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layer who hides his past RAW novel - Chapter 532
◈ 532화.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1)
──────
이 수석님에게.
수석님의 짧은 휴식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이렇게 글로써 표현하는 제 심정을 부디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알고 계십니까? 저 나스로우, 비록 수석님과 많은 접점을 가지지는 못했지만…….
──────
딱 수석과 선임.
비즈니스 관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선임들부터.
──────
편히 쉬고 계신가요?
저는 이 수석님이 남기신 말씀이 마음에 걸려 잠이 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렇게 깃털펜을 붙잡았습니다. 이 수석님, 혹시라도 대화 상대가 필요하시다면…….
──────
벨리에를 비롯해서 친분이 있는 선임들까지.
전부 내게 구구절절한 편지를 써 올렸다?!
심지어 그 내용도 심상치 않았다.
‘꿀잠 자고 일어났더니, 뭔데.’
짐작이 가는 건 역시 그것밖에 없다.
-“나는 머지않아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아오, 그랑펠식 화법……!!
하긴 현실에서나 아르카나 대륙에서나 지옥은 죽은 자들만 갈 수 있는 장소였다. 살아서도 지옥을 밟을 수 있다는 정보는, 로렌츠크나 탐험가 연맹장 정도는 되어야 알 수 있는 정보였으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가 시한부라고?’
솔직하게 말할까?
[첫 세계수의 축복]이 있는 이상.마탑에서 나보다 장수할 사람 많지 않을걸?
“본의 아니게 우려를 끼쳤나.”
그렇다.
지금이라도 올바르게 정정할 필요가 있다고, 그랑펠. 지옥은 [피에서 자라난 상사화]라는 아이템을 통해서 진입할 수 있는, 특수한 필드일 뿐이라고 정확하게!
‘로렌츠크 말로는 관문이 있다던데.’
살아서 진입할 수 있는 이상.
관문이란 것도 결국, 공략할 수 있는 거 아니겠냐.
게다가 무엇보다 가장 확실한 보험.
[클래스 퀘스트 : 우리는 여전히 악마인가?]악크샨이여, 묻겠다. 악마를 사냥하기 위해 악마가 되어 지옥에 떨어진 우리는, 지옥에 떨어져서도 악마를 사냥해 온 우리는, 여전히 악마인가?
-지옥의 악마 사냥꾼과 조우하라. (보류)
●지옥의 악크샨을 인정한다. (선택)
●지옥의 악크샨을 거절한다. (선택)
-지옥에 진입하라. (진행 중)
거짓말을 하지 않는 시스템이 지옥에 진입하라는 퀘스트창을 출력하고 있었으니. 이윽고, 나는 인벤토리에 손을 뻗어 상사화 한 송이를 꺼내 들었다.
“그대들은 알지 못하는 지식일 터.”
그래, 지금은 입방정이 아니라 친절을 베풀 때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이 있지.”
그랑펠식 화법이 불러올 파장을, 그간 경험으로 충분히 알게 된 나였다. 괜히 백 마디 말로 지옥을 설명하려다가는, 또 다른 착각을 낳게 될지도 모른다는 말씀.
‘그러니까 상사화를 참고 자료로 덧붙이면…….’
툭.
내가 상사화 한 송이를 책상 위에 내려놓는 순간이었다.
위잉.
재킷 안주머니에서 느껴지는 짧은 진동.
그 메시지를 확인하는 순간.
나는 흠칫할 수밖에 없었다.
“!”
아니, 그 즉시.
모든 행동을 정지.
곧바로 마력을 끌어올릴 수밖에 없었다.
[호열아 바쁘니? 시간 괜찮으면 지금…….]혹시라도 방해될라.
내게 연락을 자제하던 어머니.
우리 최강희 여사님에게 도착한 메시지였으니까.
더는 누구도 잃고 싶지 않다.
이번 제주도 사태를 계기로 깨달은 게 있는 나였다.
그러니까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나는 곧바로 포탈을 발현했다.
.
.
.
……지금이라도 이렇게 돼서 다행인가.
“오늘 우리 아들 덕 제대로 봤네?”
우리 최강희 여사님께서 날 다급하게 호출했던 이유는 간단했다.
계약서에 도장을 찍으시기 직전.
내게 통보하신 것이었다.
이준욱 사장님께선 맞잡은 손을 연신 흔드신다.
“오늘 도움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오히려 저희 가온이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아버님.”
“우리 남 사장에게도 고맙다고 전해줘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아버님. 남태민 길드 마스터님과 남철민 수석 분석관님, 두 분 모두에게 이준욱 사장님께서 감사의 뜻을 표하셨다고 전하겠습니다.”
무슨 계약서에 사인을 했길래. 가온 그룹 측 인물들이 우리 ‘화목할 만두집’에 찾아온 거냐고 묻느냐면……. 어깨를 으쓱이는 최강희 여사님을 보여주리라.
“마냥 후련할 줄 알았는데, 시원섭섭하네.”
두 분의 피와 땀으로 빚어낸.
