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licious Member is Back! RAW novel - Chapter (85)
악성 멤버가 돌아왔다! 85화
그 수면 아래서 수많은 갈등이 있었다고는 해도, 마무리 자체는 훈훈하게 끝내야 ‘그나마’ 잡음이 적어지는 게 아이돌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니까.
“민호 형, 보세요. 입을 더 크게 벌리면 발음이 잘 된다니까요? 거짓말 아니고. 아, 저 못 믿어요? 우리 우정을 믿고, 한 번만!”
“어, 얼마나 크게? 이렇게…?”
찰칵!
“아싸, 한 컷 건졌다.”
“뭐야, 지화성. 나 녹음하는 거 도와준다며!”
“당연히 도와주죠. 이건 답례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영원히 제 갤러리 안에서 저를 웃게 해 주는 답례인 거죠.”
“야이, 인마, 지워! 지워!”
화기애애한 얼굴로 레코딩을 진행하거나 연습실에서 춤을 추는 모습.
“로건이 알려 준 손 기술로 드디어 옆방의 츠바사를 이겼어요. 제가 손목에 에이스 카드를 숨겨 놓고 셔플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더군요!?”
“Brilliant! 처음에 료타가 저한테 풀하우스로 초코바를 다 빼앗겼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어느새 이렇게 훌륭하게 자랐네요!”
“흐흥, 그때부터 로건이 사기 치고 있었다는 걸 알았으면 좀 더 빨리 배울 수 있었을 거예요.”
“료타, 계속 말했잖아요! 저는 scam을 한 게 아니라 bluffing을….”
“로건, 동아시아 국가에서는 그런 걸 사기라고 불러요! 변명은 듣지 않아요!”
같은 방 룸메이트들끼리 시시덕거리면서 그동안의 추억을 회상하는 모습.
그리고 그 훈훈함에 정점을 찍을, 가족 친지와의 영상 통화.
– “아들, 엄마는 성원협이라는 사람이 그동안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 그러니까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고, 후회 없을 무대를 하고 왔으면 좋겠어.”
“엄마아….”
– “울지 말고! 울긴 왜 울어? 여기서는 엄마가 등 두드려 줄 수도 없잖아. 이거 통화 끝나고, 홍삼 보낸 거 챙겨 먹고. 알지? 언제나 건강이 최고야.”
“…응. 나 진짜 열심히 하고 올게. 고마워, 엄마.”
그동안 [타겟팅 스타>가 종종 공중 전화 부스를 공수해 가족들과의 대화를 방송으로 내보낸 적은 꽤 있었지만, 그건 연습생 개개인의 서사를 위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렇지만 이렇게 미니 게임인 척 시작해서 가족들과 직접 얼굴을 보고 대화할 수 있게 하는 건 시청자들의 눈시울을 자극하겠다는 명백한 의도였어야….
– “엄마랑 아빠, 그리고 언니는 확실히 오빠 투표했거든? 나도 원래는 오빠를 투표하려고 그랬어. 우리 오빠잖아. 근데… 내 안의 작은 아이가 시켰어. 장시우라는 고양이를 데뷔시켜야만 한다고.”
…했는데.
나는 내 뒷목을 타고 흐르는 식은땀을 가볍게 훔치며, 말끔하게 교복을 입고 무심한 투로 말하는 내 여동생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너 이거 방송 나가는 거 알지, 김나리?”
– “당연하지.”
그러나 내 말에도 나리는 끄떡없었다.
아니, 끄떡없는 정도가 아니지.
– “언니가 나 방송 나간다고 교복도 제대로 입으라고 그랬다고. 입어야 하는 거 다 입은 거야, 이거! 평소에 절대 이렇게 안 입는데, 어후. 벌써 불편하네.”
오히려 자기 생활복 포켓 주머니에 달린 깜찍한 고양이 뱃지가 잘 보이도록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며 단호하게 얘기할 뿐.
그 뱃지가 시우를 응원하는 팬들이 자체 제작한 비공식 굿즈라는 걸 알고 있는 나는, 가볍게 이마를 짚을 수밖에 없었다.
나리의 심지가 굳은 건 알고 있었는데, 이건 진짜… 장난 아니네.
원래라면 부모님 중 한 분이 등장했어야 했지만, ‘엄마랑 아빠 둘 다 오늘 회식 있어서 내가 나오게 됐다’고 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나?
“…크흡.”
