 노래방이었다.
“렉스야. 형이랑 같이 노래방 다녀올래?”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저랑요?”
“응. 너 요즘 매일 낮에 자고 밤에만 일어나잖아. 형이랑 잠깐만 다녀오면 기분 전환도 되고, 피곤해서 밤에 잠도 잘 올 거야. 어때?”
“아까 친구들 만나서 갔다 왔잖아요. 방에서 다 들었었어요. 한 번 나갔다 왔는데, 또 나간다고요?”
“에이, 그건 친구들이랑 다녀온 거고. 멤버랑 가는 게 또 같은가? 나 체력 괜찮아. 애초에 조금밖에 못 불러서 아쉽기도 했….”
“됐어요. 저 잘게요. 뭐, 화성이랑 다녀오시든가요.”
게다가, 한창 내 상태가 안 좋을 때 형이 허구한 날 ‘기분 전환을 해야 한다’며 권유하기도 했었으니까.
이걸 기억 못 하면 멤버 실격이지, 진짜.
난 당시 내 까칠했던 반응을 떠올리며, 여전히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유찬 형의 어깨를 현관 쪽으로 슥슥 밀며 말을 얼버무렸다.
“그냥, 뭐. 대충 찍었는데 잭팟인 거죠.”
‘형이랑 8년 동안 살 부비면서 살다 보니까 알게 됐어요’ 같은 말을 할 수는 없으니까, 뭐.
“…찍었다고? 그냥? 그게 돼?”
“네, 뭐. 형 노래 부르는 거 좋아하니까요. 아, 그래서 이렇게 뭘 많이 입었나 보네요.”
그리고 그 말과 함께 덧붙인 내 말 돌리기가 먹힌 건지, 유찬 형의 얼굴에서 놀람과 당황이 천천히 가시는 게 보였다.
“…아, 맞아. 뭘 너무 많이 입었나? 근데 그냥 나가면 들킬 것 같기도 해서.”
“아뇨. 딱 좋아요, 형. 선글라스 안 낀 게 어디에요. 밤인데 이 정도면 됐죠.”
나는 가만히 피로에 찌든 고개를 끄덕이며 현관 앞에 선 형을 향해 엄지를 치켜올려 줬다.
멤버들 사이에 문제가 있는 것만 아니면 내가 미주알고주알 사생활 영역에 침범할 이유는 없었다.
그리고 이렇게 적극적으로 쉬는 거에는 나보다 유찬 형이 더 일가견이 있다니까, 그러게.
“잘 다녀와요, 형. 옷 입은 거 보니까 팬분들한테 걸리지는 않겠네요. 다른 멤버들한테는 제가 잘 말해 둘게요.”
“…어?”
“가서 신곡 리스트에 저희 데뷔곡 추가됐는지도 한 번 봐 줄래요? 겸사겸사 한 번 불러서 음원 지수도 올리고.”
“으응…?”
“근데, 혼자 불러도 재밌어요? 아, 형은 워낙 노래를 잘하니까 재밌으려나.”
간신히 쉴 수 있는 시간에도 노래를 부르러 가다니.
좋아하는 것과 할 수 있는 일의 조화가 맞다는 건 정말이지 근사한 일이었다.
글쎄, 나도 이런 건전한 취미가 좀 있어야 할 텐데.
아무리 머리통을 굴려 봐도, 떠오르는 건 렉쓰레기 시절에 열심히 하던 방치형 모바일 전투 게임밖에 떠오르지가 않았다.
[꿈의 전장과 마주하라! 스타 베텔게우스 런칭 3주년 기념 아이템 대잔치]그리고,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만큼 의미 없는 짓이 없었고.
“…씁.”
이렇게 돌아오고 나서는 내 계정도 다 날아갔을 거 아냐, 나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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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놈의 뽑기 유도 때문에 대체 돈을 대체 얼마나 썼던 건지.
그러고 보니, 엑스 녀석에게 ‘나중에 쓰겠다’며 미뤄 둔 보상 뽑기가 몇 개 있었던 거 같은데.
…이번 휴가에는 오랜만에 그때 추억을 살려서 엑스 녀석 잔소리와 함께 뽑기나 좀 해 볼까?
도움 되는 스킬 같은 거 있으면 어떻게 써먹을지 생각도 좀 해 보고.