‘화목할 만두’.
가게가 오늘로 영업 종료였다.
‘내가 그렇게 쉬라고 했을 때는 말이야.’
아직은 팔팔하다고, 앞으로 30년은 더 해먹을 수 있다고, 아들한테 벌써부터 손 벌릴 생각은 없다고, 다시는 말도 못 꺼내게 하셨으면서……!
기이의 땅, 서울.
말했다시피 전 세계가 눈독을 들이는 땅이 된 서울이었으니, 폭발적인 부동산 상승은 당연지사. 심지어 화목할 만둣집은 마세권이었다.
마세권이 뭐냐고?
마탑 세권이라는 신조어다.
그 말이 뜻하는 바가 무엇이겠는가?
-서울이 위험하다? 마세권은 다르다!
언제 어디서 생성될지 모르는 균열과 아르카나 대륙의 침식에서 가장 안전한 장소라는 뜻이었으니. 그 바람에 마세권은 서울 중에서도 땅값이 폭발적으로 상승했다.
우리 이준욱 사장님께선 흔히 하는 말로 떡상한 상가 건물을 가온 그룹에 매각하신 것이었다. 어째서 가온 그룹에 매각한 거냐고 묻는다면.
‘그래도 이런 건 발이 빨라?’
특별법이 제정되었기 때문이었다.
-오늘부터 외국인은 서울 부동산 거래 불가.
아까도 말했듯 세계가 눈독을 들이는 게 서울 땅이니만큼 막대한 국외자본에 서울 땅을 빼앗기는 걸 막기 위한 정부의 긴급 대책이 있었단 거지.
‘뭐, 서로서로 좋은 건가.’
사실 가온 입장에서도 손해 볼 건 없었다.
아르카나 시스템이 덧씌워진 서울이다.
이런 작은 상가 건물도 다 쓸모가 있겠지.
‘예를 들면 공성전에서 활용할 수도…….’
그나저나, 이럴 때는 잠잠하구나?
‘평소처럼 부귀영화 어쩌고저쩌고 안 하냐, 그랑펠?’
나의 도발에 입방정이 화답하듯 읊조린다.
“두 분 다 일찍이 누리셔야 할 휴식이셨습니다.”
……아주 효자 나셨어?
이럴 땐 또 내가 할 말이 없게 하는구만.
최강희 여사님께선 내 말에 감정이 복받치신 걸까.
슬쩍, 몸을 돌리고 눈가를 훔치셨다.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호열아.”
스윽.
아버지는 가볍게 내 어깨를 어루만지셨다.
구체적으로 대화는 나누지 못했지만, 짐작하고 있었다.
어째서 두 분께서 갑작스럽게 가게를 매각하신 건지.
‘나 때문이겠지.’
혹시라도 내게 걸림돌이 될까 봐.
내리신 판단이시리라.
그러니 나는 무거운 마음으로 침묵을 지켰다.
‘하필이면 흑화로 날뛰어서는…….’
그랑펠 말로 제주도에서 추태를 보였기에.
이 잘난 입방정으로도 할 말이 없었다.
그러나 잔잔한 감동은 오래가지 못했다.
“역시.”
우리 이준욱 사장님께서.
“이렇게 올랐을 때는 냅다 팔아야 한다니까?”
과거의 눈빛을 되찾으셨으니까.
“언제나 말하지만 부동산도 주식 투자와 똑같다. 불패라는 건 없다, 이 말이야. 오르면 반드시 떨어지는 구간이 존재해. 그러니까 지금 서울 부동산 가격은 역사상 다시는 없는 고점……!”
이쯤에서 상기해야 할 사실이 하나 있다.
우리 아버지가 벌리신 사업의 결말이 어떠했는가?
아직도 잊히지 않는구만, 빨간 딱지…….
다행인 건 최강희 여사께서도 나와 같은 마음이셨나 보다.
“당신! 하여튼 쓸데없는 생각하기만 해봐요.”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
“됐어요. 이 좋은 날, 기분 잡치고 싶지 않으니까.”
숱한 경험으로 쌓인 지식이 있다. 우리 최 여사님께서 저러실 땐 정말 머리끝까지 화가 난 거니까, 그냥 얌전히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간판을 바라봤다.
──────
화목할 만두
──────
역사상 다신 오지 않을 고점이라는, 아버지의 말에 반박할 생각은 없었다. 지금의 서울 부동산 가격은 기이의 땅이 되는 바람에 경쟁이 붙어 치솟게 된 거니까.
‘모든 게 끝난다면.’
정말로 다신 오지 않을 고점이 될 것이다.
‘내가 모든 걸 끝낼 거니까.’
다짐하던 순간이었다.
최강희 여사께서 온화하게 말씀하셨다.
“호열아, 저녁은 먹고 갈 거지?”
“그래. 제주도에서 고생했는데, 한 번 들러라.”
“될 수 있으면 하룻밤만 자면 더 좋은데…….”
하룻밤이라.
‘늦잠을 자 버려서 좀 바쁜데.’
