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internation Students makes good money RAW novel - Chapter 2
2화 쪼잔왕 차현식
기숙사에 도착하니 더 실감이 났다.
지금 나는 12년 전 처음 유학을 왔던 그 순간으로 회귀했다.
가장 먼저 눈치를 챌 수 있었던 건 당연히 머리숱이었다.
동식이랑 동업하면서 인생을 갈아 넣은 탓인지 다크써클은 턱밑까지 내려오고 스트레스성 원형 탈모까지 생겼었다.
듬성듬성한 머리숱 때문에 당연히 연애와는 거리가 멀었고, 설사 이런 나를 좋아해 주는 여자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일에 미쳐 워커홀릭이었던 나를 참아주고 기다려줄 여자는 이 세상에 없었을 것이다.
1년 365일 중 휴무는 아예 없고, 내 인생보다 동식이와 함께 하는 요리 사업이 나에게는 인생 그 자체였기에.
풍성한 머리와 연애와 젊은 날의 삶을 포기하고 나는 모든 걸 사업에 올인했다.
하지만 그렇게 얻은 건 탈모와 모쏠, 그리고 친구의 배신뿐이었지.
주륵-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솔직히 말해서 친구의 배신은 어렴풋이 처음부터 느끼고 있었다.
엄동식은 처음부터 얄팍하고 놀기만 좋아하는 껄렁한 놈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의 성격은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장점과도 같았다.
소심하고 내성적이며 자신감이 결여되어 있던 나를 북돋아 준 건 틀림없는 사실이었으니까.
그래서 이 녀석이 인간 말종에 언제든 사람 뒤통수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음에도 나한테는 그러지 않겠지, 나는 녀석이랑 가장 친한 친구니까와 같은 병신같은 생각을 한 거다.
뭐 그런 근거 없는 믿음은 당연히 보시다시피 쓰디쓴 배신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시간을 회귀해 돌아온 지금.
가슴에 손을 얹고 그 녀석의 배신으로 와신상담하여 꼭 녀석을 몰락시키리라 따위의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놈이 어떻게 되든 내 알 바 아니고.
나는 지난 생에 못 해봤던 것들, 죄다 하고, 죄다 누리고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돌이켜보면 나는 나 스스로가 경주마가 되려고 했던 것 같다.
경주마들은 목적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옆 시야를 차단당한 채 골 지점만을 향해서 달렸겠지만, 나는 나 스스로에게 목줄을 채우고 시야를 차단한 채 그저 사업을 번창시켜서 아메리칸드림을 이룩하겠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면 뭐 하는가?
모든 걸 잃고 빈털터리가 될 뿐이었는 걸.
원인이나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는 모르겠으나 이왕 나에게 이런 로또 맞은 것보다도 더 큰 행운이 나에게 찾아왔다면, 그건 바로 신이 나에게 주신 축복이리라.
그냥 그리 맘 편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내가 기숙사 안에서 틀어박혀서 골골대며 왜 갑자기 시간이 회귀했는지, 그리고 누가 나에게 이런 짓을 벌였는지 따위를 고민할 시간에 그냥 즐기기로 한 것이다.
이성의 끈은 이미 끊어진 지 오래다.
사실 그 끈은 비행기 안이 아니라 엄동식이 나를 배신했다는 걸 확인한 그 순간부터 끊어져 있었다.
건실한 청년, 누가 보기에도 흠이 없어 보이는 훌륭한 사람이 되라는 부모님의 말씀에 따라서 정말 열심히 살았는데, 그건 사실 내가 반만 따르고 있었던 거다.
건실한 청년이 되려면 세상 이치를 잘 알아야 한다.
그래야 어디 가서 사기당하거나 속아서 ‘건실한’이라는 타이틀을 빼앗기지 않을 테니까.
누가 보기에도 흠이 없어 보이는 훌륭한 사람이 되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
아무리 정의롭고 진실하며 부지런한 사람이라도 이룬 거 하나도 없으면 주변 사람이 보기에 구멍 숭숭 뚫린 흠 많은 모지리 사람으로만 보일 뿐이다.
그러니 이왕 다시 사는 거.
이번에는 자유롭고.
놀 땐 놀고.
즐길 땐 즐길 수 있는.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 거다.
*
다음 날.
기숙사는 기본적으로 2인 1실.
하지만 회귀 전에 경험했던 내 룸메이트는 내일까지 오지 않는다.
어차피 오늘, 내일, 그리고 주말은 학교에 처음 오는 신입생 환영회, 즉 오리엔테이션 행사가 있는 날이니 굳이 오지 않아도 되긴 한다.