“하여튼 잘 다녀와요, 형. 스트레스 잔뜩 풀고요.”
“어어어?!”
그렇게, 내가 유찬 형을 배웅한 후 오늘 내일 휴가를 어떻게 활용할지 착착 떠올리던 그때.
“잠깐, 잠깐! 춘용아.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금방이라도 숙소를 나설 것 같았던 유찬 형이, 아까와 마찬가지로 결연한 표정으로 내 어깨를 잡았다.
…뭐지?
“네? 잘 다녀오라고 그랬는데요.”
“아니지! 내가 아까 너 방에서 부를 때,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그랬잖아?”
“…혼자 잘 갔다 오겠다고 말하려던 거 아니었어요?”
“와… 춘용아. 너 평소에는 눈치 좋다가, 왜 이런 거에는 없는 척해? 아니, 척이 아닌가?! 아, 하하….”
어이없다는 웃음을 크게 터뜨린 유찬 형은, 내 어깨를 잡고 한참을 끅끅거리다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팬분들이나 모르는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서 쓴 모자 아래, 유찬 형의 새카만 눈동자가 나를 빤히 바라보다가 보기 좋게 휘어졌다.
그리곤….
“…따라와!”
자기가 쓰고 있던 모자를 내 머리통에 푹 덮어씌우고는, 내가 말릴 틈도 없이 내 팔을 숙소 밖으로 잡아끌었고.
“어어, 형? 유찬 형! 잠깐만요, 멤버들한테 말을 해야―”
“다 알고 있어!”
그건 정말, 내가 말릴 틈도 없이 벌어진 일이었다.
* * *
시간을 돌려서.
티오제 모두가 숙소에 도착하고, 김춘용이 제일 먼저 씻으러 들어갔던 그때.
“…….”
“…….”
각자의 말로 아웅다웅하던 다른 멤버들은, 빠르게 눈을 마주치고 일사분란하게 거실로 모여들었다.
“로건!”
“Okay. 화성은 펜을 준비해 주세요.”
지화성과 로건이 무언가 적을 것을 챙기고.
“오늘은 조금, 오래… 씻을 거, 같아요….”
장시우가 김춘용이 언제 화장실에서 나올지 상황을 살피고.
“아, 내가 지금 연락 미리 해 둘게. JDS 크루 일이나, 다른 안무 관련은 나한테 먼저 말씀해 달라고.”
방유찬이 유호빈에게 짧은 메시지를 남기고.
그렇게 엄숙하고도 은밀한 분위기가 조성된 거실 한가운데.
“…다들 봤을 거라고 생각해.”
제일 먼저 입을 연 건 역시나, 리더인 손재하였다.
“춘용이, 요즘 따라 많이 피곤해 보이는 거. 그리고, 그걸 우리한테 딱히 말하지 않는 거. JDS 크루 일도 우리한테 좀 통보식으로 알려줬고, 위즈 멤버들이랑 있던 일들도 우리한테 얘기할 생각이 없어 보였어.”
이전에 있었던 일들을 하나하나 헤아린 손재하는, 옅은 한숨과 함께 멤버들을 향해 미소지었다.
“…뭔가 대책이 필요해. 그렇지?”
그래.
왜 모두들 가위바위보도 하지 않고 화장실에 제일 먼저 입장하는 김춘용을 막지 않았는가.
그건 이런 까닭에 있었다.
“아니, 우리 예고편 떴네! 용용 형, 이거 본….”
“…춘용이 자는데?”
“엥? 저렇게 불편하게요? 아까 헤메 할 때도 잤잖아요! 아니, 어떻게 저렇게 틈만 나면 잘 수 있지?”
“다솔… 쌤이랑, 안무 영상 촬영하고부터… 유독 더 많이 자는 것 같, 은데요….”
“응. 그러게. …몰랐으면 기절이라도 한 줄 알았을 거 같아.”
눈이 있으면 보이고, 귀가 있으면 당연히 들린다.
하물며 따로 사는 것도 아니고, 여섯 명이서 한 집에서 살 부딪치며 살고 있는 지금.
김춘용이 아무리 ‘민폐를 끼칠 순 없다’는 마인드 아래에서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해도, 피로감 자체를 감출 수는 없었다고.
