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licious Member is Back! RAW novel - Chapter (37)
악성 멤버가 돌아왔다! 37화
* * *
류웨이는 제 앞에 서서 휴대폰 너머로 매섭게 말을 쏘아대는 중년의 남성을 바라봤다.
“내가 대단한 걸 바라진 않았잖아. 류웨이가 1화 마지막. 그거 하나 딱 말했을 텐데.”
– 신 이사님. 방송이라는 게 그렇게 녹록하지만은 않다는 것도 아시는 분이….
“주 피디. 왜 이렇게 혀가 길어? 뭐 쫄리는 거 있는 것처럼.”
남자는 그 말을 하면서 자기 주머니에 있는 라이터를 꺼내 들었다.
방아쇠 부분을 누르면 불이 켜지는 총 모양 라이터.
그건 ‘AG 신기호 이사가 총으로 사람을 협박한다더라’라는 소문에 힘을 실어주는 소품 중 하나였다.
“나도 알아. 내가 한국에 없으니까 이 정도는 해도 되겠다, 싶었겠지. 대충 예상이 가. 근데 주 피디.”
신 이사는 단어 한 마디, 한 마디를 뱉을 때마다 라이터를 철컥였다.
마치 상대가 자기 눈앞에 있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지금 주 피디는 그 프로그램 투자가 어디서 들어오는지 기억을 못 하는 거 같아. 내가 지금 한국이거든. 조만간 얼굴 한 번 보는 게 어때. 어?”
– 아니, 이사님.
“거절 말고 꼭 나와. 꼭. 아니면 내가 찾아갈 테니까.”
신 이사는 낮은 목소리로 씨근덕거리고는 류웨이가 앉아있는 소파 맞은편에 몸을 내던졌다.
휴대폰 너머에서 주 피디가 무어라 변명을 해댔지만, 그 통화를 터치 한 번으로 끊어 버린 신 이사는 류웨이를 향해 서류를 내밀며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영국 놈은 곧 정리될 거니까, 그렇게 알아 둬. 쓸데없는 짓하지 말고.”
“…그렇군.”
“어쨌든 너는 무대만 열심히 하면 돼. 알아들어? 네가 맡은 바에 최선을 다 하라고.”
신 이사의 중국어에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던 류웨이의 눈썹이 작게 꿈틀, 했다.
“…전부 다 이해했다. 그렇지만, 한 놈 더 있어.”
“뭐라고? 크게 말해. 안 들리니까.”
줄곧 조용히 있던 류웨이에게서 예상 외의 말이 튀어나오자, 신 이사는 눈살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정리할 놈이, 한 놈, 더 있다고 했어.”
그리고 류웨이 역시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말을 이었다.
“물론 나도 로건 리를 먼저 정리해야 한다는 건 알고 있다. 그렇지만….”
류웨이는 거기까지 말하고 잠시 생각에 빠졌다.
자신의 행보에 직접적으로 방해가 되는 로건을 제외하고도, 굳이 가오옌에게 언급한 녀석.
첫 등수 평가 촬영 날, 류웨이 자신의 것보다 더 깔끔한 춤을 선보인 녀석.
지금 신 이사의 사무실 TV 속에서도, 밝은 표정으로 인터뷰하고 있는 녀석.
“…저거.”
류웨이는 화면을 향해 손가락질하며 또박또박 말했다.
– “주안이가, 댄스 브레이크 안무 따는 걸 조금 어려워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좀 도와주면 더 빨리 진행이 될 것 같았어요.”
[날카로운 외모와는 달리 다정한 김춘용 연습생!>“저 녀석도 정리해야 한다.”
“…허.”
류웨이의 시선을 따라 화면을 확인한 신 이사는 쯧, 하고 혀를 찼다.
귀한 집 도련님이라 그런가, 사리분별을 잘 못 한다고 생각하며 말이다.
‘저 별 같지도 않은 걸 뭐하러 견제하고 있는 거야, 갑자기.’
신 이사도 김춘용의 존재 정도는 알고 있었다.
당연했다. 퀸스 데뷔조에서 떨어져서, 인원 채우기 용으로 자신이 직접 급하게 넣은 연습생이니까.
잘생기긴 했지만 너무 날카로워 호불호가 갈릴 외모, 딱히 뛰어나지 않은 보컬.