다음 주 월요일부터 수업이 시작하니까 일단 오늘 목요일은 외국인을 위한 오리엔테이션에 참여하고, 그다음으로는 학과마다 주최하는 오리엔테이션 행사에 참여하면 될 것이다.
뭐 토요일부터 시작되는 신입생 파티와 행사는 핵인싸나 참여하는 거니까 패스하고.
이미 학교도 다녀봤고, 어떻게 굴러가는지 정확히 알고 있는 나로서는 굳이 외국인 오리엔테이션을 갈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내가 가지 않으면 안 될 이유가 딱 하나 있다.
그건 바로.
경품 추첨.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외국인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해 손가락보다 작은 크기의 티켓을 받고 그 티켓에 적혀 있는 번호가 호명되면 대학교에서 준비한 경품을 선물로 주었던 것을.
그리고 미국이라 그런지 어정쩡하게 필기구 세트, 싸구려 가방 같은 게 아니라 확실한 경품 딱 하나를 걸고 추첨했었다.
그건 바로 최신식 노트북.
물론 내가 쓸 건 아니고.
그거 팔아서 생활비를 마련하려고.
중고로 팔아도 족히 500불은 받을 수 있는 고가의 노트북이니까 꼭 경품으로 받아야 한다.
그런고로 일어나자마자 샤워하고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난 뒤에 곧장 밖으로 나갔다.
기숙사 밖으로 나가자 바로 코앞에 캠퍼스 풍경이 펼쳐졌다.
꽤 오랜만에 보는 풍경이라 감회가 새로워서일까? 마치 내가 신입생이 된 것 같은 두근거림이 느껴질 정도였다.
“날씨 좋고.”
내가 미국으로 유학 온 대학은 텍사스주 내에서는 꽤 유명하지만 랭킹을 매기자면 중상위권 정도의 그럭저럭 괜찮은 대학교.
이름은 댈러스 메트로폴리탄 대학교.
영어로는 Dallas Metropolitan University.
줄여서 DMU다.
DMU의 특징이라고 한다면 아름다운 캠퍼스 풍경과 학교 자체가 돈이 워낙 많아서 캠퍼스 라이프에 투자를 굉장히 많이 한다는 것 정도?
한국인 기준 좋은 대학이라고 부르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캠퍼스 생활을 즐기고 젊은 20대의 대학 생활을 만끽하기에는 이보다 더 좋은 대학은 없을 것이다.
그런 대학교에 다니면서 나는 한국인에 영어도 어리숙했고, 내성적인 성격에다 어떻게든 성적을 좋게 받아서 장학금 한 번 타보겠다고 발악하던 조용한 너드 유학생일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난 옛날의 차현식이 아니다.
미국의 기본적인 에티켓을 몰라 몰상식한 사람이었던 옛날의 반해 지금은 그런 게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몸에 밴 트루 어메리칸에 가까웠으니까.
가장 먼저 몸에 거의 닿을 것 같이 가깝게 스쳐 지나갈 때는 반드시 ‘익스큐즈미’라고 해야 한다.
“익스큐즈미.”
능숙하게.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이 뱉어내는 에티켓에 한 미국인 학생이 나를 보며 싱긋- 미소 지었다.
또 내가 미국에 처음 와서 가장 당황스러웠던 것 중의 하나가 바로 문을 열고 들어갈 때, 꼭 뒤 따라 들어오는 사람을 위해 문을 잡아주는 게 암묵적인 룰이었다는 것.
난 그걸 졸업할 때쯤에나 깨달았다.
어쩐지 항상 문을 열고 쌩- 하고 나가버리면 뒤따라오던 사람이 나를 흘겨보며 무어라 욕지거리를 뱉어내던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실수 따위는 하지 않는다.
나이스하고.
젠틀하게.
문을 먼저 열어 뒤따라 들어오던 사람을 위해 문을 잡아준다.
“오, 땡큐.”
라는 인사를 건네는 금발의 백인 누님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화답한다.
“노 프라블럼.”
그러면 문을 지나는 누님이 나를 보며 환하게 웃는다.
이거 혹시 그린라이트?
라고 옛날에는 생각했겠지만, 이건 완전히 몸에 밴 습관 같은 것이니 착각은 금물.
하지만 저런 예쁘고 젊은 누님이 나를 향해 웃어주면 나도 모르게 실실 쪼개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신입생인 경우에는 워낙 크고 복잡한 캠퍼스 구조 때문에 모양 빠지게 이리저리 둘러보며 헤매기 마련이지만, 4년 동안 대학을 다닌 나로서는 우리 집보다 더 편안한 느낌이었다.
