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est of Corruption RAW novel - chapter (117)
117 화 설득!
설득!
끔벅대는 커다란 두 눈. 파들파들 떨리는 손가락. 툭 하고 떨어진 나뭇조각.
충격받은 사람들이 내보이는 전형적인 모습과 함께 어머니가 잘 움직이지 않는 입을 뻐끔대며 겨우 말을 완성해 냈다.
‘사…ㄹ….해…?’
‘거짓말이지…?’라는 한마디. 하지만 지금은 진지한 결단이 필요한 때였다. 나는 촉의 군사가 눈물을 머금고 마 씨의 목을 날릴 때처럼, 두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저었다.
“어머니께서 제대로 들으신 게 맞습니다. 이제 그만 놀고 슬슬 일을 하셔야만 합니다. 어머니.”
자그마한 얼굴 위로 온갖 변화무쌍한 변화가 지나갔다. 잠시 후, 어머니는 결국 무척이나 조심스럽게 다시 말을 꺼냈다.
‘사, 살해…? 살해살해…?!’
‘나, 신인데? 네가 모시는 신인데?!’라는 물음. 나는 또 한 번 고개를 저어 보였다.
“신이라고 놀고먹기만 하는 법이 어디 있겠습니까? 아니, 신이신 만큼 모두에게 모범을 보이셔야지요. 저희 같은 필멸자들이 보고 배울 수 있도록요.”
‘살해!!!’
어머니께선 주먹을 붕붕 휘두르며, 신은 원래 놀고먹는 거라며 되지도 않는 항변을 제시했다. 저 드높은 천상을 내가 직접 들여다본 적이 없어 어머니의 주장이 맞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기는 천상이 아니라 지상이었다. 지금 어머니께선 두 발로 지상을 디디고 계신 만큼 천상으로 돌아가기 전까진 지상의 법도를 따라야만 했다.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라는 우리네의 옛말처럼.
“그럼 어머니께서 그 못난 신들에게 먼저 모범을 보이시지요. 천상에서 가장 성실하고 부지런한 신이 되시는 겁니다.”
‘살해!’
“아니, 부지런한 신이 되고 싶지 않다고 떼를 쓰셔도 소용없습니다. 저는 어머니께서 이대로 놀고먹기만 하는 신으로 자라나는 걸 좌시하지 않을 겁니다!”
내 단호함을 전달하기 위해, 조금 더 적극적으로 외치자 옆에서 요리를 하고 있던 쟈멜이 작은 목소리로 감탄했다.
“신을 구박하다니… 대단해…”
지금 저 말에 대답을 해 줬다간 괜히 휘어잡은 분위기가 무너질 게 분명했다. 나는 쟈멜의 말을 흘려보내곤, 어머니를 똑바로 직시하며 대답을 기다렸다.
어머니는 몸을 부르르 떠시며 마치 배신이라도 당한 것처럼 울먹이는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지만, 나는 살짝 흔들릴 뻔한 마음을 굳세게 다잡았다.
지금이 분수령이었다. 오늘, 오늘 내가 물러난다면 앞으로의 여행에 있어서 어머니는 영원토록 놀고먹기만 하시리라.
오늘의 나는 어머니를 신성한 노동의 세계로 이끈다. 그렇게 굳게 다짐했다.
결국 울기 일보 직전인 어머니를 보다 못한 다키아가 나서서 손수건으로 어머니의 물기 어린 눈을 닦아 주었다. 그녀는 어머니의 등을 토닥여 주며 내게 말했다.
“너무 갑작스럽게 몰아세우는 것도 안 좋지 않을까요? 부패의 어머니께서도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실 거예요.”
‘살해살해!!!’
드디어 나타난 자기 편에 어머니는 이 말이 맞다며 물 만난 물고기처럼 거세게 항의를 시작했다.