이 상황을 모두 지켜보고 있던 조연출은 나 몰래 웃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급하게 정색을 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구시지만, 제가 이미 다 봤다고요.
“하, 하하.”
– “뭐야? 왜 웃어? 나 카메라에 이상하게 나와? 화장을 좀 더 했어야 했나? 이것도 친구들이 해 준 건데, 안 어울려?”
나도 모르게 나온 허탈한 웃음에, 김나리가 속사포처럼 질문을 던져댔다.
보통 이런 대화에서는 영상 통화를 하는 연습생에게 격려와 응원을 전하는 게 보통인데.
평범함을 넘어선 내 동생은, 그런 통념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처럼 행동했다.
뭐….
이래저래, 방송에 나가게 된다면 감동보다는 웃음 포인트가 될 대화겠지만.
“…아니야. 잘 나오고 있어. 그건 그렇고. 너 밥은? 이따가 학원 가야 하는 거 아니야?”
– “아까 마라탕 이만 원어치 먹었어. 근데 좀 부족할 거 같아서, 학원 가기 전에 라면 하나 더 먹고 가려고. 오늘 시험이 있거든.”
“라면 먹으면 부대낄걸? 그냥 초코바나 하나 챙겨 먹고 가. 시험 치다가 배 아프다고 하지 말고.”
– “야, 오빠 너는 무슨 방송 타는 거에다가 동생 식생활 지적하고 있냐?”
“하하. 네가 그만큼 먹고 또 먹겠다는데, 그럼 무슨 말을 해….”
나에게는 큰 힘이 되는 영상 통화가 맞았다.
경연 준비에, 로건 하차 막기에, 류웨이와의 신경전, 더 나아가서는 담력 체험 메모리를 피디에게 넘기는 결정을 하기까지.
돌아오고 나서는 정말, 단 제대로 하루도 쉬지 않고 미친 듯이 달려만 왔다.
이렇게 하면 정말 괜찮을까? 류웨이 말고 로건이라는 내 선택이 정말 맞는 걸까?
케이팝 역사상 최고의 아이돌이라는 조건을 떠나…
이래서야 내가 다시 애로우즈로 데뷔할 수는 있을까?
머릿속에 떠오르는 수많은 질문들을 죄다 모른 척하면서, 그렇게 말이다.
그런 와중에….
– “뭐, 오빠 너는 밥 잘 먹고 있냐? 살 좀 빠진 거 같던데.”
“…티나?”
– “나는 방송 나오는 사람들 부해 보인다고 그러기에, 오빠도 그렇게 보일 줄 알았거든? 근데 꼬챙이가 따로 없던데. 탕후루 꽂아도 되겠더라.”
“아학, 아하하! 비유가 그게 뭐냐, 진짜?”
동생과 편안하게 나누는 짧은 대화는, 그동안 나를 괴롭히고 있던 많은 질문을 잠깐 잊게 도와줬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내게는 충분했는데.
– “그래서 하여튼, 나는 중간 투표 때 오빠를 안 찍고 시우를 찍었지만… 친구들한테는 오빠 찍어 달라고 말 좀 했어. 원래 연습생 동생인 거 안 말하려고 했는데. 언니가 그냥 하라고 하더라고. 이번 생방송에서도 잘 얘기할게.”
“그래. 고마워. 이제 슬슬 5분 다 끝나 가는데, 너도 이제 학원 갈 준비해. 늦어서 엄마한테 전화 가게 하지 말고.”
– “아 미, 헉. 욕하면 안 되지. 벌써 5분이나 지났어? 시간 왜 이렇게 빨리 가. 하여튼, 어.”
“뭐야, 너 왜 그래?”
곧 끝난다는 나의 말에, 김나리는 뭔가 잘못됐다는 듯 급하게 허둥거리기 시작했다.
그러곤 시우 캐릭터 뱃지가 달린 생활복 포켓에서 무언가를 꺼내려고 하더니, 관두고는 목을 가다듬었다.
– “아 씨, 편지? 같은 걸 썼는데… 방송 나가면 친구들이 놀릴 거 같아. 그러니까, 대충 말할게.”
많이 머쓱한 듯, 자기 머리카락을 마구 매만진 나리가 천천히 입을 뗐다.
내가 정확히 볼 수 있도록 말이다.
잘하고 있어.