그렇게 한 번 포문이 열리고 나니, 다섯 명의 입에서 제각기 말이 와르르 쏟아지기 시작했다.
“아니, 그니까요. 요즘 용용 형, 어디 머리 갖다 대기만 하면 잔다니까요? 와, 나 대기실 테이블에 기대서 자는 거 보고 진짜 충격받았다고요! 엄청 시끄러웠을 텐데….”
“제가 물어, 보니까… 그때 자면서, 체력 보충… 하는 거라고, 그랬어요. 근데… 그러느라고, 다른 취미 활동 같은 걸… 전혀 못 하는 거, 같아서….”
“시우 말이 맞아. 그냥 짬이 생기면 자는 것 같더라고. 그게 아니면, 휴대폰을 한다든가? 그것 말고는 춤 연습하러 연습실 가고, 스케줄 하고.”
“Eww… I mean, 그러면 너무 재미가 없지 않나요? 일하고, 자고. 일하고, 자고. 제가 아는 workaholic 두 명이 있는데, 그 둘도 그 정도는 아니란 말이죠.”
“으음, 확실히. 나도 춘용이랑 같은 방을 쓰면서, 딱히 특별한 걸 하는 건 못 본 거 같아. 자는 게 쉬는 거라고 생각 중인 거 같달까….”
한 마디만 해도 다섯 마디가 쏟아지는 이 상황 속에서, 손재하의 마지막 말로 인해 다들 입이 꾹 다물렸다.
“…….”
서로에게 이야기할 수 있든, 없든. 티오제 멤버들은 모두 김춘용에게 빚이 있었다.
데뷔를 위해 부모님 설득에 도움을 받았다든가, 친한 형 동생 사이의 오해 풀기에 연결고리가 되어 줬다든가.
낯선 환경 속에서 이래저래 말동무가 되어 줬다든가, 자신의 발목을 잡고 있던 트라우마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게 도와줬다든가.
물론 그건 김춘용이 이전에 자기가 저지른 행동에 대한 속죄였지만, 그걸 모르는 멤버들은 알 바 아니었다.
아, 내 눈에 보이는 건 그냥 우리 팀 형 동생이 취미도 없이 잠만 자는 것뿐이라고.
그런고로.
“다들 생각하는 게 같아서 다행이야. 그럼….”
로건이 챙겨 온 종이를 팔랑, 하고 흔든 손재하가 다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여기 다들 어떻게 하고 싶은지 적어 줬으면 해. 호빈 형이 노력해서 우리 일정을 좀 빼 주셨으니까, 그 사이에 할 수 있는 걸로.”
“Oh, 거기 적은 걸 다 할 생각인가요?”
“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 체력을 쭉 빼놓고, 월요일에 정신도 못 차리게 잠들게 하자. 누워서 반만 뜬 눈으로 휴대폰 하는 것보다야, 차라리 그게 건강할 거 같거든.”
“…Right. 제가 먼저 적을래요.”
“아, 실행하는 건 나이순으로 하자. 장유유서 알지, 얘들아?”
“아, 이건 가위바위보로 해야죠, 진짜!”
그렇게, 서로 옥신각신하며 종이에 적어 낸 문장은 여섯 개.
기타 가르쳐 주기, 노래방 가기, 온라인 게임하기, 단 거 같이 먹기, 그리고 비밀.
“대체 비밀은 뭐야, 재하야?”
“으음… 형한테 제 첫 번째 순서를 양보할 테니까, 더 안 물어보는 건 어때요?”
“괜찮은데? 그럼 그렇게 하자. 내가 제일 처음으로 가는 거다, 얘들아.”
“이익… 2시간 이상 하면 안 돼요, 알겠죠?! 안 그럼 시간 부족하다고요!”
“그건 봐야 아는 거지. 춘용이도 재밌으면 더 하자고 할 거 아니야, 어?”
이 계획이 시작되는 건, 김춘용이 다 씻고 나와서 다시 침대로 가는 순간부터.
바야흐로….
“…잘 다녀올게.”
“형, 보컬로 정신을 쏙 빼놓고 오라고요. 알겠죠?!”
이전에 실패했던 보스 레이드가 6단계로 나뉘어 재도전되는, 역사적인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