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est of Corruption RAW novel - chapter (46)
46 화 도살자.
도살자.
“어떻게 할래?”
악마가 묻자, 그 품에 안긴 어머니가 떨리는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살…해….?’
‘아니지, 안 할 거지…?’라는 물음. 확실히 편하고 쉽기까지 한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하지만 나를 지켜보는 버둥대는 호기심의 두 눈에는 진한 장난기가 가득 담겨 있었다. 네가 곤란해하는 모습 자체가 너무 재밌다는 듯이.
나는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장난은 거기까지만 하시지요. 이미 충분히 곤란합니다.”
악마는 키득키득 웃었다. 탁하고 담뱃재를 털어낸 그녀는 다시 담뱃대를 입에 물고는 내게 답했다.
“많이 티 났나?”
“저를 지하 투기장으로 보내려고는 하시는 이유가 있으시겠지요. 어째서입니까?”
“너랑 네 어머니랑도 관계가 있는 이야기야.”
버둥대는 호기심이 어머니를 품에 꼭 안자, 어머니는 악마의 가슴에 파묻혀서 버둥댔다. 버둥대는 호기심은 마음이 참으로 넓은 악마였다.
‘살해!!!’
나는 어머니를 위해 잠시 어머니의 버둥거림을 외면했다. 참으로 역설적인 선택이었지만, 어머니께서도 분명 이해해주시리라.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해주셨으면 합니다.”
‘살해!!!’
어머니한테 손을 깨물린 그녀는 ‘아야!’하고 장난스럽게 외친 후, 내게 대답했다.
“생각해봐. 부패의 아들아. 어째서 나는 여태 잘만 가지고 있던 성물을 이번 지하투기장의 우승상품으로 걸었을까?”
악마가 우승상품으로 어머니의 신성이 봉인된 성물을 걸 이유. 악마가 성물을 처리하게 만들만한 이유.
누군가 악마가 가진 성물을 노리고 귀찮게 굴어서 내던지듯이 우승상품으로 건 것이라면? 악마를 귀찮게 만들만한 이들이라.
답은 하나였다.
“악신의 숭배자들이 나타났군요.”
버둥대는 호기심이 활짝 웃었다.
“딩동댕! 바로 맞췄어! 말이 잘 통하니 편해서 좋네. 내가 말이야, 걔들이 하도 귀찮게 구는 통에 그냥 악신의 숭배자놈들이 알아서 챙겨가도록 지하투기장 우승상품으로 던져 놓은 거거든? 그런데 이제 이야기가 달라졌어.”
곧게 뻗은 담뱃대가 내 얼굴을 향했다.
“내가 여태 마땅히 쓸만한 사람이 없어서 내준 거지, 귀찮게 구는 악신의 숭배자 애들이 예뻐서 그런 게 아니거든? 그런데 운이 좋게도 여기 짠하고 부패의 아들이 날 찾아왔네?”
나보고 지하투기장에 참가한 악신의 숭배자들을 대신 처리해달라는 건가.
“그냥 성물만 몰래 저한테 주시면 안 됩니까? 잠깐이면 신성을 회수하긴 충분한데요.”
“네가 신성을 회수하면 악신의 숭배자들이 당장에 알아챌걸? 네가 지하투기장에 참가해서 악신의 숭배자들을 제거하는 건 너한테도 나쁘지 않은 조건이야.”
그녀는 손가락 두 개를 펼쳐 보였다. 그리곤 천천히 하나씩 접으며 설명을 시작했다.
“첫째, 너는 언젠가 리베라티오에게서 직접 성물을 빼앗아야만 해. 아, 리베라티오가 뭔지는 알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버둥대는 호기심은 히죽이고는 말을 이어나갔다.
“안다니 다행이네. 여튼, 이렇게 적의 수를 줄여둘 수 있을 때 줄여둬야지. 네가 나중에 리베라티오를 칠 때 도움이 될 거야. 그리고 두 번째. 여기는 한 왕국의 수도야. 이게 무슨 뜻인지 이해하겠어?”
악마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이해됐다.
이곳은 수도. 당연히 다른 곳들과 달리 상주하는 사제들이 존재했다. 그 말은 즉, 이곳에서는 악신의 숭배자들이라고 해도 쉽사리 자신의 권능을 사용할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특히 요즘 같이 악신의 숭배자들에 대한 경계가 심해진 시기에는 더욱.
거기에 나는 신성이 담기지 않은 공격에는 죽지 않았고.
그야말로 악신의 숭배자들을 족치기에 최적의 조건.
악마의 눈이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휘어졌다. 그녀의 눈물점이 그 퇴폐적인 분위기를 더했다.
“이해했구나?”
어떻게 할까.
나는 고민을 끝마치고서 그녀의 두 눈을 마주 보았다.
“저는 악신의 숭배자라고 무작정 죽일 생각은 없습니다.”
“정말? 의외네? 네가 여기까지 오면서 꽤 많은 악신의 숭배자를 죽인 거로 아는데?”