– “분명히 데뷔할 수 있으니까. 힘내라고, 김춘용. 어쨌든 가족들 전부 응원하고 있어. 진심으로.”
“….”
– “…으아악! 악! 악! 쪽팔려!”
뚝….
나리의 고함이 끊어지고 나서도, 한동안 나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쟤가.
나… 잘하라고 응원을 해 준 거구나.
내 동생이.
내가 그저 가만히 앉아만 있자, 아까 웃음을 참지 못했던 조연출분이 조심스럽게 다가와서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저, 김춘용 연습생? 통화가 끝나서요. 이제 다시 복귀하시면 됩니다.”
“…아, 네! 죄송합니다. 하하. 동생 때문에 잠깐 넋을 놔서….”
방에서 나와 연습생 통조림 시설을 걷자, 점점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우리 가족이 응원해 줬으니까.
후회 끝에 돌아왔으니까, 이번에는 진짜 잘해야지.
…데뷔까지도.
나는 올라간 입꼬리를 슬며시 내리며,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꿈만 같던 통화가 끝났으니, 이제는 다시 현실에 집중할 차례였다.
오늘 이 연습생 영상 통화 촬영 후, 사흘 후가 생방송 전 마지막 방영분.
그게 끝나면, 생방송 문자 투표가 진행되면서 진정으로 데뷔할 멤버들이 가려진다.
[AG물산회사 @HARDWARE_store(사진) (사진)
AG의 자랑! [타겟팅 스타>의 에이스! 손재하의 데뷔를 위해 생방송 문자 투표 이벤트를 진행합니다.
생방송 당일, #0022로 ‘손재하’ ‘재하’를 보낸 사진을 하기 링크에 첨부하시고 준비한 상품을 받아 가세요 ♡] [불났어요불 @fireworksday
아니 다들 2위로 만족할 셈인가 ㅋㅋㅋㅋㅋ 아이돌 서바이벌에서 1위 데뷔가 무슨 의미인지 다 알면서 ;; 왜 생방 문투 이벤트 모금을 이렇게 열심히 안 하는 거임? 미치겠다 걍 내가 100만 원 더 넣어야지] [⎿님 계정 실수하신 듯요… ] [⎿⎿이 분 SNS 많이 안 해 보셨나? 왜캐 계정 실수를 자주하지 ;; 빨리 글 내리세요 다른 연습생 팬덤께도 실례입니다] [가슴에 BANG @YooouchanAA
(사진) (사진)
유찬이의 데뷔를 위해! 유찬이의 모교, 한국대 입구역에 전광판 광고 진행했습니다♡
생방송 당일까지 계속 광고 예정이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본인은 안 나가는 학교 전광판 광고가 대신 나가줬네]
SNS와 커뮤니티 여론을 살펴 봤을 때, 나의 애로우즈 멤버들과 로건은 이미 확실한 데뷔권.
염색을 한 것과 무대를 괜찮게 한 걸로 괜찮은 반응을 얻은 가운데, 내가 7위라고 가정을 했을 때….
정확히, 약혼녀 이슈 이후로 여론이 많이 안 좋아진 류웨이의 순위가 완전히 내려 앉아야만 데뷔가 가능했다.
“…씁.”
때문에, 그것에 결정적인 역할이 될 류웨이의 목소리가 담긴 메모리를 가지고 꽤 골머리를 썩였었다.
이걸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내가 퍼뜨리는 방법은 위험 부담이 너무 높고, 나 역시 함께 찍힌 부분을 지워 내는 방법은 알지 못했다.
그럼 타인의 손에 맡기나?
만일 그렇다면, 그 타인은 누구를 고르지?
이미 가오옌의 형이라는 분께 신세를 진 상태이긴 했지만, 당장에 생방송을 코앞에 두고 더는 그런 걸 바라볼 수 없는 상태.
적어도 지금의 나에게 호감이 있고, 이 사태에서 나를 배제하고 류웨이에게 집중해 줄 상대라 함은….
“피디님께서 보시면, 좋을 거 같은데요.”
“…그렇단 말이지. 하하, 김춘용 연습생. 왜 나한테 가지고 왔는지는 대충 알겠어, 응. 근데 왜 나야? 이유가 있어?”
“지금 절 좋게 봐주고 계시잖아요.”
“….”
“하하, 제가 머리가 별로 좋은 편은 아니지만. 누가 날 좋아하고, 싫어하는 건 잘 알거든요.”
잘 부탁드릴게요.
