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licious Member is Back! RAW novel - Chapter (70)
악성 멤버가 돌아왔다! 70화
나와 연우 형과의 친분이, 그러니까 연우 형의 음주 이력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것에는 많은 이유가 있었다.
기자들과의 친분, 본인 통제벽에서 나온 칼 같은 시간 관리, 기획사의 힘 등등.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특별한 걸 뽑으라고 한다면….
“아, 그러고 보니까… 제가 차에서 연습생 여러분 줄 선물을 두고 왔네요. 혹시, 한 분만 저를 도와주시겠어요? 손이 좀 모자랄 거 같아서요.”
“아, 그런 거라면 조연출 한 명을….”
“아뇨. 연습생이 좋을 거 같아요. 아시잖아요.”
처세술.
‘너무 똑똑하면 연예계에서 활동하기 피곤하다’는 자신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형의 머리에서 나온 처세술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저랑 같이 선물을 들고 오는 걸로 컷을 뽑죠. 그리고 그 연습생분이 제가 가면서 한 말이나, 기분 같은 걸 개인 인터뷰로 말하고요.”
“으, 음. 그거 꽤….”
당연히, 저렇게 얘기했을 때 수긍을 안 할 스탭들은 없을 테고.
“어, 그런 거면 누가 가는 거야?”
“가면 분량은 확실할 거 같은데….”
“저, 저는 화… 장실을 좀.”
아직 연습생들이 대선배인 연우 형을 어려워하고 있는 데다가, 서로 눈치만 보는 와중에….
“다들 망설이시는데. 그럼 제가 다녀올까요?”
“어? 춘용이가? 으, 음. 내가 가도 괜찮은데.”
“하하, 이런 건 선착순이죠, 원협 형. 제가 가서 예쁨 좀 받고 올게요.”
내가 먼저 그 자리를 차지하면, 저 형의 계획이 완벽하게 이루어진다.
…이렇게 생각했던 거 맞죠, 형?
내가 잠깐 숨을 돌리며 그를 바라보자, 연우 형은 오른손으로 입을 살짝 가리고는 어렴풋이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요, 김춘용 연습생. 그럼 같이 주차장까지 잠깐 다녀오죠.”
저렇게 웃는 건 또 지금 상황이 제법 마음에 들었다는 뜻이고.
같이 술 말던 기억이 생생하다, 생생해.
나는 가벼운 두통에 이마를 짚으며 형의 뒤를 쫓아 복도를 거닐었다.
도처에 깔린 카메라 탓인지, 아직까지 형이 내게 꺼내는 말들은 일상적인 수준이었다.
“연습은 좀 어때요? 아까 보니까 다솔 씨가 엄청 굴리는 거 같던데.”
“굴리는, 하하… 아뇨. 다 저희 데뷔하라고 그러시는 거니까. 잘해 주시는 거죠.”
“그래요? 흠. 본인이 그렇게 생각한다면야. 다솔 씨는 김춘용 연습생이 후에 자기 크루로 들어올 거라고 굳게 믿는 눈치지만요. 아까 봤죠? 잘하는 연습생 얘기를 하는데, 김춘용 연습생을….”
“하, 하하! 주차장이 좀 머네요, 그렇죠?”
…아니, 아닌 거 같다.
이런 건 일상적인 대화가 아니야.
그렇게 내가 당혹감으로 혀를 내두르던 그때.
도움인지, 어느 쪽인지 정확히 모를 목소리가 들려왔다.
“…김춘용 연습생? 어디 가나요?”
이걸 살았다고 해야 하나?
복도 끝에서 의아하다는 얼굴로 나와 연우 형을 번갈아 보는 건, 다름 아닌 민시영 선배님이었다.
이제 막 다른 팀의 보컬 멘토링이 끝난 건지, 뒤에서는 연습생들이 우수수 쏟아져 나오고 있었고.
“이야, 민시영 선배님. 오랜만에 뵙네요.”
“…연우 씨. 네, 저도 반가워요. 여기서 볼 줄은 몰랐는데 말이죠.”
“뭐, 선배님께서 제가 어딜 가는지 다 아시는 것도 어려운 일이긴 합니다. 저는 AG가 아니니까.”
“…….”
특유 프로페셔널함으로 꿈틀거리는 입술을 잠재운 민시영 선배님은, 자기 긴 머리칼을 귀 뒤에 꽂으며 말을 이었다.
“네, 그건 그렇고. 아직 댄스 멘토링이 끝나지 않았을 텐데요. 김춘용 연습생이 왜 연우 씨를 따라가고 있을까요?”
“아, 제가 도움을 조금 요청했습니다. 김춘용 연습생이 자원해 줬죠. 차에 뭘 좀 두고 와서.”