하지만 방금도 말했다시피. 머리끝까지 화가 나신 최 여사님의 말에 말대꾸를 해서 좋을 건 조금도 없없으니, 나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어머니의 말씀을 기꺼이 따르겠습니다.”
*
가넷 홀.
“이상하다……?”
마법부여학 선임, 키코 아르민.
그녀가 눈그늘이 늘어진 눈을 힘겹게 뜨고 기다린 건.
호열이었다.
양피지를 바라본다.
분명히 적혀 있었다.
키코가 다시 중얼거렸다.
“분명 곧 이라고 하셨는데…….”
시간 약속에 관해서.
타인에게 엄격한 것 이상으로 자신에게 엄격하신 이 수석님이셨다. 정기 학회에서나 원탁회의에서나 이 수석님이 늦으시는 건 본 적이 없었으니까. 사소한 약속에서도 예외는 없으셨었지.
그런데.
“키코 선임님, 안 들어가세요?”
“먼저들 들어가요.”
“앗, 그러면 실례하겠습니다아……!”
숙련 마법사들이 잠을 청하러 가넷 홀을 빠져나가고.
잔뜩 밀렸던 선임의 업무를 끝마쳤어도.
이 수석님은 그림자조차 보이시지 않으셨다.
“흐음.”
키코의 내면에 불안이 싹트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 생기신 건 아니시겠지……?’
평상시라면 그저 급한 일이 생기셨으리라, 하고 넘겼으리라.
이 수석님이 약속을 지키지 않으신 건 놀라운 일이지만. 자신부터도 이 수석님의 의뢰를 기한 내에 끝마치지 못한 적이 있으니.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일반적인 상황이 아니었다.
귓가에 선명한 목소리.
크리스탈 홀을 울리던 선언.
-“나는 머지않아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키코 역시 짐작하고 있었다.
이 수석님께서는 끝이 정해진 삶을 살고 계시리라고.
그것이 당신께서 다루시는 강대한 힘의 대가일 터라고.
“…….”
키코는 문득, 떠올렸다.
“그 말씀 이후, 모습을 보이시지 않으셨었지?”
벌써 하루가 훌쩍 지났거늘.
평상시 이 수석님의 일정을 생각하면 아직까지 휴식을 청하고 계시리라고 생각되진 않았다. 왜, 애초에 양피지를 통해 글귀를 보내신 것도…….
“불과 몇 시간 전이니까…….”
문득, 스쳐 가는 불길한 생각. 만약, 이 수석님께서 마지막으로 글귀를 남기시고 쓰러지시기라도 한 거라면……? 키코는 당장 자리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스스슥.
깃털펜을 들고 휘갈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금이었다.
키코와 탑주, 마르셀로.
두 사람이 마탑의 계단을 올랐다.
“경께서 약속을 지키지 못하셨다라.”
다른 누구도 아니요.
천하의 호열 경께서.
그것만으로도 확인해 볼 가치는 충분했다.
이윽고 마르셀로와 키치가 호열의 집무실, 그 문을 두들겼다.
그러나 답은 없었다.
“…….”
질문은 하지 않았다.
대답할 수 있는 상황에서 대답하지 않으실 분이 아니셨으니.
이내, 마르셀로가 조심스럽게 문고리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목격했다.
“……?”
집무실.
책상 위.
덩그러니 놓여 있는 붉은 꽃 한 송이를.
평상시였다면 단순하게 흠칫했으리라.
마탑의 누군가가 경에게 꽃 한 송이라도 선물한 건가.
생각하고 넘어갔을 일에 불과했다.
“……!!”
허나 그러기에는 꽃에서 느껴지는 기분이 미묘했다. 강렬한 붉은빛이 마치 피처럼 느껴질 정도로. 더 나아가 마치 죽음 그 자체로 느껴질 정도로.
키코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 그럴 리가 없지만 헌화(獻花)일까요?”
그 순간, 마르셀로의 머릿속에 흘러가는 장면.
세니오스 원로 마법사.
탑주.
유그위드 원로 마법사.
그들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서.
꽃을 내려놨던 자신의 두 손이 보였다.
마르셀로가 자신의 손과 책상 위에 놓인 붉은 꽃.
두 피사체를 번갈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겠습니다, 키코 선임.”
“……네?”
그의 눈빛이 전례 없이 고요히 타오르고 있었다.
“이 수석님께서 지옥에 떨어지셨을 가능성까지 말입니다.”
*
……뭐지.
갑자기 귀가 가렵다.
그러나 지금은 귓구멍을 후비적거릴 때가 아니다.
“추억이로군.”
추억은 개뿔.
넌 처음 보는 거잖아, 그랑펠.
내 방은 말이야.
‘뭐, 그래도 누추하다고는 안 해줘서 고맙다.’
그러나 유치한 말싸움을 할 시간은 없다.
지옥에 가기 전 마지막 밤을 우연히 본가에서 지내게 된 지금.
내가 할 일은 간단했다.
찾아야 한다, 나의 흑역사 노트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