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sword demon changed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166
166. 마지막 밤
“하하 잘 어울립니다 장 대협!”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적당한 인사치레 말로 대화를 빠르게 정리한 ‘친구’는 최대한 침착한 태도로 번의 시간표를 확인하기 위해 발걸음을 서둘렀다.
도착한 곳은 대연회장, 원래라면 고관대작, 혹은 거부들이 술과 노래를 즐기며 흥청망청 흐트러질 그 장소에는 피곤한 얼굴을 하고 있는 후기지수들이 가득했다.
세상 잃은 표정으로 축 쳐져 있는 자.
아무대서나 적당히 널브러져서 수면을 취하는 자.
자신이 번을 설 시간이 되어 나갈 준비를 하는 자
부상을 입고 자리에 누워 끙끙 대는 자까지.
친구는 그런 이들을 감흥 없는 눈으로 적당히 살피고는 자연스러운 걸음걸이로 목표물로 향했다.
번의 시간표는 대연회장 한 쪽 벽에 사람들이 보기 좋은 위치에 붙어 있었다.
친구는 짐짓 태연한 얼굴로 시간표를 확인했고 이내 인상을 조금 찡그렸다.
‘장백서와 팽경후…… 뭐야? 번의 시간을 바꿨다더니 고작 한 순번 차이잖아?’
그 말 대로 장백서가 번을 선 다음이 바로 팽경후가 번을 서는 시간이었다.
‘왜 구태여 시간을 바꾼 거지?’
친구는 잠시 생각해 보았으나 이내 이것도 그리 나쁘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번을 바꾸는 이유 따위야 사실 찾아보면 얼마든지 있었다.
반시진이라도 더 자고 싶어서, 혹은 같이 번을 서는 사람들이 마음에 안 들어서 같이 자질구레하고 시답지 않은 이유들이.
절체절명.
한 번의 실수가 곧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는 극한의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과 사람이 얽히는 일이란 으레 그런 법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가 마음에 드는 것은 그렇게 두 사람이 순번을 바꿈으로 인해 장백서가 자신과 같은 시간에 번을 서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보초를 서로 가기 전 같은 시간대의 번들은 온천 별장 앞 공터에 한 번 모여서 인원을 확인한 뒤 번을 교대하러 이동한다.
장백서가 번을 서로 떠나는 모습을 두 눈으로 확실히 확인할 수 있는 지금의 순서가 친구의 입장에서는 그리 나쁘지도 않았다.
‘전화위복이란 건가?’
속으로 조소를 삼킨 친구는 이내 조용히 대연회장을 빠져나왔다.
다가올 밤에 대한 기대를 안고서……
***
산의 어둠은 도시보다 항상 몇 발자국 빠르다.
친구가 대연회장을 빠져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위에 어둠이 내려앉았고 곧, 그가 그토록 간절히 기다리던 시간이 다가왔다.
“이제 슬슬 시간입니다, 함께 가시죠.”
온천 별장의 이 층에서 적당히 시간을 보내던 친구를 찾아온 것은 같은 시각 같은 남쪽지점에서 함께 번을 설 인물, 금향오였다.
“…….”
그리고 그의 뒤에는 겸연쩍은 얼굴로 뒤를 따르는 황보위향이 있었다.
그녀 역시 그와 함께 번을 설 인물이었다.
황보위향은 저지른 죄가 있는지라 그 후에도 계속 저리 쭈뼛대고 있는 상태였다.
‘쓸모 없는 년…….’
그는 속으로 혀를 차고 안절부절못해하는 황보위향을 쳐다보았다.
물론 처음부터 충동질이 잘 먹히지 않을 거라 생각했기에 큰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백서의 입 발린 말 몇 마디에 넘어가서는 눈물콧몰을 질질 짜는 몰골을 보니 기분이 짜게 식었던 것이다.
특히 그 뒤로 어미를 쫓아다니는 오리새끼마냥 ‘장 대협 장 대협’ 하고 장백서의 뒤를 따라다니는 꼬라지는 정말……
‘쯧, 제 오라비의 반의 반도 닮지 못한 반편이년!’
친구는 황보위향과 싸우면서 장설린이 했던 말에 적극 동의하면서도 겉으로는 미소를 가장하고 금향오와 황보위향, 두 사람과 인사를 나누었다.
그렇게 인원확인을 위한 집합지점으로 발걸음을 옮기던 중……
“저… 잠시만…….”
“응? 무슨 일입니까 황보 소저?”
불안한 듯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는 황보위향에게 금향오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여,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 주실 수 있나요?”
그렇게 말한 황보위향은 목소리만이 아니라 행동거지 역시 정상이 아닌 것이 안절부절못해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직감적으로 이상을 감지한 금향오는 짐짓 심각한 얼굴로 물었다.
