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est of Corruption RAW novel - chapter (45)
45 화 버둥대는 호기심.
버둥대는 호기심.
다키아는 지하 통로를 걷는 내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수도에 이런 곳이 있는 줄은 처음 알았어요.”
“저는 수도 자체가 처음입니다.”
“완전 촌사람이네요. 그런데 시골에서 온 사람들은 보통 이런 건물을 보면 놀라던데, 마르낙 사제님은 아무렇지도 않으시네요?”
나야 이 세계에 떨어지기 전에 본 것들이 있으니까.
내가 무어라 대답하려던 그때, 전신에 검은 천을 두른 사람 하나가 통로의 저편에서 나타났다..
“누가 옵니다.”
다키아는 진지한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여차하면 쏠까요? 마법?”
“전 이런 곳에서 무너지는 통로에 깔려 죽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왜 이래요! 저 요즘 실력이 많이 늘었다고요! 마르낙 사제님도 잘 아시잖아요.”
“무너질 수도 있는 지하에서 써도 될 만큼은 아닌 거로 기억합니다.”
“저 잘할 수 있어요! 믿어봐요!”
“다음에 믿겠습니다.”
우리가 투닥 대는 사이, 검은 천으로 전신을 꽁꽁 싸맨 사람은 어느새 우리 앞에 도착했다. 나는 여차하면 도살자를 뽑아들 준비를 끝마치고서 질문을 던졌다.
“안내하러 오신 분이십니까?”
대답은 없었다. 그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 정체불명의 사람이 앞장서서 자신이 왔던 길을 되짚어가기 시작했다.
다키아가 슬쩍 내 옆으로 한 걸음 다가와서 속삭였다.
“저분 말이 없으셔서 살짝 으스스한데요.”
“저희에게 그다지 관심 없어 보이니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악마도 친구가 있다니 엄청 신기하네요. 제가 듣기론 악마는 사악해서 친구 같은 건 못 만든다고 하더라고요.”
“굳이 악마가 아니어도 친구를 못 만드는 사람은 무척 많습니다.”
“하긴 그렇네요.”
복잡한 복도의 끝에는 도달하자, 새카만 문이 우리를 반겼다. 우리를 안내한 자는 문 옆에 가만히 서서 침묵했다.
“들어가라는 거겠죠?”
“그런 것 같습니다.”
문을 살짝 밀자, 문은 기름이라도 바른 듯이 부드럽게 열렸다.
온통 검은색으로 치장해둔 침실이 우리를 반겼다. 검은 레이스로 장식된 화려한 침대 위에는 거의 헐벗었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복장의 여인이 담뱃대를 물고서 기대 누워있었다.
칠흑 같은 검은 머리와 새카만 눈과 퀭한 눈동자. 누가 보아도 폐인처럼 보이는 인상의 퇴폐적인 미녀는 입에 문 담뱃대를 뻐끔대며 말했다. 탁한 회색 연기가 그녀의 입에서 새어 나왔다.
“왜 왔어?”
나는 악마 영주가 건넨 나비 모양 배지를 내밀었다. 배지를 확인한 여인의 이마 위로 굵은 주름이 새겨졌다.
“내가 물어본 건 그게 아니잖아. 나는 너한테 왜 나를 찾아 왔느냐고 물었어.”
‘살해!!!’
저 여자도 악마라는 어머니의 외침. 악마라. 나는 조심스럽게 말을 골랐다.
“조금 도움을 구할 수 있을까 싶어서 왔습니다.”
“도움?”
여인은 천천히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흘러내린 어깨끈을 대충 끌어올린 여인이 침대 위에 편한 자세로 앉았다. 여전히 어깨는 침대 머리맡에 기댄 채로. 그녀의 시선이 내 몸을 찬찬히 훑었다.
“이름.”
“저는 마르낙이고, 이쪽은 다키아 이르멜이라고 합니다.”
“마르낙? 네가 요새 꽤 유명한 그 마르낙 맞아?”
“아마 맞을 겁니다.”
“흐음.”
여인은 담뱃대를 툭툭 건드리며 느긋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내 이름은 ‘버둥대는 호기심’이야. 너희들이 흔히 말하는 악마고. 그 배지를 받아올 정도면 내가 악마라고 당장에 검을 빼 들진 않겠지?”
“그럴 생각은 없습니다.”
“그럼 와서 앉아. 고개 들어서 보기 힘들어.”
우리는 미리 준비된 의자에 위에 앉았다. 버둥대는 호기심은 내 얼굴 빤히 바라보다가 피식 웃었다.
“내가 악마란 걸 알면서 안 날뛰는 걸 보니까, 너 유지의 사제가 아니구나?”
“예.”
애초부터 어머니의 성물을 찾는 도움을 구하려고 온 것이었기에, 숨길 생각은 없었다.
“저는 부패의 어머니를 모시고 있습니다.”