그렇게, 내가 선택한 패가 주 피디였다.
이전에 끔찍한 악연을 가지고 있고, 여전히 속으로 그 분노를 다 잠재운 상태는 아니었지만….
가오옌이 이전에 얘기했던 것처럼, 적의 적은 친구라잖아.
‘크루셜 보이’ 무대 전 흡연 구역에서 훔쳐 들었던 걸 생각한다면, 주철영 피디는 지금 신 이사님을 향한 감정이 매우 좋지 않은 상태.
게다가 이번에 돌아오고 나서는 이상할 정도로 내게 호의를 보이고 있는 중이니까….
그거에 제대로 한 방 먹여 줄 수 있다면, 내가 건넨 메모리 카드는 자기에게 매우 좋은 패가 되겠지.
솔직히, 여기까지는 내가 스스로 합리화시키기 위해 이유를 나열한 거긴 하다.
생방송을 앞두고 급박한 상황에서 내가 던진 반쯤 도박과 다름없는 수.
그러나, 나는 이게 제대로 먹히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김주안 연습생 다음 영상 통화 촬영이 누구지?”
“어, 제가 알기로는 류… 웨이 연습생인데요.”
“아, 그 연습생은 지금 시설에 없는걸로 아는데. 다음 연습생 먼저 부를까? 보호자랑 지금 통화되는지 내가 체크 해 볼게.”
류웨이가 지금 연습생 통조림 시설에 없다.
가족들은 모두 중국에 있는 지금 상황에서, 류웨이가 이 시설을 벗어나서 갈 수 있는 곳은 소속사뿐.
…정확히는.
신기호 이사님의 사무실이니까.
The malicious member is back! Episode 86
* * *
As if to explain the current relationship between Liu Wei and Director Shin Ki-ho, the temperature in the office, where the air conditioner was running strongly, was significantly low.
It’s already been 10 minutes since the two of you sat quietly looking at the laptop without talking.
At Liu Wei’s mouth, which showed no sign of letting go at all, Shin Ki-ho let out a loud sigh and tilted his head back.
“You didn’t say a word.”
“…….”
“If I remain silent like that, will the matter be resolved? “Suddenly everything you did becomes nothing?”
One of Liu Wei’s eyebrows twitched.
There was a clear look of displeasure, but that didn’t mean the tightly closed lips opened.
Because I felt there was no need to say anything.
“under… .”
Shin Ki-ho, who eventually got tired of Liu Wei’s attitude, jumped up from his seat and spoke in a low voice.
“… You saw the video just now, so you know. Producer Joo Cheol-young made me a deal with that. Well, you don’t need to know that.”
“…….”
“If you want, you can go until the last live broadcast. But after that, well.”
…푸훕.
“하, 하하… 씨발.”
허탈한 웃음소리를 낸 신기호는 이마를 잡고 계속 웃음을 이어 나갔다.
그 웃음 아래에는 미묘한 분노가 자리하고 있어서, 바깥에서 둘의 동태를 살피고 있던 최 비서의 불안을 증폭시킬 뿐이었다.
“당초 계획은 정말이지, 간단했어. 네가 잘해서, 데뷔를 한다. 이거 하나였다고. 그래. 내가 중간에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바람에, 뭔가가 꼬이긴 했지.”
영미권 투자자 부부들 부모로 둔 그 애새끼, 로건 말야.
“이건 솔직하게 시인해야겠군. 좀 더 빨리 알았다면 정리할 수 있었을 거야. 녀석은 지금 확실하게 데뷔권에 들었으니까,”
“…….”
“근데, 지금 상황은 그것과 관계가 없어.”
신기호는 지금까지 계속 펼쳐져 있던 노트북을 쾅, 하고 덮으며 씨근덕거렸다.
“로건이 데뷔를 하게 된다면, 어쨌든 시선이 분산되기야 하겠지만… 투자자들만 설득하면 될 일이니까. 그 녀석이 데뷔한다고 해서 중국 시장 진출이 어려워지는 건 아니고, 너는 여전히 건재하게 인기 있다고 말이야.”
“…….”
“그런데, 이건 아니야. 연습생이, 그것도 다른 연습생을 향한 음해 공작을 했다는 것. 이건 돌이킬 수가 없어.”
노트북에 고정되어 있던 류웨이의 시선이 천천히 다른 곳으로 옮겨 갔다.