“그건 전부 나름의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무고한 이들을 상대로 대량학살을 벌였다. 그것도 내가 보는 앞에서.
악마는 천천히 입술을 핥았다.
“꽤 까다로운 방식으로 사네? 뭐, 그 점이 더 마음에 들지만. 잠깐만 있어 봐.”
버둥대는 호기심이 침대에서 일어섰다. 악마의 품에서 풀려난 어머니가 잽싸게 내 품으로 달려와서 안겨들었다.
나는 품에 안긴 어머니의 등을 토닥이며 악마가 하는 행동을 지켜보았다. 그녀는 거대한 침실 한 한구석에 설치된 벽장에서 무언가를 꺼내왔다.
그건 아직 생기가 감도는 인간의 눈이었다. 악마가 나를 보았다.
“그럼 내가 너한테 그 ‘이유’들을 주면 너는 얼마든지 그 녀석들을 죽일 수 있다는 거지?”
악마의 손 위에 놓인 눈알이 터졌다. 하지만 당연히 튀어나와야 할 살점과 체액 대신 새하얀 가루가 퍼져 나를 향해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건 기억이었다.
비명. 비명. 또다른 비명. 생에 대한 구걸. 무자비한 학살. 고통을 새기는 고문. 다시 비명. 또다시 비명. 끝없는 비명. 헤아릴 수 없는 절규.
‘살(殺)!’
단호한 목소리가 날 깨웠다. 정신을 차리자 하얀 이를 드러내고서 악마를 향해 으르렁대고 있는 어머니가 보였다.
버둥대는 호기심이 나를 보며 조용히 미소 지었다.
“이제 충분한 이유가 생겼으려나?”
잠깐 스며들었던 기억들이 점차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애초부터 오래 남아있을 생각은 전혀 없었다는 듯이. 기억들이 새긴 아련한 인상만이 내게 남았다.
“이건··· 뭡니까?”
“뭐긴, 너도 대충 감 잡았을 텐데? 내 지하투기장에 참가한 악신의 숭배자들의 기억이지 뭐야. 어때? 이 정도면 충분한 ‘이유’가 되려나? 네가 부담 없이 그들을 죽여버릴 수 있는 ‘이유’가 말이야.”
나는 잠깐의 침묵 후 그녀에게 답했다.
“전부 진실입니까?”
악마는 키득키득 웃으며 짧게 대답했다.
“안타깝게도?”
***
악마의 침실에서 벗어나자마자 다키아가 깊게 숨을 내뱉었다.
“하아, 진짜 소름 끼쳤어요. 마르낙 사제님은 진짜 아무것도 못 느꼈어요? 저는 방에 들어가자마자 뭔가 조금 숨이 턱하고 막히는 기분이었어요. 덕분에 말도 쉽게 못 했고요.”
아무래도 버둥대는 호기심이 다키아가 괜히 쓸데없이 대화에 끼어들지 않도록 뭔가를 했었나 보네.
“그나저나 진짜로 지하투기장에 참가할 생각이에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설사 제가 지더라도 성물은 자기가 알아서 잘 빼돌려주겠다고까지 했으니, 그녀가 바라는 대로 해줄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잠깐 스쳐 지나갔던 기억들이 조금의 이유를 더해주기도 했고.
다키아가 내 얼굴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런데 방에서 빠져나오기 직전에 악마가 마르낙 사제님 귀에 대고 무어라 속삭였잖아요. 그거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한 거예요?”
그건 같이 뒹굴고 싶거든 언제든지 몰래 찾아오라는 제안이었지만, 굳이 여기서 말했다간 어머니가 다시 한 번 날뛰시겠지.
나는 악마가 제안 뒤에 덧붙인 이야기만 꺼냈다.
“이길 자신 있으면 스스로에게 돈을 걸라고 하시더군요. 아무래도 지하투기장이니만큼 승자를 맞추면 배당이 나오나 봅니다.”
‘살해!!!’
어머니께서 당장 가진 돈을 전부 나한테 걸겠다고 소리쳤다. 확실히 나쁘지 않은 이야기였다. 나름 자신도 있었고.
돈 놓고 돈 먹기라.
나는 다키아를 보며 빙그레 웃었다.
“일단 오늘은 숙소로 돌아가도록 하죠. 날이 늦었습니다.”
***
[한참 찾았네! 대체 어딜 그렇게 돌아다니는 건가?]숙소로 돌아가자 우리를 맞이한 건 다름 아닌 아우렐리우스였다.
“무슨 일로 찾으셨습니까?”
[내 자네들에게 따로 사례를 해주기로 했지 않은가. 자네들에게 줄 물건을 챙겨왔네. 일단 내 방으로 올라가지.]우리는 그의 뒤를 따라 이 여관에서 가장 커다란 방으로 향했다. 방안에는 커다란 탁자가 놓여있었는데, 그 위에는 두 개의 물건이 놓여 있었다.
검은색 민무늬 가면. 반지.