“황보 소저, 혹시 몸이 좋지 않으신 겁니까? 설마 원 소저가 공격당했을 때 황보 소저 역시 무언가 내상을…….”
“아, 아니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잠시만 기다려 주시면…….”
“소저! 숨겨서 될 일이 아닙니다, 적들은 사마외도의 괴이한 기술을 쓰는 악적들! 가령 가볍게 생각한 상처가 무언가 사악한 수법에 당한 것이어서 차후 심하게 악화될 위험도…….”
“벼, 변소가 급한 거라구요!!”
산발적으로 말을 쏟아내던 금향오는 황보위향의 그 한 마디에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아미타불… 급하시다면 어서 갖다 오시죠…….”
겸연쩍은 얼굴을 한 금향오가 불문을 외웠고 얼굴이 새빨갛게 변한 황보위향이 금향오와 ‘친구’에게 고개를 숙이고는 급히 그들의 눈 앞에서 사라졌다.
그런 황보위향의 뒷모습을 보며 친구는 속으로 혀를 찼다.
‘중요한 순간에 초를 치기는…….’
자꾸 신경에 거슬리는 짓만 해대는 황보위향의 모습에 그녀 역시 목록에 이름을 올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에 대한 살의가 점점 커져가는 친구였다.
‘참자…… 참아야지, 저런 반편이라 해도 명색이 황보세가의 핏줄, 얼마든지 쓸모는 있을 테니까…….’
그렇게 되뇌이며 살심을 달래는 친구였지만, 애초에 그에게 누구를 죽이고 누구를 살릴지에 대한 선택권 따위는 없었다.
그 역시 어디까지나 위대한 뜻을 가진 분들의 편리한 수족에 불구한 위치였으니까.
그렇게 불쑥불쑥 솟는 살심을 억제하며 친구는 금향오와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황보위향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황보 소저가 조금 늦으시는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달을 보건데 얼추 집합시간도 다 되었을 터인데…….”
그렇게 말한 금향오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안 되겠습니다, 우선 제가 집합장소로 가서 황보 소저가 변…… 아니 조금 사정이 있어 늦을 수 있다 전하고 오겠습니다.”
“네? 그건…….”
금향오의 말에 친구는 크게 당황했지만 짐짓 태연한 척 말을 이었다.
“……구태여 그럴 필요까지 있겠습니까? 영 뭣하면 제가 한 번 가보겠습니다.”
한 번 부정하는 듯한 말을 한 뒤 짐짓 자신이 고생을 대신하겠다는 말을 함으로서 자연스럽게 자신이 집합장소로 가려고 했지만……
“아닙니다, 시주는 여기서 황보 소저를 기다리고 있어 주십시오, 제가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금향오는 그런 친구의 제안을 거절하고 그가 무어라 더 말할 틈도 주지 않고 자리에서 사라졌다.
“…….”
우득
친구는 자신의 뜻대로 전혀 움직이지 않는 상황에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지금이라도 금향오의 뒤를 따라갈까 고민했다.
그의 목적은 간단하고 또한 명료했다.
‘장백서가 이곳을 떠나는 모습을 내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라면 지금 당장이라도 금향오의 뒤를 따르는 것이 맞지만…… 혹여라도 그 행동으로 인해 의심을 사게 된다면 그야말로 본말전도, 모든 것이 끝이었다,
‘아니 구태여 금향오 그자의 뒤를 쫓아 갈 필요는 없겠군, 어디까지나 장백서, 그자가 떠나는 모습만 확인하면 되니까!’
생각을 정리한 친구는 급히 주변을 살폈다.
주변에 인기척은 딱히 없는 것이 황보위향이 오려면 아직 좀 더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이내 마음을 정한 그는 창가에서 몸을 날려 건물의 옥상으로 올라간 뒤 기와 위에 납작 엎드려 몸을 숨겼다.
그리고 이내 벌레처럼 네 발을 이용해 소리 없이 집합장소가 보이는 위치로 이동했다.
사사사사삭!
기와위를 소리 없이 네 발로 기어가는 모습이 심히 보기 좋지 않았으나 친구에게 있어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그렇게 아슬아슬하게 아래쪽 집합지점에서 자신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사각 지점에 도달한 그는 급히 장백서의 존재를 확인하려 했으나……
‘빌어먹을!! 한 발 늦었나!?’
친구가 행동 방침을 고민하는 사이 이미 금향오는 기다리고 있던 이들에게 말을 전했고 그가 천장을 기어 이동하고 있을 적에는 이미 신법을 전개한 이들이 거점에서 등을 돌려 달려나가고 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그때!
‘놈이다!!’
친구의 눈에 화려한 호피무늬 장속을 입은 남자가 두 인영과 함께 서쪽을 향해 빠르게 멀어지는 모습이 들어왔다.
이미 상당한 거리가 벌어졌고 온천별장을 등지고 달려나가고 있었기에 얼굴이나 기척으로 신원을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그가 입고 있는 화려한 호피 장속만은 분명하게 알아볼 수 있었다.