신기호에게 있어서 시그니처처럼 자리 잡고 있던 라이터는 엉망이 된 책상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리고 지금, 네가 다른 연습생에게 해코지를 했다는 이 증거. 약혼녀 이슈로 이미 너를 향한 여론이 좋지 않아. 데뷔가 위태위태할 정도로. 근데 만일 이것마저 터진다? 글쎄, 이후에 어떻게 될지 나는 장담 못하겠군.”
“…왜 나를 불렀지?”
그제야 류웨이가 말문을 열었다.
꽤 오래 침묵을 지키고 있었던 만큼, 그 목소리는 아주, 많이 가라앉은 것이었다.
“슈민의 이야기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 그건 나 또한 조만간 해결할 수 있으리라 생각해서 꺼내지 않은 거다. 그렇게 된 건 유감이야. 하지만, 당신의 말은 지금 계속해서 본론을 벗어나고 있어. 나를 탓하기 위해서.”
“―당연히 탓하고 싶지, 이 애새끼야!”
최대한 침착을 유지하려던 신기호에게서 고함이 터져 나왔다.
“네가 데뷔를 못하게 된다면, 투자자들의 화살이 나에게 돌아와. 약속을 지키지 못한 투자라고. 그런데 만약 네가 데뷔를 한다? 하, 그룹 브랜드 평판은 나락을 가겠지. 다른 연습생을 시기 질투하고, 약혼녀까지 있는 녀석이 그룹에 있다고 말야.”
지금 신기호를 이렇게 분노하게 하고, 미치게 만드는 부분이 바로 거기였다.
류웨이가 데뷔를 해도, 못해도 그에게 문제가 된다는 점.
투자자들이 바라는 바는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류웨이의 데뷔는 그저 조건 중 하나였을 뿐.
단지 중국인이 데뷔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에서 큰 사랑을 받고, 본국의 위상을 높일 것.
지금의 류웨이는 그 어느 쪽도 만족시키기 어려운 위치가 된 것이다.
신기호는 이를 악물며 단어를 씹었다.
“약혼녀, 뭐. 그래. 네 말대로, 약혼녀 일을 해결할 수 있었다면 괜찮았겠지. 이 일을 계기로 파혼을 한다면 여론을 뒤집어 볼 수도 있었어. 근데 이건 달라.”
“또 뭐가 다르단―.”
“네가 또 이러지 않는다는 보장이 어디에 있지? 애초에, 그 이전에도 그랬는데?”
신기호가 류웨이를 컨트롤할 수 없음은, 이미 류웨이가 김춘용을 향한 루머를 독단적으로 퍼뜨렸을 때부터 드러났다.
그때부터 신기호를 향해 다가오던 불길함은, 결국 이렇게 발목을 물어 버렸고.
물론 그 과정 속에서 김춘용이 스스로 살기 위해 발버둥 친 노력이 있긴 했지만, 신기호가 그걸 알 방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결론은 간단했다.
류웨이가 데뷔를 한다, 안 한다.
그 사이에서 신기호는 선택을 해야 한다고.
책상 위에 자리한 자신의 라이터에 시선을 한 번 준 신기호는, 제 까슬한 뺨을 더듬으며 중얼거렸다.
“어제 투자자들에게 연락을 했다.”
네가, 이번에는 데뷔를 못할 수도 있다고.
“다들 아주 미쳐 발광을 해 댔지만, 현재 상황과 여론, 그리고 네 상태에 대해 설명을 하니… 뭐, 아주 못 알아듣는 눈치는 아니었어. 몇몇을 제외하고는 다음 그룹으로의 이전을 찬성하더군.”
그 말을 들은 류웨이가 그 어느 때보다도 크게 눈을 떴다는 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
“…이건 약속과 다른.”
“네가 내 말을 듣지 않은 건 약속에 있었던 일인가?”
위이이잉―
거세게 가동되던 에어컨이 실내 최저 온도에 달하자 천천히 꺼졌다.
그렇지만, 류웨이의 눈동자만큼은 그보다도 더 차갑게 굳어 있었다.
여전히 제대로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뻣뻣한 얼굴로 일관하는 류웨이를 보며 신기호가 가볍게 혀를 찼다.
“너는 늘상 아무렇지 않다는 표정을 하고 있지만, 그 속내는 누구보다도 조급하게 굴고 있어. 그리고 그 조급함이 모든 일을 망쳤지.”