“굳이 연습생을 데리고 가시다뇨. 조연출 스탭 분을 데려가지 않으시고요.”
“민시영 선배님께서도 일찍이 다른 연습생을 보기 위해서 연습실을 찾아가시는 걸 봤는데요. 아, 제가 나름 [타겟팅 스타>의 애청자라서.”
“…그건 방송적으로, 멘토로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었어요.”
“네, 그럼요. 지금 제가 김춘용 연습생을 데리고 가는 것도 곡을 제공한 작곡가로서, 방송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고요.”
실제로 칼만 안 물었다뿐이지, 혀로 아주 죽어라 서로를 찌르시는구만.
복도 카메라가 없었다면 벌써 언성이 높아지고도 남을 꼴이었다.
“하하, 제가 또 언제 대선배님 차를 구경해 보겠어요. 제가 자원했어요.”
고래 사이의 새우, 베테랑 사이의 연습생 꼴이 되기 전에 나는 얼른 두 사람 가운데로 갈라 들어가며 뻔뻔한 얼굴을 했다.
“…연습생의 본분은 연습을 열심히 해서, 좋은 무대를 올리는 거예요. 김춘용 연습생.”
“어우, 그럼요. 멘토님 덕분에 제가 얼마나 열심히 하고 있는데요.”
이건 빈말이 아니었다.
지난 휴가 때, 재하 형의 말을 듣고 우리 방송분을 다시 확인해 봤었다.
‘저 파도 너머의 우리’ 무대 당시, 시끄러운 스튜디오 현장으로 인해서 제대로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민시영 선배님의 벙긋거림.
그걸 방송으로 다시 봤거든.
‘…수고했어요.’
지난 서바이벌에서는, 아니. 같은 소속사 선후배로서도 한 번도 듣지 못했던 말.
민시영 선배님이 좋아하는 인물은 잘하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예를 들어 노래로는 지금 [타겟팅 스타>에서 따라올 사람이 없는 유찬 형, 혹은 잠재력을 가늠할 수 없는 로건.
AG 순혈을 좋아하는 거야, 뭐. 걔네가 노력하는 걸 바로 곁에서 봤기 때문이고.
근데 처음에 안 좋게 봤던 나한테 그런 말을 했다는 건 자기 생각을 바꿨다는 뜻이고, 그건 나를 노력하는 사람으로 인정했다는 의미였다.
“…김춘용 연습생. 지금까지 자기 톤에 잘 맞는 곡으로 잘 찾아서 불러 왔지만, 언제나 원하는 부분만 부를 수 없어요. 고음 올리는 것도 연습해요.”
“아아, 넵.”
“…데뷔할 거잖아요? 다 부를 수 있어야지, 참.”
“…넵! 알겠습니다!”
그 이후의 멘토링도 매우 매끄러웠으니까.
그렇게 이제 꽤 괜찮은 우리 사이에, 민시영 선배님이 굳이 연우 형한테 굳이 날을 세우는 이유는 아마….
연우 형이 이미 어떤 사람인지 들은 바가 있어서.
“차라리 제가 가도록 하죠. 김춘용 연습생은 다시 연습하러 가고―.”
“어후, 들어 보니까 짐이 좀 무겁던데요! 남자 둘이 가는 게 낫겠어요, 멘토님.”
마음은 고맙지만, 지금은 나도 연우 형과의 대화가 좀 필요한지라.
내 너스레가 약간 과장되어 보인 건지, 들리지 않게끔 한숨을 푹 내쉰 민시영 선배님은 잠시 망설이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제 멘토링 시간에는 이런 일 없을 거예요. 알아 두세요.”
“네, 물론이죠. 그럼 저희는 이만―.”
나는 혹시나 민시영 선배님이 마음을 바꿀까 싶어 황급히 연우 형을 이끌고 건물 밖으로 향했다.
얼마나 빠르게 걸은 걸까?
서늘하게 가라앉은 밤공기만이 기다리고 있는 주차장에 도달하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잠깐. 그러고 보니까.
차 주인보다도 내가 앞서는 그림은 좀 그런 거 같은데.
“좀 급했나 봐요. 그렇죠?”
그런 내 낌새를 눈치챈 건지, 연우 형이 슬며시 내게 말을 걸어왔다.
“…민시영 멘토님 말씀을 들으니까, 빨리 연습실로 복귀해야 할 거 같더라고요! 하하. 네. 그래서죠.”
“아아, 그렇구나.”
나름 당황한 티를 내지 않고 빠르게 대처했는데, 연우 형의 얼굴에는 예의 묘한 미소가 가득했다.
“김춘용 연습생.”
“네, 네?”