씨익
벌레처럼 기와위에 몸을 숨긴 친구의 입가에 꺼림칙한 미소가 맺혔다.
표정을 절제하는 기술만큼은 같은 ‘기수’의 그 누구보다 자신 있다 생각하는 그였지만 이 뜻밖의 행운에 저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걸린 것이다.
그리고 곧 비틀린 미소를 머금은 기와 위의 벌레는 왔던 때와 같이 소리도 기척도 없이 자신이 기어나온 틈으로 되돌아갔다.
곧 찾아올 핏빛의 밤을 기대하면서……
***
“늦어서 죄송해요… 사실 용무를 마치고 오는 길에 장설린 씨를 만났던 터라…….”
뒤늦게 돌아온 황보위향은 짐짓 죄송한듯 고개 숙이며 사정을 설명했다.
그녀의 말은 즉슨, 급히 볼일을 보고 돌아오던 중 우연히 장설린과 마주쳤으며 그 때문에 돌아오는 것이 늦어졌다는 이야기였다.
“설마 또 장설린 소저와 싸운 것입니까?”
짐짓 심각한 얼굴로 금향오가 묻자 황보위향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오히려 그 반대였어요, 그 사람은…… 전번에 싸웠을 때 자기가 말을 너무 심하게 했던 것에 대해서 사과를 하러 온 거였어요…….”
그녀는 무언가 복받쳐 오르는 듯 잠시 숨을 고르고는 이내 말을 이어갔다.
“먼저 그녀와 다른 사람들을 모욕하고 집단의 화합을 깬 건 저였는데…… 그런데도 장설린 씨…… 아니 장설린 언니는 먼저 자신이 잘못했다고 사과하셨어요, 그런데도 저는 얼이 빠져서는 그저 고개만 끄덕거리고, 나도 사과했어야 했는데…….”
못난 자신이 미운 건지 아니면 대범한 장설린이 부러운 건지 잠시 고개 숙이고 있던 황보위향은 이내 친구와 금향오에게 다시 한 번 고개 숙여 사과했다.
이유가 뭐가 됐던 그들을 오랫동안 기다리게 한 건 사실이었으니 다시 한 번 사과한 것이었다.
“하하하! 그런 걸로 사과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두 분이 화해하셨다니 잘 된 일이지요.”
“정말 그렇습니다.”
“오히려 이 경우에는 저희들이 늦어서 번 시간이 길어진 전번 보초 분들에게 사과해야겠죠.”
“아……!”
“하하하! 걱정 마십쇼 저도 같이 사과해드릴 터이니.”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세 사람은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누며 뒤늦게 집합장소로 걸어나갔다, 다만 한 명, 전혀 다른 꿈을 품은, 동상이몽의 벌레와 함께.
***
“신호가 왔다.”
일단의 무리가 모여 있던 공터로 한 명의 암객이 급히 달려왔다.
그는 이제까지 첩자와의 연락을 담당하고 있던 암객이었다.
밤에는 시야가 원할하지 않아 행동신호는 쓸 수 없었고 대신 그가 유일하게 구분할 수 있는 피리신호로 신호를 받기로 했다.
그런 만큼 밤에는 소통이 원활하지 않았지만 편도에 전하는 정보도 간단했기에 어떻게든 소통이 성립했다.
“확실한 건가?”
그 말을 전해들은 연파월은 영 내키지 않는 얼굴로 연락책에게 그리 물었다.
연파월의 물음에 묘한 표정을 한 연락책은 이내 어이없다는 얼굴로 되물었다.
“세작이 신뢰할 수 있는 자인지 그렇지 않은지를 내가 어찌 알겠나? 애초에 일의 주선자인 연파월 네 녀석 이외에 그 누구도 놈의 진짜 정체를 모르는데”
그 말에 연파월 역시 더 할 수 있는 말이 없는 터라 입맛을 다실 뿐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입맛을 다시는 와중에도 연파월의 머릿속은 쉴 새 없이 굴러가고 있었다.
‘일이 너무 쉽게 풀리는 것이 아닌가?’
떠오르는 것은 도저히 후기지수의 것이라 볼 수 없던 장백서의 무위와 산전 수전을 다 넘은 ‘전귀’ 와도 같은 눈빛이었다.
‘그런 놈을 상대로 이리 일이 쉽게 풀린다?’
아무리 생각해도 무언가 뒷맛이 찝찝했다.
마음 같아서는 이미 어그러져 버린 이 일을 내팽개치고 싶은 연파월이었지만 역설적이게도 후기지수들을 고립시킨 진법은 그들에게도 역시 빠져나갈 길 없는 새장이었다.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가자, 이 지겨운 곳도 이걸로 마지막이다.”
여산만인투 그 마지막 밤의 막이 올랐다.