‘춤은 꽤 잘 추지만, 만약, 정말 만약에 데뷔하게 되더라도 어차피 류웨이가 메인 댄서 포지션이니 없는 애나 마찬가지인데.’
그러나 그런 김춘용을 바라보는 창백한 얼음 인형 같은 류웨이는 드물게 어떤 감정으로 드글드글 끓는 눈동자를 하고 있었다.
‘쯧, 귀찮게시리….’
어쨌든 현재 중국 투자자들이 가장 기대하고 있고, 잘 되길 바라는 연습생은 류웨이였다.
투자자들의 비호를 받는 대상과 굳이 안 좋은 관계를 가질 필요는 없다.
돈의 흐름에 따라 움직이기 익숙한 신 이사는 적당히 어르는 말투로 류웨이를 향해 입을 열었다.
“저 녀석이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방해가 되면, 그때는 진짜 정리해 주지.”
“직접적으로?”
“아직은 명분이 없다, 이 말이야.”
“…….”
신 이사는 그들 앞에 있는 서류를 손가락으로 꾹 누르며 단어를 씹어 말했다.
“이 녀석, 로건은 명백하잖아. 우리 비전에 방해가 된다, 이거. 근데 쟤는? 빽도 없고 뭣도 없는 녀석이 그냥 노래하고 춤만 추고 있는데? 그게 이유가 되나?”
“…….”
“그냥 네 신경에 거슬리는 걸로는 안 돼. 이 정도면 너도 알아들었을 거라 생각한다.”
신 이사는 라이터를 한 번 더 철컥이고는 류웨이를 향해 지시했다.
“일단 쉬고, 호텔로 다음에 촬영할 미션 내용 보내 놨으니 확인해. 미션 점수야 그냥 보여 주기식이지만, 그걸로 방송에 타는 건 또 다른 말이니까.”
탁―
말을 마친 신 이사가 먼저 자리를 뜨고, 류웨이가 홀로 사무실에 남았다.
TV 속에서는 여전히 [타겟팅 스타>의 2화가 방영되고 있는 중이었다.
– “용용 형, 아. 죄송해요. 제가 춘용 형이랑 많이 친해져서 실수로! 하하, 하여튼… 제가 좀 부족한 리더였는데, 춘용 형이 정말 많이 도와줬어요.”
[고마움을 전하는 지화성 연습생, 그리고 싹트는 우정!> [다가올 오리지널송 ‘Aiming’의 무대는 어떨지!?>퍽!
TV를 향해 리모컨을 집어 던진 류웨이는, 이내 비틀린 웃음을 지으며 사무실 바깥으로 걸어나갔다.
“그 명분….”
곧, 생길 거 같은데.
지나가는 사람은 알아들을 수 없도록 중국어로 의미심장한 말을 하며 말이다.
* * *
[타겟팅 스타>의 첫방, 그리고 이틀간 휴식이 끝나고, 연습생 통조림 공장으로의 복귀 날.“아빠. 아침에 바쁘면서 뭐하러 얘를 바래다 줘. 지하철 타고 발로 걸어가라고 그러지.”
“어우, 보미야. 이제 춘용이도 준연예인인데, 이 정도는 아빠가 해 줘야지.”
“저게 연예인은 뭔 놈의 연예인이야? 내가 아침에 투표 순위 봤는데, 쟤 인기 없어. 알아볼 사람도 없고.”
“딸! 아빠가 동생한테 그렇게 진실만 말하는 거 아니랬지!”
“하하….”
아침 일찍 숙소 앞까지 배웅을 와 준 아빠와 누나가 나누는 만담을 보며 나는 피로 섞인 미소를 지었다.
“아니, 진짜라니까. 8위였나, 9위였나 그랬어. 쟤 이번 서바이벌도 떨어지면 진짜 아빠 가게에서 일시켜야 해.”
누나가 하는 말 하나하나가 뼈를 때려 왔지만, 그게 나름 ‘꼭두새벽부터 김춘용을 투표하러 투표 페이지에 들어갔다’라는 뜻으로 읽혀서 마음이 좋았다.
“아오, 우리 재하 투표하러 들어갔는데. 김춘용 얼굴이 자꾸 보이잖아, 쯧. 못생긴 게.”
…아닌가?
“나 이제 갈게. 누나랑 아빠도 이제 가. 둘 다 출근해야지.”
살짝 서운해진 내가 입술을 댓발 내밀며 두 사람의 등을 떠밀자, 별안간 누나가 내 어깨를 턱 잡았다.