능숙하게 스튜던트 유니온 빌딩(Student Union Building)을 찾아 외국인 오리엔테이션이 열리는 빌라드 관으로 향했다.
빌라드 관 근처에 도착하니 그곳에서 서성이는 유럽, 아시아 계열의 유학생들이 보였다.
이들은 정확히 빌라드 관이 어디고 언제 들어가야 하는지 따위를 잘 모르고 있었다.
“저기가 빌라드 관이야. 저 스태프 보이지?”
“오오, 고마워. 근데 넌 직원이야?”
능숙하게 빌라드 관으로 안내한 나를 보며 반짝이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중국 유학생.
나는 싱긋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나도 여기 신입생이야.”
“어, 어? 그래? 근데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아~ 그냥.”
중국 유학생과 함께 빌라드 관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 스태프가 나눠주는 티켓이 눈에 들어왔다.
“너 먼저 가.”
나는 중국 유학생에게 먼저 티켓을 양보했다.
“아, 고마워.”
그리고 난 뒤에 빌라드 관에 들어가 빈자리에 보이는 곳에 착석하고 오리엔테이션이 시작하기만을 기다렸다.
10시 30분이 돼서야 시작된 오리엔테이션은 따분하고 모두 아는 내용의 대학교 사전 지식에 대한 설명들이었다.
특히 외국인 유학생의 경우 학생 비자로 해도 되는 것과 해선 안 되는 것을 잘 구분해서 설명해주었다.
물론 내가 처음 신입생으로 왔을 때는 잘 설명해주었음에도 헷갈리고 뭐가 뭔지 잘 몰랐지만.
“그럼 오늘 오리엔테이션을 모두 마칩니다.”
마지막 설명까지 모두 마치자 드디어 모든 오리엔테이션 일정이 끝이 났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오리엔테이션은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그럼 지금부터 경품 추첨을 시작할까요? 알 유 레디?”
진행자의 말에 따라 우리는 모두 빌라드 관으로 들어오기 전에 나눠 받은 티켓을 꺼내 들었다.
거기에는 다섯 자리의 숫자가 쓰여 있었는데 내 번호는 26792.
저 다섯 숫자가 불리면 앞에 나와 있는 최신식 노트북은 내 차지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안다.
저 노트북은 곧 내 것이 되리라는 것을.
어떻게 아냐고?
지난 생에서는 바로 내 뒤에 있던 남자 학생이 저 노트북의 주인공이었으니까.
그때 얼마나 아쉬웠던지.
그 학생의 얼굴까지 아직 기억하고 있을 정도였다.
그래서 빌라드 관으로 들어가기 직전에 그 학생이 티켓을 받으려는 타이밍에 내가 끼어들어 그 번호를 받아낸 것이다.
그리고 그 유학생이 바로 내가 길 안내를 해주었던 그 중국 유학생이었다.
“자, 번호는 2··· 6··· 7···.”
남은 두 자리는 분명 92가 분명하다.
그리고 노트북은 내 차지가 되겠지.
“92. 26792번 학생 누구죠?”
나는 티켓을 들고 당당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내 옆에 앉은 바로 나 다음으로 들어왔던, 그리고 나 직전에 들어와 내 근처에 자리 잡았던 학생들의 부러움 가득한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았다.
‘생각보다 더 짜릿한데?’
최신식 노트북을 건네는 장면을 사진 촬영하고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다.
드디어 지난 생에서는 정말 아깝게 놓치고 말았던 노트북이 내 것이 된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내 소싯적 별명이 MJ였다.
마이클 조던.
농구를 마이클 조던처럼 잘해서?
아니다.
마이클 조던의 별명은 ‘쪼잔왕.’
모든 걸 기억하고 마음에 담아두었다가 결국은 복수에 성공하기에 쪼잔왕으로 불린다.
어떤 선수가 마이클 조던을 상대로 블록을 하면 그걸 기억했다가 결국 똑같이 갚아줘야 하는 그 성격 때문에 그는 절대로 지고 싶지 않아 하는 농구 황제가 되었다.
그리고 나 또한 굉장히 쪼잔하기에 뭔가 아쉽거나 마음이 불편했던 건 끝까지 기억하는 습관이 있었다.
나 쪼잔왕 차현식.
지난 생에 받지 못했던 경품 추첨을 모두 내가 싹쓸이할 거다.
나의 럭셔리 유학생 라이프는 이제 시작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