“표정 관리, 나쁘지 않아요. 그렇지만… 눈동자 굴러 가는 소리가 너무 들려.”
“…….”
“모니터링 하면서 한 번씩 체크해요. 그 정도 센스면 금방 고칠 수 있을 테니까.”
내 대답 여하와는 상관없이, 한 번 열린 연우 형의 입이 느긋하게. 그러나 쉬지 않고 움직였다.
“오… ‘여기서 얘기를 한다고?’ 같은 생각하는 얼굴이네요.”
“아, 아니. 그런 생각은 안 했는데요.”
“안 하기는 뭘. 눈동자 굴러 가는 소리 들린다고 했잖아요.”
연우 형은 곧 자기 주머니에서 차키를 꺼내 버튼을 눌렀다.
“뭐… 굳이 그게 신경 쓰이면 제 차로 가고요. 선물 가져왔다는 거, 거짓말은 아니라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서 삐빅, 소리를 내며 문이 열린 SUV 차량은 나도 익히 본 적이 있는 차였다.
“우와, 쩐다 이거… 어쩐지 형이 오늘 안 마시더라.”
“작업실이랑 여기 오가는 거 때문에 하나 했어. 너무 요란한 건 또 별로라.”
“네. 차가 좀… 형 같네요? 비싼데 조용하고. 묵직하고. 잘 어울려요.”
“아는 묘사 모르는 묘사 다 긁어모으느라 고생하네, 렉스.”
“그러니까 저 좀 태워 주시면 안 돼요? 저 내일 그 뭐야, 스케줄 있어서. 이제 들어가야 하거든요.”
“너 매니저는 어쩌고.”
“오늘은 데리러 안 와요. 매니저 형은 여기 가끔 오는 DJ 누나한테만 관심있는지라. 제가 또 내놓은 아이돌, 악성 멤버 렉쓰레기 아니겠어요.”
“…그래도 안 돼. 주정뱅이는 안 태우거든.”
술친구로 친할 때는 한 번도 못 타봤는데, 이렇게 타게 되네.
“편하게 앉아요. 아, 에어컨은 안 켤게요. 오래 걸릴 일은 아니니까.”
차 문을 닫고, 관리 잘 된 카시트에 몸을 맡길 때까지도 나는 당시 기억에서 쉽사리 헤어나올 수가 없었다.
내가 저지른 과오를 되돌리기 위해 쉴 새 없이 달린 요 몇 달. 나는 부러 예전 기억을 떠올리지 않기 위해서 노력했다.
그때를 떠올리면 힘드니까. 지금 당장에 집중하기 어려우니까.
그러나 바로 옆에 당시를 함께 보낸 이가 있으니, 약간은 경계가 무뎌진 감이 있었다.
그 덕에, 먼저 입을 연 건 연우 형이었다.
“혹시 술 좋아해요?”
“커헉, 아니, 큽, 쿨럭….”
잠시도 방심을 못하게 하네, 진짜!
“아하하, 그냥 물어본 건데. 놀라도 너무 놀라네.”
내가 당황으로 몸을 들썩이는 게 퍽 재미있었는지, 웃음을 터뜨린 연우 형은 글로브 박스에서 생수 한 병을 꺼내 내게 건넸다.
“진정 좀 해요. 장난이에요.”
“큽, 장난… 이, 지나치시네요!”
“뭘요. 저랑 김춘용 연습생 정도 짬 차이면 이건 귀여워하는 거지.”
내가 500ml짜리 생수를 모두 들이켤 때까지 나를 바라본 연우 형은, 곧 아까보다는 진지한 목소리를 냈다.
“신기하네, 정말….”
“…무슨 말씀이신지.”
“김춘용 연습생 말이에요.”
연우 형은 핸들에 박힌 자동차 로고를 손가락으로 톡톡, 건드리며 백미러를 바라봤다.
직접적으로 형을 보지는 못하고, 거기로 바라보던 내 시선과 딱 마주친 두 눈동자는 묘한 빛을 하고 있었다.
“[타겟팅 스타> 애청자라고 한 거, 거짓말 아니에요. 어떤 곡이 차트를 뚫나, 어떤 안무가가 요즘 핫한가. 이런 모니터링은 필수거든요.”
“아, 네. 그렇… 죠. 모니터링은 중요하죠.”
“그러면서 연습생들도 주의 깊게 봤어요. 손재하 연습생이라든가. 지화성 연습생이라든가.”
연우 형은 몇 명의 이름을 더 꺼냈다.
유찬 형, 로건. 이번에 자기가 손수 팀으로 뽑은 시우, 그리고 류웨이까지.
데뷔가 유력한 연습생의 이름이 거의 다 흘러나왔을 때쯤.
“음, 그리고 김춘용 연습생도.”