신기호가 본 류웨이가 그랬다.
분명히 재능은 있다. 아이돌로 데뷔한다면 성공할 수 있을 정도로.
독선적인 면모가 있긴 하지만, 또래 아이들과 친해지고 감정적 교류를 한다면 달라질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류웨이가 그러지 못했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본인이 그럴 의지가 없었고.
“네 일만 망쳤으면 모르겠는데, 넌 내 일까지 망치고 말았어. 중국 내 투자자들을 향한 내 신용이 바닥을 기게 생겼다. AG 탈출 같은 건 꿈도 꾸지 못할 정도로.”
“…그럼에도 내 예상 순위가 데뷔권이라면 어쩔 셈이지?”
“약혼녀 이슈 이후로, 지금 상황에서 그럴 일은 거의 없겠지만….”
“…….”
“그렇게 된다면, 생방송 직전에 너를 하차시킬 거다. 건강상의 이유로, 당분간은 활동이 아예 불가능할 것 같다고. 그럼 그 차순위 연습생들이 자연스럽게 데뷔하게 되겠지. 예를 들어 안진우. 혹은.”
지금 주철영 피디와 도재찬 사장이 이상할 만큼 눈여겨보게 된….
“김춘용이라든가.”
“…내가 가만히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보군.”
“하차 즉시 너는 회사로 불려와서 짧은 입장문을 쓰고, 다시 중국에 갈 거야. 네가 무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
“촬영장에 다시 돌아가더라도, 허튼 짓할 생각하지 마. 따로 회사에서 동원 스탭으로 따라붙은 사람이 네 동향을 살필 거니까.”
가볍게 혀를 쯧, 찬 신기호는 뒤늦게 생각났다는 듯 짧게 덧붙였다.
“투자자들은 물론이고, 너희 부모님도 동의한 일이다. 이 애새끼야.”
신기호의 말에 류웨이의 눈가가 가볍게 떨렸다. 그 누구에게도 보인 적 없던, 그런 표정이었다.
자식은 부모를 따라간다고 한다던가?
사실 그 말을 정확히 짚어 본다면, 가장 가까이 있는 인물을 닮아 간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 기반은 애정과 사랑에서 비롯됐다.
나를 좋아해 주는 저 사람과 닮고 싶다. 저 사람이 원하는 바를 충족시켜 주고 싶다.
류웨이는 자기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애당초 파혼을 알아보고 있었던 뉘앙스였던 걸 보니까… 약혼도, 네가 하고 싶어서 한 건 아니겠지.”
“…아니야. 그건, 우리 집안을 위해서 내가 결정한 일이었어.”
“말도 안 되는 소리, 무슨 놈의 고등학생이 집안 신경을 그렇게 쓴다고? 좋은 일이 될 거라고 생각해서 붙인 약혼자 일이 그렇게 터진 게 마음이 좋지 않다고, 너희 아버지가 직접 얘기했다.”
무심한 투로 말을 이어 나가던 신기호는, 류웨이의 가라앉은 어깨를 보고는 무언가 깨달은 듯 중얼거렸다.
“하하, 이거 봐라….”
애새끼, 애새끼 하긴 했는데.
“진짜 그냥 부모님 사랑 받고 싶어서 안달이 난 어린애였네.”
단 한 번도, 추호도.
류웨이는 본인을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자신은 그냥 이기는 걸 좋아할 뿐이라고, 할 수 있으니 할 뿐이라고.
배경과 상황, 그 모든 게 받아 주면서 이런 자신이 나올 수 있었던 거라고.
그런데, 지금.
떨리는 손과 눈동자가.
‘이렇게 하면 안 됐던 건가?’
그리고 불쑥 떠오르는 생각이.
류웨이를 이제껏 지탱해 오던 모든 벽을 와르르 무너뜨려 버렸다.
“…….”
“허.”
신기호는 여전히 꿋꿋하려고 노력하지만, 꽉 쥐어진 류웨이의 두 주먹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자신의 일을 망친 녀석의 보모가 되어 줄 생각이 없었을뿐더러, 녀석이 들어갈 수 있을 법한 그룹 구상에 대해 도재찬 사장과 이야기를 나눠야 했으니까.
“―최 비서.”
“네, 네!”
신기호의 짤막한 부름에 순식간에 문을 열고 들어온 비서는, 최대한 류웨이에게 시선을 주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신기호에게 답했다.