버둥대는 호기심이 두 눈을 크게 떴다.
“부패의 아들? 진짜 너 부패의 아들이 맞아?”
“왜 그러십니까?”
“왜긴.”
그녀는 담뱃대를 들어 내 얼굴을 가리키며 말했다.
“부패의 아들인데 아주 맛탱이가 안 가서 그러는 거지. 잠깐 이리 와봐. 조금 읽어보자.”
나를 읽어?
“꼭 필요하신 겁니까?”
“아니? 딱히? 그냥 내가 궁금해서 그러지. 내 이름이 뭐야? ‘버둥대는 호기심’이잖아. 이름만 봐도 이것저것 막 궁금해할 거 같지 않아? 그런데 나도 이 몸으론 많이는 못 읽으니까 너무 걱정 말고. 네가 왜이리 멀쩡한지 정도만 알아봐줄게. 예전에 만나본 애들랑은 너무 달라서 말이야.”
멀쩡한 이유라. 내가 고민하던 사이.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버둥대는 호기심이 내 얼굴을 향해 손을 뻗었다.
찰싹!
‘살해!!!’
품속에서 은은한 빛과 함께 어딜 감히 멋대로 손대느냐면서 어머니가 소녀의 모습으로 튀어나왔다.
나른함이 가득했던 버둥대는 호기심의 두 눈이 더 없이 커졌다. 그녀는 어머니와 나를 번갈아 보고는 내게 물었다.
“… 너 대체 뭐야?”
“지금까지 말씀드린 대로입니다만···.”
그녀는 다시 침대 위에 몸을 누이며 자신의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머지않아 진짜 크게 한바탕 난리가 나겠네, 이거.”
“그게 무슨 이야기십니까?”
“무슨 소리긴.”
버둥대는 호기심이 담뱃대를 뻗어 내 품에 안겨든 어머니를 가리켰다.
“네가 진짜 엄청나게 큰 사고를 치고 있다는 거지. 너 지금 부패의 어머니가 봉인된 성물을 모으며 다니고 있는 거잖아. 지금까지 몇 개 모았어? 보니까 대충 네 개에서 다섯 개 정도 모았겠네.”
네 개 모은 걸 대체 어떻게 안 거지?
나는 자세를 고쳐 앉았다.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해주실 수 있습니까?”
“아니. 못 해. 나는 못 해. 그건 본인한테 직접 물어보라고.”
‘살해…?’
어머니의 얼굴을 바라보자 어머니는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전혀 모르시겠답니다.”
버둥대는 호기심의 얼굴이 기묘한 표정을 지었다.
“너 지금 신과 ‘대화’한 거야? 직접? 그것도 아무런 ‘대가’도 없이?”
“저는 평소에도 자주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눕니다.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선 대화가 무척 중요한 법이니까요.”
그녀는 담뱃대를 입에 물고 다시금 뻐금대기 시작했다.
“미치지 않은 부패의 아들이 자신의 신과 아무렇지 않게 대화를 해? 정작 부패의 어머니, 본인은 아무것도 모르고?”
매캐한 연기가 방안을 가득 채울 때쯤, 악마가 나와 어머니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언제부터였어.”
“뭐가 말입니까?”
버둥대는 호기심이 자신의 머리를 톡톡 두드렸다.
“다른 사람들과 평범하게 대화할 수 있는 게 언제부터였냐고. 네 몸이 그렇게 ‘개량’된 뒤로.”
“처음부터 이랬습니다.”
그녀는 피식 웃고는 어머니를 빤히 바라보았다. 어머니는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악마를 마주 노려보았다. 악마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한 곳에 모든 걸 거는 건 그다지 좋은 방법이 아닌데. 하긴, 그럴 수밖에 없는 처지였나. 너.”
“네.”
버둥대는 호기심이 담뱃대를 뻗어서 나를 가리켰다.
“너 진짜 받은 만큼 갚으려면 아주 열심히 살아야겠네. 그것도 아주아주 열심히 말이야.”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시면 안 됩니까?”
“내가 더 자세히 말해주면 저기 있는 애들이 알아챌걸? 지금 이것도 아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 하고 있는 거야.”
그녀의 손가락이 하늘을 가리켰다.
하늘, 즉 천상의 신들이 알아챈다는 건가.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그렇다면 더 묻지 않겠습니다.”
“좋은 생각이야. 기껏 부탁하러 와서 다른 문제로 내 미움을 사면 곤란하잖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악마의 말이 맞았다. 지금 내가 물어야 할 건 수도에 있을 거라 추정되는 성물의 행방이었다.
버둥대는 호기심은 장난기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진한 다크서클. 그녀의 두 눈은 묘한 색기를 품고 있었다.
“그런데 너 악마한테 뭘 부탁하면 대가를 내놓아야 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지?”
“예, 뭘 원하십니까?”