“야, 야. 김춘용. 잠깐만.”
“또 왜, 마지막이니까 나 한 대 맞고 가라고? 그러면 머리 말고 등짝으로 해. 누나한테 계속 맞으니까 머리 나빠지는 것 같….”
“아니, 야. 저쪽에 누구 있는데? 일반인이 저런 곳 막 들어가도 돼?”
나는 퍼뜩 고개를 들어 누나가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는 방향을 바라봤다.
그리고 거기에는.
“…….”
어딘가 생각이 많아 보이는 얼굴로 주차장을 서성이고 있는 로건이 서있었다.
아니, 이 새벽에 쟤가 뭘 하는 거지?
안 그래도 곧 다가올 로건의 하차 관련으로 이런저런 고민을 꽤나 많이 한 상태라, 저 얼굴을 지금 3D 서라운드로 보니 당혹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일반인은 아니야.”
“그럼 누구야? 스탭? 아니면 그냥 연습생?”
“어, 나랑 같은 방 쓰는 연습생 룸메이트인데….”
“뭐야. 그럼 인사시켜 줘. 여기까지 왔는데, 이 누나를 그냥 보낼 거냐?”
유교 코리아 고등학교 교사인 누나가 이럴 걸 알아서.
평소 같으면 그냥 그러려니 하고 지나갈 누나였지만, 지금 [타겟팅 스타>에 관한 관심도가 최고조로 높아진 상황에서는 나와 같이 방을 쓴다는 연습생이 궁금할 게 당연했다.
나도 평소 같으면 그냥 아무렇지 않게 소개시켜 주겠다만….
돌아오기 전, 골칫덩이 시절 나와 항상 함께 술을 마시던, 고민 많은 녀석들의 얼굴이 저랬단 말이지.
그러나 나는 나를 향한 누나와 아빠의 기대 어린 눈빛을 차마 외면할 수가 없었다.
“…저, 로건?”
“―어? 춘용 형?”
내 목소리를 들은 로건은 천천히 우리 쪽으로 다가왔고, 나와 우리 가족을 번갈아 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Oh, 뒤에 계신 분들은…?”
“아, 응. 누나랑, 우리 아버지이셔. 그냥, 지나가다가 인사나 한 번 할까 싶어서 부른 건데….”
“Huh.”
내 말에 로건은 잠깐 멈칫하더니, 이내 바지에 제 손을 싹싹 문지르고는 누나와 아빠를 향해 오른손을 내밀었다.
“Hello, 저는 로건 리입니다! 춘용 형의 가족분들이라니, 오늘 조깅을 하고 싶었던 건 이 Moment를 위해서였나 봐요!”
‘…어.’
나는 환하게 웃고 있는 로건의 옆모습을 보며 작게 탄식했다.
우리 가족들을 대하는 로건의 태도는 정말, 더할 나위 없이 완벽했다.
“Wow, 춘용 형이 아버지를 닮았나 봐요. 그냥 딱 보면 아버지가 아니라 Brother인 줄 알겠는데요?”
“그, 그런가? 하하. 동안이라니까 기분은 좋은데….”
대화하는 내내 유지하는 미소, 상대방을 기분 좋게 만들어 주는 단어들, 듣기 편안한 목소리까지.
그렇지만, 나는 로건을 벌써 2개월 가까이 봐 왔단 말이지.
“우와, 춘용 형의 Sister분은 교사셨군요. 대단해요. 저는 공부를 그렇게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서, 뭔가 가르쳐 주시는 분을 보면 Wow. 감탄만 나와요.”
“어머, 잘생긴 애가 말도 이쁘게 해….”
지금 로건의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야, 사람 좋아 강아지, 행복한 리트리버 같지만….
“춘용 형이 저를 많이 신경써 줘서, 정말 happy하게 지내고 있어요. 이렇게 감사를 전할 수 있어서 기뻐요.”
…진심으로 기쁘고 행복해서가 아니란 것쯤은 알 수 있다고.
내 생각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로건의 입과 눈꼬리는 해사하게 웃고 있었지만 눈빛은 차게 식어있었다.
평소와 달리, 마치 가면이라도 쓴 것처럼.
“다음에 또 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조심해서 가세요, See ya!”
“그래요, 학생. 언제 한 번 우리 집 놀러와요!”