지금의 달램. 다키아의 끼어듦. 사실, 이 모든 건 우리가 짠 정교한 연극의 일부에 불과했다. 좋은 경찰, 나쁜 경찰처럼 내가 어머니를 압박하면 다키아가 달래서 어머니가 극단적인 대처를 하지 않도록 어머니에게 한 명의 자기편을 만들어 준다.
그래, 어머니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내가 놓아둔 덫에 빠진 뒤였다. 신을 덫에 빠뜨린 남자. 그게 바로 나였다.
“아니, 지금 이렇게 말씀드리지 않으면 다음엔 기회가 없을 겁니다. 제가 지금 이 한마디를 꺼내기 위해 몇 날 며칠을 고민한 건지 다키아는 모를 겁니다.”
사실, 다 알았다. 둘이서 같이 계획을 짰으니까. 어머니가 사람의 모습으로 변할 수 있게 된 뒤로 혼자 이리저리 뽈뽈 돌아다니실 때가 많아졌고, 나는 부패의 아들, 임페트로를 만난 뒤로 기묘하게도 어머니에 대한 의존증이 조금 줄어들었다.
이젠 어머니께서 당장 눈앞에 안 계셔도 조금은 참을 수 있었다.
어머니를 덥석 끌어안은 다키아가 열연을 펼쳤다.
“그래도 사람을, 아니 신을 무작정 밀어붙이시면 어떻게 해요! 이런 방식은 결국 서로의 감정을 상하게 할 뿐이라고요. 아무리 마르낙 사제님이라고 해도 이런 식의 접근 방법은 잘못됐어요!”
‘살해…!’
격한 감동으로 떨리는 몸. 어머니는 적극적으로 자기편을 들어 주는 다키아를 바라보며 네가 날 위해 이렇게까지 해 줄 줄은 몰랐다는 듯이 진한 감동의 여운에 푹 빠져 헤어나오실 줄을 몰랐다.
잠시 후, 겨우 여운에서 빠져나온 어머니가 무언가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며 입을 뻐끔거리셨다.
‘살해!’
이제 우리는 돈이 많지 않냐는 말로 시작된 어머니의 설명은 지극히 간단했다.
‘살해살해!’
거기서 자기 몫을 떼어 내서 자신의 일을 대신해 줄 사람을 고용하겠다는 당찬 주장.
직접 일을 안 하고 대신 돈을 쓰겠다. 평소 어머니라면 쉽게 떠올릴 수가 없던 합리적인 주장에 나는 솔직히 조금 당황했다.
역시 어머니께선 성장하신 건가. 특히 잔머리 쪽으로. 어머니의 말이 틀린 게 아닌 게, 어머니께선 내게 권능을 베푸는 주체인 만큼 분명 내가 받은 황금의 일부에 대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었다.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이건 내가 짠 한 편의 연극에 포함되지 않은 애드리브였다.
어쩌지?
순간, 번뜩이는 발상이 스쳐 지나갔다. 나는 어머니를 지그시 바라보며 대답했다.
“그건 저희 둘의 공금입니다. 어머니. 그렇게 사적으로 마음대로 유용하시면 곤란합니다.”
‘살햇?!’
침착하게 당황한 어머니를 조곤조곤 몰아붙였다.
“어머니께선 제가 돈을 한 푼이라도 허투루 쓰는 걸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어머니께서도 아시다시피 항상 최소한의 식사와 한두 벌의 옷, 그리고 하룻밤을 묵을 잠자리를 잡을 때를 제외하고는 단 하나의 동전도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사용한 적이 없습니다.”
내 검소함은 사실, 다키아와 카르멘을 만나기 전까진 한 번도 주머니가 두둑해 본 적이 없어서 가난이 몸에 밴 탓이었지만. 이유야 어떻든 나는 무척이나 금욕적으로 살아왔다. 그리고 그간의 금욕은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반격의 서막을 알리는 나팔수가 되어 주었다.
나는 억울함을 가장해 가슴을 두드렸다.