그녀는 혓바닥으로 자신 입술을 핥고는 어깨끈을 슬쩍 내려 보였다.
“나랑 하룻밤 자자. 나 부패의 아들이랑은 뒹굴어 본 적이 없거든. 하나같이 또라이들이라서 말이야.”
“안돼요!”
대답은 내가 아니라 여태 조용히 이야기를 듣던 다키아에게서 튀어나왔다. 거기에 어머니가 악마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매처럼 뛰어올라서 그녀에게 달려들었고.
‘살해!살해!살해!살해!살해!!!’
거침없는 솜주먹의 난타가 악마의 얼굴 위로 작렬했다. 악마는 웃는 얼굴로 어머니의 난폭한 공격을 무방비하게 허용했다.
“너무 솜주먹이네.”
그 짧은 한마디에 어머니는 충격받은 얼굴로 자신의 꼭 쥔 두 주먹을 바라보았다.
‘살해…?’
‘내가 솜주먹…?’이라고 중얼거린 어머니가 떨리는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그 눈에는 격렬한 부정의 감정이 담겨 있었다.
‘나 솜주먹 아니지…?’라는 의미의 부정이.
나는 슬쩍 고개를 돌려 어머니의 시선을 외면했다. 솜주먹이 맞았으니까.
‘살해?!’
악마는 당황하는 어머니를 번쩍 들어서 자신의 무릎에 앉히고는 어머니의 머리 위에 자신의 턱을 올렸다. 어머니는 낑낑대면서 악마의 턱을 떼어내려고 노력했지만, 역시 역부족이었다.
버둥대는 호기심이 짓궂게 웃었다.
“장난이니까.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마. 뭐, 네가 정 원한다면 얼마든지 같이 뒹굴어 줄 수 있긴 해. 나 진짜로 부패의 아들이랑은 해본 적이 없거든.”
말을 마친 그녀가 자신의 어깨끈을 더욱 밑으로 끌어내렸다.
‘살해!!!’
어머니가 재빨리 어깨끈을 붙잡아서 다시 악마의 어깨 위로 올렸다.
“마음만 감사히 받겠습니다.”
“그래도 대가를 안 받을 수는 없긴 해. 나는 맨입으로 일하지 않는 법이거든. 어서 대가를 줘.”
그녀는 하얀 손바닥을 내밀었다.
“어떤 걸 말씀이십니까?”
“네 손에 든 배지 말이야. 그거면 돼. 애초에 나한테 부탁할 때 그거 주라고 못 들었어?”
“전혀 못 들었습니다.”
버둥대는 호기심은 키득키득 웃고는 내게서 검은 나비 모양 배지를 받아갔다.
“그럴 수도 있지. 사소한 장난은 삶의 유쾌함을 더해주는 법이니까. 언제나 즐겁게 살아야지. 안 그래?”
언제나 즐겁게 살라는 악마 영주의 말과 그녀의 말이 겹쳐 들려왔다. 나는 조용히 웃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인 버둥대는 호기심이 어머니를 꼭 껴안은 채로 말했다.
“네가 부패의 아들인 이상 바라는 건 뻔하지. 너 네 어머니의 신성이 봉인된 성물 찾아서 왔지? 나한테 그게 어딨는지 찾는 걸 좀 도와달라는 거고.”
“예. 정확합니다.”
“잘됐네. 성물, 그거 마침 나한테 있거든.”
운이 좋았다. 이대로 바로 성물을 챙겨서 어머니의 봉인을 또 하나 풀면 되겠네.
악마는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웃으며 말했다. 참 안타깝다는 듯이.
“그런데 이거 어쩌지? 내가 네 어머니의 성물을 우승 상품으로 걸어버렸거든.”
상품으로 걸어? 그걸?
‘살해?!’
나는 잔뜩 당황한 어머니를 대신해 악마에게 물었다.
“대체 어디 우승 상품으로 거신 겁니까?”
악마는 어머니의 머리를 턱으로 콕하고 두드리며 말했다.
“어디긴, 내가 운영하는 ‘지하 투기장’의 우승 상품으로 걸었지. 나는 대가를 받고 네가 원하는 게 어딨는지 알려줬으니, 이제부턴 네가 결정 할 영역이지. 성물이 갖고 싶거든 거기 참가해서 우승해봐.”
버둥대는 호기심이 가는 손가락을 뻗어 어머니의 턱을 매만졌지만, 이내 손등을 찰싹 얻어맞고는 키득키득 웃었다. 새카만 왼쪽 눈 밑에 외로이 찍힌 눈물점이 그녀의 웃음을 따라 흔들렸다.
“아, 혹시 나한테서 바로 성물을 받고 싶거든. 네 어머니 몰래 내 침대로 와. 나랑 찐하게 한 번 뒹굴어주면 그까짓 거 그냥 너한테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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