[얼른 앉게. 내 사지타에게는 카르멘의 것까지 이미 물건을 줬네. 카르멘은 지금 갇혀 있으니 직접 건네주기 힘들 것 같아서 말이야.]다키아는 반지와 가면을 보고는 말했다.
“저희에게 직접 건네주시려고 기다리신 건가요?”
[당연하지! 직접 건네주는 쪽이 주는 맛이 있지 않은가? 자자, 보게. 이 반지가 바로 다키아 공녀께 드리는 내 선물일세.]금빛에 가까운 황동색 반지 위에는 고대어가 빼곡히 새겨져 있었다. 반지는 유물이었다. 고대제국의 유물.
다키아가 반지를 받아들자, 아우렐리우스가 기다렸다는 듯이 설명을 시작했다.
[이건 손가락에 끼면 마력을 다루는 정교함을 늘려주는 반지일세.]다키아는 두 눈을 크게 뜨고서 아우렐리우스에게 물었다.
“그러면 엄청나게 귀한 물건이 아니에요?”
아우렐리우스는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다키아는 냉큼 반지를 껴보고는 활짝 웃었다.
“감사히 쓸게요!”
아우렐리우스는 그 모습을 흡족하게 바라보고는 내게 검은색 민무늬 가면을 내밀었다.
[이것도 저 반지랑 같은 유물일세. 잘 보게.]그가 가면을 쓰자, 가면이 순식간에 수백 조각들로 나뉘더니 그의 얼굴에 딱 맞은 형태로 변했다. 가면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제 형태를 끊임없이 바꿨다.
[이건 착용자가 원하는 형태로 바뀌는 가면이라네. 강도가 그리 강하지는 않지만, 부서져도 시간만 지나면 스스로 복구되지! 자네는 그 이모탈리움 무기의 특성상 얼굴에 피하고 살점이 잔뜩 묻을 때가 많지 않나? 이걸 쓰면 조금 덜 묻을 걸세.]아우렐리우스가 가면을 벗어서 내게 건넸다. 나는 조심스럽게 가면을 받아들고 그에게 말했다.
“그래도 이것들은 전부 고대 제국의 유물들인데 이렇게 주시면 손해가 아니십니까?”
[전혀 아니라네.]미소와 함께 드러난 이가 황금빛으로 반짝였다.
[내 목숨값은 이런 유물 몇 개와는 차원을 달리하기 때문이지. 눈 속에서 다 죽어가던 나를 구해줘서 정말 고맙네. 자네들 둘 다.]***
기름 가득한 램프들이 일렁이는 가운데 지하의 투기장의 사회자가 큰소리 외쳤다.
“나옵니다! 나옵니다! 그 큰 발을 거침없이 놀리며 나옵니다! 모두들 아시는 그 이름! 다 같이 애타게 불러봅시다!!!”
“빅풋! 빅풋! 빅풋!”
“나는 너한테 걸었어! 빅풋! 뭉개버리라고!”
“와아아아아아!!!”
환호 속에서 건장한 성인보다 머리 세 개는 족히 더 큰 사내가 별명에 걸맞은 큰 발을 놀리며 여유롭게 걸어 나왔다.
전신을 뒤덮은 두꺼운 갑옷과 어깨에 들쳐 맨 거대한 쇠 곤봉.
빅풋은 관중들의 환호 속에서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리고 그 빅풋의 상대는 신인입니다!!! 모두 환호와 함께 환영해주시죠!!!”
사회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대기실을 박차고 웃통을 깐 사내가 뛰쳐나왔다.
전신에 빼곡히 박힌 근육은 과하지 않게 부풀어 마치 한 마리의 표범을 연상시켰다. 통 넓은 검은 바지를 입은 그는 얼굴 위에 새카만 가면을 쓰고 있었는데, 가면은 현대의 하키마스크를 닮아 있었다.
착지하자마 바닥을 지지대 삼아 뛰어오른 그는 자신의 유연한 근육들을 이용해 공중에서 정확히 네 바퀴를 회전하고서 멋들어지게 착지했다.
“노련한 ‘빅풋’의 상대는 바로 이름부터 위협적인 ‘인간도살자’!!!”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인간도살자’, 마르낙은 기다렸다는 양손을 펼쳐 거대한 경기장을 제 안방처럼 노닐며 환호를 유도했다.
그 능청스러운 행동에 관중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뜨거운 환호가 튀어나왔다.
“와아아아아아아아!!!”
“봤어? 방금 봤어? 공중에서 팽이처럼 도는 거?”
“미쳤네! 미쳤어!!!”
“빅풋 지지 마!!! 나는 너한테 걸었다고!!!”
방금 전까지 이런 곳은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다고 하던 사람이 맞나? 저건 본격적이어도 너무 본격적인데.
로브를 푹 눌러쓴 채, 관중들 사이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다키아가 얼떨떨한 목소리로 말했다.
“혹시 평소에 쌓인 게 있었던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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