“저는 어머니와의 미래를 생각해서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하는데, 어머니께선 정녕 그렇게 돈을 헤프게 쓰실 겁니까? 어머니께서 정 그리하시겠다면… 하아, 됐습니다. 그냥 제가 어머니의 몫까지 더 많이 일하겠습니다. 대신 괜한 돈 낭비는 삼가 주셨으면 합니다. 그럼 저는 이만 어머니의 몫까지 일하러 가 보겠습니다.”
‘살해?!’
나는 어머니께서 날 따라잡을 수 있도록 충분히 여유를 두고서 등을 돌렸다.
하나.
둘.
셋.
‘살해!!!’
재빨리 달려온 어머니가 내 팔에 매달려 왔다.
‘살해살해!!!’
어머니께선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니었다며, 일단 이야기를 조금 더 하자고 나를 달랬다. 나는 그저 묵묵히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다시 생각해 보니 감히 사제로서 모시는 신께 이것저것 시키려고 한 제가 잘못한 것 같습니다. 어머니께선 여기서 편히 쉬고 계시면 됩니다. 제가 ‘어머니의 몫’까지 일하고 올 테니까요.”
어머니께선 내 얼굴을 바라보며 입술을 꾹 다물었다. 잠시 후, 무척이나 자그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살해.’
“예?”
‘살해!!!’
‘한다고! 일한다고!!!’라는 외침. 그 기특한 외침에 나는 어머니를 번쩍 안아 들어서 머리를 쓰다듬어 드렸다.
“정말 잘 생각하셨습니다! 이 어찌나 기특하신지, 역시 전 어머니밖에 없습니다.”
‘살해?!’
기다렸다는 듯이 변한 내 태도에 어머니는 속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빙그레 웃으며 어머니의 물음에 답했다.
“대신 일하실 때마다 용돈도 드리겠습니다. ‘어머니’만의 돈이 생기는 거죠. 어떻습니까?”
어머니는 내 품에 안겨서 눈을 데구루루 굴리시곤 잽싸게 대답했다.
‘살해!’
아주 좋다는 긍정의 답. 예상보다 더 뜨거운 반응에 그냥 이 고생을 할 필요도 없이, 처음부터 용돈을 준다고 하면 되는 일이 아니었나 싶었다.
여튼, 성공적으로 어머니와의 협상을 끝마친 나는 활짝 웃으며 어머니께 말했다.
“그럼 지금 당장부터 일하러 가 보도록 하죠!”
‘살해…?!’
***
‘살해살해~’
흥얼거리는 콧노래. 어머니께선 다람쥐처럼 잽싸게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자그마한 나뭇가지들을 주워 모았다.
나를 따라온 다키아가 어머니가 일하는 광경을 보며 쓰게 웃었다.
“겨우 마른 나뭇가지 줍는 걸 부탁하려고 그 고생을 하신 거예요?”
“겨우 나뭇가지가 아닙니다. 어머니께선 알게 모르게 저희 일행에서 붕 떠 계시지 않습니까? 이런 자그마한 행동 하나하나가 모여서 관계를 쌓아 나가는 거지요. 이제까지처럼 홀로 붕 떠 계시기만 하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습니다.”
나는 어머니가 홀로 고고한 신이기보다, 모두와 함께 어울리실 수 있는 그런 분이 되시길 바랐다. 내가 없어도 괜찮으실 수 있도록.
저번 선지자와의 전투를 곱씹으며 무척이나 많은 생각을 했다.
나는 불멸의 존재가 아니었다. 신성이 담긴 공격이면 언제든 죽을 수 있는 그런 존재였을 뿐. 저번에는 운이 좋아 되살아날 수 있었지만, 다음에는? 물론, 나도 최대한 죽지 않기 위해서 노력할 테지만, 언제나 모든 상황이 내 뜻대로 흘러갈 수는 없었다.