“촬영장으로 다시 류웨이 데려다 놓고, 다시 복귀해. 아, 그리고….”
생방송 후 청도로 가려고 했던 표는.
“취소해도 되겠군.”
“…네. 알겠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대화를 나누고 있음에도, 류웨이는 꿈쩍하지 않고 앉아서 허공을 보고 있었다.
방법을 찾기 위해서.
* * *
류웨이가 다시 [타겟팅 스타>의 촬영장에 복귀하고 나서도,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연습생들은 마지막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누군가는 그 수면 아래에 있었던 일을 정리하기 위해 대화를 하고.
“…듣고 있어?”
“어, 어?”
“뭐야, 춘용. 지금까지 다 얘기했는데.”
“하하. 미안, 리밍쉔. 내가 피곤해서 넋을 좀 놨나 봐.”
그리고, 그 후자에 속한 리밍쉔과 김춘용은 몰래 연습생 통조림 시설에서 빠져나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와중이었다.
“근데 왜 항상 비상계단이야? 춘용, 너 거기 좋아해?”
“아니, 그런 건 아닌데. 그쪽이 카메라가 없잖아.”
“…카메라는 시설밖에도 없어. 우리 제작진들도, 굳이 연습 시간 외에 밖에서 산책하는 걸 막지는 않잖아?”
“엥?”
‘따로 물어본 적이 없어서, 그냥 그런 줄 알았지. 지금까지 괜히 계속 비상 계단으로 갔네.’
[타겟팅 스타>가 막바지에 흐르고 나서야 알게 된 사실이니, 김춘용에게 더 이상 유의미한 도움이 되진 않았지만.“일단, 네가 보내 준 사진은 다 지우도록 할게. …굳이 쓰지 않아도 될 것 같아서.”
“아, 응. 뭐든 하겠다고 했는데, 좀 민망하네.”
“아냐, 충분히 도움이 됐어.”
김춘용은 리밍쉔의 어깨를 몇 번 두드려 준 후, 리밍쉔이 그동안 류웨이에게 당했던 일들을 정리한 정리문을 삭제했다.
깨끗하게 비워진 김춘용의 휴대폰 속 캡처함에는, 더 이상 그가 류웨이와 관련되어 있었다는 사실이 단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아, 씁. 나 좀 추운데. 혹시 먼저 들어가 봐도 될까?”
“어? 아, 당연하지. 나는 지금 딱 좋아서. 바람 좀 쐬다 들어갈게.”
“…그래. 너무 늦지 않게 들어와.”
그렇게 리밍쉔이 떠나간 후.
뿅!
한동안 잠잠하던 김춘용의 휴대폰 알림이, 아주 적절한 타이밍에 울렸다.
– X: 야야 왜 청승맞게 혼자 서서 그러고 있냐?
– X: 나랑 대화하면 되잖아 ^^
– X: 우리 사이에 대화는 중요해! 동업자잖니
– X: 그리고 이제 곧 렉쓰레기 네가 돌아가게 될지 아니면 여기 남아 있을 수 있을지 결정되는 날이니까 ;-D
간만에 연락하는 주제에 엑스는 여전히 얄밉고, 못된 말들을 하기에 바빴지만….
– X: 내가 봤을 때는 지금 류웨이만 떨어지면 딱 너 데뷔할 수 있을 거 같더라고
– X: 여론 개망한 류웨이랑 상승 중인 네가 비등비등할 정도라서 말야 ㅎㅎ
– X: 전에 ‘그로기(Groggy)’ 무대 보상으로 받을 스킬까지 더하고 뭐
– X: 생방송 무대 찢으면 가망이 있을 거 같거든?
– X: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김춘용은 엑스가 마지막에 보낸 메시지를 소리 내어 중얼거려 봤다.
“소감이, 어떻냐고….”
소감이라.
그가 생각하기에, 아직 소감을 말하기에는 너무 일렀다.
제대로 데뷔를 한 것도, 가족들과 애로우즈 멤버들에게 도움이 된 것도, 속죄를 한 것도 아닌데 대체 무슨 소감?
김춘용이 지금 할 수 있는 건 한정되어 있었다.
지금 준비 중인 생방송 무대에 최선을 다할 것.
그리고.
“…….”
무조건, 류웨이를 이겨 내고 데뷔를 할 것.
[타겟팅 스타>의 마지막 생방송 무대가, 훌쩍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