내 이름도 튀어나왔다.
“제가 그쪽을 왜 주의 깊게 봤을 거 같아요?”
왜일 거 같냐니.
굳이 이유를 찾자면, 전에 연우 형이 팀 선택에서 나를 택하며 한 말을 꼽아 볼 수 있었다.
술을 잘 마실 거 같다고 그랬으니까.
그리고 그 지점이, ‘정연우 형이 내가 돌아왔다는 걸 아는 건 아닌가’라고 내가 의심하게 된 부분이고.
솔직히, 사람 얼굴로 술을 잘 마시는지 못 마시는지 구분하는 건 거짓말이잖아.
어떻게 돌아온 건에 대해서, 엑스에 대해서 언급을 해야 미친놈처럼 보이지 않을지 내가 고민하는 가운데.
백미러 너머 연우 형의 두 눈이, 반달처럼 휘어졌다.
“김춘용 연습생. 혹시 알코올 중독인 사람 본 적 있어요?”
형의 뜬금없는 화두에 내가 잠시 뻘한 얼굴을 하고, 그걸 아랑곳 않는 연우 형은 자기 할 말을 계속해서 꺼냈다.
“난 많이 봤어요. 사람들 얼굴이 술 때문에 무너지는 건 각양각색이에요. 뭐, 볼살이 늘어질 수도 있고. 발갛게 된 귀가 영영 안 돌아올 수도 있고.”
“아, 네.”
“근데, 똑같은 부분이 있어요. 김춘용 연습생, 지금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헷갈릴 테니까. 제가 그냥 정해 줄게요. ‘그게 뭔데요?’라고 하면 돼요.”
“…그게 뭔데요?”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입을 열자, 연우 형이 활짝 웃으며 화답했다.
“다들 절망적일 만큼 초조해한다는 거요.”
“…….”
순간, 심장이 바닥까지 떨어지는 것만 같았다.
“아, 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 빨리 술 마셔야 하는데. 혹은, 술을 끊지 않으면 이 상황은 계속될 텐데. 이런 생각이 그 사람들을 초조하게 만들더라고요.”
“그렇… 군요.”
“근데 어라, 저 연습생은 왜 알코올 중독인 것처럼 초조해하는 거지. 이게 김춘용 연습생을 본 제 감상이에요.”
“…….”
“아무리 서바이벌 상황이 열악하다고는 해도, 저렇게까지? 무슨 트라우마라도 있는 줄 알았다니까.”
실제로, 돌아온 이후로 내가 압박감에 시달린 건 사실이었다.
엑스와의 계약 조건을 성공시키지 못하면 긴급 체포 당시로 돌아가니까.
그리고 또 한 가지, 나를 불안하게 만든 게 있다면….
…또 내가 술에 의존하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공포.
연우 형은 고작 화면 너머로 나의 그런 감정을 정확히 읽은 거였다.
나는 으득, 하고 갈리려는 이를 간신히 가만히 두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하하, 글쎄요. 데뷔하고 싶어서 안달난 모습을 그렇게 보신 게 아닌가 싶은데요.”
“글쎄. 아까도 말했지만, 그런 게 아닌….”
“근데 좀 이상하네요. 선배님께서 알코올 중독자들을 자주 보셨다니. 바른 생활로 유명하신 분이잖아요?”
“…….”
그런 부분을 간파당했다고 해서, 형한테 있는 그대로 들어 낼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지금 내가 껍데기는 20살이라고 해도, 속에 든 건 연예계에서 7년을 굴러다닌 악성 멤버라고.
지금의 연우 형은 당시 내 나이와 비슷하거나 더 어린 상태인데….
그때보다야 상대하기 쉽지.
“…….”
내 말에 연우 형은 뭔가 가늠하는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그러나 나는 표정을 굳힌 채 그 두 눈동자를 피하지 않았다.
피한다고 될 것도 아니고, 지금은 피할 이유도 없었다.
“…흠.”
연우 형은 곧 알만 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헤드레스트에 머리를 기댔다.
“뭐, 그럴 수도 있죠. 어쨌든 김춘용 연습생한테서 금단 증세는 안 보였으니까. 그래. 좀 억지긴 했네요.”
“…네. 그렇다니까요.”
“뭐, 김춘용 연습생도 저한테 하고 싶은 말 있을 거 같은데. 들어 보죠. 제가 좀 몰아세운 거 같아서, 도와줄 수 있는 거면 도와도 줄게요.”
무료하지만 예민하게 빛나던 두 눈은 어느새 다시 반달처럼 휘어져 있었다.
그 웃음에, 나는 이전에 떠올렸던 모든 문장을 머리에서 지워 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는….”
지금 꺼낼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말을 하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