“김춘용 말고 잘생긴 연습생은 언제나 환영이지….”
로건과 우리 가족 간의 짧은 대화와 배웅이 끝나고, 숙소로 발걸음을 옮기는 길.
평소 같으면 이래저래 말을 붙여 왔을 로건의 입이 꾹 다물려 있었다.
“저기, 로건.”
“…Huh? 왜요, 춘용 형?”
“너 무슨 일 있어? 아까부터 계속 표정이 안 좋은데.”
지금 상황에서 짚히는 게 아주 없는 건 아니었다.
이틀간의 휴가, 그리고 갑작스럽게 어두워진 얼굴. 게다가, 류웨이와 가오옌의 대화에서 훔쳐 들은 말과 이전의 기억까지.
그렇지만, 로건의 입으로 직접 듣기 전까지는 내가 섣부르게 꺼낼 수 없는 말.
“Um….”
내 질문에 로건은 잠깐 말을 고르는 듯싶더니, 약간은 허탈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춘용 형은, 가족들과 사이가 좋은 거 같아요.”
“로건, 뭐라고?”
“No, no. 그냥요. 뭔가, 좀….”
잘못 들은 건가?
…로건이 끝에 부럽다는 말을 한 것 같기도 한데.
게다가, 갑자기 우리 가족 얘기를 한다고? 대체 왜?
그러나 그렇게 내가 나의 귀를 의심하기도 전에, 로건은 어딘가 많이 혼란스러워 보이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Right, 춘용 형에게만 말하는 거예요. 다른 flatmate들과 연습생들한테는, Secret.”
저, 곧 영국으로 돌아가야 할 거 같아요.
“아마 다음 촬영이 마지막일 거고. 남은 촬영에 최선을 다 하겠지만….”
“…….”
“그렇게 됐어요. Jesus. 기분 진짜 이상하네요, 이거! 고작 Holiday 동안 결정된 거라….”
돌아가야 할 거 같다고 돌려서 말했지만, 결국 그건 하차를 한다는 것과 같은 말이었다.
다음 경연 직전이 아니라, 이미 두 번째 경연 휴가 때부터 로건의 하차는 말이 나왔던 것이다.
“…갑자기? 왜 돌아가야 하는데?”
이미 그 사실을 염두에 두고 있던 나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놀란 척을 하며 그 이유에 대해 돌려 물어 물었다.
앞서 나온 가족들에 관한 얘기는 좀 의외였지만, 이건 대화의 여지를 찾아볼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당연하다면 당연한 말일까.
“God, 글쎄요. 그것까지 말하기는, 좀.”
로건에게서는 곧이 곧대로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네가 가고 싶어서 가는 거야? 그건 아닌 거 같은데. 그런 거면 내가 도와줄 수도 있잖아.”
“그것도 그렇지만, bloody… 도와줄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에요.”
지금껏 내가 보아 온 로건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좀 더 차갑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거리를 둔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원래 이런 성격이었는데, 서바이벌 환경에 의해서 좀 더 활기차 보였던 걸까?
나의 표정이 워낙 의아했던 건지, 발로 땅을 툭툭 차며 이마를 짚던 로건은 아뿔싸, 하는 얼굴로 황급히 덧붙였다.
“Holy! 춘용 형, 형만. 형만 알고 있어야 해요. God, 원래는 얘기할 생각이 없었는데요.”
“…그, 알겠는데. 일단―”
“Whatever, 하여튼! 저 먼저 가 볼게요. 가오옌이 모닝콜을 해 달라고 했는데, 깜빡했어요! 천천히 와요, Bro.”
나는 자기 할 말만 마치고 빠르게 멀어지는 로건의 뒷모습을 보며 혀로 입을 축였다.
그래. 이건 좀 접근 방식이 잘못된 걸 수도 있지.
“…그래도 어쩔 수 없어.”
굳이 들쑤시는 방식으로 가고 싶지는 않았는데. 상황이 상황인지라.
나는 뛰어가는 로건에게 남몰래 사과를 전했다.
황급히 나를 피하는 로건이 모르고 있는 게 있다면, 내가 이제부터 촬영할 게 뭔지 알고 있다는 점과.
“내가 악성 멤버 시절에, 고민을 들었던 녀석들이 못 해도 100명은 넘어간다고….”
그래도 걱정 마, 로건.
그때랑은 다르게, 이번에는 확실히 다 너 도와주려는 거야, 인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