나는 다른 사람과 항상 거리를 두는 어머니가 걱정이 됐다. 어머니께선 나를 제외한 다른 이들에게 항상 어느 정도 거리를 두셨고, 자연스럽게 일행들과 어머니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항상 존재했다. 나는 그 벽을 허물어 주고 싶었다.
내가 죽더라도 어머니께서 마음을 의지할 곳이 있으셨으면 하기에.
‘살해!’
어머니께선 내게 품 한가득 안아 든 마른 나뭇가지를 내보이며 환하게 웃었다. 나는 그 웃음에 마주 웃어 주며 한 손으로 나뭇가지를 받아들었다.
“아주 잘해 주셨습니다. 여기 약속해 드렸던 용돈입니다.”
자그마한 동화 한 닢이 어머니의 손바닥 위로 떨어졌다. 어머니는 두 눈을 끔벅이곤 날 올려다보았다.
‘살해…?’
‘겨우 동화 한 닢…?’이라는 한마디. 확실히 신의 시급이 동화 한 닢이라면 무척이나 짠 것이겠지만, 이 세계에는 아직 최저 임금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거기다 겨우 마른 나뭇가지 한 뭉텅이를 해 오는 데 동전 한 닢이면 충분한 보상이기도 했고.
나는 그저 어머니를 향해 빙그레 웃어 드렸다.
“동화도 돈입니다. 어머니.”
***
“안 됩니다. 아무리 이르멜가 공녀님의 일행이라고 하셔도 국경을 지나가실 수 없습니다. 저희 칸덴티아에는 현재 황실에서 공인한 상단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입국할 수 없습니다.”
국경도시에 도착한 우리는 북제국 칸덴티아로 향하는 관문에서 예상 못 한 난관에 봉착했다.
각국에서 날뛰는 악신의 숭배자들 때문에 자연히 외지인에 대한 경계가 커졌고, 그 결과 칸덴티아의 황실에선 현재 북제국 내에서 날뛰는 악신의 숭배자들을 처리할 때까지 국경을 폐쇄하는 결단을 내렸다는 게 지금 우리의 앞을 막아선 관리가 한 주장의 골자였다.
다키아는 쓰게 웃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어쩔까요?”
국경 폐쇄는 정말 예상 못 한 결과인데.
“일단 오늘은 날이 늦었으니 쉬는 게 어떻겠습니까?”
찍찍!
머리 위에 사람 머리통만 한 쥐를 얹은 채, 슬쩍 다가온 테르지오가 내게 자그마한 목소리로 말했다.
– 경계가 느슨한 곳을 찾아서 몰래 통과하는 건 어떻습니까? 제가 오늘 밤, 몸을 줄이고 스트룸을 타고서 조용히 정찰을 다녀오겠습니다.
스트룸은 테르지오가 저 거대한 쥐에게 붙여 준 이름이었다.
“흠… 일단은 저녁이라도 먹으면서 조금 더 고민해 보도록 하죠.”
“마르낙 사제님!”
관리가 장황한 설명을 시작할 때, 눈치 빠르게 숙소를 잡으러 빠져나갔던 쟈멜이 되돌아왔다.
“숙소 잡았어요! 다들 저만 따라오세요!”
그렇게 우리는 쟈멜이 잡은 ‘황금 잉어’에 각자 짐을 풀고 1층으로 내려와 음식을 주문했다. 우리의 저녁 식사가 끝나갈 때쯤. 로브를 푹 눌러쓴 인영이 우리를 향해 다가왔다.
“저기 있잖아~”
지극히 가벼운 어투로 말을 걸어 온 여인이 로브를 벗었다.
샛노란 두 눈. 진한 회색빛 머리털. 그 위로 자라난 여우 귀.
회색여우 수인으로 보이는 여인은 우리를 향해 두 귀를 쫑긋거리며 자그마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너희 오늘 국경을 넘으려다 까였다며?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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